춤****님은 내게 참 고마운 분이다. 알라딘 벗들 중 그런 분이 많지만 특히 그분은 나와 감성이 잘 맞고 글만으로도 늘 안아주고픈 마음 여린 동생 같은 사람이다. 그분은 내게 이모같다고 했고 늘 우리집 작은딸을 귀여워했지만.^^ 긴 머리에 가느다란 몸매 하얀 얼굴이 언뜻 올라오는 사진으로 볼 수 있는 모두였지만 늘 고민하는 아름다운 청춘이란 생각이 들어 그 나이가 참 부럽다는 생각도 가끔 했더랬다. 언젠가 길을 가다 전화를 받고 목소리를 한 번 들은 적이 있는데 시끄럽던 와중에도 목소리가 어찌나 어여쁘던지.. 통통 튀어오르는 분수대의 물방울 같다는 생각을 했었고, 방금 만났다 헤어진 사람처럼 친근하게 들렸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궁금하다. 내가 그동안 무심했다.  

특히나 춤****님은 내게 소설가 한강과 가까워지게 해준 분이다. 그분은 김훈이면 김훈, 김경주면 김경주, 이병률이면 이병률, 애정어린 독자로서의 깊이와 감각이 남다르다. 한강을 참 좋아한다며 몇 권의 책을 선물로 보내주셨더랬다. '여수의 사랑'은 빼고, 한강의 책 '내 여자의 열매'와 '검은 사슴'. 내가 '채식주의자'를 사서 읽은 건 그 이후였던가 그 이전이었던가 기억이 가물하다. 그리고 한강의 산문집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는 2007년 6월 말 엄마가 직장암 수술을 받으러 들어가기 전날 밤 잠 못 이루고 읽었던 책이다. 마음에 편안한 위로의 손길과 담담함을 주었던 글이다.

2월 18일,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영화로 개봉된다. 지금 가장 기대되는 영화!!  

채식주의자 - 몽고반점 - 나무 불꽃, 이 세가지 중편소설을 연이어 어떻게 이야기로 이었을까 궁금하다. 상처, 예술, 죽음 그리고 영생으로서의 부활 다시 죽음. 상처도 대물림을 하는 것일까. 영혜 역으로는 채민서, 영혜의 언니 인혜 역으로는 김여진이 나온다. 채민서도 감독도 나로선 처음 보고, 김여진은 연기를 잘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영리한 배우다. 

난 육식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채식주의자는 아니다.  ^^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가.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이 둥근 가슴이 있는 한 난 괜찮아. 아직 괜찮은 거야. 그런데 왜 자구만 가슴이 여위는 거지. 이젠 더이상 둥글지도 않아. 왜지. 왜 나는 이렇게 말라가는 거지. 무엇을 찌르려고 이렇게 날카로워지는 거지.   - <채식주의자> 43쪽, 창비

 
   

 




 
 
순오기 2010-02-07 15:01   댓글달기 | URL
춤****님 글, 나도 기억하고 있는데...
한강이 한승원 작가의 딸이라는 것만 알지, 책은 안 읽어봐서 몰라요.
영화보기 전에 봐야 할까, 영화 보고 나서 책을 봐야 할까요?

프레이야 2010-02-07 15:10   URL
아직 읽어보지 않으셨다면 그냥 영화로 먼저 만나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요.^^
부녀지간에 얼굴이 닮았지요.

nabee 2010-02-07 15:50   댓글달기 | URL
저두 한강의 책 안읽어봤는데,,,영화로다가 걍~~.ㅎㅎㅎ
아니면 프레이야님의 리뷰로다가~~~헤헤
(하지만 프레이야님이 강력하게 권한다면 책을 읽을 마음은 있다는,,,)

프레이야 2010-02-07 21:28   URL
우리 이 영화 같이 볼 수 있음 좋을텐데요. 설 지나고^^
책은 읽어도 안 읽어도 무방할 듯해요.

다락방 2010-02-07 21:39   URL
아 nabee님. [몽고반점]과 [아기부처]는 정말 강하게 추천해드리고 싶은 책인데 말입니다!! 읽어보세요. ㅜㅡ

세실 2010-02-07 17:16   댓글달기 | URL
몽고반점 읽었습니다.
아 저도 예쁜 춤****님 보고싶어요. 김훈작가 참 좋아하지요.

프레이야 2010-02-07 21:43   URL
어여쁜 춤님은 루시드 폴도 좋아하시지요.^^

다락방 2010-02-07 21:40   댓글달기 | URL
저는 [몽고반점]도 좋았고 [채식주의자]도 좋았지만 [아기부처]가 정말 좋았어요, 정말.

춤님은 어쩌다 페이퍼를 남기시는 데, 자꾸 지우시더라구요. 그저 두어도 좋을 것 같은 그런 글들인데 말예요.

프레이야 2010-02-07 21:45   URL
그러게요, 가끔 지우고 없어진 페이퍼가 있더군요.
저도 그러고 싶은 글 없지 않지만 그냥 둔답니다.
내세울만한 건 아니어도 다 내 마음의 흔적들이니 뭐 그냥 뻔뻔하게 ㅋ
다락방님, 전 '아기부처'는 못 읽었네요.
찾아볼게요.^^

다락방 2010-02-07 21:52   URL
[몽고반점]이 이상문학상 수상했던 그해에, 그 이상문학상수상작품집에 수상작가의 작품이라 한편 더 실린것이 [아기부처]였어요. (찾기 쉬우시라고..헤헷)

소나무집 2010-02-08 08:06   댓글달기 | URL
이 작품을 읽고 가슴 시렸던 기억이 나네요. 영화로 나온다니 기다렸다가 배꽃 님 만나 같이 봐야겠어요.

프레이야 2010-02-08 08:19   URL
네, 18일 개봉이라니까..
배꽃님이랑 같이 보시면 너무 좋으시겠어요.^^

하늘바람 2010-02-08 11:19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그분을 모르네요. 이리 아쉬울수가. 한통속에서 빠진 느낌.
하지만 한강이란 작가는 이름을 들어서 알아요. 역시 안타깝게도 작품으로 만나지를 못했네요. 정말 많이 배우고 겉핥기 서재질을 반성해야겠어요

프레이야 2010-02-09 01:01   URL
전 하늘바람님도 좋아해요^^

같은하늘 2010-02-09 14:41   URL
아 저는 그분을 모르네요. 이리 아쉬울수가. 한통속에서 빠진 느낌.(2)
하늘바람님 저랑 한통속 하자구요.^^
앗! 안되겠다. 전 항강이란 작가도 지금 알았어요.ㅜㅜ

 



시지프스가 굴리는 돌처럼

단단한 바윗돌에 부딪혀서 깨어지며 되돌아가는 

하얀 비누거품 같은 파도  

또 다시 부딪혀와

한줌 쥐어지지 않는 격랑이 일고 

되돌아가 또 어디서 잠재울 수 있을까   

난무하며 방랑하는 날마다 치르는 이별의식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물기어린 미립자 

그 이름, 그림자 

  

 




 
 
stella09 2010-02-07 13:36   댓글달기 | URL
사진이라기 보단 무슨 미술작품 같군요.
뭘 찍으신 건가요? 글은 확실히 시네요. 흐흑~

nabee 2010-02-07 23:16   URL
저도 같은 생각!!!!!!!
저에게 사진 안팔고 싶으신가보다고 혼자 생각,,,ㅠㅠ

세실 2010-02-07 17:21   댓글달기 | URL
그림인가요? 소재가 참 독특합니다.
파도에 대한 글 특히 멋져요.
 

한국의 발자크, 역사의 골짜기를 월광(月光)으로 물들이다

                                          - 이병주문학관을 다녀와서




                                                                                                      

   

 ‘나폴레옹 앞에는 알프스가 있고 내 앞에는 발자크가 있다.’




  나림(那林) 이병주(李炳注1921~1992)가 문학수업을 받던 대학시절 책상 앞에 써놓았던 글귀다. 전 생애를 통해 정복해야 할 산(山)으로 발자크를 세운 점에서 소설가로서 그의 충천한 기대와 야심을 엿볼 수 있다.

  발자크(Honore de Balzac, 1799~1850)는 19세기 프랑스 문호로 사실주의 소설의 창시자다. 프랑스 혁명 이후 전쟁과 산업혁명, 자본주의가 진행되던 격동의 시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그는, 냉혹하고 천박한 욕구로 들끓는 등장인물을 내세워 인간 내면의 욕구와 시대의 본질을 총체적으로 그려낸 최초의 작가로도 손꼽힌다. 작가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 리얼리스트로서의 작가적 내면, 거대한 상상력으로 시대와 문학의 연(緣)을 작품 속에 풀어낸 점에서 발자크는 이병주의 롤모델이었다. 발자크는 하루 50잔의 커피를 마시며 상당한 량의 원고를 써내려간 작가로도 유명하다. 이에 못지않게 이병주는 하루에 원고지 이백여 장, 한 달 평균 일천여 매의 원고지를 집필한 다작(多作)의 작가다.

  




  하늘도 청명한 구월의 어느 하루, 한적한 고속도로를 타고 남강휴게소를 지나는 동안 가을 풍경이 느리게 이어졌다. 황금물결로 일렁이는 벼가 농부의 손길을 기다리고 사천천을 지나 서포 위로 달리는 해발 4백 미터의 길에는 노랗게 물든 모과가 정겨운 얼굴로 매달려 있었다. 나지막한 산이 한아름에 안길 듯 덤벼들었다. 오래 전에 북천초등학교를 졸업한 선후배간 시인 두 분의 재미있는 이야기에 웃음 지으며 곤양인터체인지로 내렸다. 사천 국도에는 코스모스가 가녀린 몸매로 꽃무리를 짓고 억새가 찬연한 햇살 아래 출렁였다. 길가에 아무렇게나 자라 있는 옥수수가 그리 크지 않은 키에 강단 있어 보였다. 가을은 이렇게 바람에 흔들리는 것들로 무르익는다.

  다솔사로 가는 길이 보이고 곤양천을 지나 ‘이병주문학관 7km’라는 이정표가 반가웠다. 원전마을 신해사 이정표를 지나면서부터 허수아비와 장승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정면에 보이는 산자락 세 개 중, 두 번째 자락의 구곡산 아래에 이병주 작가가 살던 마을이 있다고 한다. 고향 시인이 곁들여준 말씀이다.

  북천초등학교 앞 들판에는 누렇게 익어가는 벼 대신 코스모스가 흐드러졌다. 코스모스는 그리스어 kosmos에서 유래하여 조화, 아름다움, 장식을 뜻한다. 학명(Cosmos Bipinnatus)을 풀이하면 ‘날개를 겹치고 있는 꽃’이다. 여덟 장의 여린 꽃잎들을 동글게 모으고 춤을 추듯 바람에 몸을 맡기고 서 있는 코스모스의 꽃말은 소녀의 순정, 애정이다. 신이 가장 먼저 만들었다는 꽃! 순정이 그렇듯, 불완전하고 미완성의, 그래서 더 보듬어줘야 할 것 같은 꽃, 애잔하다. 이병주 작가와는 어울리지 않을 듯한 꽃이 지천으로 피었다.

  문학관에 들르기 전, 북천 코스모스 역을 지나 ‘제3회 하동 북천 코스모스 메밀꽃 축제단지(2009. 9.18~10.4)’에 먼저 들르기로 했다. 뽀얗게 부푼 메밀꽃밭이 코스모스꽃밭과 어우러져 화사하고 부드러운 풍경을 자아냈다. 행사장에는 흥겨운 음악이 울리고 여러 군데 천막이 쳐 있고 홍보 부스가 마련되어 있었다. 한 곳에 들어가 메밀묵과 메밀국수를 주문했다. 잣나무가 심긴 이명산 자락이 포근하게 감싸주는 북천마을은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이었다.

  마음도 배도 부른 우리는 꽃단지와 안녕하고 가까운 문학관으로 차를 돌렸다. ‘이병주문학관 2km’ 이정표가 장승처럼 우뚝한 곳에서부터 야트막한 오르막길. 길가에 벚나무 초록 잎이 갈색으로 하나 둘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는 잎사귀들이 허망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화사했던 봄날은 시간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회생의 시간을 꿈꾸며 굳건히 서 있는 나무, 생명력의 진리를 믿고 지난한 생을 견뎌온 사람들이 그 곁에서 함께 살고 있음이다. 조금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이명마을회관이 수령이 많아 보이는 벚나무를 앞세우고, 그 옆으로는 돌담 위에 황토담을 쌓아올린 시골 옛집 담장에 샛노란 호박꽃이 시들시들 피어 있었다.





  억새들이 바람을 조용히 일으키는 길을 따라 올라갔다. 곤북로 1035, 파란 철대문 옆에 ‘나림정’이라는 조금만 쉼터가 있다. 2007년 8월 세워진 것. 이병주의 호를 따서 이름 지은 것만 봐도 고향 문학인, 이병주에 대한 마을사람들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 이명골길에 자리한 이병주문학관은 2008년 4월에 개관했다. 나림정 맞은편, 문학관 들머리에서 우스꽝스럽게 입혀놓은 허수아비들이 길게 열을 지어 우리를 맞이한다. 시골 아주머니, 수줍은 새댁, 댕기머리 처녀, 넥타이를 맨 신사, 군복 입은 사내까지.

  이명산 산기슭에 호젓이 서 있는 문학관은 한눈에 보아도 세련된 젠 스타일이다. 젠(Zen)은 ‘선(仙)’으로 번역되는데 청명함, 여유, 여백의 미를 강조하며 정신적, 명상적, 자연주의적 경향을 추구하는 스타일이다. 왼쪽으로 좁지 않은 주차장, 오른쪽으로 2층의 문학관 건물이 앉아 있다. 현판을 중심으로 잿빛 커다란 피라미드형 동판 지붕이 원목 벽의 건물을 아늑하게 덮고 있다. 동판은 빛에 바래면 더 멋들어진다고 한다. 나무 바닥 테라스에는 나무 벤치와 탁자를 내어놓아 환담을 나눌 수 있게 해두었고 그 앞의 빨간 가림막이 악센트로 산뜻하다. 자연 그대로의 재료에 현대미를 가미하여 절제된 건축 미학이 돋보이는 건물이 마음에 쏙 들었다. 1층과 2층에 각각 창작실을 두어 일반인과 학생들을 위한 문학수업과 다양한 체험학습을 돕고 있다고 한다.





  앞마당엔 몇 개의 비석이 낮게 서 있고 작가의 유명한 글귀들이 새겨져 있었다. 문학관으로 들어서자 왼편에 전시관이 있고 그 앞에서 주최 측 사람들이 다과를 대접하며 방문객을 맞고 있었다. 오른쪽으로 강당, 그 앞에 있는 화장실에 들어가자 벽에 붙어있는 작가의 글귀를 또 만날 수 있었다.




    우리에겐 청춘은 없었다. 청춘엔 광택이 있어야 하는 거다.

    진리에 대한 정열로써, 포부를 가진 사람의 자부로써,

    뭐든 하면 된다는 자신으로써 빛나야 하는 건데,

    우리에겐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내겐 그런 것이 없었어. - 『산하』




  올라오면서 본, 바람에 가벼이 흩날리던 황갈색 벚나무 잎이 떠올랐다. 역설적 의미의 허무주의를 감지하며 어떠한 이데올로기보다 앞서야 하는, ‘인간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애정’과 저변에 흐르는 낭만적 상상력의 도저한 강물이 연상되었다.

 

  ‘정치란, 그리고 혁명이란 슬픔을 감소시키기 위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제3공화국의 부당성을 비판하며 한국 현대사를 재구성한 1982년도 작품 『그해 5월』의 글귀다. 어떠한 ‘주의’도 사람의 행복에 우선해서는 안 된다는 휴머니즘을 읽을 수 있다. 실제로 그가 말년에 지병으로 고통 받으면서도 효성을 발휘하려는 아들에게 베푼 자상함과 의연함은 그의 부성애가 얼마나 깊고 그윽한지 보여주는 것이다. 

  사단법인 이병주기념사업회가 주최하는 ‘이병주하동국제문학제’는 올해로 3회째다. 2007년 시작한 이래 2008년부터는 이병주국제문학상을 포함하여 시행함으로써 명성 있는 국제문학제로 정착하고자 한다. 문학도시 하동의 자긍심을 고양하고 지역적 특성을 홍보하는 계기도 되는 이 문학제는 이병주 작가의 시대사적 가치를 통해 역사와 문학의 필연에 대해 되짚어보며 지성적 전통과 문학적 가치를 되짚어보는 기회가 되는 것이 목적이다.






  오후 3시에 시작하는 개회식 및 문학강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강당으로 들어갔다. 삼각형으로 높이 솟은 천정은 나무의 결과 색을 그대로 살려 시원한 느낌을 주고 여러 개의 작은 창들이 자연 채광으로 밝고 온화한 실내 분위기를 살려주었다. 유족대표 경성대 일어일문학과 이권기 교수의 소박한 인사말을 뒤로 문학강연회가 열리는 동안 나눠받은 책자들을 훑어보고 그의 데뷔작 『소설ㆍ알렉산드리아』를 읽어볼 생각에 부풀었다. (집에 돌아와 단숨에 읽었다.)

  마흔에 데뷔한 박완서보다 더 늦게, 이병주는 마흔넷에 등단한 늦깎이 소설가다. 하지만 그의 글쓰기는 자칭 ‘저널리즘의 노동’으로서 이미 그 이전에 출발하였다. 일찍이 『내일 없는 그날』(1954)로 부산일보에 최초의 연재소설을 내보였고, 그것이 처녀작이다. 당시 국제신보의 논설주간으로 칼럼 등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하던 그가 소설(小說)로 쓴 이 연재소설이 갖는 의미는 크다. 일제강점기 학병의 트라우마를 훗날 스스로 ‘노예사상’으로 불렀던 그가 자신의 주인화 과정 중 제3단계를 가능하게 한 숨겨진 무기로 해석된다. 이 작품은 거듭 실패한 저널리즘 노동의 유일한 탈출구가 되어 이병주 글쓰기 노동의 원점이자 회귀점이라고 평가 받는다.




  ‘어떻든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된다는 사상엔 구원이 있다.’




  등단작『소설ㆍ알렉산드리아』(1965)는 당시 소설계에서도 그랬지만 내게도 하나의 이변이었다. 이국의 정취와 구원의식, 편지글을 통한 액자 구성, 성격이 치밀하게 묘사되기보다 전형으로 보이는 피상적 인물들, 일인칭 화자의 보조적 존재감, 관념적 서술, 역사와 인간과 이데올로기 자체가 주인공으로 내세워진 것 같은 작가적 사명감에의 충만함. 이는 이후의 작품들에 원형으로 역할, 주제와 형식면에서 그 특징이 반복하여 제시된다. 나는 작품 속 화자 형의 말을 빌려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설명하는 대목에 주목했다.




    사실적 수법으로 에센스를 묘사할 수 없지 않아요? 사실 이상의 사실,

    상상 이상의 상징, 게르니카를 비롯한 인간악적 사건 전체에 통하는 심오한

    의미가 나타나 있지 않습니까. (중략) 이건 게르니카의 의미를 그린 것이

    아니라 바로 의미 그것이라고……. - 『소설ㆍ알렉산드리아』, 바이북스, 71쪽






  소설 속 화자의 형은 다소 모순에 차 있는 작가 자신의 분신이다. 필화사건으로 감옥에 갇힌 그는 비루한 세계에 정신적 황제로서 고고하고자 했던 작가를 대변한다. 1961년 작가의 논설 ‘조국은 없고 산하만 있다’에 대해 혁명재판소가 그 책임을 물어 10년형을 선고 받지만 다행히도 2년 7개월의 복역을 마치고 출감하게 된다. 1963년 12월 16일의 일이다.

  감옥에 있는 동안 그는 사마천의 『사기』를 정독하고 ‘역사의 올바른 기록자’가 되고자 다짐했다. 훗날 정사(正史)의 모범이 된 이 책은 다른 정사와는 달리, 객관적인 역사의 구성보다 오히려 서술하고 있는 역사상의 인물들에게 도덕적인 평가를 내리고 특징에 따라 유형화해 어떤 인물의 본보기가 될 만한 행동을 한 장(章)에서 기록했다. 그가 역사에서 이끌어낸 교훈은 다양한 것이었는데, 때로는 서로 모순되는 것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이병주가 출감 후 쓴 이 작품에 ‘소설’이라는 전제를 붙인 것은 ‘올바른 기록으로서의 문학’을 강조하며 명제화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올바른 기록’이란 아래와 같은 문학관에 중심을 둔다.




    기록이 문학으로서 가능하자면 시심(詩心) 또는 시정(詩情)이 기록의 밑바닥에

    지하수처럼 스며있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문학이론이다. 그래야만 설득력과

    감정이입이 함께 가능하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 『겨울밤』




‘역사는 산맥을 기록하고 나의 문학은 골짜기를 기록한다.’

  

  그의 역사관과 문학관을 대변하는 인상적인 문장이다. 역사의 그물로 포획할 수 없는 삶과 인간의 진실을 문학이 표현한다는 확고한 시각은, 1992년 지병인 폐암으로 타계할 때까지, 역설적 모순과 생경한 매혹, 범속과 탁발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80여 권의 작품을 남기는 초인적인 정열을 태우게 했다. 그의 정열은 좌우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무정부주의적 자유정신과 회색인의 허망함에 속하는 듯하다.

  1979년 발표한 『지리산』에서 그는 ‘정열’을 이렇게 울부짖고 있다.




  아무튼 불행한 나라야. 민족의 수재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는 사람들이 허망한 정열에

  불타서 죽고, 죽어가고 있고, 계속 죽어야 하니까 말이다. 아아, 허망한 정열!

  (중략) 분노도 또한 정열이다. 사람은 분노만으로도 역경을 견딜 수 있다.

  - 나는 죽을 수 없으니까 죽는다. -지리산』




  문학평론가 김종회는  ‘운명... 그 이름 아래서만이 사람은 죽을 수 있는 것이다. - 『관부연락선』(1968)’고 한 이병주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고 술회했다. “역사적 기록의 신빙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 그때 그는 서슴없이 “역사는 믿을 수 없는 것”이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표면상의 기록으로 나타난 사실과 통계수치로는 시대적 삶의 노정한 질곡과 그 가운데 스며있는 사람들의 뼈아픈 사연들을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하려는 욕망과 세계를 낭만적으로 감각하려는 욕망의 교차가 이병주 문학을 매혹적이게 하는 지점이라면 ‘역사가 생명을 얻자면 소설의 힘, 문학의 힘을 빌려야 한다. -『바람과 구름과 비(碑)』(1978)’는 말에 나는 많은 부분 공감한다.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 서서 재평가되어야 하고 미래를 향해 부활되어야 함이다.

  

  태양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




  이병주 아포리즘의 백미(白眉)다. 하동군 북천면은 아름답다는 말로는 부족한 섬진강물을 끼고 굽이굽이 근현대사의 질곡이 아로새겨진 지리산의 품속에 자리한다. 골짜기마다 역사의 마디마디 못이 박인 이 고장은 어쩌면 광활한 이야기의 탄생이 숙명처럼 예정된 곳인지도 모른다. 역사는 퇴색할 수 있어도 결코 끝나지 않는다. 작가의 혼으로, 이야기의 혼으로 새겨진 역사는 재해석과 재구성으로 부활하여 영원한 신화가 된다. 비로소 진실이 된다.




    아아, 이 산하(山河)! 이 땅에 생을 받은 사람이면 좋거나 나쁘거나 잘났거나

    못났거나 모두 이 산하로 화하는 것이다. - 『산하』 (1985)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은 일부만 맞다. 사랑하면 알고 싶어진다는 말이 더욱 맞다. ‘안다’는 ‘이해한다’와 동의어다. 이날 행사에서는 방문객이 많아 전시실을 꼼꼼히 둘러보지 못해 아쉬웠다. 『소설ㆍ알렉산드리아』에 매료된 나는 시월 조용한 때에 홀로 전시실을 다시 찾게 되었다. 고난의 세월을 호활한 문필로 승화한 걸출한 작가, 그에 대한 연민에 발길이 당겼다는 말이 더 옳다. 그새 코스모스는 많이 졌고 벚나무 잎사귀들은 색이 더욱 바랬지만 눈부신 가을 하늘 아래 정겨운 허수아비들이 여전히 반색하며 맞아 주었다.

  전에는 보이지 않더니 이제야 보이는 것들, 그런 것들이 살갑다. 마음의 눈을 뜨면 세상은 넓고 사람은 밝게 보인다. 전시실 지붕 추녀 끝에 물고기 모양의 작은 풍경(風磬)이 달려있다. 손끝으로 두어 번 튕겨보니 명징한 소리가 난다. 아담한 전시실 안은 전체적으로 둥근 모양을 하고 연대순으로 네 구역으로 이어져 방대한 작품을 남긴 작가를 총체적 시각으로 만나볼 수 있게 배려하고 있다. 입구에서 방명록에 이름을 쓰고 들어서면 작가의 분신 같은 몽블랑 만년필이 탑처럼 우뚝 서 있다. 한가운데에는 『지리산』의 한 장면을 디오라마로 만들어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다. 그 위로는 세로쓰기 한 친필 원고지들이 원을 그리며 붙어 있다.





  제1구역은 1921년에서 1963년까지로, 고뇌하는 학병시절을 겪은 노예로서의 자유에 대한 절망감을 냉전시대의 자유인, 황제로서의 비자유인으로서 벗고자 한다. 그의 세계관과 역사관의 기저를 엿볼 수 있었다. 제2구역은 1963년부터 1978년까지로 본격적으로 소설 집필에 매달린 시기다. 민족적 거대한 좌절의 기록인 『관부연락선』, 광복 후의 빨치산과 사회주의 운동을 조명한 대하소설 『지리산』을 비롯하여 매혹적인 초기 단편들 『겨울밤』, 『예낭풍물지』, 『마술사』 등도 이때 탄생한다. 제3구역은 1979년에서 타계할 때까지의 기간으로 서재에 이만오천 권의 책을 두고 괴력의 집필을 한 시기다. 한국현대사를 재구성한 『그해 5월』과 『산하』, 소설로 쓴 세태풍속사 『행복어사전』이 등장한다. 서재에 앉아 만년필로 원고지에 글을 쓰고 있는 디오라마가 제4구역과의 사이에 자리하는데 책상 위에 쌓여있는 책들 중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책이 눈에 띄었다.

  그를 두고 흔히 ‘박학다식’과 ‘박람강기’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방대한 독서세계와 함께 동서양의 해박한 지식과 철학, 다양한 언어에 대한 이해가 유려하면서도 중후한 문장력과 더불어 이야기 전반에 녹아있다.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지식과 남성적 역사관이라는 줄기에 낭만적 통찰력이 빛을 발하는 문장으로 독자층이 두터운 이야기꾼. 최근작『도가니』로 호평을 받는 공지영 작가는 이미 20대에 이병주 문학에 매료되어 밤을 새워 그의 책을 탐독했다고 한다.

  한길사에서 30권으로 대표작을 모은 이병주문학전집이 새로 나와 있다. ‘행복에 기여하지 않는 이데올로기가 무슨 쓸모인가’라고 회의적 질문을 던지는 기막힌 현실인식과 무엇보다 앞서는 절대적 인간애, 노예의 자유보다 황제의 자발적 비(非)자유를 선택한 진정한 자유정신을 읽고 싶다면, 골짜기마다 스며들어 신화의 역사를 쓴 월광의 펜촉을 느껴보고 싶다면 이 전집을 새로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구월이 꼬리를 감추어가던 그날, 문학관에서 나온 우리 일행은 해거름 섬진강가에 앉았다. 사위가 회색으로 물들어갈 때면 세상도 사람도 순해짐을 느낀다. 어둠이 야금야금 빛을 덮더니 정박해 있던 고기잡이 작은 배마저 한순간에 보듬어버렸다. 비로소 세상이 잠들고 이야기가 깨어난다, 상현달빛 아래 강물 위로 스멀스멀.

  회색! 이병주는 역사적 허무주의와 댄디한 망명의식으로 회색이라는 질타를 일부 받기도 했다. 하지만 회색의 고뇌, 강인함과 관대함, 내적 생명력을 아는가. 회색은 평화를 옹호하고 인간을 미치도록 사랑한다. 빛보다 어둠이, 드러냄보다 은근한 감춤이 진실에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 일광보다 월광이 미더운 것은 그런 연유일 테다.

  불현듯 질박한 고고함을 감추는 듯 드러내는 조선의 투박한 달항아리가 가슴속 거대한 빛으로 떠 올랐다. @

 

 

                                                 - 계간지 <여기> 2009년 겨울호 게재

 



 
 
순오기 2010-02-07 15:24   댓글달기 | URL
아~ 멋진 문학기행 에세이!
이병주는 큰 산맥이라 감히 가까이 하지 못했는데 문학관이 하동에 있군요~
토지의 평사리 문학관도 하동에 있는데...

2010-02-07 2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0-02-08 03:34   URL
전라도에는 고창 미당문학관, 혼불문학관, 김제 아리랑문학관, 보성 태백산맥문학관, 군산 채만식문학관, 곡성 조태일시문학관, 부안 신석정생가, 강진 영랑생가, 강진 다산초당 등등 가볼데가 많지요.^^

같은하늘 2010-02-09 14:52   댓글달기 | URL
참 멋지세요. 함께 그곳에 있는듯 푹 빠져들이 읽었답니다.^^
 

 

  정오에 말뚝 박은 지지 않을 그림자

                         - 요산문학관을 다녀와서 -

                                                                  





 

 부산 남산동 주택가에 없는 듯 숨어있는 조촐한 문학관이 있다.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언제든 갈 수 있겠거니 하고 미뤄두고 있었다. 바람이 맵싸한 12월 초 오전, 먼 길도 아니니 카메라를 들고 가뿐히 나섰다. 동네 근처에 다다라 아주머니 몇 사람에게 물으니 고개만 갸우뚱거렸다. 답답했다. 마침 교복 입은 여학생에게 물어 겨우 찾았는데 주차장도 없어 골목에 적당히 주차했다. 전국은 고사하고 부산경남 지역에만도 더욱 홍보하여 많은 방문객을 불러들이기에는 좀 부족한 시설이 아닌가 싶었다. 대문 앞에 있는 크지 않은 은색 안내판을 대강 읽고 작은 대문을 들어섰다.

 복원해둔 요산 김정한 선생의 생가가 팔작지붕 기와를 덮고 왼편으로 앉아있다. 날 것의 마룻결이 낡은 아름다움을 살리지 못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젊음이 칭송받지만 연륜의 결이 느껴지지 않음은 인력人力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마루턱에 살짝 앉아보니 숲을 이루지 못하고 서 있는 대나무 몇몇이 마주 보인다. 민족문학작가로서 양심과 신념을 지키며 일생을 살아온 요산을 말해주듯 서 있긴 한데, 문학관이 건립된 지 오래지 않았으니 울창하지 못해 또 아쉽다. 마치 요산의 민중적, 실천적 정신이 홀대 받는 이 시대 문학적 토양이 그러하듯. 요산이 <산거족山居族>(1971)의 T촌 사람들을 통해 ‘단결과 패기와 각오’로 똘똘 뭉친 국민정신을 염원하였듯, 작으나마 이곳도 세월이 지나 대숲 깊은 땅이 되길 바란다.





 요산樂山은 “문학을 해 보겠다고 엄두를 낸 동기부터가 남에게 자랑할 만한 것이 못된다.”고 작가적 자서전에서 겸손하게 밝혔다. 이는 여태껏 알려진 요산에 대한 다소의 문학사적 신화에 쐐기가 되는 말이다. 동시에 스스로 부풀리지 못하는 선생의 올곧은 인격이 드러나는 말이다. 덧붙여 이렇게 술회했다.




“식민지 청년으로서 민족 해방을 위한 비밀결사 같은 데 들어가서 계속 일을 해 볼 용기가 모자랐기 때문에 결국 문학에 기울어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 어떤 분은 민족을 계몽시키기 위하여 문학의 길을 택했노라고 큰소리를 하였다지만, 내 경우는 하불실 문학을 통해서라도 민족적 감정을 배앝지 않으면 생의 구차스런 보람을 느끼지 못할 것 같아서 그랬으리란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까 엉뚱스럽게 누구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바로 내 자신을 위해서 문학에 엄두를 낸 것이 된다.” - <허덕이며 보낸 인생>(1973, 부산문학)

 선생답게도 허풍이나 위선은 볼 수 없는 참으로 솔직한 언사다.




어머니의 젖가슴에 안겨 겨우 의식이 싹틀 무렵부터 일제 순경의 칼에 먼저 겁을 먹었다. “순사 온데잇!”하면 울던 울음도 그쳐야만 했던 것이 사회에 대한 나의 첫 몸짓이었다. 겉으로는 울음을 그쳤지만 그 울음은 안으로 안으로만 들어갔다. 그러니까 문학은 내게 있어서 처음부터 가냘픈 하소연이었고, 때로는 반항이었다.

                                               - 소설집 <인간단지> 자서(自序)(1972) 中




 자의식 강한 그의 문학정신을 볼 때, 스스로 ‘권력의 횡포에 대한 사회적인 몸짓’이라고 말할 정도로 선생에게 문학은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와세다대학 부속 제일고등학원 문과 시절에 강의실에서의 감상적 문학이 아니라 사회에서의 실천적 문학으로 서슴지 않고 나아간다. 그의 저항정신은 일제강점기의 억압된 사회 환경에서 시작하여 민족적 우울을 소재로 삼은 초기 시에서부터 89세의 나이로 영면하기까지 ‘사람답게 살아가라’는 한 마디에 오롯이 담겨있다.







 2008년 요산 탄생 100주년을 맞아 세워진 흉상이 요산의 복원된 생가를 지나 문학관 정면에 우뚝하다. 이를 다 드러내고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이다. 그 왼편으로는 북카페가 통유리창 안으로 좁다란 겨울햇살을 받아 아늑하다. 산뜻한 현대식 건물의 출입문을 열고 2층으로 난 계단을 올라가면 전시실이 길게 자리한다. 요산의 일생과 작품을 시대순으로 정리해 놓았다. 가운데에는 선생이 쓰던 돋보기, 중절모, 가죽장갑 등의 소박한 물건들이 유리장 안에 진열되어 있다. 꿀풀, 용머리, 광대나물 등 야생초 세밀화를 손수 그리고 간략한 설명을 해둔 누런 공책이 눈길을 끈다. 선생은 강건한 문체와 강인한 정신만이 아니라 섬세함을 동시에 지닌 분이었다.

 전시실 안쪽으로 좀 더 들어가면 작은 나무책상이 창가에 뎅그러니 앉아있다. 그 위에 명함과 메모지가 방금 누군가의 손을 거친 것처럼 놓여있다. 가운데에는 꼼꼼히 기록하여 만들어둔 단어장들이 누렇게 빛바랜 색을 하고 열람되어 있다. 작품 속에 낱낱이 드러나는 향토색 짙은 단어와 생생한 현실의 언어가 이런 꼼꼼한 습관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니. 말과 글을 쉽게 생각하고 뜻도 제대로 모르고 허황된 말들을 아무렇게나 쓰고 있는 건 아닌지 자성해본다. 마치 꿈속에서 헛소리나 하듯 자신도 알지 못할 소리를 써놓고 글쟁이입네 하는 사람들에게 요산은 글이 올바르게 가야할 길에 대해서도 일침을 놓는다. 아래의 책 머리말을 읽다가 나는 가슴이 뜨끔할 주제도 못되어 한참 머뭇거린 적이 있다.




사람이 입성을 하고 있을 따름이지 떳떳한 사람 구실은커녕 불의를 뻔히 보면서도 본둥 만둥 쓸개 빠진 망석중이처럼 아무 말도 항거도 못하고 질질 끌려만 다니는 것이나 아닐까? 그런 주제에 쥐꼬리만 한 글을 배웠다고 돼먹지도 않은 잠꼬대 같은 소리를 적어 놓고, 뻔뻔스럽게 낯바닥을 쳐들고 다니는 것 같아 은근히 부끄럽고 마음에 결릴 때가 많다.

                                     - <김정한소설선집>(창작과비평사, 1974) 머리말 中




 햇살 따스한 전시실에서 누런 낱말 카드를 몇 개 뒤적이며 생소하거나 들어본 듯한 우리말 맛을 느끼는 재미가 솔솔하다. 바깥을 내려다보니 요산의 생가 옆으로 때늦은 붉은 감이 새파란 하늘 아래 매달려있다. 혈맥처럼 가늘되 꼿꼿한 생가지들이 말쑥한 새 기와지붕 곁을 수호하듯 뻗어있다.






 어디선가 싱그러운 남학생들 말소리가 들려 옆방으로 가보니 키 높은 책장들로 둘러싸인 가운데 긴 책상을 병렬로 배치한 도서실이다. 학생들에게 개방되어 있고 문학관련 행사도 정기적으로 개최한다고 한다. 행사와 강연을 주로 도서관에서 하느냐고 북카페에 있는 직원에게 물으니 강당이 있다고 말해준다. 강당은 문학관 건물 밖의 좁다란 계단을 내려가 지하에 위치해 있다. 마치 비밀의 정원을 통과하듯 다소 을씨년스럽다. 계절 탓이겠거니. 토요일 오전이라 그런지 강당문은 자물쇠가 굳게 잠겨 있다. 광복 후 20여 년간의 절필기간동안 요산도 저 자물쇠처럼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을까. 과연?

 스스로 강조한 ‘절필과 문단복귀’라는 단어에는 그의 문학적 자부심과 자의식이 얼마나 강하게 작용하였는지 알 수 있다. 소설 12편을 비롯해 논설과 잡문들을 써왔으면서도 스스로 문학적 완성도가 높지 않다고 생각하여 절필이라는 걸 거듭 강조했을 정도이니 글다운 글, 작품다운 작품에 대한 그의 작가적 고민과 완고한 성품이 드러난다. 요산 전집이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출간될 때 절필과 문단복귀라는 요산의 신화를 재생산하지 않기로 편집진이 의견을 모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탄생 100주년이 되는 2008년 10월에서 11월에 걸쳐 연재된, 부산일보의 '새로 쓰는 요산 김정한’이라는 기획기사였다. 




 요산은 교원생활을 해가며 <사하촌寺下村>(1936)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후 주지의 의붓아들과 그 일행으로부터 심한 폭행을 당하고 연이어 목숨에 위협을 받기 시작한다. 일제강점기 궁핍한 농촌과 친일파 승려들의 잔혹함을 고발한 작품 속 현실은 뒤이어 발표한 <옥심이>에서도 여전히 재생된다. 그 후 <항진기抗進記>, <기로岐路>등의 작품으로 민중을 선동하는 요주의 작가로 지목된다. 광복과 미군정 이후 20여 년의 절필기간을 거쳐 문단에 복귀한 건 1966년의 일이다. 절필을 스스로 강조한 건, 그 기간 동안의 심적인 고통을 기억의 괄호 속에 묶어두고픈 마음으로 본다.




이십년이 넘도록 내처 붓을 꺾어 오던 내가 새삼 이런 글을 끼적거리게 된 건 별안간 무슨 기발한 생각이 떠올라서가 아니다. 오랫동안 교원노릇을 해오던 탓으로 우연히 알게 된 한 소년과, 그의 젊은 홀어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그들이 살아오던 낙동강 하류의 어떤 외진 모래톱 - 이들에 관한 그 기막힌 사연들조차, 마치 지나가는 남의 땅 이야기나, 아득한 옛날 이야기처럼 세상에서 버려져 있는 데 대해서까지는 차마 묵묵할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 <모래톱 이야기>(1966) 서문







 세상에 버려진 인생, 따라지 인생, 제3인생. 요산이 작품 속에서 다루던 인물들에게 주어진 이름이다. 권력에 빌붙어 잇속을 챙기기에 바쁜 인물, 그런 사람이 출세하는 나라, 편법과 불법이 버젓이 허용되고 용인되는 사회를 맹렬이 꾸짖는 그의 음성은 작품 곳곳에서 일관성 있게 들려온다. <모래톱 이야기>로 당당히 민족문학작가로 자리를 굳힌 그는 줄줄이 버금가는 작품을 쏟아놓는다.

 <축생도畜生道>(1968)에서는 참된 의술을 베풀기는커녕 생명을 귀히 여기지 않고 정치적 명예나 좇는 인간을, <수라도修羅道>(1969)에서는 친일을 하고 해방 후 경찰 간부가 되고 몇 해 뒤 국회의원이 된 이와모도 참봉의 맏아들과 독립운동을 하고 징용에 끌려가고 정신대에 나간 후 병신이 되거나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척점에 두고 현실을 통렬히 비춘다. 결미에서 가야부인의 우물거리는 말이 슬프고도 강하다. - 왜 사람들은 싸우지 않음 안 될까?

 지배자와 피지배자, 권력자와 비권력자간의 싸움은 요산의 작품에 끊이지 않고 등장한다. 그는 민중의 편에서 그들이 착취당하는 억울한 사연을 놓치지 않고 작품에 담아내며 결코 침묵하지 않는다. <인간단지>(1970)에서는 ‘문둥이들과 걸뱅이(거지)들이 메운 땅!’으로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국토개발상을 타는, 협잡배들이 득세하는 조국을 규탄한다. 아래 구절은 좀 더 단도직입적이라 읽는 이로 하여금 피가 끓게 한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그곳으로 되끌려 간 이유는 그들 자신이 곧 깨달았다. - 일종의 격리다. 병 - 육체의 - 그것도 남에게의 전염을 방지하기 위한, 격리 본래의 목적에 의한 격리가 아니다. 정신 문제다. 정신상의 병 - 불의와 부정을 싫어한다, 미워한다. 협잡배와 위선자를 고발한다, 규탄한다, 이것이 병이란 거다. 남이 동조한다. 그것은 선동에 의한 결과다. 말하자면 전염이다. 데모는 그와 같은 정신병의 완전한 전염이란 거다. 그러니까 부정을 규탄하는 정신병자는 대중으로부터 냉큼, 그리고 완전히 격리시켜야 한다.

 (중략)

 몸은 비록 완전한 편은 아니었지만 마음은 결코 병들어 있지 않았다. 정신은 오히려 성한 사람들보다 건전하다고 자부를 했다. 살아 있었다. 그러기에 그들은 불의에 굴복하든가 방관하지 않았던 것이다.

                                                             - <인간단지>(1970) 中

                                                            






제4회 요산문학제 행사로 독서감상문 우수상을 수상했던 기억도 어느덧 오래전의 일이다. 2009년 열두 번째를 맞은 요산문학제 행사가 해를 거듭하며 다채로워지고 있다. 문학기행과 문학콘서트를 비롯해 학생과 일반인들의 참여를 적극 권장하고 보다 대중적으로 다가가려는 기획이 바람직하다. 또한 사단법인 요산기념사업회에서는 소식지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발간한다. 거기서 본 2008년 10월에 열린 제11회 요산문학제 일반부 최우수상 수상작의 시구가 가슴에 담긴다. 요산 선생의 정신을 새삼 뜨겁게 표현한 구절이 아닌가.

 

정오가 되면 땅으로 자취를 감추는 그림자가

 사내의 키를 빨아들인다

 보일락 말락 밤에 자라는 그림자

 뜨거운 해에 자취를 감춘다

 그의 키는 밤에 자라고

 그의 뜨거운 그림자는 새벽에 피어나고

 시간을 잡아먹는 그림자가 

 정오에 말뚝을 박고 사내의 발뒷꿈치로 들어간다

 “사람 구합니다”라는 팻말과 함께.

                                                 - 김정희 <그림자> 일부




 

 사람답게 살아가라! 비록 고통스러울지라도 불의에 타협한다든가 굴복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람이 갈 길은 아니다.




 <산거족>의 황 거칠씨가 독립운동을 하다 죽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훈계를 듣는 듯 자신에게 용기를 부여하는 대사다. 요산을 말하면 가장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이 말은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한낮의 태양 아래 산처럼 우뚝하다. 그의 정신은 결코 지지 않을 그림자로 남아 자의식 과잉과 몽환의 나르시시즘에 빠진 문단에 생명을 불어줄 것이다.

 문학관을 나오다 뒤돌아보았다. 웃고 있는 선생의 흉상이 언제나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있을 것처럼 버티고 있었다. 정물이 주는 힘, 변하지 않는 것이 주는 위안, 한결같은 정신이 주는 용기. 나는 잠시나마 그 힘을 업고 바람을 맞으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매운 바람 때문에 눈물이 났다. 아니 비루한 내 의식이 부끄러웠기 때문이었지 싶다. 작은 것에 분개하고 쉽게 타협하며 편한 것에 기대어 사리사욕에 눈 어둡진 않았는지, 하루 세 번 반성이라도 하자.

 문득 선생의 생가 현판에 적힌 아호가 다시 읽힌다. 과연 풍류나 즐기자는 투의 호가 아니지 않은가. <산거족>의 기찬 서두문장이 떠오른다.

- 당찮은 말씀! 산이 좋아서 산새처럼 산에 사는 것이 아니다.   

 

 

 

 

 

                                                              - 계간 <여기> 2010년 봄호 원고

 

 




 
 
반딧불이 2010-02-07 13:24   댓글달기 | URL
애정도 묻어나고 정보도 가득한 글 고맙게 읽었습니다.

프레이야 2010-02-07 21:38   URL
반딧불이님 소셰키 리뷰 잘 읽고 있어요.^^

hnine 2010-02-07 15:22   댓글달기 | URL
이글이 혹 지난 달 25일 마감이던?? ^^
프레이야님은 이분과 인연이 남다르시군요. 상 받으신 작품은 어느 책에 대한 독서감상문이었을까 궁금해집니다.

프레이야 2010-02-07 21:39   URL
네.^^
그 책은 요산의 작품은 아니고 '동화밖으로 나온 공주'라는 책이었어요.
어느덧 오래전의 일이 되었네요. 8년전인가요.
상금도 좀 받았었는데..ㅎ

순오기 2010-02-07 15:43   댓글달기 | URL
요산 김정한은 한때 내 정신적 지주였어요.
다음에 부산가면 여기 데려가 주세요.^^

프레이야 2010-02-07 21:40   URL
그래요, 우리^^ 또 뭉쳐야겠네요.
요 아래 나비님도 같이요.ㅎㅎ

nabee 2010-02-07 16:07   댓글달기 | URL
저는 잘 모르는 분이었어요!!!!저도 데려가주세요!!!!
그럼 다음 우리들의 미팅도 부산????ㅎㅎㅎㅎ

프레이야 2010-02-07 21:42   URL
나비님, 위에 오기언니 글 아래 덧글 보시와요.ㅎㅎㅎ
부산의 향토문인이라 잘 모르실 수 있어요.
그래도 교과서에 작품이 실리기도 했구요.
 




좋은 일들






심보선



 

오늘 내가 한 일 중 좋은 일 하나는  
매미 한 마리가 땅바닥에 배를 뒤집은 채
느리게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준 일
죽은 매미를 손에 쥐고 나무에 기대 맴맴 울며
잠깐 그것의 후생이 되어준 일
눈물을 흘리고 싶었지만 눈물이 흐르진 않았다
그것 또한 좋은 일 중의 하나
태양으로부터 드리워진 부드러운 빛의 붓질이
내 눈동자를 어루만질 때
외곽에 펼쳐진 해안의 윤곽이 또렷해진다
그때 나는 좋았던 일들만을 짐짓 기억하며
두터운 밤공기와 단단한 대지의 틈새로
해진 구두코를 슬쩍 들이미는 것이다
오늘의 좋은 일들을 비추어볼 때
어쩌면 나는 생각보다 조금 위대한 사람
나의 심장이 구석구석의 실정맥 속으로
갸륵한 용기들을 알알이 흘려보내는 것 같은 착란
그러나 이 지상에 명료한 그림자는 없으니
나는 이제 나를 고백하는 일에 보다 절제하련다
발 아래서 퀼트처럼 알록달록 조각조각
교차하며 이어지는 상념의 나날들
언제나 인생은 설명할 수 없는 일들투성이
언젠가 운명이 흰수염고래처럼 흘러오겠지  




 
 
김여흔 2010-02-07 03:46   댓글달기 | URL
^^

stella09 2010-02-07 11:33   URL
헉, 여흔님이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