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blog.alad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랩소디 인 베를린 (문학웹진뿔 서재)</title><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구효서 장편소설 '랩소디 인 베를린'이 연재 종료되었습니다.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곧 출간될 단행본을 고대해 주십시오. </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ue, 09 Feb 2010 22:51:29 +0900</lastBuildDate><image><title>문학웹진뿔</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29921106466764.jpg</url><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문학웹진뿔</description></image><item><author>문학웹진뿔</author><category>랩소디 인 베를린</category><title>랩소디 인 베를린 - 구효서 저자와 독자와의 만남</title><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398863</link><pubDate>Sat, 06 Feb 2010 10: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din.co.kr/rhapsody/3398863</guid><description><![CDATA[&#160;
&#160;
<br />
'랩소디 인 베를린',&#160;&#160;
저자 구효서와 독자와의 만남&#160;&#160;
&#160;<br />
&#160; 
&#160; <o:p></o:p><br />
<br />

&#160;&#160;&#160;&#160;&#160;&#160; &#160;&#160; 2010년 1월의 마지막 주 금요일 저녁.&#160;&#160;<br />
&#160;&#160;&#160;&#160;&#160; &#160;&#160; &#160;‘랩소디 인 베를린’을 마무리하고 휴식을 취하던 구효서 작가, <br />
&#160;&#160;&#160;&#160;&#160;&#160; &#160; &#160;문학웹진 뿔의 기획위원인 이경호 평론가, <br />
&#160;&#160;&#160;&#160;&#160;&#160; &#160;&#160; 초대된 독자 ‘왕마담’, ‘들꽃’, ‘메멘토’는&#160;&#160;<br />
&#160;&#160;&#160;&#160;&#160;&#160; &#160;&#160; 동숭동에서 ‘랩소디 인 베를린’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함께했습니다.&#160;<br />
&#160;&#160;&#160;&#160;&#160;&#160; &#160;&#160; 현재까지 알라딘 창작블로그에 연재되었던 그 어떤 작품보다도&#160;&#160;<br />
&#160;&#160;&#160;&#160;&#160; &#160; &#160; 독자의 호응이 뜨겁고 깊고 넓었던 '랩소디 인 베를린'.&#160;<br />
&#160;&#160;&#160;&#160;&#160; &#160; &#160; 국경과 시대, 언어와 예술을 초월한 작품 못지 않게 경계를 허문,&#160;&#160;<br />
&#160;&#160;&#160;&#160;&#160;&#160; &#160;&#160; 따스하고도 유쾌했던 순간들을&#160;고스란히&#160;전해 드립니다.&#160;&#160;&#160;&#160;&#160;
&#160;



&#160;
&#160;
&#160; 
6개월 간의 대장정, ‘랩소디 인 베를린’ 돌아보기<br />

왕마담 : 저는 ‘랩소디 인 베를린’ 연재가 끝나고 며칠 동안 기운이 없었어요. 다른 독자분들도 마찬가지로 기력이 쇠하신 것 같더라고요. 외국에 계신 분들을 위해서라도 ‘날건달’처럼 지내는 제가 무어라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어요. 매회, 매일 열심히 읽었지요. <br />
<br />

이경호 : ‘랩소디 인 베를린’이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는 무엇인지?<br />
<br />

구효서 : 처음에는 ‘토카타 운트 푸가’로 정할까 싶었습니다. 말하자면 ‘힌터마이어’를 토카타, ‘아이블링거’를 푸가라 상징할 수 있겠지요.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지만 그러면서도 또 발전해 나간다는 의미에서요. 그런데 이 ‘토카타’, ‘푸가’라는 용어가, 아는 사람은 알지만 모르는 사람은 또 전혀 모를 수도 있는, 참 애매한 말이지요. 그 낯설음이 고민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베를린’이라는 지역은 모두가 잘 알고, ‘랩소디’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른다 해도 그 느낌은 전해질 것 같았지요. 아무래도 거쉰의 ‘랩소디 인 블루’를 연상하면서 그의 다른 음악 작품인 ‘파리의 아메리칸’을 떠올리고, 그 제목에서 또 디아스포라의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아무래도 블루는 색감과 감성을 전한다면, 베를린이라는 이름은 역사적, 지역적 특성상 조금 삭막한 느낌을 줄 수도 있겠지요.<br />
<br />

메멘토 : 연재의 끝으로 치닫는 부분에서, 아이블링거가 연주회를 마치고 표절을 밝히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때 그의 심정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br />
<br />

구효서 : 힌터마이어와 아이블링거는 친구면서 경쟁자이면서 동지인 그 모든 것인 셈입니다. 아이블링거를 몇몇 독자들도 처음에는 악역으로 파악했었지요. 힌터마이어에게 의리를 보여 주다가도 또 작품을 훔치기도 하고, 상처를 안겼다가 다시 도와주고.... 말하자면 살리에리 같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모든 예술인 곁에는 그런 존재가, 동반자적이고 인간적인 그런 존재가 함께하는 것 같습니다. 고뇌, 악행, 선행, 그 모두가 인간적인 것이지요. 실은 악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비열하고 비양심적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음악의 영성에서 떠날 수 없는 자입니다. 곡을 훔쳤어도 자신의 정열과 최선을 다해 연주하는 그 과정에서 감동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인간애와 양심이 음악이라는 예술에 의해서 자극을 받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아이블링거는 음악가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했다면 아이블링거를 음악가라 할 수 없겠죠. <br />
<br />

왕마담 : 저는 아이블링거가 그 순간에, 궁지에 몰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편하게 해석해 버렸었어요.<br />
<br />

들꽃 : 만일 아이블링거가 정치가였다면 끝까지 거짓을 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예술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물론 예술하는 인간 중에도 시기를 놓치면 선은 묻히고 악만 남을 수 있는데―아이블링거가 그 마지막 시기를 놓치지 않은 데에 대해, 아, 이 인물은 정말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고 느꼈습니다. <br />
<br />

메멘토 : 아이블링거를 그렇게 처리하신 부분을 보며, 작가 구효서가 너무나 도덕적인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본인도 모르게 지나치게 선하신 것 아닌지요? 선악구도를 끝까지 견지하지 않으시니까요.<br />
<br />

이경호 : 이 분은 사실 실생활에서는 그런 부분에 그리 크게 구애받는 사람은 아닙니다. (일동 웃음)<br />
<br />

왕마담 : 작가 구효서는 ‘묘妙’ 같아요. (웃음). 독자를 사로잡는 묘한 개성과 센스를 지니셨거든요.<br />
<br />

구효서 : 흠...이렇게 되면 제 계획대로 잘 돌아가는 셈이네요. (일동 웃음) 미국과 브라질에서 이 연재를 읽으신 독자분들께서도 같은 이야기를 하셨지요. 작가의 인상이라는 것이,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작가의 내면이, 아이블링거가 끝내 스스로의 마성에 굴복하지 않고 양심 선언을 하고 피날레를 장식하는 결말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냐......라는 언급들을 하셨었는데, 그건 제 전략일 뿐입니다. (웃음) 솔직히 작가는 등장인물에게 영혼을 불어넣기도 하고 빼기도 합니다. 그것은 순전히 ‘나’와 상관없이 소설은 ‘끝나야’ 할 운명이고 소설은 ‘되어야’ 하고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받으려고 그러는 거예요. (함박 웃음)<br />
<br />

들꽃 : 그렇다면 그것은 어느 정도 작위적인 것이 아닐까요?<br />
<br />

구효서 : 작위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제가 ‘만들어’ 놓았다는 점에서 당연히 작위입니다. 가공했지만 마치 그렇지 않은 양 빚어내는 것이 기술이겠지요. 혹은 작위적이고 설명적이라 해도 감동이 커지면 그러한 요소들은 묻힙니다. 때로는 감수를 하고 작위를 인정하고 진행하는 부분이 발생합니다. 작위를 하되, 거의 안 드러나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하면 극적이지는 못해요. 그런데 작위가 드러날 경우 극적인 효과가 생깁니다. 저는 의도했던 바가 드러난다면 그대로 그냥 만족합니다. 작위 여부에 상관없이요.<br />
<br />

메멘토 : 그래도 작가 구효서의 작품들은 대개 착하거나 긍정적인 결말을 보여 주지요. 화해하거나 용서하거나. 그래서 저는 이번에도 아이블링거를 보면서 역시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br />
<br />

구효서 : 착하게 끝내고 마는 게...나에게는 약간, 착한 콤플렉스가 있는가 봐. (일동 웃음) 어쩌면 ‘착한 것’에 억압되어 있는 것일 수도 있겠지요. <br />
<br />

메멘토 : 바로 그 점이 도덕적인 것이 아닌지요?<br />
<br />

구효서 : 다르지요. 억압은 어쨌든 부정적입니다. 선에 대한 억압으로 인해 작품들이 천편일률적이거나 매번 그저 그런 소설이 되어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지금 말씀을 들으니 제게 ‘착함’에 대한 억압이 분명 있는 것 같네요. (웃음)<br />
<br />

메멘토 : 구효서의 작품은 미완으로 끝나더라도 대부분, 희망을 주고 여운을 남기는 느낌입니다. 그 여운이 비관이 아니라, 그 지점에서 멈추었을지라도 기대를 안기고....<br />
<br />

왕마담 : 이번 작품은 더더구나 여운이 컸어요. 마지막을 참 잘 장식하셨어요. (극찬에 일동 웃음) 여운이, 아쉽고 애석한 여운이 아니라, 독자들이 만족할 만한 여운을 주신 거예요. 그래서 아마 모두들 작품이 끝났는데도 떠나지 못하고 계속 맴돌고 결국 구효서 팬카페까지 만들게 되고....(웃음)<br />
<br />

구효서 : 실은, ‘에필로그’는 소설 구상 단계에서는 준비하지 않았던 부분이었어요. 아이블링거가 연주를 끝내고 카덴차를 장식하면서 박수치고 끝! 그렇게 소설도 끝내려 했었습니다. 환호와 갈채 속에서 말이지요.<br />
<br />

메멘토 : 혹시 영화화되지 않을까요? 배경도 구성도 스토리도 훌륭해서.<br />
<br />

구효서 : 어휴~ 그렇게 되면 배우가...독일 배우에...시대는 중세까지 거슬러 올라가고...(일동 폭소)<br />
<br />

유진 : 저희 회사 책들이 요새 해외로 판권이 활발히 팔리고 있어요. (웃음)<br />
<br />

구효서 : 독일이라는 나라, 만만치 않지요. 독일에서 출간된다면 이 소설은 엄청나게 깨질지도 몰라요. (웃음)<br />
<br />

이경호 : ‘깨진다’는 것과 연관해서, ‘나가사키 파파’에서도 요리에 대해, 독자들이 감탄할 만큼 치밀한 내용들이 많이 나옵니다. 이번 ‘랩소디 인 베를린’에서도 더욱 경이로웠던 부분은, 음악에 대한 부분이 정보 제공이나 소재 차용의 차원이 아니라, 음악 예술에 대해 상당히 내밀한 취향이나 감각을 지녀야만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어요. (도대체) 어떻게 습득하신 겁니까? <br />
<br />

구효서 : 난 음악을 몰라요. (단호하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데, 전 음악을 몰라요. <br />
<br />

이경호 : 그렇다면 그런 부분들이 독일 현지에서 ‘깨진다’는 것입니까?<br />
<br />

구효서 : 아니오. 그런 부분들 때문에, 혹은 제 소설이기 때문에 깨지는 게 아니라, 한국소설은 전반적으로 ‘깨지게’ 되리라 예상합니다. 독일은 굉장히 치밀하고 철저한 국민성을 지녔지요. 우리는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넘어가기도 하고, 독자들이 보다 냉철하고 철저하지 못합니다. 독자들의 그런 아량에 우리 작가들은 좀 만성이 되어 있지요. 다른 작가분들 소설을 볼 때도 가끔 참 허술하고 앞뒤가 안 맞는 부분들을 자주 발견합니다. <br />
<br />

이경호 : 평론가들도 다양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어서, 자유로이 지적하기도 쉽지 않은 환경이지요. <br />
<br />

구효서 : 우리 문단의 폐단이기도 합니다. 좋게 말하면 여유롭고 나쁘게 말하면 허술합니다. 음악에 대해 제가 자신 있게 모른다고 말씀드리는 이유는.... 음악을 알았다면 전 이 소설을 쓸 수 없었을 겁니다. (웃음) 실은, 미술가에 대해 쓰고 싶었지만, 미술은 소설적으로 역동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미술에는 액션이 없으나 음악에는 어떤 액션이 있지요. 그렇게 정하고 나서 보니, 몰라도 너무 몰라서 공부를 해야 했는데, 공부를 하더라도 매우 전문적으로 빠져들지는 못하게 되지요. 이것은 오히려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나치게 전문적으로 접근하면 독자들이 외면하지요. 따라가기 힘드니까요. 제가 독자들보다 많이도 적게도 아니라, 독자분들의 수준과 딱 맞았습니다. 적당히 피해 간 부분들을, 아는 사람은 알 수 있을 겁니다. 아마 음악하는 분들이라면 알지도 모르겠어요. 모르는 분들은 무엇을 피해 간 것인지도 모르겠지요. 하지만 이 소설은 음악가들을 위해 쓴 것이 아닙니다. 일반 독자들을 대상으로 쓴 것이지요. 그래서 교묘하게 회피해 나갔습니다.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그나마 음악을 접할 수 있게. 보통 사람들의 음악에 대한 이해, 그 이상을 가지 않은 것이 이 소설의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제가 ‘음악’을 몰랐기 때문에 가능했겠지요. 아, 물론 고증이나 역사적인 부분들, 기타 등등의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틀리지’ 않고자 노력했습니다. <br />
<br />

왕마담 : 다른 책에 비해서도 준비를 참 많이 하신 것 같아요. <br />
<br />

이경호 : 맞아요. 그래도 바로크 시대의 음악에 대한 공부를 상당히 하지 않았습니까?<br />
<br />

구효서 : 의사나 변호사들의 삶을 다룬 작품들, 드라마 등을 막상 그분들이 보면 말도 안 된다고들 하시며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들을 지적하지요. 그리고 그런 분들은 잘 보지도 못할 거예요. 음악가들도 이 소설을 읽고 같은 반응을 보일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역시 음악가들을 위한 소설이 아니니까. 그래서 음악에 대한 부분도 전문성을 드러내기보다는 이미지를 표현하는 차원으로 묘사했어요. 문학이니까. 음악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성을 전혀 배제하면 안 되니까, 계속 확인하면서 진행했습니다.<br />
<br />

들꽃 : 음악 감상도 무척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그래야 그런 감각이 좀 살아나시니까.<br />
<br />

구효서 : 솔직히 바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작품을 끝내고 나서는 퍽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자꾸 들으니까. (웃음)<br />
<br />

유진 : 바흐를 왜 좋아하지 않으셨나요?<br />
<br />

구효서 : 일종의 선입관이 좀 있었고....그 영화 ‘페드라’에서도 바흐의 완고함에 대해 비아냥거리면서 주인공이 죽어가지요. 바흐는 개인이나, 생애, 종교적인 부분, 살아갔던 시대 등 전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인물입니다. 열 명도 넘는 자식을 먹여살리기 위해 조금이라도 보수가 높은 곳으로 수시로 옮겨 다녔고, 한 시도 쉬지 않고 곡을 썼지요. 그래서 바흐 음악을 들으면 솔직히 숨이 막혔습니다. 다들 바흐를 대단하고 경외하지만, 난 그 대단함조차 숨 막히는 대단함이라 느꼈어요. 무언가 해소하고 뚫어주는 대단함이 아니라, 사람을 아주 질리게 만드는. 하...정말 바흐가 인간일까? 어떻게 한 인간이 평생토록 이토록 곡을 많이 쓰고 이토록 철저한 화성에...이 점에 질려 차마 아무도 바흐를 욕하지 못하는 거지요. 그리고 바흐를 존경한다고 해야 대접받고. (웃음) 이것이 바흐입니다. 그러니 제가 좋아할 리가 있겠습니까? (웃음) 그래서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소설을 쓰다 보니까...모차르트가 물론 다소 나중이긴 했지만 바흐와 거의 동시대를 살고 주 활동 무대도 이탈리아 등으로 조금 달랐었지요. 그런데 바흐를 듣다가 모차르트를 들으니까....모차르트를 잘 못 듣겠더라고요. 이제는 모차르트를 들으면 약간 ‘날라리’같은 느낌이 드는 거야. (웃음) 그래서 저는 사실 누구의 음악을 더 ‘좋다’라고 하지는 않고, 누구 음악을 더 오래 듣고 더 익숙해지냐에 따라 다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절대적으로 누구의 음악을 좋다, 나쁘다,로 판별할 수는 없는 듯해요.<br />
<br />

이경호 : 그렇다면 바흐 시대의 음악에 대한 엄격한 분위기나 부담감 등을 아이블링거에 투영한 것인지요?<br />
<br />

구효서 : 바흐를 모델로 삼았다는 것이 드러나지 않도록 애썼습니다. 그러나 제 머릿속에는 늘 바흐가 있었습니다.<br />
<br />

메멘토 : 저는 살리에리도 자주 떠올렸는데.....<br />
<br />

구효서 : 영화 ‘아마데우스’에서는 모차르트가 뜨고 살리에리가 지는데, 여기서는 (모차르트 격인) 힌터마이어가 가라앉고 (살리에리를 떠올리게 만든다는) 아이블링거가 뜨니까...<br />
<br />

이경호 : 아이블링거의 레아라는 여성은, 친동생이 확실한 거지요?<br />
<br />

구효서 : 근친상간인 셈이지요.<br />
<br />

왕마담 : 그런데, “저를 데려가주세요”라고 했잖아요? 게다가 ‘제발’이라고. 그런데 그게 바로...레아는 그 (근친상간) 관계를 원하지 않았다는 뜻이잖아요. 어쩔 수 없이 끌려갔었다는 거고. 그러니까 그게, 그 ‘제발’이라는 말이 여성 독자들의 감성을 크게 자극했어요. 그냥 ‘데려가주세요’와 ‘데려가주세요, 제발’은 느낌이 참, 너무나 달랐습니다.<br />
<br />

구효서 : 그래서 ‘제발’을 쓴 거예요. (일동 웃음)<br />
<br />

이경호 : 근친상간적인 느낌이 두 군데에서 보입니다. 하나코와 아버지와의 관계도 그렇고.<br />
<br />

구효서 : 그것은 명확하게 밝히지는 않았지만, 실은 그것은 아버지의 ‘뻥’입니다.(웃음) <br />
<br />

왕마담 : 하나코 아버지는 나쁜 남자여요!<br />
<br />

구효서 : 나쁘다기보다...불쌍한 남자이지요. 부랑민으로서 주류사회에 편입하지 못한 평생의 콤플렉스 때문에, 딸을 가쿠슈인 대학에 보내고, 본인도 자원해 만주군이 되고, 일본인이 되려고 애쓰고. 부랑민은 일본인이 아닙니다. 일본인들을 그들을 결코 일본인으로 치부하지 않지요. <br />
<br />

들꽃 : ‘나가사키 파파’에서도 비슷한 부분이 나와요.<br />
<br />

구효서 : 바로 그 연장이지요. 넥스트도어라는 식당 주인이 사랑하는 여자가 있는데, 그녀가 바로 부랑민의 딸이고...그래서 집에서 결혼을 반대하지만 평생 그 여자만을 바라보고 사는, 전직 야구 코치인 인물이지요. 제 단편 ‘승경’에도 김상호의 일본 이름과 같은 ‘겐타로’가 등장합니다. ‘나가사키 파파’에서도, 식당 주인이 그녀를 평생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들의 사랑이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끝없는 진행형인 것이지요.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에는 끝없이 그것을 지향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습니다.<br />
<br />

왕마담 : 그때는 그렇지 않았어도 지금 생각하면, ‘첫사랑 놈’이나 ‘마지막 사랑 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일동 웃음)<br />
<br />

구효서 : 사랑 자체가 있느냐 없느냐, 가능하냐 가능하지 않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항상 무언가를 향하고 추구하고 기대하면서 살아가야만 하는 요소가 인간에게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까 계속 향하면서 느끼는 그 안타까움, 사무침, 쓰라림 등, 이런 감정들이 그저 아프기만 한 것이 아니라 묘한 쾌감이랄까, 어떤 피학증에서 오는 쾌감을 주는 것도 같아요. <br />
<br />

왕마담 : 그럼 선생님은 사무치도록 그리운 사랑, 해보셨나요? <br />
<br />

구효서 : 글쎄요, (곤란하다는 듯 웃음) '몌별'도 그렇고 '애별'도 그렇고, 제 소설 ‘별別’ 시리즈가 모두 그렇게 사무치는 사랑을 다루고 있지요.<br />
<br />

왕마담 : 저는 성격상 사무침은 잘 못 느낄 것 같아요. ^^;<br />
<br />

이경호 : 성격 탓이세요. (일동 웃음) 읽다가 저는 약간 아쉬웠던 점이, 18세기 중세 독일 부분의 줄거리는 비교적 상세히 공개가 되고 마무리되는데, 겐타로가 고문받은 뒤 독일로 돌아가고 나서의 생활과, 수용소에서 음악가들을 억압했던 이들의 후일담 등은 상대적으로 소소하게 처리가 된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처리했는지 궁금합니다. 여운 때문인지요?<br />
<br />

구효서 : 겐타로의 경우, 왜 죽었는가가 문제인 것입니다. 한국에서 출소해 1989년경 다시 독일로 간 뒤, 그는 그저 곡을 쓰고 연주하고...그렇게 살아갔던 것입니다. 소설적으로 특기할 만한 일상이 없었어요. 그런데 그런 그가 왜 하필이면, 지금, 죽었느냐는 문제가 중요한 것이 이 소설의 출발이었습니다. 그래서 죽음에 이르는 원인을 하나코가 추적하게 된 것이지요. 군악대의 ‘뱀’은 에밀리의 아버지이고, 그중 한 트럼펫 주자의 아들이 바로 빌헬름이었던 것이지요. 빌헬름이 사실은 복수하고 싶었던 겁니다. 물론 복수를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의 여부는 제가 분명하게 처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죽을 때 함께였던 것으로만 표현했을 뿐. 빌헬름과 토마스와 키르호프, 이 셋은 굉장히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빌헬름이 토마스를 통해서 키르호프에게 접근하고자 했기 때문에 가까워질 수밖에요. 토마스는 죽기 직전까지도 그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알게 된 거죠. 그러고 나서 음악이 무엇이고 인간이 무엇이고 친구가 무엇이고 삶이 무엇인지, 갑작스러운 충격과 혼란을 겪지요. 뱀은 전쟁이 끝난 뒤 신분을 숨기고 에밀리를 낳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토마스의 음악에 광적인 팬이 되었고. 그런 식의 삶을 살아간 것일 뿐입니다.<br />
<br />

들꽃 : 그 뱀이 아이블링거와 조금 닮은 부분도 있는 것인지요? <br />
<br />

왕마담 : 아이블링거도 뱀도 시대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도 같아요. 자신의 역할이라든가 직업이라든가 하는 부분이. <br />
<br />

구효서 : 사실, 32막사의 뱀 이야기는 개인적이거나 개별적인 사건인 것이 아닙니다. 언제든 32막사는 세계 도처에 세워질 수 있고 뱀은 언제든 튀어나올 수 습니다.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과거든, 지금이든. 지역과 시간을 초월해 언제든 튀어나올 수 있는 존재가 32막사이고 뱀이다. 그 실례로 또 하나가 중앙정보부인 것이고요.&#160;&#160;
&#160;&#160;
이경호 평론가<br />
<br />
<br />
&#160;<br />

디아스포라의 상처를 되짚는 소설 쓰기<br />
<br />

이경호 : 소수자나 피억압자에 대한 구효서 특유의 시선이 엿보입니다. 힌터마이어의 조상이 그렇다면 임진왜란 때 끌려간 전쟁 노예인 것이지요? <br />
<br />

구효서 : 한국은 개입시키지 않고 독일에서 음악가로 성공한 풀무꾼의 이야기로만 진행할까 싶기도 했는데, 허전하더라고요. 한국이 그래도 관련되어야 하지 않은가 고민하다가, 점차 디아스포라를 다루는 소설이 되어갔지요. <br />
<br />

이경호 : 디아스포라의 어떤 해결점이나 가능성을, 예술가의 길에서 찾으신 것인지요? 가령, 아이블링거와 힌터마이어가 논쟁하는 부분, 종교든 음악의 형식에 대한 것이든, 힌터마이어의 주장이나 삶을 통해서 보이는 것은 누릴 것도 없고 억압당하는 괴로운 자들이 추구할 수 있는 것은 자유나, 굳어지지 않은 형식을 추구하는 것, 그것이 그들의 유일한 대안이 될 수 있는 삶의 방향이 아닌 것이겠느냐, 라는 것이 이 소설에서 하고자 했던 이야기인지?<br />
<br />

구효서 : 디아스포라는, 갇힌 자들입니다. 격리되고, 갇히고, 피해를 입은. 18세기 당시 독일은 민족국가로서의 출발선에서 가장 뒤쳐진 나라였지요. 민족의식도 없고. 따라서 종교적인 통합의 부분이 컸겠지요. 서로 간의 대립에 있어 아이블링거는, 기존의 어떤 전통적인 인식 세계를 옹호하며 그 안에서 자율성을 확대해 보자는, 지극히 보수적이고 정통적인 시선, 바흐적인 시선입니다. 나쁜 게 아닙니다. 그저 삶의 태도 중 하나일 뿐이며, 존중받아야 하는 부분입니다. 힌터마이어는 그 반대의 입장인 것입니다. <br />
<br />

결과적으로, 힌터마이어의 문제의식은 민족도 혈통도 아닌, 인식의 문제입니다. 한쪽은 경계를 짓고 그 안에서의 발화를 최대화하자는 것, 한쪽은 경계 자체를 무너뜨리자는 것. 민족의 아이덴티티라는 것도 의식의 경계일 뿐이라는 것. (이 기조는 김상호, 즉 겐타로이자 토마스에게서도 또다시 반복되는 것이지요.) 한국, 일본, 독일, 북한 이 모두 이념이나 국가 등으로 나뉘지만 그 모든 것은 사실상 인식의 문제라는 것. <br />
<br />

인식의 경계는 곧 ‘말’, ‘언어’의 경계입니다. 종교도 말이고, 음악도 말입니다. 언어의식론, 언어가 의식을 지배한다는 주장과 맥을 같이하지요. 두 사람은 다름 아니라 경계와 비경계 간의 충돌입니다. 그 지점에서 ‘근대’가 출발하지요. 근대를 태동한 그 개념이 현대에 와서는 어느 민족이든 집단에든 속하지 못하고 사이에 낀 존재인 디아스포라를 낳은 것입니다. 이념에 의해 만들어진 민족국가의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존재. 본인 의지와는 상관없이. 민족과 종교와 국경의 경계에 서온 자들. 근본적인 문제는 ‘언어’에 있습니다. 말은 말일 뿐인데, 그것을 없애지 못하는 거죠. 아이블링거는 그 ‘언어’를 수호하려 하고 힌터마이어는 없애고자 했던 것입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이 소설이 심오하죠? (웃음)<br />
<br />

이경호 : 후반부로 갈수록 그런 중요한 주제들이 더 부각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br />
<br />

구효서 : 문제는 사실, 심오하면 안 된다는 거죠. 그저 ‘이야기’로 읽어야 하는 것인데...<br />
<br />

왕마담 : 처음에는 어려웠어요. 신경숙 연재와 함께 시작되어 비교하면서 같이 읽었는데, 나중에 보니 독자층이 조금 추려지더라고요. 저희처럼 무게감...몸무게가 있는 사람은 (일동 폭소) 선생님 작품으로. ^^<br />
<br />

구효서 : 나가사키 파파도 실은, 반드시 핏줄로 이어져야만 내 아버지냐? 아니다, 피가 섞이지 않은 아버지도 아버지가 될 수 있다는, 경계 허물기거든요. 끝장면에서, 스튜디오에서 ‘그래도 당신은 나의 아버지입니다.’라고 하잖아요. 그런 식이지요. <br />
<br />

이경호 : 아주 감동적인 장면이었습니다. <br />
<br />

왕마담 : 저도 된장 잘 담그시는 양어머니를 좀 두고 싶어요. (일동 폭소)<br />
<br />

구효서 : 힌터마이어도 사실, 동쪽을 향한다고, 끝을 향한다고 했지, 반드시 ‘조선’을 향하는 것은 아닌 것이지요. 그리고 그의 목적지는 조선이 아니라 끝입니다. 지금 여기가 아닌 곳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br />
<br />

이경호 : 참, 힌터마이어라는 이름의 뜻이 ‘산골짜기’이지요? 그가 전설을 이야기해 주는데, 깊은 골짜기에 새가 날아온다는 유의 이야기. 그것은 또 어떤 의미를 품고 있는 것입니까? 힌터마이어의 이름에서부터 ‘디아스포라’의 의미가 나타나는 것인지요?<br />
<br />

왕마담 : 힌터마이어 본명이 또 ‘키르케’인가, ‘새’라는 뜻이었지요?<br />
<br />

구효서 : 사실 상 힌터마이어는 ‘디아스포라’의 개념이 등장하기 전의 인물이지요. 다만, 동방의 한 사람이 유럽의 정중앙에서 살 수 있을까? 전쟁과 노예 매매, 인간 매매라는 과정을 통해서 독일의, 슈바르츠발트, 깊고 검은 숲에서 (로마시대에는 들어가지도 못했던) 간신히 살아남아서 몇 대를 이어 내려오다가, 결국 풀무꾼이 되었던 것이지요. 결국 이 친구가, 악공의 자식이다 보니 음악적 기질이 있어서, 아이블링거를 만나 꿈을 이루려다가 실패하고 동쪽으로 향하게 되는 거죠. 그 안에는 조선에 대한 그리움도 있었겠지요. 궁금함도 존재할 것이고. 걸핏하면 낯선 나라 이야기하는 과정에는 그런 부분도 담겨 있겠지요. 조선을 어쨌든 갔고, 그에 대한 글도 남겼으니 최종 도착지가 조선이었다는 거긴 하지만, 무조건 조선을 향했다고 정의내리면 우스워지겠지요. 민족주의 소설이 되어버리는 거지요.<br />
<br />

왕마담 : 구효서 선생님께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민족주의라든가, 음악적인 부분이라든가, 그런 부분을 묘하게 살살 잘 피해 가신 듯해요. <br />
<br />

구효서 : 그야, 아예 방향이 지어져 있었으니까요. ^^&#160;<br />

이경호 : ‘나가사키 파파’를 읽고도 무척 감탄했습니다. 보통 여성작가는 남성 등장인물 심리묘사에 약하고, 마찬가지로 남성작가는 여성 심리 묘사에 약한데, 소설가 구효서는 참 기막히게 두 시선을 아우릅니다. ‘나가사키 파파’도 여성화자에 의해 진행되고 또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데도, 설교하듯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데 놀랐어요. <br />
<br />

왕마담 : ‘나가사키 파파’는 제 딸 친구가 처음에는 일본소설인 줄 알고 빌려가서 봤어요. 그런데 읽으면서 구효서 선생님께 반하고 푹 빠진 거예요. 어쩜 이렇게 글을 젊게 쓰실 수가 있냐고. ^^<br />
<br />

메멘토 : 제 아들이 스물한 살, 공대생인데요, ‘나가사키 파파’ 참 감명 깊게 읽었다고, 오늘도 구효서 선생님 사인 받아달라고 하더라고요. <br />
<br />

구효서 : 우리 애도 공대생인데 그런 말 안 하는데. (일동 웃음)<br />
<br />

메멘토 : 제가 책을 자주 권해 주는데,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거의 없었어요. 어떤 점이 그렇게 좋았냐고 물었더니, 억압당하는 낮은 곳의 사람들을 직접 화법이 아니라, 에둘러 표현한 화법이 좋았다고 그러더라고요. ^^ <br />
<br />

구효서 : 훔...아무래도 그 두 사람 모두 책을 많이 읽는 친구가 아닌 것 같네요. 그래서 비교 대상이 없어서 그렇게 본 것이 아닐까요? (일동 웃음)<br />
<br />

왕마담 : 구효서 선생님은, 상처나 어둠을 풀어낼 때 굉장히 편안하게 풀어내시는 듯해요. ‘랩소디 인 베를린’도 읽으면서 아슬아슬한 순간이 참 많았어요. 앞길이 걱정되고. 대체 이들을, 이 부분들을 어떻게 처리하시려나. 그런데 역시 너무나 유연하고 편안하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해결해 나가시더라고요. ^^<br />
<br />
&#160;

<br />
좌측부터 독자 메멘토, 왕마담, 구효서 작가, 독자 들꽃, 이경호 평론가
<br />
<br />
<br />



<br />

열정적인 독자들과 국경과 종교를 넘어 만나기&#160;&#160;<br />
<br />
이경호 : 그런데 인터넷 연재라는 것을 처음 해보신 것 아닙니까?<br />
<br />

구효서 : 아주 오래전, 하이텔이라는 pc통신에서 한 번 했었지요. 하도 오래 되어서 얼마나 했는지도 생각 안 나고, 책도 나오지 않았어요. <br />
<br />

이경호 : 매일 연재 원칙을&#160;굉장히 잘 지킨 사례인 것 같습니다. 약속을 어기지 않고 끝까지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에너지입니까?<br />
<br />

왕마담 : 신경숙 작가도 중간에 며칠 비우신 적 있었습니다. 구효서 선생님께서는 그런 공백을 두는 게 성격적으로 용납이 안 되시는 거죠? (웃음)<br />
<br />

구효서 : 아니, 뭐 그렇다기보다는, 소설을 쓸 동안은 전혀 무리를 안 했죠. 술을 먹는다든가...하는. 부부싸움도 안 하고. (웃음) 오로지 글 쓰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삶을 다 조정했지요. <br />
<br />

이경호 : 소설가 윤대녕은 소설을 쓰려들면 몇 주 전부터 여행 다니며 몸을 가장 피로한 상태로 만들어 글을 쓰고, 소설가 구효서는 글 쓰기 전에 모든 주변 관계 등을 가장 편안한 상태로 만든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br />
<br />

구효서 : 예술가들이 원래 질서나 규칙을 잘 못 지켜요. 그게 예술이잖아요. 의문을 던지고 깨고 해체하려고 애쓰고, 딱딱한 것을 부수어버리고....그런데, 이상하게 저는, 소설은 예술이 아닌 것 같고 노동인 것 같아요. 노동은 계획이 있어야 하고 하루에 몇 시간 일하고 쉬고 이래야 노동이 된다는 것이지요. 다른 예술은 몰라도 소설은 노동인 것 같아요. 뭐, 그런데 사실 음악도 마찬가지겠지요. 교향곡 같은 것 한편 쓰자면 그건 노동, 소설보다 더한 노동인 것 같아요. 그건 진짜, 타고 나지 않으면 어떻게 이걸 작곡하고 앉아 있나...싶은 생각이 들지요. 악보를 한 번 보면, 핑핑 돌아버리지요. <br />
<br />

왕마담 : 선생님 그런데, 연재하시는 거 재미있지 않으셨나요?<br />
<br />

구효서 : 이번에 아주 재미있었어요. ^^<br />
<br />

이경호 : 댓글 등도 그렇고, 아주 중요한 체험을 하신 것 같습니다.<br />
<br />

구효서 : 처음에는 댓글 다는 게 가장 걱정이었어요. 가만 읽기가 뭣해서, 처음에는 선별적으로 달 생각이었는데, 하다 보니까, 매일 들어오니까, 누구는 매일 오는데 안 달아줄 수도 없고, 그렇다 보니 안 할 수가 없더라고요. <br />
<br />

독자 일동 : 선생님 성격이어요, 그것도. 그 때문에 독자들이 확 반한 거예요. <br />
<br />

구효서 : 무엇보다도 비비안나나 제제, sotkfkd 등등 이런 양반들이 이 소설을 읽어오시는데, 실망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더라고요. 외국에 사시니까, 대한민국에 대한 그리움이 대단하실 거잖아요. 그런데 저는 조국? 그거 말일 뿐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이 소설을 쓰고 있는데, (일동 폭소) 태극기 흔들며 눈물을 흘리실 분위기였어요. 그래서 제가 댓글을 쓰면서 서서히 핸들을 틀었지요. 그쪽이 아니라 이쪽이라고. 그랬더니 그분들도 그러한 제 의도를 인정하고 수긍하고 함께 작품에 따라오시더라고요. <br />
<br />

왕마담 : 그것도 그렇고, 외국에서는 인터넷에서 보는 게 정말 어렵잖아요. 그런데 봐야 하는 거예요. 그분들 그런 노력을 보는 게 눈물겹더라고요. 그런데다 학문적인 지식도 다들&#160;깊으시고. 브라질에 계시는, 영어 선생님 하시는 분이 수녀님이세요. 63세이시고. 베네딕트 수도회의. 그 분이 여러 개 국어를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굉장히 사고방식도 긍정적이시고요. 느낌이 묘해서, 혹시 수녀님? 하고 여쭈었더니 ‘들켰네.’ 그러시더라고요. (웃음)<br />
<br />

구효서 : 두 가지가 좀 걱정이 되었었습니다. 조국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가지신 분들인데, 겐타로는 조국을 찾아갔다가 양 조국에서 얻어맞고, 독일도 자기 땅이 아니고 일본도 자기 땅이 아닌 상태에서 살다가 갔잖아요. 그러면서 이제 한국에서는 좋다고 왔다가 덜컥 잡혀서 고문당하고...이러면서 겐타로가 조국을 떠나는 과정이에요. 젊었을 때부터 조국에 경도되어 있다가, 점점 그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인 것인데, 이런 독자분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조국을 벗어나니까. 조국을 멋지게 표현해야 하는데 남산 안기부나 나오고 말이지요. (웃음) 그러니까, 그게 제일 걱정이었고, 두 번째는 이 분들이 대개 크리스찬이야. 기독교나 가톨릭교도이시란 말이지요. 그런데, 힌터마이어는 성경 말씀까지도 못 믿겠다고 하는 아이블링거와 논쟁하는 인물이란 말이지. 이런 분들께 이 지점이 어떻게 읽힐까 걱정을 참 많이 했는데, 충돌 없이 잘 따라와 주셨어요. <br />
<br />

들꽃 : 그게 바로 연재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처음부터 끝까지 한 권의 책으로만 읽으면 반감이 더 크고 단정 짓게 되는데, 연재를 하면서 늘 오랜 시간 함께하니까, 작가님의 의도를 알아챈 것 같아요.<br />
<br />

왕마담 : 이 연재를 읽는 게, 일과 중에 아주 중요한 일이 되었어요. <br />
<br />

이경호 : 개구리를 뜨거운 물에 갑자기 집어넣으면 탁 튀어 나가는데, 물에 넣고 서서히 달구면 그대로 도망가지 않은 채 익는다고 합니다. 그게 바로 연재의 위력이지요.<br />
<br />

구효서 : 작가가 기독교를, 사실 마음만 먹었으면 훨씬 더 공격할 수도 있었겠지만, 제 목적은 기독교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다만 왜, 기독교에 의해 ‘반유대주의’가 지구상에 생겨나게 되었을까, 그 기원을 따지고 올라가면 하나를 소외시키고 격리시키고 공동체와 질서를 공고히 하려는 요소가 예전부터 있었거든요. 그런 이야기를 하려면, 좀 더 세부적으로 날카롭게 파고들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그게 제 목적은 아니었기 때문에. 놀라운 점은,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기독교도 신앙을 가진 분들 내부에서도 저와 공감하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br />
<br />

들꽃 : 신앙을 가진 사람들도, 믿는다고는 하지만 문제의식을 가지고 접근하는 분들도 참 많지요. 비합리적인 종교의 부분에 대해서.<br />
<br />

구효서 : 같은 신앙 안에서도 좀 문제가 있는 부분들이 있지요. 말하자면 교조주의 같은 것들. 원리주의나. 지나치게 율법적이거나. 어쨌든 이런 부분들 때문에 좀 아슬아슬했었지요.<br />
<br />

메멘토 : 아마 처음부터 전체를 한 권의 책으로 만났다면, 미처 행간에 숨어 있는 의미나 감동을, 너무나 순식간에 지나가서 못 느끼고 지나갔을지도 모르겠어요. 하루 여유가 있으면서 그 틈에 생각하고 곱씹고 하는 과정에 걸러진 것이지요.<br />
<br />

구효서 : 들어가서 또 웃으면서 서로 댓글 달고 하니까...ㅎㅎㅎ<br />
<br />

왕마담 : 별렀다가도, 웬만하면 용서가 되는 거죠. ㅎㅎ<br />
<br />

이경호 : 서너 가지 이야기가 동시에 전개되니까, 한 부분 줄거리가 궁금한데 갑자기 딴 부분으로 내용을 돌려버리잖아요? 그런 때는 다들 어떠셨는지요?<br />
<br />

구효서 : 아유, 짜증나지요.(웃음)<br />
<br />

왕마담 : 전 처음에는 익숙지가 않아서 선생님이 얄미웠어요. ^^ 이해가 갈 만하면 싹 바뀌고 말이죠. 그래서 저는 선생님과 게임을 했어요. 다음에는 일주일치씩 읽고 그랬지요. 그러다가도 궁금해서 못 참겠으면 삼 일치씩 읽었다가, 끝부분, 3분의 1 정도 남았을 때는 매일 읽었지요. 화가 나 가지고. ^^<br />
<br />

이경호 : 연재라는 방식을 의식해서 작품 구성 형식을 그렇게 잡은 부분도 있으신지요?<br />
<br />

구효서 :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는 장편을 쓸 때 주로 이런 식으로 쓰는데, 장편은 단선으로 진행하기가 불가능합니다. 여러 가지 스토리라인으로 가야할 수밖에 없지요. 시공간을 따라가면서 기본적으로 세 개의 시공간을 갔지요. 독일와 동경과 18세기. 이것을 잘못 가면 더 헷갈리게 되지요. 그래서 아예, 세 개를 동시 출발시키고 돌아가는 방식을 취하고 배치했습니다.&#160;&#160;&#160;&#160;
이경호 : 다음 작품은 구상 중이십니까?<br />
<br />

구효서 : 이번에도 역시 사람을 죽이고 또 살릴 수 있는 ‘언어’의 의미를 묻고자 합니다. 일단은 시인 윤동주의 생애를 소재로 삼고 고민 중입니다. 시인은 왜, 어떻게 죽었는지를 되묻는 거지요. 시인을 진정으로 죽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시인에게서 ‘말’을 앗아가는 것이겠지요. 윤동주를 위해 그의 알려지지 않은 유고작품을 세상에 알리려 하는 자와 은폐하려 하는 자의 두 시선이 겹칩니다. 역시 만만치 않은 작업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쓰는 수밖에요. 누가 보아도 윤동주를 그린 것임을 알 수 있겠지만, 실명을 그대로 사용할지 상징적으로 사용할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습니다.&#160;&#160;&#160;
&#160;&#160;
&#160;
진행 및 정리, 사진 ⓒ 문학에디션 뿔 박유진&#160;
&#160;]]></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paper/pimg_729921106522318.jpg</url><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398863</link></image></item><item><author>문학웹진뿔</author><category>공지</category><title>[연재종료 이벤트] 구효서 작가와의 만남에 독자 3분을 초대합니다!</title><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351981</link><pubDate>Tue, 19 Jan 2010 18: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din.co.kr/rhapsody/3351981</guid><description><![CDATA[

&#160;
안녕하세요. &lt;문학웹진 뿔&gt;입니다. <br />
<br />
6개월에 이르는 기간 동안, 주 5회 빠짐없이 연재되었던 구효서 장편 연재&#160;&#160;&#160;
〈랩소디 인 베를린〉이 대장정을 마쳤습니다.&#160;&#160;
예술과 국경의 의미, 그리고&#160;소외와 자유와 인간을 노래했던&#160;〈랩소디 인 베를린〉에&#160;&#160;
참 많은 분들께서 소중하고 진심 어린 성원을 보내주셨습니다.&#160;&#160;
그 열정과 애정에&#160;답하는 마음으로,&#160;&#160;저자와 함께하는 시간에&#160;&#160;
독자 세 분을&#160;초대합니다.&#160;
구효서 선생님과 함께, 다시 한 번&#160;&#160;〈랩소디 인 베를린〉의 시간 속으로&#160;&#160;
빠져드시길 바랍니다.&#160;<br />
&#160;&#160;
<br />
<br />
&#160;&#160; 일시: 2010년 1월 29일 금요일, 늦은 6시 30분.&#160;
&#160;&#160; 장소: 홍대 앞 어느 고즈넉한 밥집 혹은 카페.(미정)&#160;&#160;
&#160;&#160; 참가자 : 〈랩소디 인 베를린〉의 저자 구효서 소설가,&#160;&#160;
&#160;&#160;&#160; &#160;&#160;&#160;&#160;&#160;&#160; &#160;&#160; 문학웹진 뿔의 기획위원 이경호 평론가,&#160;&#160;
&#160;&#160;&#160;&#160; &#160; &#160;&#160;&#160;&#160;&#160;&#160;&#160;독자 세 분.
&#160;&#160; 독자 선정 방식:&#160;&#160;
&#160;&#160;&#160; 그동안 〈랩소디 인 베를린〉에 함께해주신 댓글 독자분들 중 추첨.&#160;&#160;
&#160;&#160;&#160; 댓글로 다른 독자분을 추천해 주시고, 추천 수가 많은 후보군 중 추첨하는,&#160;&#160;&#160;
&#160;&#160;&#160; 지극히 〈랩소디 인 베를린〉다운 방식으로&#160;선정합니다.&#160;&#160;
<br />
<br />
<br />
연재 기간 동안,&#160;&#160;〈랩소디 인 베를린〉 못지않은&#160;깊고 아름답고 문학적인&#160;댓글로&#160;&#160;
함께해주신 여러분께,&#160;&#160;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160;&#160;&#160;
&#160;&#160;&#160;&#160;&#160;

]]></description></item><item><author>문학웹진뿔</author><category>랩소디 인 베를린</category><title>랩소디 인 베를린 - 연재를 마치며</title><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330766</link><pubDate>Mon, 11 Jan 2010 10: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din.co.kr/rhapsody/3330766</guid><description><![CDATA[&#160;
&#160;<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랩소디 인 베를린'&#160;
            연재를 마치며<br />
            <br />
            
            
        
        
            <br />
            <br />
            
            
            <br />
            &#160;&#160; 연재를 마쳤는데<br />
            &#160;&#160; 연재를 마쳤다고 막바로 뭐라 말하기가 좀 그랬습니다.<br />
            &#160;&#160; 이유는 모르겠어요.<br />
            &#160;&#160; 그냥 한동안 멍하니 있었던 것 같습니다.<br />
            &#160;&#160; 사실은 지금도 그렇습니다.<br />
            &#160;&#160; 빈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습니다.<br />
            &#160;&#160; 이런 소설을 하나 써봐야겠다는 생각은<br />
            &#160; &#160;아주 오래되었습니다.<br />
            &#160; &#160;4년 전이었던 것 같습니다.<br />
            &#160;&#160; 아침밥을 먹으면서 언뜻 떠올렸던 생각이<br />
            &#160;&#160; 소설이 되었습니다.<br />
            &#160;&#160; 아침에 종종 FM을 듣습니다. KBS 제1FM. 93.1MHz.<br />
            &#160; &#160;바흐의 토카타와 푸가가 들렸습니다.<br />
            &#160; &#160;그래요. TNF네요.<br />
            &#160;&#160; 그리고 어떤 영화의 한 장면이 슬쩍 스쳤지요.<br />
            &#160;&#160; 그것도 너무 오래전 영화라,<br />
            &#160;&#160; 그리고 그다지 인상 깊게 본 영화가 아니라<br />
            &#160;&#160; 제목도 잊었네요. Brother라는 단어가 들어가는<br />
            &#160;&#160; 영화였던 것 같은데.<br />
            &#160;&#160; 남산 영화진흥공사 시사회였던 것 같아요.<br />
            &#160;&#160; 탄광촌의 어린아이가 음악가로 성공한다는 뭐 그런.<br />
            &#160;&#160; 그 영화에 잠깐 풀무질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br />
            &#160;&#160; 전기 없던 시절의 유럽이었던 것 같습니다.<br />
            &#160;&#160; 혼신의 힘을 다해 대형 오르간에 바람을 넣는 풀무꾼들.<br />
            &#160;&#160; 바흐의 오르간 곡을 들으면서<br />
            &#160;&#160; 저 오르간 뒤에도 땀을 뻘뻘 흘리는 풀무꾼들이 있었겠지.<br />
            &#160;&#160; 그렇게 중얼거리며 아침밥을 먹고 있었던 거지요.<br />
            &#160;&#160; 그러다 문득, 저 하급계층의 풀무꾼 중에는<br />
            &#160;&#160; 장차 음악가로 대성할 사람이 있을 수도 있었겠구나<br />
            &#160;&#160; 생각했어요.<br />
            &#160;&#160; 소설가는 그런 상상을 언제 어디서나 좀 즐기잖아요.<br />
            &#160;&#160; 마침 파벨 사스노프스키라는 사람이 떠올랐습니다.<br />
            &#160;&#160; 18세기에 실존했으며, 이탈리아에 유학했던<br />
            &#160;&#160; 러시아 노예 출신 음악가.<br />
            &#160;&#160; 상상이란 것은 그런 계기를 통해 슬슬 이야기로 부풉니다.<br />
            &#160;&#160; 하지만 이야기란 부풀다가 꺼지고<br />
            &#160;&#160; 잊히기도 하고 귀찮아지기도 하지요.<br />
            &#160;&#160; 나가사키에 갔던 것은 꺼지고 귀찮아지기 시작하는<br />
            &#160;&#160; 그 상상을 붙들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br />
            &#160;&#160; 힌터마이어 조상이 포르투갈 노예상인에 의해 팔려 갔을<br />
            &#160;&#160; 나가사키 항에 서보고 싶었습니다.<br />
            &#160;&#160; 그러다 그곳 데지마 와프의 어느 식당엘 들어가 바다를 보며 점심을 먹었는데<br />
            &#160;&#160; 그 식당의 ‘미소에 재워 구운 흑대구’ 맛이 일품이었습니다.<br />
            &#160;&#160; ‘미소’는 일본된장을 말하는 거겠지만 왠지 저에겐 微笑로 읽히더군요.<br />
            &#160;&#160; 그곳 식당에는 한국인 중국인 아이누인 등의<br />
            &#160;&#160; 종업원이 있었습니다.<br />
            &#160;&#160; 『나가사키 파파』라는 장편소설이 먼저 나오게 된 까닭이지요.<br />
            &#160;&#160; 한국인, 회족 중국인, 그리고 일본 내부 소외자 아이누인, 부락민 등의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br />
            &#160;&#160; ‘파파(아버지)’라는 코드로 혈연과 고향과 민족과 국가라는 화두를<br />
            &#160;&#160; 풀어보고 싶었지요.<br />
            &#160; &#160;워밍업 같은 것이었습니다.<br />
            &#160; &#160;그 책을 문학에디션 뿔에서 내게 되었고, 그해 그 소설로<br />
            &#160; &#160;과분한 상을 받았습니다.<br />
            &#160; &#160;그리고 제가 『랩소디 인 베를린』을 문학에디션 뿔에 연재하게 된 인연이 되었습니다.<br />
            &#160; &#160;처음에는 그냥 한 사람의 풀무꾼이 훌륭한 음악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습니다.<br />
            &#160; &#160;뒤프레 자매가 1950년대 영국에서 성장하여 그중 하나인 자클린이 세계적인 첼리스트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가 암시를 주기도 했습니다.<br />
            &#160; &#160;그러나 독일의 한 풀무꾼이 나중에 훌륭한 음악가가 된다는 이야기는 ‘한국’문학이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br />
            &#160; &#160;물론 히라노 게이치로의 『일식』 같은 소설의 무대는 전혀 일본이 아닙니다. 중세 유럽입니다. 그러면서도 ‘일본’문학이지요. <br />
            &#160; &#160;하지만 제 소설에는 왠지 한국인이 나와야 할 것 같았습니다.<br />
            &#160; &#160;한국인 아니라면 조선인이라도. 조선인이 아니라면 재외동포라도. 그래서 겐타로가 등장하게 된 겁니다.<br />
            &#160;&#160; 디아스포라는, 국경이 강화되고 그 국경을 경계로 자국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과정에서 소외된 사람들이라는 점이 제 관심을 끌었습니다.<br />
            &#160;&#160; 요즘도 걸핏하면 국익! 국익! 하지요.<br />
            &#160; &#160;디아스포라는 『나가사키 파파』 문제의식의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br />
            &#160; &#160;세계의 여러 나라가 혈통 중심의 민족국가가 되어가던 시점, 그리고 그래야만 했던 정치 경제사적 이유, 그런 것들이 두루 궁금했습니다.<br />
            &#160;&#160; 근대적 자본과 국가가 결속해 가는 과정에서 빠질 수 없었던 것이 민족공동체라는 것이며, 그러한 공동체는 혈통과 문화의식 등 제반 변별요소들을 가리어 묶는 작업의 결과였습니다.<br />
            &#160; &#160;마침내 그것은 나치와 파쇼, 군국주의 및 제국주의 전쟁이 발생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br />
            &#160;&#160;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 바치라는 요구가 당위로 받아들여졌던, 그리하여 타국가와 타민족에 대한 침략이 정당한 것처럼 보였던 시절이었습니다.<br />
            &#160; &#160;일본에 의해 징집당하고, 일본제국주의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우기를 강요당하고, 전후에는 아무렇게나 버려졌을 뿐 아니라, 혹독한 차별을 받지 않을 수 없었던 재일 한국인.<br />
            &#160; &#160;그들 중 하나를 소설에 끌어오기로 했습니다. 겐타로의 가족입니다.<br />
            &#160; &#160;겐타로가 음악가이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은 물무꾼이 음악가로 성장하는 이야기에 닿기 위해서였지요.<br />
            &#160; &#160;결국 나가사키 항에서 노예로 팔려 유럽 땅에 닿았던 임진왜란의 조선인 악공포로까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br />
            &#160; &#160;그래서 이야기는 1700년대에서 현재까지 이어지게 되었고, 한국과 일본, 독일과 북한까지 넓어지게 되었습니다.<br />
            &#160; &#160;그 시공간을 하나코가 연결하고 있지요.<br />
            &#160;&#160; 저는 이 소설이 하나코의 소설이 되길 바랐습니다.<br />
            &#160; &#160;국가 자본 민족 인종 종교 등으로 에둘러진, 추상의 공동체에 가두거나 갇혔던 근현대사로부터 자유로운 어떤 지점을 그리워했습니다.<br />
            &#160;&#160; 그래서 하나코는 종종 공간적 개념으로 등장합니다.<br />
            &#160; &#160;겐타로는 죽어가면서까지 그곳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힌터마이어가 향하고자 했던 곳, 이근호가 향하고 싶은 곳, 어쩌면 우리 모두가 향하고 싶은 곳.<br />
            &#160; &#160;이 소설이 끝나더라도 하나코 인상만큼은 오래 남기를 바랐지요.<br />
            &#160;&#160; 제 생각대로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br />
            &#160; &#160;우리는 이제 글로벌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br />
            &#160; &#160;과거와 같은 배타적 자민족 자국가 중심주의는 비판받고 있습니다.<br />
            &#160; &#160;세계는 몇 개의 블록으로 재편성되고 있고 관세 장벽이 없어지며 통화(通貨)와 언어가 통일되어 가고 있습니다.<br />
            &#160; &#160;세상은 좁아지고, 지구 반대편 이웃을 만나는 속도는 무척이나 빨라졌습니다.<br />
            &#160;&#160; 소설을 연재하면서, 미국 브라질 독일의 독자들과 실시간으로 나눴던 대화만 봐도 참으로 그렇습니다.<br />
            &#160;&#160; 우리를 가로막던 과거의 경계들은 허물어지고 있습니다.<br />
            &#160; &#160;그러나 과연 우리는 그래서 자유로운가를 이제 되물을 때입니다. 가둠으로써 갇히는 시절이 끝났는가를 돌이켜 볼 때입니다.<br />
            &#160; &#160;총과 칼, 국경과 전쟁, 그것이 아직도 완전히 없어지지 않고 있으나, 설령 그것이 없어진다고 하여 우리는 갇히지 않게 되는 것일까.<br />
            &#160; &#160;피부로 느꼈던 물리적 장벽은 없어졌습니다.<br />
            &#160;&#160; 그러나 저 가시권 밖에서 우리를 더 크게 가두려는 움직임(눈 부릅뜨고 보자고요! 그게 무언지.)은 없는지요. 더 큰 테두리에 갇히는 일을 경계해야겠지만, 그 테두리에서조차 쫓겨난 사람들의 부당한 불행은 어찌해야 할까.<br />
            &#160; &#160;힌터마이어와 겐타로의 번민은 아직 끝나지 않은 건지도 모릅니다.<br />
            &#160; &#160;그렇다면 하나코는 그들에게, 우리에게, 여전히 사무치는 그리움의 대상일 수 있겠지요.<br />
            &#160; &#160;제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br />
            &#160; &#160;아직 연재 종료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br />
            &#160;&#160; ‘연재를 끝내며’라는 글을 쓰라 하니 이리되었나 봅니다.<br />
            &#160;&#160; 죄송합니다.<br />
            &#160;&#160; 하지만 이런 어지러운 성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br />
            &#160; &#160;어쩌면 저의 가장 자연스런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br />
            &#160; &#160;나중에 기회 있으면 차분하게 말씀드릴게요.<br />
            &#160;&#160; 아직은 멍하니까요.<br />
            &#160;&#160; 좀 긴 댓글이라 여겨주세요.<br />
            &#160; &#160;여러분의 양해를 바랍니다.<br />
            &#160; &#160;그리고 정말정말 고마웠습니다.<br />
            &#160; &#160;성원을 보내주신 여러분들을 한 분 한 분 뜨겁게 끌어안고 싶습니다.<br />
            &#160;&#160; 우리, 끌어안아 본 지 얼맙니까.<br />
            &#160;&#160; 노이에 교회의 연주가 끝나면 우리 한번 부둥켜안아요.<br />
            &#160;&#160; 눈물 날 만큼 여러분들이 고마웠습니다.&#160;
            <br />
            <br />
            
            &#160; &#160;눈 덮인 서울에서.<br />
            &#160;&#160; 구효서 올림.
            &#160;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paper/pimg_729921106513821.jpg</url><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330766</link></image></item><item><author>문학웹진뿔</author><category>랩소디 인 베를린</category><title>[구효서] 랩소디 인 베를린 - 123회</title><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319248</link><pubDate>Wed, 06 Jan 2010 10: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din.co.kr/rhapsody/3319248</guid><description><![CDATA[&#160;
<br />
<br />
<br />
<br />
&#160;
&#160;<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랩소디 인 베를린 (123)<br />
            <br />
            <br />
            <br />
            <br />
            
            
        
        
            <br />
            <br />
            &#160;
            &#160;&#160; 편지는 두 장이었다. 한 장은 그간의 안부를 묻고 전하는 내용이었고, 다른 한 장은 음악회 프로그램이었다.<br />
            &#160;&#160; 음악회 프로그램은 그녀가 직접 줄을 긋고 글씨를 써 베낀 거였다.<br />
            &#160;<br />
            &#160;&#160; 1부<br />
            &#160;&#160; 푸가 A장조---------------안드레아스 아이블링거<br />
            &#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 오르간: 게오르크 크리스차트 <br />
            &#160;&#160; 인사말-------------------------콘라드 멕바흐<br />
            &#160;&#160; 프렐류드 d단조----------------요한 힌터마이어<br />
            &#160;&#160; <br />
            &#160;&#160; 2부<br />
            &#160;&#160; 플루트와 소관현악을 위한 협주곡------토마스 김<br />
            &#160;&#160; 파르티타 F장조----------안드레아스 아이블링거<br />
            &#160;&#160; 바이올린 소나타 E장조---------요한 힌터마이어<br />
            <br />
            
            &#160;&#160; 3부<br />
            &#160;&#160; 바이올린과 콘트라베이스를 위한 &lt;세월이 가면&gt;---토마스 김<br />
            &#160;&#160; 콘체르트 D장조----------<br />
            &#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160; 하프시코드: 파트리크 최<br />
            &#160;&#160; 내빈소개: 아이블링거 후손. 힌터마이어 후손. 기타.
            &#160;&#160; 지휘: 콘라드 멕바흐. 연주: 베를린UV Phil.<br />
            &#160;&#160; 2010년 1월 6일(수). 오후 3시. 아른슈타트 노이에 교회.<br />
            <br />
            
            &#160;&#160; 연주회 장소 논의는 베를린 음대 소극장과 바이마르 헤르더 교회를 오가다 결국 아른슈타트 노이에 교회로 결정하게 됐다. 그렇게 됐노라고 하나코는 편지에 썼다.<br />
            <br />
            
            &#160;&#160; 베를린 음대로 하면 아이블링거와 힌터마이어 비중이 적어질 듯했고, 헤르더 교회는 비좁은 데다 의미 역시 반감되어 아른슈타트 노이에 교회로 최종 결정하게 된 거야. 힘멜부르크는 화재로 소실된 뒤 복구되지 않았고.<br />
            &#160;&#160; 노이에 교회는 힌터마이어가 키르케였을 적 바람을 넣던 곳이고, 그곳에서 처음 아이블링거를 만났으며, 지휘자와 연주자가 겐타로의 스승과 후배들이니 두루 괜찮지 않겠어?<br />
            &#160;&#160; 청중은 그다지 고려하지 않았어. 아이블링거 후손과 힌터마이어 후손이 참석하게 됐으니 그것으로 충분하지. 우리도 다시 만나고 말이야. 작고 소박한 음악회가 될 테지만 2백여 년의 세월과 사연이 깃든 자리가 될 거야.<br />
            &#160;&#160; 물론 내가 멕바흐 씨를 졸랐지. 그러고 싶었어. 썩 괜찮을 것 같지 않아? 그도 TNF를 읽었고, 그의 설명을 들은 대학 관현악단이 적극적인 반응을 보인 거야.<br />
            &#160;&#160; 평양의 후손들은 겐타로가 평양을 방문했던 루트를 역으로 되짚어 오는 거지. 얼마나 많은 세월이 걸렸는지 모르지만, 그들이 조상이라 말하는 힌터마이어가 레아와 함께 갔던 길을 오늘날 되짚어 오는 것이기도 해.<br />
            &#160;&#160; 그들을 음악회에 초청하는 일은, 쉽진 않았지만 그다지 어렵지도 않았어. 유상민의 친척들이 모두 재일조선인총연합회 소속이고, 한 때 그의 아버지가 조총련 상공회 간부였잖아. 그뿐 아니라 내가 대표로 있는 연합봉사단체가 일 년에 한 차례씩 조선으로 의료봉사를 다녀오거든.<br />
            &#160;&#160; 그러니 당초 그다지 어려울 일은 아니었어. 그래서 엄두를 낼 수 있었던 거고. 아이블링거 후손을 찾는 일과, 겐타로의 오리지널 악보를 확보하는 게 어려웠다면 어려웠지. 그러나 그것도 해결되었어. 그 일에 나서서 애쓴 사람이 누군지 알아?<br />
            &#160;&#160; 에밀리. 에밀리였어. 그녀가 적극 나섰던 거야. 독일을 떠나오던 날 그녀의 전화를 받지 않은 걸 후회했어. 도쿄에서 그녀와 세 차례 통화했어. 노이에 교회에서 꼭 보자고, 아이들처럼 들떠 약속했지.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다니. 얼마나 반갑고 다행스러운지 몰라.<br />
            &#160;&#160; 마지막 레퍼토리는 작곡가 이름을 비워두었어. 세 악장의 D장조 콘체르트. 아이블링거 후손들은 그 곡의 주인이 힌터마이어라 하고, 힌터마이어 후손은 아이블링거의 곡이라 하니 어쩔 수 없었어. 그들도 TNF의 내용을 알고 있으니까. 그 곡을 빼고 다른 곡을 넣을까도 싶었지만 누구도 그러길 원하지 않았어.<br />
            &#160;&#160; 아이블링거가 프라우엔 교회 청중 앞에서 성공적으로 초연했던 곡. 자신의 곡이 아니라며 음악의 은총을 고백했던 곡. 그때의 감동과 유감을 요즘 세대의 연주를 통해 느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 음악이 만든 이의 것이면서 듣는 이의 것이라면, 그날 연주될 D장조 콘체르트는 2백여 년을 격해 비로소 듣는 우리 모두의 감격어린 곡이 될 수 있지 않을까.<br />
            &#160;&#160; 그날 보자 이근호.<br />
            <br />
            
            &#160;&#160; 李 根 鎬. 하나코는 내 이름을 한자로 적었고, 똑바로 적힌 이름이 나는 한없이 낯설었다. 李根鎬와 이구노. 나는 문자일까 음성일까. 그 무엇도 아닌 것일까. 김상호, 겐타로, 토마스, 아이블링거, 힌터마이어, 레아, 하나코……. 나는 아는 이름들을 차례로 가만히 불러보았다. 멕바흐, 키르호프, 빌헬름, 슈타인도르프, 독일, 일본, 조선, 한국…….<br />
            <br />
            
            &#160;&#160; 아른슈타트는 늘 다니게 되는 괴테가도에서 약간 벗어나 있었다. 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를 오가며 멘델스존의 라이프치히와 바흐의 아이제나흐를 들른 적 있어도 아른슈타트는 처음이었다. 바이마르에서 아주 가까운 곳이었다.<br />
            &#160;&#160; 날은 춥지 않았고, 챙 넓은 모자 생각이 날 만큼 햇살이 눈부셨다.<br />
            &#160;&#160; 에르푸르트 역에서 내려 택시를 탔다. 서둘러 프랑크푸르트를 출발한다는 것이 늦고 말았다. 시간이 빠듯했다. 아른슈타트로 가자고 하자, 운전자가 물었다.<br />
            &#160;&#160; “아른슈타트 어딜 가십니까?” <br />
            &#160;&#160; 운전자는 오십대 초반 남자였다. 안경알이 너무 두껍다는 것이 약간 걱정스러웠다. 음성은 낮고 부드러웠다.<br />
            &#160;&#160; “노이에 교회에 갑니다.”<br />
            &#160;&#160;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br />
            &#160; &#160;교회에 당도할 동안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운전이 지나치게 신중했다. 조금 빨리 달릴 수 없을까요, 라고 말하지 못했다.<br />
            &#160; &#160;“벤더 오르간이 복원되었지요. 10년 전에.”<br />
            &#160; &#160;차가 멈추었을 때 남자가 말했다. 교회 내부를 아는 사람 같았다. 노이에 교회 오르간 연주를 좋아하거나 들어본 사람일거라 생각했다.<br />
            &#160; &#160;“푸가를 듣게 될 것 같아요.” 내가 말했다. “안드레아스 아이블링거의……. 혹시, 이름을 들어본 적 있나요?” <br />
            &#160;&#160; 남자는 말없이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였다.<br />
            &#160; &#160;택시는 발진음을 내며 멀어졌다. 연주 시작 전에 교회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br />
            &#160; &#160;시청 광장 남쪽 가장자리를 걸었다. 사람들도 드문드문 광장 가장자리를 걸었다. 중앙은 텅 비어 있었다. 겨울빛이 저 홀로 가득할 뿐이었다. 걸음을 멈추고 잠깐 광장 한가운데를 바라보았다.<br />
            &#160; &#160;등 뒤에서 바이올린 튜닝이 들려왔다. 간간히 첼로 소리도 들렸다. 나는 이미 노이에 교회에 당도해 있었다.<br />
            &#160; &#160;이내 문을 열고 들어설 곳.<br />
            &#160;&#160; 그곳은 어디이며 무엇일까.<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끝)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paper/pimg_729921106511804.jpg</url><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319248</link></image></item><item><author>문학웹진뿔</author><category>랩소디 인 베를린</category><title>[구효서] 랩소디 인 베를린 - 122회</title><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316609</link><pubDate>Tue, 05 Jan 2010 10: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din.co.kr/rhapsody/3316609</guid><description><![CDATA[<br />
<br />

&#160;<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랩소디 인 베를린 (122)<br />
            <br />
            <br />
            <br />
            
            
        
        
            <br />
            &#160; &#160;“이제 알 수 있을 것 같아요…….”<br />
            &#160;&#160; 하나코에게 다가가, 내가 말했다.<br />
            &#160; &#160;“겐타로는 평생을 하나코에게 가 닿고자 했던 게 아니에요. 하나코를 찾았던 게 아니라, 자신의 진심을 알아 줄 세상의 단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죠. 찾고 향한다는 의미는 그런 거였어요. 언제까지고 기다린다는 것. 이렇게 외로이. 한 사람만을.” <br />
            &#160;&#160; 하나코는 묘석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낮게 신음했다.<br />
            &#160; &#160;“이구노. 제발…….”<br />
            &#160;&#160; 나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하나코의 상념과 회한을 방해하지 말아야겠다는 것.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이미 앞서가는 하나코의 심중을 뒤늦게 정리한다는 건 주제넘으며 부질없는 일이었다.<br />
            &#160;&#160; 네들리쳐슈트라세 9번지는 끔찍하게 고요했고, 나무 그림자가 시나브로 짙어졌다. 엘베강 지류인 하펠 강과 호수들이 멀리서 번쩍였다.&#160;&#160;&#160;&#160;
            <br />
            <br />
            <br />
            
            
            
            *&#160;&#160;&#160;&#160;
            <br />
            <br />
            
            
            
            &#160;&#160; 바이마르 시청사 옆 G.Z.S.B.레스토랑. 그곳에서 처음 하나코를 만났다. 자그마한 체구, 온통 새하얀 머리카락, 가느다란 팔. 그리고 나를 깜짝 놀라게 했던 지독한 저음 허스키.<br />
            &#160;&#160; 레스토랑 창가에 앉아 있던 그녀가 나를 향해 손을 들었다. 흰 자켓 소매가 메트로놈처럼 흔들렸었다.<br />
            &#160;&#160; 그때와 똑같이, 하나코가 나를 향해 팔을 흔들었다. 공항 로비는 카트를 밀고 다니는 여행객들로 나른했다. 출국장의 줄이 부쩍 줄어들었다. 하나코 앞에는 겨우 서너 명뿐이었다. 하나코는 웃고 있었다. 나는 웃지 않았다. <br />
            &#160;&#160;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머물고 싶지 않았다. 머물고자 해도 머물러지지 않았다. 방향과 목적지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늘 떠나도 떠나지지 않았다. 머물 곳을 알지 못하는 한 떠나도 떠난 것이 아니었다. 내가 향하고 싶은 곳은 어디일까. 하나코? 하나코라는 곳? 나는 김상호가 되어 하나코를 바라보았다.<br />
            &#160;&#160; 김상호의 눈에서 하나코가 사라졌다.<br />
            &#160;&#160; 그녀는 출국장 유리문 안으로 들어섰다.<br />
            &#160;&#160; 그렇게 그녀는 또 하나의 경계를 넘었다.<br />
            &#160;&#160; 그녀가 향하는 곳은 과연 동쪽일까? 일본이라는 나라일까? 힌터마이어가 향했던 곳이 과연 동쪽이었을까? 조선이라는 나라였을까?<br />
            &#160;&#160; 김상호는 죽었고 하나코는 살아 있었다. 그것은 동쪽과 서쪽만큼이나 다른 방향이었다. 그러나 삶의 시작이 죽음의 시작이고, 삶의 끝이 죽음의 끝이라면, 방향이 달랐을 뿐 그들의 선택은 같은 것일 수 있었다. 그럴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김상호가 죽은 이유는 하나코가 사는 이유라는 것. 그게 서로 다르다 말한다는 건 삶과 죽음의 엄숙성을 철없이 비웃는 처사라는 것. 그리고 동쪽이든 서쪽이든 그들은 공히 갔다는 것. 하나코도 그렇게 말의 경계를 넘어, 떠나갔다는 것…….<br />
            &#160;&#160; 어쩌면 그 순간 지난여름을 기록하려는 맘이 생긴 건지도 모른다. 하나코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마자 그리움이 사무쳤으니까.<br />
            &#160;&#160; 봉사에 투신한 그녀의 생애는 맹목에 가까웠고, 허무를 삼킨 것처럼 언제나 담담했다. 어떤 절망도 그녀를 흔들지 못했다. 그런 그녀가 몹시 부러울수록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녀의 직관과 통찰을 따르기엔 내 예지가 보잘것없었고, 그녀의 익살을 닮기엔 내 성정이 터무니없이 옹색했다.<br />
            &#160;&#160; 사무치는 그리움이란 그런 것의 덩어리였다. 무엇보다 큰 부러움. 그만큼 큰 부끄러움. 기대고 응석받치고 싶은 유치. 떠나고 싶은 열망.<br />
            &#160;&#160; 하나코를 오래 그리워할, 나만의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결국 나는 지난여름의 기억을 적기 시작했다. 그녀를 그리워하는 동안 부끄러움이 적어지고, 언젠간 나도 건너고 넘고 떠날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면서.<br />
            &#160;&#160; 그리고 그 일을 오늘 마치려 한다. 쓰기는 여기서 그치지만 하나코를 향한 간절함은 사유로 이어져, 나 스스로 외로움을 견디고, 방향은 아무렇거나 그들과 같은 선택에 이르기를 소망하면서.<br />
            &#160;&#160; 하나코는 누구도 가두지 않았으며 자신도 갇히려 하지 않았다. 가두지 않음으로써 갇히지 않았다. 그러나 죄 짓지 않은 자였던 그녀도, 사랑하는 사람과 40년을 헤어져 살아야만 했고, 끝내 상봉하지 못한 아픔을 안고 돌아갔다. 하나코의 아픔은 분명 많은 이들을 치유하는 더 좋은 약이 될 터이지만, 헤어지던 날 나는 혼자 지레 서러워 오래 오래 그녀가 사라진 문을 바라보았다.<br />
            <br />
            
            &#160;<br />
            <br />
            
            &#160;<br />
            <br />
            
            에필로그&#160;<br />
            
            &#160;<br />
            <br />
            
            *&#160;&#160;
            <br />
            <br />
            
            &#160;&#160; 가을도 가고 겨울이 왔다. 뜨겁던 여름은 아릿한 추억을 흔적으로 남겼다. 하나코만 떠올리면 뭉클해지던 것도 뭉근하게 아물었다. 그녀를 다시 만난다면, 언제 어디서건 웃는 낯으로 맞을 수 있을 것 같았다.<br />
            &#160;&#160; 그리할 수 있게 되었다.<br />
            &#160;&#160; 그녀에게서 편지가 왔다.<br />
            &#160;&#160;
            &#160;&#160;&#160;
            &#160;
            
            
            계속)
            &#160;
            &#160;
            &nbsp;
            &nbsp;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paper/pimg_729921106511804.jpg</url><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316609</link></image></item><item><author>문학웹진뿔</author><category>랩소디 인 베를린</category><title>[구효서] 랩소디 인 베를린 - 121회</title><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314088</link><pubDate>Mon, 04 Jan 2010 11: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din.co.kr/rhapsody/3314088</guid><description><![CDATA[<br />
<br />

&#160;
<br />
<br />
<br />

    
        
            <br />
            <br />
            <br />
            랩소디 인 베를린 (121)<br />
            <br />
            <br />
            
            
        
        
            <br />
            <br />
            <br />
            &#160;
            &#160;&#160; 그러나 힌터마이어 없이는 쓰여질 수 없는 글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오랫동안 오갔을 대화 없이는. 힌터마이어와 레아, 모두의 글이었다. 그들은 함께였다.<br />
            &#160;&#160; 하나코가 향하려는 대륙의 동쪽 끝에, 그들은 적어도 225년 전에 당도했었다. 그곳에서 어떻게 살다 갔는지는 분명치 않다. 김상호에 따르면, 그들의 후손이라던 현지인들에게선 서양인의 유전요소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혈통이 아니라 하여 후손이 아니라고 할 순 없었다.<br />
            &#160;&#160; TNF 내용으로 짐작컨대, 그렇게 바이마르를 떠난 힌터마이어가 조선에서든 어디서든 노멀한 삶을 살았다고는 볼 수 없다. 쉼 없는 방랑 혹은 은둔을 생각할 수 있겠으나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며, 그러한 추측은 누구에게도 필요한 게 아니었다. 김상호에게도 하나코에게도.<br />
            &#160;&#160; 그들은 그렇게 살다 갔을 뿐이다. 이후의 삶은 적혀 있지 않았다. 어쩌면 그랬을지도 몰랐다. 말로 적을 수 없었거나, 말로 적을 필요가 없었거나.<br />
            &#160;&#160; 저를 데려가 주세요, 제발. 레아의 절박한 문장이 다시 어른거렸다.<br />
            &#160;&#160; 어디로? 일본으로? 하나코가 나를 돌아보며 물을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혼자 고개를 저었다. 내가 있고 싶은 곳은 아버지의 나라 한국도, 어머니의 나라 일본도 아니었다. 6년째 머물고 있는 독일도 아니었다. 나라가 아닌 어떤 곳. 그곳이 어디인지는 나도 알지 못했다. 다만 하나코와의 작별이 못내 아쉽고 안타까울 뿐이었다.<br />
            <br />
            
            &#160;<br />
            <br />
            
            *<br />
            <br />
            
            &#160;<br />
            <br />
            
            &#160;&#160; 포츠담 외곽 네들리쳐스트라세 9번지. 여섯 개 묘지 중 하나가 김상호 것이었다. 작고 오래된 교회 뒤뜰엔 야생 아이비가 시퍼렇게 자랐다.<br />
            &#160;&#160; 교회 뒤뜰은 넓은 잔디밭과 공동가옥 앞마당 쪽으로 이어졌다. 줄기가 희고 굵고 곧은, 수종을 알 수 없는 커다란 나무들이 의장대처럼 묵묵히 서 있었다.<br />
            &#160;&#160; 오후 다섯 시 햇살이 나무 그림자를 길게 늘였다. 푸른 이파리는 깨끗했고 가지는 정갈했다. 깎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양탄자 같은 잔디에서 풋내가 났다.<br />
            &#160;&#160; 여섯 개 묘지의 묘석 어디에도 우리가 찾는 이름은 없었다. 김상호도, 야마가와 겐타로도, 토마스 김도 보이지 않았다. 생몰연대도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단번에 그의 묘지를 찾았다. ‘내가 평생 가 닿고자 했던 곳.’ 정도의 명문(銘文)쯤 있지 않을까 싶었던 내 예상도 빗나갔다.<br />
            &#160;&#160; 거기엔 어느 나라 말도 없었다. 하나코라야 그 뜻을 대번에 알아차릴, 암호 같이 짧은 기호가 침묵처럼 버티고 있었다.&#160;
            5P 3/10&#160;
            &#160;&#160; 하나코는 그 앞에 얼어붙었다. <br />
            &#160;&#160; 격정을 삼킨다는 걸 알았다. 그녀의 울대가 몇 차례나 오르내리는 걸 보았다.<br />
            &#160;&#160; 세월이 가면, 누구도 김상호라는 사람의 무덤이란 사실을 알 수 없게 돼 있었다. 알기를 바라지 않았던 걸까. 오직 하나코만 알길 바랐던 걸까. 하나코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알 수 없기를. 하나코가 찾지 않는다면 침묵을 안고 끝내 침묵 속으로 사라지기를.<br />
            &#160;&#160; 하나코의 격정이 쉬 가라앉지 않은 이유였다. 묘석의 숫자는 40년 세월의 아픔과 외로움, 사랑과 이별의 진실, 그리움과 낙망의 순간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작고 수수한 대리석에 적힌, 단순 기호에 지나지 않는 것을 나는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br />
            &#160;&#160; 하나코의 격정이 가라앉길 기다렸다.<br />
            &#160;&#160; 나무 그림자가 조금 더 길어졌다. <br />
            &#160;&#160; 그때 내 휴대폰이 울렸다. 나는 조용히 뒤돌아서서 폴더를 열었다.<br />
            &#160;&#160; 에밀리였다. 격앙된 음성이 튀어나왔다. 아버지의 신상을 어디서 어떻게 알게 되었느냐고, 다짜고짜 물었다. 그녀는 경황이 없어 보였다. 뭔가를 알게 된 게 분명했다. 그녀가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이 그녀를 어떻게 변화시킬까. 알 수 없었으나 사실은 사실이었다. 그녀가 어떻게 변하든 사실은 달라질 수 없었다.<br />
            &#160;&#160; 나는 하나코를 바라보았다. 묘석에 눈길을 둔 채 하나코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br />
            &#160;&#160;“받지…않으시겠답니다.”<br />
            &#160; &#160;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에밀리는 울먹였다. 아버지에 관해 알고 있는 것을, 아는 대로 말해달라고 했다.<br />
            &#160; &#160;“에밀리는 이미 알게 되었어요. 우리가 알고 있는 건 그 이상이 아닐 겁니다. 어떤 사실이든 평생을 모를 수 있고 알 수도 있습니다. 에밀리가 감당해야할 일입니다. 하나코는 다만 토마스를 이해하고 싶었던 것뿐이니까요. 저녁에 하나코는 독일을 떠납니다.”<br />
            &#160;&#160; 이렇게 아프게 하고 가버리면 어떡하냐고 에밀리는 말했다. 나는 말했다. 누구나 아프다. 누가 더 아프고 덜 아픈가를 따진다는 건 의미 없는 일인 것 같다고.<br />
            &#160; &#160;에밀리의 아픔은 에밀리 자신이 초래한 게 아니었다. 그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폴더를 닫았다. 아픔이란 그런 거였다. 김상호에게도 하나코에게도. 빌헬름에게도.<br />
            <br />
            <br />
            &#160;
            <br />
            <br />
            <br />
            계속)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paper/pimg_729921106511804.jpg</url><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314088</link></image></item><item><author>문학웹진뿔</author><category>랩소디 인 베를린</category><title>[구효서] 랩소디 인 베를린 - 120회</title><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307683</link><pubDate>Fri, 01 Jan 2010 11: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din.co.kr/rhapsody/3307683</guid><description><![CDATA[&#160;
&#160;<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랩소디 인 베를린 (120)<br />
            <br />
            <br />
            <br />
            
            
        
        
            <br />
            <br />
            &#160;
            *&#160;<br />
            <br />
            
            &#160; <o:p></o:p><br />
            <br />
            
            &#160;&#160; ∠<br />
            &#160;&#160; 힌터마이어는 짧게 쉬고 오래 걸었다. 날은 춥거나 춥지 않았다. 걸을수록 등짐의 무게가 가벼워졌다. 상념을 덜어내듯 길 위에 발자국을 남겼다. 지평선 끝 아득한 소실점이 어느새 눈앞에 닥쳐 있곤 했다.<br />
            &#160;&#160; 황량한 자갈 언덕을 넘고 호수를 돌았으며 강과 산을 지났다. 끝은 매번 처음이었고 머지않아 처음은 끝이 되었다. 힌터마이어는 그 위에서 걷고 걸었을 뿐이다. 그밖에 다른 일은 없었다.<br />
            &#160;&#160; 길과 길 아닌 길을 걸었다. 붉은 흙먼지가 풀풀 일었다. 어깨는 차가웠고 발바닥은 불을 밟듯 뜨거웠다. 현존하는 거라곤 거친 호흡과 화끈거리는 발목뿐이었다. 때로는 우마차를 빌려 탔고 길벗을 만났다.<br />
            &#160;&#160; 말이 필요 없었다. 이레째 되던 날부터 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말없이 서 있으면 우마차가 절로 멈추었고, 종일 길벗과 걸어도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침묵은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하늘과 바람과 구름이 몸 안으로 들어왔다가 몸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러면 그만이었다.<br />
            &#160;&#160; 몸이 고달플수록 생각은 단순하고 명료해졌다. 풀 한포기 없는 지평선을 넘을 때는 벌거벗은 듯 가벼웠다. 또 장차 어떤 나라 어떤 사람들을 만날지 알 수 없었으나, 어떤 나라 어떤 사람도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았다. 말이 달라 말할 수 없어도 통하지 않는 것은 없었다.<br />
            &#160; 때론 말의 등에 올라타 졸고, 때론 헤엄쳐 물을 건넜다. 쉬지 않고 걸으면 걷는다는 사실조차 잊혔다. 침묵과 적막의 핵심에서 자주 정체모를 희열과 만났다. 한나절 품을 팔거나, 밀전병과 찌든 과일 따위를 구걸하며 아침을 맞고 저녁을 맞았다.<br />
            &#160;&#160; 산더미 같은 건초를 옮겨주고 하룻밤 마구간 신세를 졌다. 오히려 말이 잠들지 못했다. 말이 뿜는 콧김 소리에 자주 잠이 깼다. 주인집 하인이 가져다준 밀랍덩어리를 말뚝 위에 얹었다. 그것에 박힌 심지에 불을 당겼다. 겁먹은 말의 눈과 마주쳤다.<br />
            &#160;&#160; 힌터마이어는 말을 향해 오랫동안 웃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정말로 오랫동안이었다. 그렇게 밤을 새워도 좋다고 생각했다. 어딘지도 모를 누군가의 마구간. 한밤중에 깨어 말과 마주하고 웃는 일. 누구라도 그런 일을 평소에 꿈꾸거나 예상할 순 없는 거였다. 힌터마이어도 마찬가지였다.<br />
            &#160;&#160; 그러나 힌터마이어는 마음을 한데 모아 오래오래 웃어보였다. 자신에게 주어진 유일하고도 마지막 일이란 듯. 잠자는 일 말곤 딱히 할 일도 없었다. 말이 자야 잘 수 있었다. 정성을 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힌터마이어는 삶의 살갗을 벗어갔다.<br />
            &#160;&#160; 말이 조용해졌다. 옷에 묻은 먼지와 검불을 털었으나 말은 놀라지 않았다. 새로 묶어 베개를 베기 위해, 헐거워진 등짐을 풀었다. 등짐 안에는 옷과 신발, 모자와 단검, 가죽행전과 작은 반짇고리가 있었다. 길에서 얻은 물통, 곡식봉투와 육포, 밀의 속겨로 만든 비누와 수건 같은 것들.<br />
            &#160;&#160; 그리고 그것은…단검 칼집 안에 들어 있었다.<br />
            &#160;&#160; 그때까지 단검을 사용할 일이 없었다. 나무를 깎거나 육류 따위를 닦달하는 데 필요한 칼이었다.<br />
            &#160;&#160; 언젠간 날을 벼려 수염과 손톱을 깎을지도 몰랐다.<br />
            &#160;&#160; 손잡이를 당겨봤을 뿐이었다.<br />
            &#160;&#160; 칼날과 함께 따라 나오는 것이 있었다.<br />
            &#160;&#160; 세 번 접힌 종이였다.<br />
            &#160;&#160; 말이 한차례 푸르르 콧소리를 냈으나 이내 조용해졌다.<br />
            &#160;&#160; 힌터마이어는 접힌 종이를 가만히 펼쳤다.<br />
            &#160;&#160; 그리고 한 줄뿐인, 짧은 글을 읽었다.<br />
            &#160;&#160; 미세한 바람에도 작은 밀랍불꽃은 흔들렸다. 힌터마이어의 시선은 어느새 마구간 저 안 깊은 어둠을 향하고 있었으나,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았다.<br />
            &#160;&#160; 종이를 쥔 그의 손도 움직이지 않았다. 쉽게 움직일 것 같지 않았다. 종이 끝만 약간 나풀거리는 듯했고, 밀랍불꽃이 글자들을 비추었다. 종이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br />
            <br />
            <br />
            
            저를 데려가 주세요, 제발.<br />
            -레아.&#160;
            &nbsp;
            &#160;<br />
            <br />
            <br />
            
            *&#160;<br />
            
            <br />
            
            &#160;&#160; 저를 데려가 주세요, 제발.<br />
            &#160;&#160; 레아의 짧은 문장이 어른거렸다.<br />
            &#160;&#160; 문 저쪽으로, 하나코는 사라지려 했다. 테겔 공항 출국장. 길게 늘어섰던 줄이 점점 짧아졌다.<br />
            &#160;&#160; 하나코가 떠나고 나면 그녀가 몹시 그리울 거라는 자기암시가, 속절없이 왈칵 밀어닥쳤다. 베를린에서 그녀와 함께 했던 순간들이 문득 문득 애틋해졌다.<br />
            &#160;&#160; TNF는, 레아의 쪽지에서 끝났다. 뒤의 사정은 알 수 없었다. 쓰기를 중단했거나, 썼으되 유실됐는지도. 아니면 그것으로 끝인지도.<br />
            &#160;&#160; 하나코는 열 시간 남짓 뒤에 대륙 동쪽 끝에 도달할 터였다. 그들은 그곳까지 도달하는 데 얼마큼의 세월이 걸렸을까. 마지막까지 힌터마이어와 레아가 함께였던 건 분명했다.<br />
            &#160;&#160; TNF는 요한 힌터마이어의 글이 아니었으니까. 표지와 본문에 적힌 필체 모두 레아의 것이었다. 시작점마다 힘을 준 대문자 첫 획이 히브리 문자 같다는 것, 모든 외w가 거꾸로 된 엠m이라는 것이 그랬다.<br />
            <br />
            <br />
            <br />
            <br />
            <br />
            계속)
            &nbsp;
            
        
    

<br />
<br />
<br />
<br />
<br />
<br />
<br />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paper/pimg_729921106509777.jpg</url><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307683</link></image></item><item><author>문학웹진뿔</author><category>랩소디 인 베를린</category><title>[구효서] 랩소디 인 베를린 - 119회</title><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305490</link><pubDate>Thu, 31 Dec 2009 11: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din.co.kr/rhapsody/3305490</guid><description><![CDATA[&#160;<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랩소디 인 베를린 (119)<br />
            <br />
            <br />
            <br />
            <br />
            
            
        
        
            <br />
            &#160;&#160; 남자는 멀거니 눈을 뜨고 하나코를 바라보았다.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br />
            &#160;&#160; “그가 어째서 조국이란 허울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지, 언제 그리했는지는 알 수 있을 것 같소. 그건 하나코도 짐작할 거요. 음악과 삶을 동시에 벗어던진 까닭도 마찬가지의 추론이 가능할 텐데, 그것이 하필 지금인지, 그 최근의 이유와 계기가 무엇이었는지는, 하나코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바요. 우리가 모르는 건 그것이고, 알고 싶은 게 그것이지.”<br />
            &#160; &#160;“당신도 모른단 말이군.”<br />
            &#160; &#160;“토마스는 내가 모를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던 것 같소. 아무래도 키르호프 씨 죽음과 관련되지 않았을까. 키르호프 씨가 죽은 뒤 사람들이 그에게 몰려들어 귀찮게 물어댔었으니까. 키르호프 씨와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다던 사람이 빌헬름…토마스와 막역한 사이였지. 빌헬름 부폰. 헌데 그마저 사라졌다 하니 토마스에게 달려들어 물을 수밖에. 나로서도 답답하오. 토마스는 지금 말이 없는 세상에 있소. 내가 정녕 그의 친구였는지 젠장, 부끄러울 뿐이오.”<br />
            &#160; &#160;“경찰, 검찰, 기자……. 토마스에게 뭘 물으려면 그들도 어떤 근거를 들이대야 하지 않았을까요?”<br />
            &#160; &#160;“그랬겠지만 나는 모르오. 그 일에 대해서라면 토마스는 나에게도 함구했으니까.” <br />
            &#160;&#160; “그 와중에 뭔가를 알게 됐을지도 모르겠군요, 토마스가.”<br />
            &#160;&#160; “하여튼 입을 열지 않았어. 입을 다물고 있었다기 보단 뭐랄까, 아주 깊은 우물 속에 혼자 들어가 웅크리고 있는 것 같았지. 그곳에서 그는 TNF를 읽었을 뿐이오.”<br />
            &#160;&#160; “빌헬름……. 그에 대해 좀 알아요?”<br />
            &#160;&#160; 하나코가 물었다.<br />
            &#160;&#160; “내가?”<br />
            &#160;&#160; “으흥.”<br />
            &#160;&#160; “그대는?” <br />
            &#160;&#160; “저녁 강에서 처음 만났다. 슈프레 강 에프라임 궁전 앞. 우두커니 서 있는데 그도 우두커니 서 있었다. 벤치에 앉았더니 그도 벤치에 앉았다. 그래서 둘은 친구가 되었다. 끝.”<br />
            &#160;&#160; “그게 전부요?” <br />
            &#160;&#160; “전부에요.” <br />
            &#160;&#160; “나도 그 보다 더 아는 건 없소. 빌헬름이 열 살 적 얘기를 했다는 것밖엔.”<br />
            &#160;&#160;&#160;“열 살 적?”<br />
            &#160; &#160;“열 살 적.”<br />
            &#160; &#160;“무슨 얘기길래?” <br />
            &#160;&#160; “무슨 얘긴가를 하려다 맙디다. 그냥 한 번 한숨 쉬고, 누구나 한번쯤은 어려운 일을 당하죠. 뭐 그러고 말아.”<br />
            &#160; &#160;“그것으로 끝이었어요?” <br />
            &#160;&#160; “캐묻지 않는다는 게 내 유일한 신조.”<br />
            &#160;&#160; “그래도 좀 물어 보지.”<br />
            &#160; &#160;“물어도 대답할 거 같지 않았으니까. 흐흐.”<br />
            &#160; &#160;“언제였어요, 그 때가?” <br />
            &#160;&#160; “5,6년 전쯤.” <br />
            &#160;&#160; “저녁 슈프레 강 에프라임 궁전 앞. 함께 우두커니 섰다가 함께 벤치에 앉았다. 열 살 적 얘기를 들었다. 친구가 되었다. 끝이네요.”<br />
            &#160;&#160; “끝이야. 우린 그것밖엔 모르는 거지.”<br />
            &#160; &#160;“토마스는 지금 말이 없는 세상에 있고요.”<br />
            &#160; &#160;“빌헬름은 종적을 감추었어.”<br />
            &#160; &#160;“토마스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다는 느낌은 안 들던가요?”<br />
            &#160; &#160;남자는 얼른 대답하지 못했다. 하나코 말뜻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것 같았다.<br />
            &#160; &#160;“빌헬름이?”<br />
            &#160; &#160;그가 되물었다.<br />
            &#160; &#160;“물론 빌헬름이.” <br />
            &#160;&#160; “의도적으로? 왜? 무슨?” <br />
            &#160;&#160; 남자는 하나코의 의중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알아차리고 있던 건 나였다.<br />
            &#160; &#160;빌헬름 부폰, 이탈리아계 독일인, 열 살 적 겪었다던 어려운 일, 의도적 접근, 키르호프 씨 죽음 뒤의 행방불명. 그 위에 에밀리에게 물었던 하나코의 질문이 겹쳤다. 1943년에서 1945년까지 당신의 아버지는 어디에 있었나……. 1944년을 말하는 거였다. 32막사의 뱀. 그리고 베를린 초역 울란트가 파울라너파사지 지하 주점의, 트럼펫과 드럼에 능했던 이태리 투라티 출신의 유대인 악사. 그 아들의 진술. 슈타인도르프의 능청.<br />
            &#160; &#160;빌헬름의 접근이 의도적이지 않았느냐는 하나코의 질문은 남자가 아닌, 김상호를 향한 것이었다. 김상호가 없었으므로, 그냥 허공을 향해.<br />
            &#160; &#160;하나코는 답변을 기다리는 듯했다. 빌헬름이 키르호프에게 접근하기 위해 키르호프와 절친했던 김상호를 징검돌로 삼았을 거라는 허공의 대답을. 김상호 음악에 대한 키르호프의 열광이 32막사의 연장에 지나지 않았다는 허공의 수군거림을. 음악과 우정이 음악과 우정이 아니었다는, 그리하여 모든 삶이 말의 껍질을 벗고 본연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허공의 속삭임을. 허공이 쏟아내는 걸 어쩌면 김상호도 듣기만 했을, 말 아닌 말들을. 고분 같은 방에 주검처럼 누워 남자 또한 듣고자 했을 그 응답을.<br />
            &#160; &#160;칩거하는 동안 김상호가 대화를 나누었던 유일한 상대는 허공이었을 것이다. 키르호프가 죽고 김상호 자신이 죽기까지의 기간 동안. 뭔가 밝혀진 게 있다면 그 짧은 시기였을 것이다. 그만큼 전격적이었을 것이며 충격 또한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때 그의 손에 들려 있던 것이 TNF였다.<br />
            &#160; &#160;“이제…겐타로 묘지에 가자.”<br />
            &#160; &#160;남자의 집을 나서며 하나코가 말했다.<br />
            &#160; &#160;“안 갔던 거예요, 아직?” <br />
            &#160;&#160; 나는 놀랐다. 독일에 오자마자 그의 묘지부터 찾았을 거라는 내 짐작은 당초에 틀린 거였다.<br />
            &#160; &#160;“죽은 이유도 모르고 어떻게 묘지부터 찾겠어?”<br />
            &#160; &#160;그녀가 말했다.<br />
            &#160;&#160; “그럼 이젠 알게 됐다는 건가요?”<br />
            &#160; &#160;하나코는 말없이 앞서 걸었다.<br />
            &#160; &#160;나는 그녀 뒤를, 휘적휘적 따라 걸었다.<br />
            <br />
            <br />
            <br />
            <br />
            <br />
            계속)<br />
            
            
        
    

<br />
<br />
<br />
<br />
<br />
<br />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paper/pimg_729921106509777.jpg</url><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305490</link></image></item><item><author>문학웹진뿔</author><category>랩소디 인 베를린</category><title>[구효서] 랩소디 인 베를린 - 118회</title><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302783</link><pubDate>Wed, 30 Dec 2009 11: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din.co.kr/rhapsody/3302783</guid><description><![CDATA[<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랩소디 인 베를린 (118)<br />
            <br />
            <br />
            <br />
            
            
        
        
            <br />
            <br />
            &#160;<br />
            <br />
            
            &#160;&#160; “제대로 듣지 못했다니까. 아직은 모든 게 짐작일 뿐이야.”<br />
            &#160; &#160;“그래도…….”<br />
            &#160;&#160; “내 짐작일 뿐이라는 걸 인정하겠다면. 천지신명께 맹세하겠다면.”<br />
            &#160;&#160; “맹세해요. 어디까지나 당신의 짐작일 뿐이다! 천지신명께. 오방신장께.”<br />
            &#160;&#160; “오방신장?”<br />
            &#160;&#160; “하여튼.”<br />
            &#160;&#160; “짐작일 뿐인 걸 들어서 뭣하게?” <br />
            &#160;&#160; “참고.”<br />
            &#160;&#160; “참고?”<br />
            &#160;&#160; “응, 참고.”<br />
            &#160;&#160; 남자는 하나코를 응시했다. 오랫동안 말없이 바라보았다. 하나코 역시 퇴마사처럼, 눈길을 모아 남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처음 봤던 날, 약봉지를 두고 두 사람 사이에 오갔던 묘한 수하(誰何)가 떠올랐다.<br />
            &#160;&#160; “삶의 끝이 죽음이라 생각지 않은 것 같아, 토마스는.”<br />
            &#160;&#160; 남자가 입을 열었다.&#160;
            <br />
            <br />
            
            *<br />
            <br />
            <br />
            <br />
            
            &#160;&#160; 밖이 낮인지 밤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방 천장 중앙에서 흘러내린 외줄기 전깃줄. 그 끝에 매달린 백열전구가 어둔 궁륭을 밝히는 유일한 빛이었다.<br />
            &#160;&#160; 현세의 시공에서 아득히 벗어난 작은 세계, 혹은 별. 그 밖은 어둠이라 할 수 없는 어둠과 세상이라 할 수 없는 세상이었다. 남자와 하나코와 나는, 아닌게아니라 이승에 있지 않았다.<br />
            &#160;&#160; “삶의 시작이 죽음을 향한 시작이라면, 태어날 때부터 죽음은 시작된 것이고, 삶은 곧 죽음을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소. 그러니 삶이 끝나면 죽음도 끝나는 것이지. 삶 뒤에 죽음이 오는 게 아니라, 삶 뒤엔 죽음도 없다는 말.”<br />
            &#160;&#160; 베를린 시인이라 했던가. 남자의 말을 통역하는 데 애를 먹었다. 하나코에게 전하는 건 더 어려웠다.<br />
            &#160;&#160; “말장난 같아.”<br />
            &#160;&#160; 하나코는 즉각적이었다. 하나코다운 반응이었다.<br />
            &#160;&#160; “그래서 말이라 했소. 삶 뒤엔 죽음도 없다는 말.”<br />
            &#160;&#160; “말일 뿐이다?”<br />
            &#160;&#160; “뭔가를 본 게로군.”<br />
            &#160;&#160; “TNF. 이 친구가 떠듬떠듬 읽어주고 있지. 요한 힌터마이어의 &lt;토카타 운트 푸가&gt;.”<br />
            &#160;&#160; “그랬군. 토마스는 그걸 보러 평양엘 갔고, 그 때문에 한국에서 죽다 살아났지. 죽다 살아난 거야. 베를린으로 돌아온 뒤 그는 조국도 민족도 결국 말일 뿐이라며 음악에 전념했소. 예술가로서 자신에게 남은 조국은 이제, 음악, 그것뿐이라며. 멋진 말이었지. 정말 많은 곡을 열심히 만들었소. 실은 미친듯이였지.”<br />
            &#160;&#160; “그러던 그가 죽었어요.”<br />
            &#160;&#160; 하나코가 말했다.<br />
            &#160;&#160; “그랬소. 오랫동안 처박아 놓았던 TNF를, 죽기 전 얼마 동안 몰래 꺼내 읽었지.”<br />
            &#160;&#160; 남자가 일어섰다.<br />
            &#160;&#160; 방 한 귀퉁이의 종이 쓰레기더미로 비틀비틀 다가갔다. 그곳에서 뭔가를 끄집어냈다. 그리고 하나코 앞에 툭 던졌다.<br />
            &#160;&#160; TNF였다.<br />
            &#160;&#160; 내가 갖고 있는 것과 같은 복사본이었다. 방바닥에 떨어진 그것을, 하나코는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br />
            &#160; &#160;“그가……마지막으로 읽던 거겠군.”<br />
            &#160;&#160; “그리고 그것을 지금은 내가 읽고 있지. 말하고 글 쓰는 내가 보고 있는 거요. 헷갈릴 수밖에. 바보가 되지 않을 수 없어. 이거……문학이잖아.”<br />
            &#160;&#160; “문학일 테죠. 시처럼.”<br />
            &#160;&#160; “음악처럼. 예술이라고들 하니까.”<br />
            &#160;&#160; “하여튼 문학이든 음악이든.”<br />
            &#160;&#160; “모든 게 내 짐작일 뿐이라는 거, 행여 잊은 건 아니겠지?”<br />
            &#160;&#160; “물론.”<br />
            &#160;&#160; “토마스는 조국뿐 아니라, 종당엔 음악마저도 음악일 뿐이라 여겼던 것 같소. 말이라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는 거지. 그러면 말이오…….”<br />
            &#160; &#160;남자는 잠시 멈추었다가 조심스레 입을 뗐다.<br />
            &#160;&#160; “인생도 그러하지 않겠소? 삶도 죽음도 말일 뿐이다.”<br />
            &#160;&#160; “그래서 삶을 디뎠던 발을 슬쩍 죽음 쪽으로 옮겼을 뿐이다? TNF에 쓰여 있는 것처럼?”<br />
            &#160; &#160;하나코가 물었다. <br />
            &#160;&#160; “그런 셈일 테지만, 나는 다르게 표현하려오. 이해라는 말이 어울릴까. 어쨌든 뭐 다 말일 뿐이긴 하지만……. 나는 그걸 헐벗는다 하오. 삶이라는 말을 벗는 거지. 삶이라는 말을 벗으면 죽음이라는 말도 벗는 거니까, 거기엔 어떤 이동 따위도 없소.”<br />
            &#160; &#160;“그것도 TNF 어딘가에 있던 말 같은데…어려워.”<br />
            &#160;&#160; 통역도 어려웠다.<br />
            &#160;&#160; “그렇소. TNF는 음악을 말하고 있지만, 그대로 문학을 말하는 거잖소. 음이 아니라 말로 작업하는 시인이 이걸 읽고 있는 거요. 음악 하던 친구는 음악을 벗고 삶을 벗고 훌쩍 가버렸소. 내가 지금 어떤 혼란, 어떤 바보 상태에 빠져 있는지 아시겠구려. 어쩌면 진작 바보가 됐어야 했던 거 아닐까.”<br />
            &#160;&#160; “훌쩍 가버렸어……. 그런데 어째서 지금이었을까요. 40년 전도 아니고, 20년 전도 아닌 지금.”<br />
            <br />
            <br />
            <br />
            <br />
            계속)
            
        
    

<br />
<br />
<br />
<br />
<br />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paper/pimg_729921106509777.jpg</url><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302783</link></image></item><item><author>문학웹진뿔</author><category>랩소디 인 베를린</category><title>[구효서] 랩소디 인 베를린 - 117회</title><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299924</link><pubDate>Tue, 29 Dec 2009 10: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din.co.kr/rhapsody/3299924</guid><description><![CDATA[&#160;
&#160;<br />
<br />
&#160;<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랩소디 인 베를린 (117)<br />
            <br />
            <br />
            
            
        
        
            <br />
            <br />
            <br />
            &#160;<br />
            <br />
            <br />
            
            
            &#160;&#160;&#160;이 참회와 고해의 의지, 그것의 주인은 제가 아닙니다. 음악이며, 여러분입니다.<br />
            &#160; &#160;아이블링거가 말을 이었다.<br />
            &#160; &#160;저는 이번에 생애 처음 음악의 크나큰 은총을 확인했습니다. 앞으로 제 삶이 온통 고난뿐일지라도 충분히 만족하여 후회 없을 벅찬 은총입니다. 이 고백을 감히 부끄러워하지 않게 된 것도 바로 그러한 까닭에서입니다. 여러분의 눈물겨운 성원이 없었다면 삿된 욕심에서 저는 영원히 헤어나지 못했을 것이며, 음악의 영성이 없었다면 주인 몰래 연주된 토카타와 D장조 콘체르트의 아름다움은 결국 오명의 전례로만 남게 될 것이었습니다.<br />
            &#160; &#160;암머바흐 백작이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나머지 사람들도 하나 둘 자리에 앉았다. 민망하고 침통해 했으나, 엄숙하고 정중한 뉘우침을 향해 낯을 붉히지 않았다. 안타까이, 연주대의 아이블링거를 바라볼 뿐이었다.<br />
            &#160; &#160;곡의 실제 주인은…제 비서인 요한 힌터마이어입니다.<br />
            &#160; &#160;탄성이 새어나왔다. 드레스덴에서도 낯설지 않은 이름이었다.<br />
            &#160; &#160;곧 드레스덴에 당도할 것입니다. 그에게 사죄하기 전 여러분 앞에 고개 숙여 삼가 용서를 구합니다. 죄값을 면하고자 구하는 용서가 아닙니다. 용서받지 못하여 평생 주점 악사로 살게 되더라도 음악의 은총을 한순간도 잊지 않겠다는 맹서입니다. 그런 의미의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br />
            &#160; &#160;아이블링거는 고개를 떨구었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br />
            &#160; &#160;레아는 그의 흩어진 머리카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음악의 영성이 다시 그의 고개를 치켜세우지 않는다면 언제까지고 숙이고 있을.<br />
            &#160;&#160; 그리고 레아는 알고 있었다. 힌터마이어가 드레스덴에 올 일은 없을 거라는 것을.<br />
            <br />
            <br />
            
            &#160;
            *&#160;<br />
            <br />
            
            &#160; &#160;“어째서 처음엔 토마스를 모른다고 했죠?” <br />
            &#160;&#160; 하나코가 물었다.<br />
            &#160; &#160;“이런 음악을 했다…고 말했을 텐데.”<br />
            &#160; &#160;누운 채로, 남자가 다시 한 번 자신의 방을 휘둘러보았다.<br />
            &#160; &#160;“그랬을 뿐. 아는 사이라고 말하지 않았잖아요.”<br />
            &#160; &#160;“지겹고 귀찮고 가당찮아서 말이야. 허구한 날 찾아와 토마스에 대해 묻는 작자들. 키르호프인지 뭔지, 그 자를 누가 죽였냐, 실은 그것에만 중뿔난 사람들에게 내가 뭣 빨러 대답을 해. 사람들이라면 다 지겨워. 당신네들은 독일을 몰라. 독일 사람들.”<br />
            &#160; &#160;“당신은 독일인 아닌가?”<br />
            &#160; &#160;“미치겠네…….”<br />
            &#160; &#160;“아니라고?”<br />
            &#160; &#160;“저렇다니까…….”<br />
            &#160; &#160;“그러면?” <br />
            &#160;&#160; “보다시피 난 터키인이야.”<br />
            &#160; &#160;“보다시피라니?” <br />
            &#160;&#160; “동양에서, 그것도 저승에서 온 양반들이라 조금은 알 줄 알았는데 유감이군. 독일인들은 한눈에 척 알아보지. 제기랄!”<br />
            &#160;&#160; “우리가 동양에서, 아주 끝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걸 척 알아봤을 거면서, 어째서 우릴 독일인 대하듯 했을까?”<br />
            &#160; &#160;“말했잖소. 다 귀찮다고. 쓸데없는 짓이야.” <br />
            &#160;&#160; “토마스가 왜 죽었는지 궁금해요. 내 관심은 키르호프 씨의 죽음 따위가 아니야.”<br />
            &#160; &#160;하나코 목소리가 한껏 낮아졌다.<br />
            &#160; &#160;“그거나 저거나…….”<br />
            &#160; &#160;“그거나 저거나가 아니에요.”<br />
            &#160; &#160;“그거나 저거나야.”<br />
            &#160; &#160;“나는 40년 동안, 정말 이유도 모른 채,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 있어야 했어. 40년 동안이야.”<br />
            &#160; &#160;하나코는 에밀리의 이야기를 떠올리는 듯했고, 나는 베를린 음대 앞 카페에서 들었던 하나코의 서늘하고 음울한 목소리를 떠올렸다.<br />
            &#160; &#160;“…….”<br />
            &#160; &#160;남자가 소리 없이 상체를 일으켰다.<br />
            &#160; &#160;“소식을 들었을 때는 이미 죽은 뒤였다구.”<br />
            &#160; &#160;“하나…코? 맞지? 하나코.”<br />
            &#160; &#160;남자가 신음 같은 걸 흘렸다.<br />
            &#160; &#160;“정말 내가 미치겠네.”<br />
            &#160; &#160;하나코가 천장을 쳐다보았다.<br />
            &#160; &#160;“하나코였군.”<br />
            &#160; &#160;“그렇다니까……. 당신, 바보 아냐?” <br />
            &#160;&#160;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나 요즘 엉망이거든. 토마스가 간 뒤로 더.”<br />
            &#160; &#160;“하긴, 이런 곳에 사니까. 토마스가 살다 간 곳이잖아. 굳이 이곳에 들어온 이유는 뭐예요?”<br />
            &#160; &#160;“그가 허공에 토해낸 것들……. 그것들로 시를 쓰려고. 이곳의 허공이 기억하는, 허공만 은밀하게 기억하는 그의 내밀한 불안과 번뇌. 이곳에 누워 있으면 그것이 들려.”<br />
            &#160; &#160;“그걸 듣자.”<br />
            &#160; &#160;하나코가 말했고, 남자는 망설였다.<br />
            &#160;&#160; “제대로 듣지 못했어. 아직은 헷갈릴 뿐이야. 그래서 바보가 된 거지.”<br />
            &#160; &#160;“그래도 듣자.” <br />
            &#160;&#160; 하나코는 완강했다.&#160;
            &#160;
            <br />
            <br />
            
            계속)<br />
            <br />
            
        
    

<br />
<br />
<br />
<br />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paper/pimg_729921106509777.jpg</url><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299924</link></image></item><item><author>문학웹진뿔</author><category>랩소디 인 베를린</category><title>[구효서] 랩소디 인 베를린 - 116회</title><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297228</link><pubDate>Mon, 28 Dec 2009 10: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din.co.kr/rhapsody/3297228</guid><description><![CDATA[&#160;
&#160;<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랩소디 인 베를린 (116)<br />
            <br />
            
            
        
        
            <br />
            <br />
            &#160;<br />
            
            &#160;&#160; “내 이럴 줄 알았지. 꼭 이럴 줄 알았어. 사나 죽으나, 뵈는 세상은 똑같아. 너무 똑같잖아.”<br />
            &#160;&#160; 남자가 방 안을 휘 둘러보았다.<br />
            &#160;&#160; “하지만 달라. 저승에선 바른대로 말해야 해요.”<br />
            &#160;&#160; 하나코가 핸드백에서 무언가를 꺼내 남자 앞으로 던졌다. 약이 아니라, 시집이었다.<br />
            &#160;&#160; “염라대왕 장부인가?”<br />
            &#160;&#160; “&lt;삶이여 헐벗으라!&gt;더군. 더 이상 토마스를 모른다고 할 순 없겠죠?”<br />
            &#160;&#160; “토마스…….”<br />
            &#160;&#160; “그래요. 토마스 김.” 내가 나섰다. “토마스 곡명과 당신 시집 제목이 같잖아요.”<br />
            &#160;&#160; “내 시가 먼저지. 그 친구가 내 시로 곡을 만든 거야. 들어봤소? 그럴싸하다니까, 그 곡.”<br />
            <br />
            &#160;
            *<br />
            &#160;
            <br />
            
            &#160; <o:p></o:p><br />
            <br />
            
            &#160;&#160; ∠<br />
            &#160;&#160; 아이블링거의 풍성한 소매가 허공을 휘저었다. 단원들은 거의 그를 쳐다보지 못했다. 악보와 악기 사이를 숨 막히게 오가며 그들의 눈은 터질 듯 부풀었다.<br />
            &#160;&#160; D장조 콘체르트 막바지는 저절로 흐르며 휘몰아쳤다. 객석의 호응과 악단의 열연, 아이블링거의 도취가 한 덩어리 되어 가파른 산기슭을 구르고 대양을 향해 뻗은 해각(海角)으로 빠르게 미끄러져 나갔다.<br />
            &#160;&#160; 회중석 관중들은 곧 앞으로 달려 나갈 것처럼 상체를 굽히고 엉덩이를 들었다. 대미(大尾)에 다다랐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누구보다 먼저 완전종지(完全終止)를 알아차리고 가장 빨리 박수를 치려 아이블링거 동작을 주시했다.<br />
            &#160;&#160; 마침내 아이블링거의 두 팔이, 고난과 영광의 긴 행군을 마친, 그리하여 자랑스러운 피로로 무거워진 장수의 그것처럼 휘청거렸다. 청중은 그 찰나를 놓치지 않았다. 아이블링거의 치켜 올렸던 팔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교회 안은 터질 듯한 박수로 가득 찼다.<br />
            &#160;&#160; 그것은 분명 아이블링거를 향한 갈채였으나, 새로운 선율의 숨결에 맘껏 응답할 수 있었던 청중 자신들의 아름다운 영예를 위한 환호였다.<br />
            &#160;&#160; 이틀 간 경쟁했던 여섯 명의 비르투오조들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맨 나중이었지만 미하엘 벡크만도 몸을 일으켜 손뼉을 쳤다. 질시도 패배도 아닌, 긴 한숨 뒤의 승복. 어색했던 그의 박수가 곧 청중들의 것과 다르지 않게 섞였다.<br />
            &#160;&#160; 오랜 갈채가, 잦아들었다.<br />
            &#160;&#160; 경연은 그렇게 끝이 났다.<br />
            &#160;&#160; 경연의 결과와 아이블링거의 거취는 결정 난 거나 마찬가지였다.<br />
            &#160;&#160; 아이블링거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br />
            &#160;&#160; 대미의 감격이 그에게서 잠깐 현실감을 앗아간 듯했다. 수석 주자에 대한 소개와 격려도 잊은 채, 그는 청중을 향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시간이 흘러갔다.<br />
            &#160;&#160; 뒷선의 팀파니와 콘트라베이스 주자가 무대를 나가기 위해 일어섰다. 오보에와 비올라도 따라 일어섰다. 일어서다 그들은 가만히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때까지도 아이블링거는 움직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br />
            &#160;&#160; 교회 안에 적막이 감돌았다.<br />
            &#160;&#160; 적막은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 같았다.<br />
            &#160;&#160; 브라보!<br />
            &#160;&#160; 그때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쳤다. 외침을 따라 여기저기서 또다시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해일 같던 갈채가 먹먹한 여운을 남기고 썰물처럼 멀어졌다. 아이블링거는 고사목인 양 움직이지 않았다.<br />
            &#160;&#160; 레아는 무대 위의 아이블링거를 바라보았다.<br />
            &#160;&#160;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br />
            &#160;&#160; 아이블링거가 말했다.<br />
            &#160;&#160; 레아는 분명히 들었다. 연주를 끝낸 아이블링거가 청중을 향해 입을 열었던 것이다. 흔히 있는 일이 아니었다. 키제베터도 아이블링거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br />
            &#160;&#160; 잠시 의아해하던 청중들이, 이내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만하다고, 충분히 그럴만하다고 수긍하는 눈치였다. 훌륭한 연주를 성공적으로 마친 아이블링거에게서 무슨 얘긴가를 듣는다는 게 외려 행운이라는 듯. 청중은 그의 말을 기다렸다.<br />
            &#160;&#160; 들으신 곡은……제 곡이 아닙니다.<br />
            &#160;&#160; 꼿꼿이 선 채 아이블링거는 앞쪽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br />
            &#160;&#160; 짧은 적막이 흐른 뒤, 좌중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말의 뜻을 얼른 알아차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소리 나지 않게 자리에 주저앉은 것은 레아뿐이었다.<br />
            &#160;&#160; 어제 오늘, 만장하신 여러분께서 듣고 격려해 주신 곡은 제 곡이 아닙니다. 작곡자가 따로 있습니다. 그 사람은 이 사실을 모릅니다. 제가 알리지 않았고, 끝내 알리지 않으려 했습니다.<br />
            &#160;&#160; 아이블링거는 흔들리지 않았다. 높은 창문에서 비쳐 들어온 한 줄기 햇빛이 땀 젖은 그의 목덜미에 떨어졌다.<br />
            &#160;&#160; 훔친 곡입니다.<br />
            &#160;&#160; 회중석은 또 한차례 술렁거렸다. 오랫동안 술렁거렸다. 암머바흐 백작의 놀란 눈이 닫힐 줄 몰랐다. 키제베터는 레아를 바라보았고, 레아는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았다.&#160;
            
            &#160;<br />
            <br />
            
            계속)<br />
            
            
        
    

<br />
<br />
<br />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paper/pimg_729921106509777.jpg</url><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297228</link></image></item><item><author>문학웹진뿔</author><category>랩소디 인 베를린</category><title>[구효서] 랩소디 인 베를린 - 115회</title><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291404</link><pubDate>Fri, 25 Dec 2009 11: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din.co.kr/rhapsody/3291404</guid><description><![CDATA[&#160;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랩소디 인 베를린 (115)<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160;<br />
            
            &#160; &#160;“우리가 살린 거네요. 하나코가.”<br />
            &#160; &#160;“우연이 살린 거지. 때 맞춰 우리가 도착한 거잖아.”<br />
            &#160; &#160;“하나코에겐 약이 있잖아요, 늘. 우연이랄 수만은 없어요.”<br />
            &#160; &#160;“저럴 땐 한 번 걷어차는 것만으로도 살릴 수 있어. 물론 안 걷어차면 죽을 수도 있고.” <br />
            &#160;&#160; 남자에게선 아무 기척이 없었다. 하나코와 나는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졌다. 기괴한 방 안에 언제까지 갇혀 있어야 할지 알지 못했다. 한 번 걷어차는 것만으로도 살릴 경우였다니, 모를 일이었으나, 크게 걱정하진 않아도 될 것 같았다.<br />
            &#160; &#160;김상호도 저렇게 혼자 죽어간 거였을까. 누군가에게 발견되었다면, 과연 지금, 살아 있을까. 그가 생을 마감한 공간에 또 한 사람의 육신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여 있었다. 방 안은 아닌게아니라 고분(古墳) 석실(石室) 같았다.<br />
            &#160; &#160;“살고 죽는 건 그 사람의 의지겠지만 나는…….” 하나코가 말했다. “삶을 응원하는 쪽이야.”<br />
            &#160; &#160;“저도 죽음을 응원한다곤 할 수 없어요. 이해할 수 있을진 몰라도.”<br />
            &#160; &#160;“죽음을 야유하진 않아, 나도.”<br />
            &#160; &#160;“알 것 같아요.”<br />
            &#160; &#160;“두려움에 의연히 맞서는 숭고한 품성 없이는, 죽음 앞에서 삶을 붙잡을 수 없어. 두려움을 거두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숭고하긴 마찬가지. 한쪽을 응원할 뿐 다른 한쪽을 야유하지 않는 이유.”<br />
            &#160; &#160;알 수 없는 이유로 사흘간 함께 했던 유상민. 그를 떠올리는 건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또한 김상호도 함께.<br />
            &#160; &#160;“죽는 순간 그는 평온했어.”<br />
            &#160; &#160;내 짐작이 맞았다. 유상민은 서른두 살에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하나코가 약사 자격증을 취득하던 해여서 더 가슴 아팠다고.<br />
            &#160; &#160;깨어나지 않는 남자가 누워 있는, 그리고 유상민과 김상호의 죽음이 겹쳐 떠오르는 고분 같은 방에서 나와 하나코는 그런 얘기를 나누었다. 얘기를 나누며 남자가 일어나길 조용히 기다릴 수 있었던 건 하나코의 침착함에 배어 있는 확신 때문이었다.<br />
            &#160; &#160;유상민 김상호 모두 딱하긴 했으나 내게 당장 안타까웠던 건 하나코였다. 그녀는 가쿠슈인 대학교 법학부를 나왔다. 아버지의 강권 때문이었다. 학교를 졸업한 뒤 본격적으로 자원봉사활동에 뛰어들었다. 유상민 등 중증 장애우와의 만남도 계속되었다. 그녀의 아버지도 그녀를 말릴 수 없었다.<br />
            &#160;&#160; 그녀 자신도 어찌할 수 없던 일이었다. 어째서, 라고 물었던 건 그녀 아버지였을 뿐 그녀는 스스로에게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 진로와 삶의 향방에 대해 자문하지 않는 자신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묻기 전에, 이미 완강한 답이 그녀의 존재 내부를 선점하고 있었다. 어떨 땐 명료하게, 어떨 땐 명료하지 않게. 아무려나 그것은 지금껏 한 순간도 그녀를 떠나지 않았으며, 그것에서 벗어나려고도 하지 않았다. 현재 재직 중인 연합봉사단체의 최고책임자라는 건 어쩌면 당연하고 자연스런 귀결이었다.<br />
            &#160;&#160; 도쿄대학 이과 이류에 입학하여 약학을 공부하게 된 직접적 동기는 유상민이었다. 왕진의를 기다리거나 약사의 도움을 받는 게 복잡하고 답답하고 번거롭기도 했지만, 응급환자에게는 무엇 보다 타이밍이 관건이었다. 비단 유상민 한 사람 때문만은 아니었으나, 그가 쓰러져 사경을 헤맬 때마다 그녀는 자신이 약사나 의사가 아닌 것이 무서웠다.<br />
            &#160; &#160;죽어가는 사람을 곁에 둔 채, 오지 않는 의사를 기다리며 바라보는 창밖 풍경. 그것은 지옥이었다. 무심한 자동차 경적소리, 화사한 옷차림의 행인들, 이웃의 개 짓는 소리,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엔카……. 비록 반드시 고치거나 살려낼 수 없다 하더라도 의료자격자라면 세상이 그토록 절망적이진 않을 것 같았다.<br />
            &#160; &#160;때로는 한 알의 적시 약물 처방이 사람의 생명을 구하거나 고통을 완화시킬 수 있는 거였다. 필요할 때 언제라도 조제하여 처방할 수 있다면…….<br />
            &#160; &#160;한 번 낙방했으나 굴하지 않고 그녀는 마침내 도쿄대 신입생이 되었다. 입학식 날 입을 원피스를 사기 위해 들른 양장점에 그녀에게 맞는 옷은 없었다. 작은 체구에, 살이라곤 아무것도 붙어 있지 않았다. 체중 41킬로그램. 어린이 용품점에서 가장 노숙해 보이는 옷을 살 수밖에 없었다. 자격증을 손에 넣을 때까지 그녀의 체중은 전혀 불지 않았다.<br />
            &#160;&#160; 그런 얘기를 했다. 자격증을 취득한 지 2개월 뒤, 유상민이 숨을 거두었다고. 대신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양질의 의약품을 투여해온 거라고. 언제나 가방이 약으로 가득한 까닭이며, 삶을 응원하는 사연이라고.<br />
            &#160;&#160; “당신들,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요?”<br />
            &#160; &#160;나는 깜짝 놀랐다. 남자가 깨어났다.<br />
            &#160; &#160;“문을 부수고 들어온 거요?”<br />
            &#160;&#160; 남자는 여전했다. 불법 가택 침입, 게다가 단잠을 깨웠다는 투였다. 그에게 먹인 건 비타민이었을까?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나는 하나코를 멍하니 바라보았다.<br />
            &#160; &#160;“아직 자신이 살아있다고 생각하나 보지?”<br />
            &#160;&#160; 하나코가 말했다. 그에게로 느리게 몸을 돌렸다. 약간 서늘한 기운이 돌았다.<br />
            &#160;&#160; “오, 내가 죽은 거로군.”<br />
            &#160;&#160; “당신이 말했을 텐데. 우리가 저승사자라고.”<br />
            <br />
            <br />
            <br />
            <br />
            <br />
            <br />
            
            계속)<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paper/pimg_729921106506671.jpg</url><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291404</link></image></item><item><author>문학웹진뿔</author><category>랩소디 인 베를린</category><title>[구효서] 랩소디 인 베를린 - 114회</title><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289514</link><pubDate>Thu, 24 Dec 2009 11:1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din.co.kr/rhapsody/3289514</guid><description><![CDATA[<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랩소디 인 베를린 (114)<br />
            <br />
            <br />
            <br />
            <br />
            
            
        
        
            <br />
            <br />
            &#160;<br />
            <br />
            
            &#160;&#160; 깨달았으나 또다시 삶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체념과 한숨에서 얻은 짧은 위로를 원기 삼아, 무릎을 펴고, 몸을 세워, 발을 내딛었다. 차라리 돌아설 염 같은 건 그동안 내지 못했다.<br />
            &#160;&#160; 살아야 한다는 핑계가 모든 걸 견디게 했다. 견딘 것뿐이었다. 견디지 않고는 단 한 순간도 살 수 없다는 것. 산다는 건 견디는 것.<br />
            &#160;&#160; 그러나 삶을 견디게 하는 건 꿈과 의지가 아닌, 분명 체념과 한숨이었다. 힌터마이어는 알았다. 다만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인정할 수 없었다. 체념과 한숨, 그것의 궁극은 삶이 아닌 죽음이었기 때문에.<br />
            &#160;&#160; 죽음으로부터 위로를 받지 않는다면 삶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인생을 다시금 견디기 쉬운 것으로 만드는 죽음. 힌터마이어에게 죽음은 그렇듯 삶의 이점으로만 작용했을 뿐이었다.<br />
            &#160;&#160; 바이마르를 떠나고자 결심했을 때 힌터마이어는 알았다. 견딤을 스스로 놓아버린다는 사실을. 지금껏 힘들게 억제만 해온 죽음충동을 방기해 버린다는 사실을. 마침내 자유롭게 드러난 그것에 이끌려도 상관없겠다 다짐하는 자신을. 삶과 죽음. 양쪽의 인력이 사실은 같다는 이치를.<br />
            &#160;&#160; 오른쪽 발에 주었던 힘을 왼쪽으로 다만 슬쩍 옮겼을 뿐이었다. 스르륵 다른 문이 열렸고, 힌터마이어는 그곳으로 한 발짝 내딛었다.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힌터마이어에게 동쪽은 그런 곳이었다. 그걸 끝이라 해도 죽음이라 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그런 이름들은 말에 지나지 않았다. 말일 뿐이었다.&#160; 삶이 그러하듯.<br />
            &#160;&#160; 바이마르와 아이블링거, 빌헬름부르크와 모후의 지극한 총애. 그 모든 환(幻)이 멸(滅)한 것이 아니었다. 환이란 애당초 없는 것이므로 멸할 것도 없었다.<br />
            &#160;&#160; 모든 생명이 한번은 향해야 할 곳이면서 아무도 가보지 않은 곳, 힌터마이어는 그곳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방향이 반대일 뿐 삶과 다르지 않을. 단지 삶의 모든 조건과 이유가 헐벗는 곳.<br />
            <br />
            
            &#160;<br />
            <br />
            
            &#160;<br />
            <br />
            
            &#160;14. D장조 콘체르트<br />
            <br />
            
            &#160;<br />
            <br />
            
            <br />
            *&#160;
            <br />
            <br />
            
            &#160; &#160;“죽는다는 게 그리 쉬운 건 아니지.”<br />
            &#160; &#160;하나코는 침착했다. 수첩 한 장을 뜯어내어 그 위에 종류가 다른 캡슐 각각 두알 씩을 분리해 쏟았다. 분말을 스푼에 가만히 쏟고 물로 묽게 갠 뒤, 널브러진 남자의 입 안으로 흘려 넣었다.<br />
            &#160;&#160; “하지만 하마터면 죽을 뻔했어.”<br />
            &#160;&#160; 어디까지 진심인지 알 수 없었다. 중얼거린 말의 내용에 비해 그녀는 지나치게 담담했다.<br />
            &#160; &#160;크로이츠베르크. 베를린 시인이라는 남자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벌어진 일이었다.<br />
            &#160; &#160;남자는 방 한가운데 사지를 뻗고 누워 있었다. 게으른 자의 낮잠처럼, 한가하게까지 느껴졌다.<br />
            &#160; &#160;이봐, 이구노. 스푼하고 말야, 아무 그릇에나 물을 좀 떠와 봐……. 사내를 응시하며 하나코가 말할 때까지도 나는 그녀가 무얼 하려는 건지 짐작할 수 없었다. 언제나 그랬듯, 느린 저음 허스키. 그녀가 핸드백을 열고 약봉지를 꺼내는 걸 보고서야 뭔가 심상찮은 상황이 벌어졌다는 걸 깨달았다.<br />
            &#160; &#160;그러나 희한하기 짝이 없는 흉가 분위기만 아니라면, 남자는 그저 자고 있을 뿐이었다. 골조가 드러난 벽, 천장 중앙으로부터 늘어진 외줄기 전깃줄도 그대로였다. 벽과 벽이 만나는 모서리 그늘엔 여전히 벙어리장갑이 걸려 있었다. 진보라색. 먼셀 표색계 5P 3/10.<br />
            &#160; &#160;남자의 입 속에 약물을 흘려 넣은 하나코는 한동안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서너 차례 남자의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했다. 남자는 깨어나지 않았다. 자고 있는 게 아니었다.<br />
            &#160; &#160;하나코는 남자의 티셔츠를 가슴께까지 올리고 오목가슴의 함몰부를 더듬었다. 검상돌기……. 중얼거리며 손바닥을 펴 자로 재듯 배꼽까지 뻗었다. 배꼽과 검상돌기 사이를 천천히 문질렀다. 남자의 배는 검은 털로 어지러웠다.<br />
            &#160; &#160;문지르던 곳을 엄지로 지그시 눌렀다. 점점 세게. 그러면서 남자의 낯을 번갈아 살폈다. 하나코 동작은 나른할 만큼 느렸다. 그러면서도 신중하고 진지했다. 공들여 귀중품을 포장하는 것 같았다.<br />
            &#160;&#160; 검상돌기와 배꼽 사이의 복부를 탁 소리 나게 쳤다. 남자가 한차례 꿈틀 했으나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포장은 그것으로 끝인 것 같았다. 상품을 밀어놓듯, 하나코는 뒤돌아 앉았다. 어찌되는 건지 나는 알 수 없었다. 하나코의 표정은 태평했다. 쓰나미가 덮쳐도 태평할 사람.<br />
            &#160; &#160;“괜찮…을까요?” <br />
            &#160;&#160; &#160;내가 물었다.<br />
            &#160; &#160;“죽는다는 게 쉽지 않은 거랬잖아.”<br />
            &#160; &#160;“죽을 뻔한 거예요, 정말?”<br />
            &#160; &#160;그녀가 하도 심상(尋常)해서, 모든 게 거짓말 같았다. <br />
            &#160; &#160;“내버려 두면 그럴 수도 있었어.”<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계속)<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paper/pimg_729921106506671.jpg</url><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289514</link></image></item><item><author>문학웹진뿔</author><category>랩소디 인 베를린</category><title>[구효서] 랩소디 인 베를린 - 113회</title><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286849</link><pubDate>Wed, 23 Dec 2009 10: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din.co.kr/rhapsody/3286849</guid><description><![CDATA[<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랩소디 인 베를린 (113)<br />
            <br />
            <br />
            <br />
            
            
        
        
            <br />
            &#160;<br />
            
            <br />
            <br />
            <br />
            
            &#160;&#160; 아이블링거의 D장조 콘체르트를 듣기 위해서였다. 아이블링거 순서가 마지막인 것을 그들은 당연한 듯 여겼다. 과제곡 연주에서 이미 우열은 결정 난 거나 마찬가지였다.<br />
            &#160;&#160; 경쟁자들의 하프시코드 연주를 미리 예상하고 의식한 듯, 피아노에 대한 청중들의 기대와 호감에 부응하려는 듯, 아이블링거는 1악장 알레그로 후반부에 긴 하프시코드 독주를 배치했다. 바이마르에서 대동한 주자였다.<br />
            &#160;&#160; 바이올린과 비올라와 오보에가 서서히 뒤로 물러서면서 하프시코드가 전면에 나섰다. 몇날 며칠 호흡을 맞춘 바이마르 연주자였다. 한 치의 실수 없이 아이블링거의 난해한 주문과 요구를 소화해 냈던 힘멜부르크 단원이었다.<br />
            &#160;&#160; 이번에는 정확한 화성과 대위, 빠르고 현란한 장식음으로 좌중을 압도했다. 전날 하프시코드 연주자들이 선택했고, 미하엘 벡크만이 강조했던 수학적 정확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주법의 엄격성은 아이블링거의 특기였다. 전날의 경쟁자들을 무색케 하려는 의도였긴 했으나, 악곡 자체만으로도 훌륭하고 독보적이었다. 독주 부분은 전적으로 아이블링거의 창작이었다.<br />
            &#160;&#160; 길게 휘몰아치던 하프시코드가 문득 정지한다 싶게, 소리 끝을 여운에게 넘겼다. 비로소 정지했으나 순화된 공기의 결을 타고 한동안 찰랑거렸다. 여음이 사라지기 전 어느새 2악장 아페투오조가 나른한 봄 들판을 가로질러 왔다. 힌터마이어의 판타지아였다.<br />
            &#160;&#160; 숨 가빴던 1악장 후반부 독주가, 전원의 봄볕 같은 2악장 도입부에 의해 시나브로 발전되며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힌터마이어 숨결과 특징이 고스란히 밴 율조. 아이블링거의 악장 분배는 탁월했다. 이어 붙이고 끊는 감각이, 각기 다른 두 사람의 곡을 서로 적응시키고 통합하는 데 아무런 무리가 없도록 했다. 특징들은 오히려 조응했고, 효과는 배가되었다.<br />
            &#160;&#160; 초반부터 경쾌하게 터져 나오는 3악장, 다시 알레그로. 1악장의 생기와 2악장의 봄볕이 어우러지며 완숙한 봄의 정경을 눈앞에 쏟아냈다. 아직은 여려 수줍지만 제 모양을 갖춘 신록이, 봄 햇살을 투과하며 바람에 나부꼈다. 조심스러우면서도 활기찬 만물의 약동. 멈칫거리던 걸음이 빨라졌고 세찬 바람은 훈기에 흩어졌으며, 어색하고 두렵던 생명의 움직임들이 어느덧 되돌아온 산들바람으로 신명을 찾기 시작했다.<br />
            &#160;&#160; 끝없이 새롭게 음을 환기하는 힌터마이어의 파격, 상투적 세련미를 거스르는 일탈, 규범을 비웃는 과감한 충격이, 만장한 청중을 어렵지 않게 일깨웠고 동화시켰다. 아이블링거도 놀랄 일이었다. 예상하지 않았던 바는 아니었으나 그토록 빠르게 호응할 줄은 그도 몰랐다. <br />
            &#160;&#160; 정해진 영역이나 본디의 목적 따위에서 끝없이 벗어나려던 힌터마이어의 노력과 열정. 그것은 어쩌면 그 자신의 것이 아니었는지도 몰랐다. 이미 청중과 인민의 마음속에 고스란히 예비 되어 있던 새로운 음악에 대한 기대와 선망. 눈 밝은 힌터마이어는 다만 그것을 발견하고 확신했던 것뿐인지도.<br />
            &#160;&#160; 아이블링거는 더 이상 지휘자가 아니었다. 등 뒤로 느껴지는 관중의 열기, 그들의 부름과 호소에 반응해 힘껏 춤출 뿐이었다.<br />
            &#160;&#160; 3악장은 도취와 흥분 속에 흘렀다. 만들고 지휘하고 연주하고 듣는 사람 구별 없이, 때론 함께 산이 되고 때론 함께 물이 되어 구르고 떨어지고 흩어지며 나아갔다. 어디까지 흐를지, 언제까지 나아갈지 알 수 없었다.<br />
            &#160;&#160; 경연의 의미는 무색해졌고, 다만 일방적 환호와 갈채의 피날레만 남아 있었다. 그때까지, 세상에 첫 선을 보이는 D장조 콘체르트 마지막 악장은 가파른 영광의 언덕을 숨 가쁘게 넘고 있었다. 그 자리에 힌터마이어는 없었다.<br />
            <br />
            <br />
            <br />
            
            <br />
            &#160; &#160;∠<br />
            &#160; &#160;힌터마이어는 동쪽을 향했다. 그것은 어떤 방향,이 아니었다. 아무런 방향이었고, 그것이 다만 동쪽이었을 뿐이었다. 보헤미아 땅을 지나 오데르강 상류를 건넜다. 다음에 어떤 나라,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알지 못했다.<br />
            &#160; &#160;그가 향한 곳은, 동쪽이라기보단 끝이란 의미에 가까웠다. 끝에 닿으려 걸었다. 그것이 땅의 끝일지 삶의 끝일지 알 수 없었다. 구별할 필요도 없었다. 하나의 끝이 다른 것의 끝일 수 있었다.<br />
            &#160; &#160;가다 가다, 배로도 건널 수 없는 거대한 바다가 앞을 막으면 마침내 끝에 다다르는 거였다. 굳이 방향을 따진다면, 그것은 그가 반생을 살아온 곳의 반대방향을 뜻할 뿐이었다. 욕망과 의지, 도전과 목적이 방향을 바꾸며 소멸하는 곳. 그것이 곧 죽음이라 해도 상관없는 곳. 삶이 방향이라면 죽음 또한 방향이었다. 반대편일 뿐, 같은 것. 동쪽이란, 힌터마이어에게 그런 곳이었다.<br />
            &#160; &#160;삶이 고되고 구차했던 것, 비겁하고 용렬했던 것, 그것에서 벗어나려 고투했던 것, 꿈을 키우며 매진했던 것, 그리하여 더욱 모진 곤경과 궁지로 내몰렸던 것.<br />
            &#160; &#160;무엇이 그리도 무서워 그리했던가. 밤낮으로 걷는 힌터마이어 어깨를 짓눌렀던 건 등짐이 아니라, 그런 회한이었다.<br />
            &#160; &#160;삶의 곤고함을 위로했던 건 꿈과 희망이 아니었다. 체념과 한숨, 자조와 실소가 외려 숨 쉴 겨를을 주었다. 위안은 언제나 진전이 아닌 멈춤과 후퇴의 순간에 찾아왔다. 나아가려던 방향에서 돌아섰을 때. 그럴 때마다, 애써 좇던 풍경이 환상이었음을 비로소 깨달았다.<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계속)<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paper/pimg_729921106506671.jpg</url><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286849</link></image></item><item><author>문학웹진뿔</author><category>랩소디 인 베를린</category><title>[구효서] 랩소디 인 베를린 - 112회</title><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284013</link><pubDate>Tue, 22 Dec 2009 09: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din.co.kr/rhapsody/3284013</guid><description><![CDATA[&#160;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랩소디 인 베를린 (112)<br />
            <br />
            <br />
            
            
        
        
            <br />
            &#160;<br />
            <br />
            <br />
            <br />
            
            &#160;&#160; 알아차리기는 쉬웠다. 그러나 음의 강약과 긴장을 임의로 부리며 그 같은 효과를 연출해 낸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 또한 알았다. 오랜 숙련이 아니고선 다다를 수 없는 기술이며, 단지 시간만 들인다고 얻게 되는 경지도 아니라는 것을.<br />
            &#160;&#160; 보이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시간과 노력 사이의 틈. 놓치지 않는 사람에게만 내부를 허락하는 여지(餘地). 그 사이를 날렵하게 들고나며 감성과 재능을 벼린 사람만이 불러올 수 있는 소리. 아이블링거 손에 그 소리가 잡혔고, 잡힌 소리와 오래 노닐었고, 마침내는 소리가 먼저 달려와 그의 손에 앉았다.<br />
            &#160;&#160; 하프시코드를 선택한 몇몇 경쟁자의 연주는 섬세하고 화려했으나, 오르간의 기세를 당해내진 못했다.<br />
            &#160;&#160; 특히 마하엘 벡크만의 오르간은 좌중을 압도했다. 연마를 거듭한 그의 손끝은 누적된 세월의 무게가 가득 실려 부드러우면서도 힘찼고, 깃털의 감촉 하나에도 무시할 수 없는 결기를 드러냈다.<br />
            &#160;&#160; 오르간을 선택한 건 벡크만과 아이블링거 뿐이었다. 건반악기의 대세는 이미 하프시코드 쪽이었다. 모든 악기의 중심에 우뚝 설 조짐이 분명한 피아노. 그것이 무서운 속도로 주점과 여염과 시악단 주변을 침투해 오고 있었다. 머잖아 건반악기 전반을 평정할 피아노. 다음 세대를 장악할 건반악사는 하프시코드 주자들이었다. 운지의 패턴이 피아노와 같았다. 경쟁자들이 하프시코드를 선택한 이유였다.<br />
            &#160;&#160; 그러나 음질의 강약과 음량의 다소를 맘껏 선택하여 청중을 사로잡는 데는 오르간만한 게 없었다. 언제나 넉넉하여 여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풍량, 풍부한 소리의 조합이 가능한 스톱과 페달, 십여 개 악기를 동시에 운용하는 효과란 오르간 아니면 기대할 수 없었다. <br />
            &#160;&#160; 과제곡 경연에서 벡크만과 아이블링거가 발군의 솜씨를 보일 수 있었던 것, 그리고 각별한 호응을 얻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솜씨와 호응 면에서 모두 벡크만과 아이블링거는 마치 큰 소가 서로 뿔을 겨누고 버티며 다투는 것 같은, 호각세였다.<br />
            &#160;&#160; 벡크만은 통큰 주제와 명료한 동기들로 어우러진 푸가를, 아이블링거는 기본 선율에 즉흥적 변화를 가미한 토카타를 택했다. 토카타는 아이블링거가 택할 악곡이 아니었다. 경연에서라면 더욱 그랬다. 토카타 취향은 힌터마이어였다. 전날 과제곡 기본 선율도, 힌터마이어 것이었다.<br />
            &#160;&#160; 벡크만의 정확성은, 너무도 정확하여 숨 쉴 틈을 주지 않았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한시도 방심할 수 없게 했다. 청중의 기대와 예상을 한 치도 빗나가지 않았다. 귀를 더욱 예민케 했고, 그 귀를 끌어당겨 놓지 않았다. 귀 기울인 만큼 충만한 음률이 심신을 압도해 왔다. 벡크만의 넓은 어깨와 등, 굵은 허리가 뿜어내는 당찬 열기가 교회 안을 가득 메웠다.<br />
            &#160;&#160; 그의 음악은 강한 믿음과 가없는 위로를 주었다. 아낌없이 박수치고도 모자랄 만큼 청중들은 그의 연주에 오래 환호했다.<br />
            &#160;&#160; 아이블링거는 여리고 불안하며, 왠지 위태로운 정상(情狀)을 드러냈다. 귀를 기울이던 청중들은 잘못된 소문이라도 듣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br />
            &#160;&#160; 청중의 기대를 배반하는 즉흥 완급, 박자를 벗어나는 낯선 타건, 넘어질 듯 간신히 일어나는 음의 고저가, 벡크만이 이루어놓았던 믿음과 위로의 분위기를 거두어갔다.<br />
            &#160;&#160; 의문과 놀람, 불온하고 아연한 기운이 회중석을 감돌았다. 키제베터와 레아도 맘을 졸였다.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꺼림칙한 연주가 계속되는 동안, 사람들은 외려 아이블링거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br />
            &#160;&#160; 죄인의 변명이라도 들으려는 듯, 그들은 아이블링거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아이블링거는 돌아서지도 않았고, 변명하지도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연주 중이었다. 그는 묵묵히 오르간 건반을 눌렀다.<br />
            &#160;&#160; 의문과 놀람, 불온하고 아연한 기운이 무르녹다 못해 한계에 다다랐을 때도 사람들은 꼼짝하지 않았다. 자리를 뜨거나 불만어린 몸짓을 보이지도 않았다. 신분에 응당하는 체통 때문이 아니었다. 교양이나 너그러움 때문도 아니었다. 아이블링거 음악 때문이었다.<br />
            &#160;&#160; 교회 안 허공을 떠도는 석연찮은 오르간 음이 그들을 묶어 두었다. 아이블링거의 대답이나 변명 같은 게 있었을 리 없었다. 그는 시종 진지하게, 입술 굳게 다문 채 건반을 눌렀다. 건반은 연결선을 밀어 공기차단마개를 열고, 새어나간 바람이 분배칸을 거쳐, 꽃처럼 나무처럼 서 있는 파이프 숲에 이르러, 잠자던 금속막대관 안의 공기를 일깨우며, 공중으로 영혼의 외침을 쏘아 올렸을 뿐이다.<br />
            &#160;&#160; 그러는 사이, 의문에 휩싸였던 청중들은 스스로 답을 듣고, 놀람 끝에 제 힘으로 환희를 얻었으며, 새로운 생기로 들뜨기 시작했다. 아이블링거 연주가 중반부로 치달을 때였다. 그리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br />
            &#160;&#160; 아이블링거 악곡의 새로운 화법이 선포되는 순간이었다. 설명과 설득, 강조와 역설 없이, 의문 품은 이들 스스로 부지불식간에 답을 깨달았다. 이전에 접해 보지 못했던 교감과 소통, 공감의 방식. 아이블링거 연주의 놀라운 점이었다. 답을 얻기 위해, 청중 스스로 긴히 묻게 한다는 것.<br />
            &#160;&#160; 사람들은 새로운 보석을 제각각 가슴에 품고 돌아갔다. 말로도 글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것. 눈이나 표정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것. 오로지 아이블링거 음악에 의해서만 호응될 수 있는 감정의 결절. 다음 날 사람들은 서둘러 교회로 모여들었다.<br />
            <br />
            <br />
            <br />
            <br />
            <br />
            <br />
            
            계속)<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paper/pimg_729921106506671.jpg</url><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284013</link></image></item><item><author>문학웹진뿔</author><category>랩소디 인 베를린</category><title>[구효서] 랩소디 인 베를린 - 111회</title><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281970</link><pubDate>Mon, 21 Dec 2009 11: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din.co.kr/rhapsody/3281970</guid><description><![CDATA[<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랩소디 인 베를린 (111)<br />
            <br />
            <br />
            <br />
            
            
        
        
            
            &#160;<br />
            <br />
            
            &#160; &#160;“뭐, 그렇기는 하지만…….”<br />
            &#160; &#160;에밀리가 빈 찻잔을 내려다보았다.<br />
            &#160; &#160;“제 아버지에 대해 말해 주어서 고마워요. 제 아버지 안부를 물었던 건…그 때문이었군요.”<br />
            &#160; &#160;“알 필요 없는 얘기를……제가 한 것은 아닌지요.”<br />
            &#160; &#160;에밀리가 고개를 들어 하나코를 바라보았다. 후회하거나 미안해하는 낯은 아니었다.<br />
            &#160; &#160;“천만에요. 알 건 알아야 하고, 언젠가는 또 알게 되는 거니까요. 고맙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하나코가 말했다. “저도 에밀리 아버님 안부를 물어도 될까요?”<br />
            &#160; &#160;무슨 말일까.<br />
            &#160; &#160;“아시다시피, 아버지는 돌아가셨어요.”<br />
            &#160; &#160;에밀리가 말했다. 키르호프 씨가 죽었다는 걸 하나코가 모를 리 없었다.<br />
            &#160; &#160;“근황이 아니라……에밀리가 태어나기 전 아버님께서 뭘 하시던 분인지 알고 계시나 해서요.”<br />
            &#160; &#160;언제 어디서나 감출 줄 몰랐던 하나코의 장난기. 전혀 비치지 않았다. 그녀의 허스키한 저음이, 손님이라곤 셋뿐인 카페 공기를 가만히 휘저었다.<br />
            &#160; &#160;“물론이죠. 레벤 체미Leben Chemie. 화학제품 만드는 콤파니Kompanie 엔지니어셨죠. 포츠담에 있는. 필요하다면 더 자세히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만…필요한가요?”<br />
            &#160; &#160;“필요하다기보단, 궁금할 뿐입니다. 아버님이 정말 어디에서 무얼 하셨는지.”<br />
            &#160;&#160; “정말……이라니요?”<br />
            &#160; &#160;이야기가 급선회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하나코는…….’ 바에서 하나코 아버지가 말했을 때 김상호가 느꼈다던 차가운 기단(氣團). 그것이 카페 안으로 몰려드는 것 같았다. 하나코가 말했다.<br />
            &#160; &#160;“대략 1943년에서 1945년까지. 적어도 그쯤. 그래요. 40년 보다 훨씬 오래 전 일이겠군요……. 아버지 얘기를 저는 40년 지나 알게 되었지만, 그 보다 더 오랜 세월 동안 모르는 일도 있겠지요.”<br />
            &#160; &#160;“1943년에서 1945년…….”<br />
            &#160; &#160;에밀리가 중얼거렸다. 그런 물음은, 독일에서, 매우 신중하게 꺼내지 않으면 안 되는 질문이었다.<br />
            &#160; &#160;“그 기간 동안 아버지가 무슨 일을 했는지, 궁금하다는 말씀이시군요. 아, 제가 알고 있는 사실 자체를 의문시 하는 거군요. 말하자면 잘못 알고 있을 수 있다. 40년이 훨씬 넘도록. 맞습니까?”<br />
            &#160; &#160;“궁금하다고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그리고 레벤 체미. 아버님께서는 그곳에 근무하셨을 테지요. 언젠가는.” <br />
            &#160;&#160; 비로소 나는 하나코 질문의 뜻을 알아차렸다. 또다시 그녀의 놀라운 직관이 작동하는 순간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전혀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뱀. 하나코는 슈타인도르프에게서 뭘 읽었던 걸까.<br />
            &#160; &#160;폐점시간이 되자 카페주인은 우리를 내쫓다시피 했다. 거리엔 이따금 차들이 내달릴 뿐 행인은 보이지 않았다. 에밀리는 서둘러 인사를 건네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여름밤이었으나, 에밀리 옷깃을 스치는 바람이 추워보였다.<br />
            &#160; &#160;그날 하나코는 멘, 이었다. 듣고, 묻고, 아니라 말하는.<br />
            <br />
            
            &#160;<br />
            <br />
            
            &#160;<br />
            <br />
            
            *<br />
            <br />
            
            &#160;<br />
            <br />
            
            &#160;<br />
            <br />
            
            &#160;&#160; ∠<br />
            &#160;&#160; 성부(聲部) 숫자는 숫자에 불과했다. 악장에 따라 추가되거나 감소하는 성부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이블링거 곡엔 악보에 기록되지 않은,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진행 중일 때만 출몰하는 가외(加外)의 성부가 있었다.<br />
            &#160;&#160; 그것은 무정형의 음표군을 이끌고 연기처럼 솟구쳤다가 안개처럼 흩어졌다. 그것은 때로 바람이었다가, 촌락을 에두르는 푸른 이내였다가, 상상의 동물처럼 꿈틀거리며 하늘로 멀어졌다.<br />
            &#160;&#160; 처음도 끝도 없이 펄럭이며 빛깔 바꾸는 신비의 비단, 낙조의 장관이 일렁이는 거대한 너울, 금빛가루 토해내는 큰 새의 날갯짓이었다. 악기가 그것을 표현해내는 게 아니라, 그것이 악기들을 이끌고 희롱했다.<br />
            &#160;&#160; 전날 과제곡 연주에서 우열은 결정 난 거나 마찬가지였다. 아이블링거 순서가 마지막에 자리한 것만 봐도 그랬다. 키제베터와 레아는 프라우엔 교회 3층 회중석에서 아이블링거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br />
            &#160; &#160;1층엔 온통 흰 가발 물결이었다. 아이블링거는 취한 듯 팔을 저었다. 그러다 두려운 듯 동작을 멈추었고, 움트는 새싹 어루만지듯 하는 손끝의 미세한 율동이, 잦아들었던 소리를 다시 불러일으켰다.<br />
            &#160;&#160; 전날 오르간 실연에서 아이블링거 솜씨에 감탄했던 관객들은 기악 협주곡에도 기대와 관심을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br />
            &#160;&#160; 전날도, 음은 낯설었고 박자는 어긋났었다. 관객들이 고개를 갸웃거릴 즈음 낮은 음역의 스톱Stop과 페달이 낯설고 어긋나는 것들을 넉넉히 감쌌다.<br />
            &#160;&#160; 사람들은 머잖아 알아차렸다. 위태로운 음과 엇박자로써 개개의 음을 구별해 돋아 세우고, 낮으면서 넉넉한 스톱 선택과 페달로 어색함과 불안감을 해소한다는 사실을.<br />
            <br />
            <br />
            <br />
            <br />
            <br />
            <br />
            
            계속)<br />
            
            
        
    

<br />
<br />
<br />
<br />
<br />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paper/pimg_729921106506671.jpg</url><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281970</link></image></item><item><author>문학웹진뿔</author><category>랩소디 인 베를린</category><title>[구효서] 랩소디 인 베를린 - 110회</title><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275827</link><pubDate>Fri, 18 Dec 2009 10: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din.co.kr/rhapsody/3275827</guid><description><![CDATA[&#160;
&#160;<br />
<br />
&#160;<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랩소디 인 베를린 (110)<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160;
            &#160;&#160; 토마스는 고통을 견딜 수 없어 스스로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진다는 걸 알았다. 그런 자신을 무엇으로도 위로할 수 없었다. 어떤 대답이 돌아올 줄 알면서, 그리하여 물어 볼 필요조차 없다는 걸 알면서도, 토마스는 자해하듯 물었다. 하나코 아버지의 눈알을 터져라 바라보았다.<br />
            &#160;&#160; “그렇……습니까?”<br />
            &#160; &#160;“그렇다네.”<br />
            &#160;&#160; 그렇습니까. 그렇다네.<br />
            &#160;&#160; 끝이었다.<br />
            &#160;&#160; 질문과 대답이 아니었다. 알 것 알고 묻는 질문, 대답이 필요 없는 대답. 신음이거나 한숨일 뿐이었다. 뭔가의 끝을 알리는 탄식의 징표 같은 것.<br />
            &#160;&#160; 하나코 아버지와 하나코와의 관계. 하나코에게 묻고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럴 수 없다는 걸, 그리해서는 안 된다는 걸, 그런들 결코 더 이상 어떤 것도 밝혀낼 수 없다는 걸, 토마스는 알았다.<br />
            &#160;&#160; 하나코를 믿을 수 없어서가 아니었다. 쉼 없이 흐르던 트럼펫, 선연하면서도 어지럽던 조명, 목구멍 델 만큼 독했던 술, 창밖 도심 풍경, 주고받았던 이런 저런 말들과 표정, 웃음……. 그런 것들이 흐르고 지나는 동안 분명하고 분명해졌던 것. 그걸 의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br />
            &#160;&#160; 하나코 아버지의 간절하면서도 절박한 눈빛의 진실. 토마스 아닌 낯선 사람이라도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는 거였다. 알아차릴 수 있다는 걸, 그런 게 있다는 걸, 슬프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 토마스가 가장 외면하고 부정하고 도망치고 싶었던 거였다.<br />
            &#160;하나코 아버지와의 만남은 그것으로 마지막이었다. 하나코와도. 일본과도.<br />
            <br />
            
            &#160;
            *&#160;
            <br />
            <br />
            
            &#160;&#160; Das ist mein.<br />
            &#160;&#160; 에밀리가 한 말이었다. 내 것이야…….<br />
            &#160;&#160; わたしの もの.<br />
            &#160; &#160;내가 통역한 말이었다. 글이었다면 다음과 같이 썼을.<br />
            &#160; &#160;私の 物.<br />
            &#160; &#160;하나코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찻잔 바닥은 이미 오래전에 검게 메말라 있었다. 카페 손님이라고는 나와 하나코, 에밀리가 전부였다. 밤이 이슥했다.<br />
            &#160;&#160;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통역하고, 그렇게 들었다. 그리고 모두 얼마간 침묵했다. Das ist mein. 에밀리의 말이었으나, 김상호가 에밀리에게 했던 말이었을 것이다.<br />
            &#160;&#160; 짧은 그 말을 던질 때 김상호의 음성과 표정은 어땠을까. 하나코도 나처럼 잠자코 그걸 상상하는 걸까. 어쩌면 하나코는 석연치 않았던 순간들을 되짚는 건지도 몰랐다. 코마가다께 정상의 알비노니. 이별에나 어울릴 것 같았던 아다지오. 걸핏하면 체했던 겐타로. 아무 암시도 연락도 없이 약속장소에 나오지 않았던 그. 끝내 들을 수 없었던 이유들. 갑작스런 독일행. 그의 첫곡, 〈세월이 가면〉. 그걸 들으며 하염없이 써내려갔던 일기장.<br />
            &#160;&#160; 김상호의 음성과 표정에 대해 에밀리에게 물을 필요 없었다. 음성과 표정이 중요하거나 궁금한 건 아니었으니까. わたしの もの. 말의 뜻이 궁금한 것도 아니었다.<br />
            &#160;&#160; 김상호가 확연히 알게 되었던 것처럼, 나와 하나코와 에밀리도 틀림없이 그러하게 이해했다. 이해했다고 나는 생각했다.<br />
            &#160;&#160; 에밀리 말을 들으면서 나는 1960년대 중반 신주쿠 프린스 호텔 코지 바에 앉아 있는 착각을 일으켰다. 겉만 봤을 뿐인 호텔이지만 그랬다. 프린스 호텔이라면 하나코도 모를 리 없었다. 착각이 당시 김상호의 감정을 분별하여 알게 하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다.<br />
            &#160;&#160; 결코 쉽지 않았을, 그러나 한편 오연하고도 단호했을 하나코 아버지의 고백. 그 앞에 무방비로 놓여 있었을 김상호. 뇌리에 박혀 오랜 세월 지워지지 않았을 わたしの もの. 그리고 에밀리 앞에서 아프게 쏟아냈을 Das ist mein.<br />
            &#160;&#160; 음성과 표정이 궁금했던 게 아니라, 김상호 속맘이 궁금했던 게 아니라, 애처롭고 가엾은 그의 처지가 사뭇 뭉클했을 뿐이다.<br />
            &#160;&#160; 궁금했던 건 하나코 반응이었다. 부정이나 변명이 아니더라도 어쨌든. 에밀리 이야기는 곧 김상호 얘기였던 것이다. 충격적이라면 충격적인.<br />
            &#160;&#160; 그러나 하나코는 말이 없었다. 별다른 안색의 변화도 없었다. 바늘로 겐타로 손을 따던 순간, 혹은 돼지고기볶음집 같은 저만의 깊고 어두운 영역으로 뒷걸음질 치던 겐타로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던 건지도. 자신 모르게 아버지와 겐타로의 만남이 이루어지던 그 때를.<br />
            &#160;&#160; 나는 하나코에게 아무것도 물을 수 없었다. 물을 일이 아니었다. 김상호 말마따나 그럴 수 없었고, 그래서도 안 되었고, 그런다고 뭔가를 알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침묵이 길어진 까닭이었다.<br />
            &#160;&#160; “40년 동안 모르고 있었다니……믿기지가 않아요.”<br />
            &#160;&#160; 에밀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작고 차분한 목소리였으나 미세하게 묻어나오는 책망의 기운마저 감추진 못했다. 김상호에 대한 그녀의 우호, 그녀에 대한 김상호의 우호를, 에밀리는 그런 식으로 드러냈다. 그럴만했다. 그런 얘기를 김상호는 아무에게나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br />
            &#160;&#160; “모르는 걸, 백년이 간다고 알 수 있을까요. 모르는 건 모르는 것이죠. 이렇게 알게 되기 전까지는…….”<br />
            &#160; &#160;자신에 대한 책망의 기운을 알아차렸던 걸까.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하나코가 말했다.<br />
            <br />
            <br />
            <br />
            <br />
            <br />
            <br />
            
            계속)
            
        
    

<br />
<br />
<br />
<br />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paper/pimg_729921106506671.jpg</url><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275827</link></image></item><item><author>문학웹진뿔</author><category>랩소디 인 베를린</category><title>[구효서] 랩소디 인 베를린 - 109회</title><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273780</link><pubDate>Thu, 17 Dec 2009 11: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din.co.kr/rhapsody/3273780</guid><description><![CDATA[&#160;
&#160;<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랩소디 인 베를린 (109)<br />
            <br />
            <br />
            <br />
            
            
        
        
            <br />
            <br />
            &#160; &#160;“트럼펫 하나 제대로 사주지 못했는데, 이제부턴 뭐든 해줄 생각이네. 정말이지 뭐든. 나에겐 그 애가 전부니까.”<br />
            &#160; &#160;하나코 아버지가 말했다.<br />
            &#160; &#160;“얼굴 빨개지도록 한 곡 불고 나면 하나코는 쇄락해졌어요.”<br />
            &#160; &#160;토마스가 말했다.<br />
            &#160; &#160;“쇄락?” <br />
            &#160;&#160; “상쾌하고 깨끗해졌다는 뜻입니다.” <br />
            &#160;&#160; “예뻐졌다는 뜻인가?” <br />
            &#160;&#160; 얼른 대답할 수 없었으나 토마스는 상대가 궁금하지 않게, 웃어 보였다.<br />
            &#160; &#160;“그랬다는 뜻이군.”<br />
            &#160; &#160;하나코 아버지의 눈에 일순 많은 양의 빛과 어둠이 교차했다. 어둑한 실내에서도 분명하게 보였다. 주변 빛의 명암과 관계없이 순간을 명멸하는 빛. 토마스는 느꼈을 뿐, 뜻을 알아차리진 못했다. 토마스 아버지는 취한 것 같으면서도 전혀 취하지 않은 것 같았다.<br />
            &#160;&#160; 그날은 그랬다. 뭐 하나 분명한 건 없었으나 모든 게 너무도 분명했다. 탁하면서도 서늘한 실내 공기, 혼몽하면서도 각성을 불러일으키던 낯선 불빛, 휘발성 강한 몇 잔의 술, 클리포드의 트럼펫……. 토마스 머릿속에 너무도 오랫동안 각인되었던 풍경이었다.<br />
            &#160;&#160; 좋아하는 술 음미하듯 하나코 아버지는 곡을 맛있게 들었다. 토마스에게 각별한 친절과 배려를 베풀었다. 문제될 건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흐뭇한 표정으로 토마스를 바라보았다. 그의 애틋한 눈빛 또한 나쁘지 않았다.<br />
            &#160;&#160; 자네가 저 연주자를 닮았다는 얘길 종종 들었지. 타의 모범이 되고……. 게다가 소울이 강한 점 또한, 음악가로서 나무랄 데 없는 조건이라고. 그렇게, 둘은 얘기를 하거나 침묵했다. 하나코 아버지는 우호적이었고 부드러웠고 여유로웠다. 어색하지 않았다. 말을 쉬고 잔을 들고 미소 지었으며 또 어떤 얘긴가를 하거나 하지 않았다. 어둠과 음악이 빛과 이야기에 섞이며 시간은 흘렀다.<br />
            &#160;&#160; 바뀐 트랙에 대해 말했다. 때론 깊게 때론 건성으로. 옆 좌석에 손님이 앉았다 일어서고 다른 손님이 와서 앉았다. 하나코 아버지의 표정은 처음과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정말 문제될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토마스는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모든 건 트럼펫 때문이었노라고. 그들을 줄기차게 감싸고 흐르던.<br />
            &#160;&#160; 창문 밖으로 몇 차례 열차가 지나갔다. 두꺼운 유리창 때문에 열차 소음은 들리지 않았다. 빙판 위를 미끄러지는 기다란 썰매처럼, 소리 없이 다가와 멈추었다가 소리 없이 멀어졌다. 시간도 그렇게 흘렀고, 밤은 깊어갔다.<br />
            &#160;&#160; 몇 잔 더 마셨으나 토마스는 취하지 않았다. 적막한 산기슭 작고 호젓한 양옥 주변, 줄기 흰 자작나무숲 사이를 흐르는 물줄기. 가늘면서 느렸다. 어둠과 대화는 그렇게, 트럼펫 소리에 묻혀 지나갔다. 언제까지고 멈추지 않을 것처럼.<br />
            &#160;&#160; 그러다 어느 순간, 흐름이 웅덩이를 만나 가만히 정지했다. 한동안 천천히 제자리를 맴돌았다. 조만간 하류를 향해 흘러내릴 것 같던 흐름은, 그러나 좀처럼 다시 움직이지 않았다. Memories of you. 비틀 듯 클리포드가 소리를 질렀다.<br />
            &#160; &#160;“그러니까……하나코는…….”<br />
            &#160; &#160;하나코 아버지가 말했다. 토마스를 똑바로 응시했다.<br />
            &#160;&#160; 그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알 수 없었으나 토마스 몸은 이미 굳어 있었다. 거대한 찬 기단(氣團)이 갑자기 바 안으로 들이닥쳤다. 무엇을 듣고 무엇을 말했는지 기억하려 애썼다. 생각나지 않았다.<br />
            &#160;&#160; 간신히, 바 안을 점령한 찬 공기가 갑작스러운 게 아니었다는 깨달음이 스쳤다. 천천히, 아주 느리게, 트럼펫 소리에 묻어온 냉기였다. 생각지도 알지도 못 하는 사이에. 자각했을 때 토마스 몸은 이미 얼어붙어 있었다. 머리와 가슴이 방심한 사이, 몸이 먼저 알아버린 거였다. 휘발성 강한 술과 선정적인 조명, 추억의 순간을 환기하던 트럼펫이 흐르는 동안.<br />
            &#160;&#160; 정다운 목례의 순간, 옆 자리 손님이 떠나고 다른 손님이 앉던 순간, 밤이 깊어 열차가 뜸해진다고 느껴지던 순간……. 그 모든 순간들이 그냥 흐른 게 아니었다. 다만 반복되는 클리포드 트럼펫이 시간마저 원환(圓環)의 늪으로 끌고 갔을 뿐이었다.<br />
            &#160;&#160; 생각과 기억을 배반한 채, 저 혼자 알고 저 혼자 굳어간 몸이었다. 하나코 아버지의 눈빛과 표정, 말의 낌새와 기미들을 낱낱이 누적한 몸. 얼어붙은 몸이 압박하는 불안과 두려움을 토마스는 떨치지 못했다.<br />
            &#160; &#160;“……내 것이야.”<br />
            &#160; &#160;하나코 아버지는 말을 마쳤다. 무슨 뜻인지 알겠나, 따위 부가의문은 필요 없다는 듯. 입술마저 언 토마스는 아무 말 못했다. 설마, 라며 의식 저편으로 자꾸 밀쳐두었던 의문. 차마 묻지 못했던 질문. 대답을 듣는 순간 모든 게 아득히 무너져버릴 것 같아 꾹 다물었던 입이었다.<br />
            &#160; &#160;그토록 끔찍한 현실에 뺨을 얻어맞기엔 너무 억울했다. 그럴 만한 죄를 짓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자신과 하나코는 너무 어리고 여려,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나코가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 그녀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그 뒤 하나코는 아버지와 살았다.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었다.<br />
            &#160; &#160;모른 게 아니었다. 명확해지는 느낌과 짐작에서 도망치고 싶었을 뿐이다. 믿고 싶지 않아 외면했을 뿐이다. 도망치고 외면할수록 압박해 오는 불안과 싸웠을 뿐이다.<br />
            &#160; &#160;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토마스는 좁고 깊어지기만 하는 확신의 구렁텅이에 빠져 옴쭉달싹 못했다. 꿈이기만 바랐다. 클리포드 선율이 조금은 끔찍하게 느껴지는 악몽. 하지만 꿈이길 바라는 만큼, 현실감은 완강했다.<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계속)
            
        
    

<br />
<br />
<br />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paper/pimg_729921106506671.jpg</url><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273780</link></image></item><item><author>문학웹진뿔</author><category>랩소디 인 베를린</category><title>[구효서] 랩소디 인 베를린 - 108회</title><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271375</link><pubDate>Wed, 16 Dec 2009 10:1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din.co.kr/rhapsody/3271375</guid><description><![CDATA[&#160;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랩소디 인 베를린 (108)<br />
            <br />
            <br />
            
            
        
        
            <br />
            <br />
            <br />
            &#160;<br />
            <br />
            
            &#160;&#160; “나라와 나라, 집단과 집단 간의 충돌이었을 뿐이니까. 구체적인 개별자 간의 다툼이 아니었지. 그러나 지금 자네와 나는 개별자로, 구체적 이해 당사자로 만나고 있네. 내 가족 될 사람의 혈족, 그 인민들을 죽인 자가 바로 나 자신이 될 판일세. 자네만 아니라면 내가 어찌 군인으로서의 자부심을 탓하겠나. 그래서 자네에게도……내가 아닐 이유가 있는 거라네. 나 같은 사람이 자네의 장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br />
            &#160; &#160;“저를 가족으로 받아들이실 거였다면, 굳이 말씀하시지 않았을 내용이군요. 모르면 없는 거니까요. 아버님께선 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겁니다.”<br />
            &#160; &#160;“모른다고 없는 게 아니라네. 자네는 모르니까 없는 것일 수 있지. 나는 알고 있지 않은가. 알고 있다 뿐인가. 방첩부에 있을 때 나는 꼭 자네와 같은 젊은 조선 청년들을……다루었네. 다루었다고밖에 말할 수 없군.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으나, 그 일만은 나도 차마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네. 내 말의 의미를 알겠는가.”<br />
            &#160; &#160;하나코 아버지 눈에서 두꺼운 강판도 뚫을 것 같은 빛이 튀어나왔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그의 말이 거짓도 과장도 아니라는 걸 토마스는 알았다.<br />
            &#160; &#160;하나코 아버지는 회상 따위를 늘어놓는 게 아니었다. 억누름을 비집고 새어나오는, 어쩔 수 없는 치떨림 같은 거였다. 토마스도 그랬다. 그의 말을 알아들은 게 아니었다. 그의 눈빛과 호흡과 손끝의 떨림들이 전광석화보다 빠르게 토마스의 감관에 꽂혔을 뿐이다.<br />
            &#160; &#160;“저는 아버님을……아버님으로 받아들일 수……있습니다.”<br />
            &#160; &#160;하나코 아버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br />
            &#160; &#160;“다루었다는 말의 뜻을 자네는 모르는 거야. 심문하고 죽였다는 말일세. 그것도 수없이. 차마 자세히 말하기 싫네만, 자세히 말해도 자네 같은 사람은 결코 믿지 못할 걸세. 그 만큼 그 일은 전혀 딴판의 세상에서 벌어진 전혀 딴판의 참극이었어. 자네에겐 모든 게 꿈속 같은 얘기일지 모르나 나는 아니라네. 자네 앞에서라면 더욱. 자네와 난 가족이 될 수 없어. 부탁도 강요도 아니네.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없을 수밖에 없는 이치를, 자네에게 간곡히 말하는 것뿐이야.”<br />
            &#160; &#160;하나코 아버지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가족이 된다는 건 무리였다. 토마스는 생각했다. 하나코 아버지를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 거라고.<br />
            &#160; &#160;하나코 아버지 말을 들으면서, 사실이 아닐 거란 느낌은 전혀 없었다. 사고와 분석이 필요치 않은 대화였다. 말보다 훨씬 많은 내용의 직감이, 설명과 증명 없이 곧바로 전달되어 왔다.<br />
            &#160; &#160;늦봄의 먼 하늘과 아지랑이가 몸속 모든 수분을 증발시킬 것 같았다. 무엇보다 하나코와 헤어진다는 것, 상상할 수 없었다. 토마스는 몸속 마지막 숨을 짜내듯 말했다.<br />
            &#160; &#160;“아버님은 제게, 하나코의 아버님일 뿐입니다.”<br />
            <br />
            
            &#160;
            *&#160;
            <br />
            <br />
            
            &#160;&#160; 세 번째 만난 곳은 황거외원이 아니었다.<br />
            &#160;&#160; 신주쿠 프린스 호텔, 코지 바 한쪽 구석. 클리포드 브라운의 트럼펫이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오후 9시. 하나코 아버지는 미리 도착해 있었다. 약간 취한 듯했으나 정다운 목례로 토마스를 맞았다.<br />
            &#160;&#160; 포마드 바른 그의 머리카락이 붉은 조명을 받아 빛났다. 모자 쓰지 않은 모습은 처음이었다. 머릿결이 건강했다. 얼굴이 조금 길어 보였다.<br />
            &#160;&#160; “내가 이곳에서 만나자고 한 이유를……알겠나?” <br />
            &#160;&#160; 바텐더에게 손짓하며 그가 물었다. 같은 걸로 하겠습니다. 토마스가 말했다. 술은 휘발유 같았다. 쏟아지는 기침을 참을 수 없었다. 토마스 앞으로 물잔을 밀어주며 하나코 아버지가 살짝 웃었다.<br />
            &#160;&#160; 알 수 있었다. Smoke gets in your eyes. 하나코가 종종 불던 곡이었다. 클리포드 브라운, 수범한 성격의 바른생활 청년이었잖아. 다 불고 나서 하나코는 짓궂게 웃었다. 교복 입던 니가 떠올라.<br />
            &#160; &#160;“다른 바에선 말야, 이 곡을 찾을 수 없거든.”<br />
            &#160;&#160; 하나코 아버지가 말했다. 만 25세로 요절한 천재 트럼펫터. 토마스도 하나코도 스물 다섯이었다.<br />
            &#160; &#160;트럼펫이 문제였다. 토마스는 그리 생각했다. 그날, 모든 건 트럼펫 때문이었다고. 그 외엔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었노라고.<br />
            &#160; &#160;트럼펫은 흐느적거리다 매끄럽게 흐르곤 했다. 휘발성 강한 술향과 오색 조명과 함께, 심해 발광 어류처럼 어둑한 바의 허공을 헤집고 다녔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글리산도에 잠시 침잠했던 트럼펫이 서서히 지느러미를 움직여 수면 위로 부상했다가, 날렵하게 헤엄쳐 달아나곤 했다.<br />
            &#160; &#160;하나코 트럼펫을 받쳐주던 자신의 바이올린 반주를 토마스는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코가 그에게 불어주었던 첫곡이, 도심부 호텔의, 다소 선정적인 바에 흐르고 있었다.<br />
            &#160; &#160;마우스피스를 멋쩍게 물던 것과 달리, 하나코의 트럼펫은 처음부터 안정된 호흡을 유지했고 강약과 완급을 자신 있게 구사했다. 토마스는 케이스를 열고 바이올린을 꺼냈다. 들릴 듯 말듯하게 하나코 선율을 따라갔다.<br />
            &#160; &#160;기억에만 의존해 따라가는 토마스의 멜로디는 어설프고 서툴고 작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하나코의 트럼펫이 돋보였다. 하나코 눈길은 시종 트럼펫 벨 끝에 머물렀다. 토마스는 그녀의 고갯짓, 이마의 머리카락, 코끝에 맺히는 땀방울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활을 움직였었다.<br />
            &#160; &#160;그러나 늦은 저녁 어두운 바에는, 오리지널 클리포드 브라운이 고혹적인 유영을 계속하고 있었다. 토마스 앞에 앉아 있었던 것도 하나코가 아닌, 그녀의 아버지였다.<br />
            <br />
            
            &#160;<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계속)
            
            
        
    

<br />
<br />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paper/pimg_729921106506671.jpg</url><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271375</link></image></item><item><author>문학웹진뿔</author><category>랩소디 인 베를린</category><title>[구효서] 랩소디 인 베를린 - 107회</title><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268859</link><pubDate>Tue, 15 Dec 2009 10: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din.co.kr/rhapsody/3268859</guid><description><![CDATA[<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랩소디 인 베를린 (107)<br />
            <br />
            
            
        
        
            <br />
            <br />
            <br />
            <br />
            &#160;<br />
            
            &#160;&#160; 바이올린과 콘트라베이스를 위한 〈디 차이트Die Zeit〉. 그 곡 또한 처음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다른 모든 곡들이 그랬듯 멜로디 자체가 성립하지 않았으며, 짧든 길든 겨우 패턴이라 부를만한 소절이 이어지는가 싶으면 여지없이 방해받고 와해되었다.<br />
            &#160;&#160; 단선율이 숨막히게 떨며 이어지다 느닷없이 정지했고, 한 번 정지한 선율은 오래 침묵했으며, 먼 사이렌처럼 되살아나 점점 커지고 코앞에 다다라서는 덜커덕 끊겼다. 박자 따윈 애당초 없었다. 바이올린과 상관없는 듯한 콘트라베이스의 들끓는 혼돈과 암연(黯然), 격정의 반복저음이 그나마 질서처럼 느껴졌다. 겨우 안정을 찾을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였다.<br />
            &#160;&#160; 일곱 곡의 연주가 다 끝났을 때 여기저기서 격려와 응원의 박수가 터졌다. 그리고 홀은 곧 물을 뿌린 듯 조용해졌다. 기침 소리와 의자 접는 소리, 부스스 몸 일으키는 소리가 전부였다.<br />
            &#160;&#160;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br />
            &#160;&#160; 하나코는 일어서지 않았다.<br />
            &#160;&#160; 에밀리가 하나코를 바라보고 있었다.<br />
            &#160;&#160;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br />
            &#160;&#160; 에밀리가 무어라 말하는 것 같았다.<br />
            &#160;&#160; “마지막 곡은…초연이에요.”<br />
            &#160;&#160; 통역했다.<br />
            &#160;&#160; “아버지의 콜렉션에서 오래된 악보를 찾아냈죠.”<br />
            &#160;&#160; “알아요.”<br />
            &#160;&#160; 하나코가 대답했다.<br />
            &#160;&#160; 그녀의 눈에 물기가 어려 있었다.<br />
            &#160;&#160; 아무래도 좀 운 것 같았다.<br />
            &#160;&#160; “아는 곡이었나요?” <br />
            &#160;&#160; 에밀리가 물었다.<br />
            &#160;&#160; “〈세월이 가면〉. 맞죠?”<br />
            &#160;&#160; “〈세월〉이죠. 〈디 차이트〉.”<br />
            &#160;&#160; “〈세월이 가면〉이 맞아요. 콘트라베이스가 추가됐을 뿐……. 그의 첫 곡이에요.”<br />
            &#160;&#160; “…….”<br />
            &#160;&#160; “수없이 듣던 곡. 정말이지 지겹게 들었어.”<br />
            &#160;&#160; 하나코가 고개를 푹 떨구었다.<br />
            &#160;&#160; 에밀리가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에밀리를 바라보았다.<br />
            &#160;&#160; 30분 뒤. 학교 앞 카페에서 에밀리는 알게 되었다. 토마스가 말없이 독일로 떠나온 이유를 하나코가 여태껏 모르고 있었다는 걸. 나는 샌드위치를 먹었고, 에밀리와 하나코는 커피만 마셨다. 천천히.<br />
            <br />
            
            &#160;
            *&#160;
            <br />
            <br />
            
            &#160; &#160;“이런 말까진 하지 않으려 했네만.”<br />
            &#160; &#160;하나코 아버지가 말했다.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하나코 아버지는 두 번째 약속 장소도 황거외원, 안경다리 앞으로 잡았다.<br />
            &#160; &#160;토마스는 기다렸다.<br />
            &#160;&#160; “듣기 퍽 민망할 걸세. 털어놓지 않았으면 했네.”<br />
            &#160;&#160; “제가 알아야 하는 거라면 듣겠습니다.”<br />
            &#160;&#160; “꼭 알아야 하는 건 아니야. 지금이라도 자네가 내 원을 들어준다면, 나는 그냥 입을 다물겠네.”<br />
            &#160; &#160;“듣겠습니다.”<br />
            &#160; &#160;토마스는 짧고 빠르게 말했다. 그만큼 짧고 빠르게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하나코 아버지가 먼저 눈길을 돌렸다. 해자(垓子) 넘어 제국극장 쪽을 바라보았다. 중절모 앞챙이 그의 눈가에 그늘을 드리웠다.<br />
            &#160;&#160; “나는 한때 무송현성주)에 있었네. 중국 사람들은 길림성이라 하고 조선인들은 간도라 부르는 지역에 속한 성시였지. 가옥은 7천여 호, 주민은 2만 8천 명쯤 되었어.”<br />
            &#160;&#160; 토마스는 조선에 가본 적 없었다. 하나코 아버지가 전하는 지리 정보로는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었다. 더구나 간도라는 곳이었다. 아득한 상상의 공간일 뿐이었다.<br />
            &#160; &#160;“무송현성은 행정구역 명칭이었을 뿐, 나는 그곳을 그렇게 부르지 않았네. 장백근거지 적토벌사령부. 우리가 부르던 이름이었어. 그곳에는 일본 관동군 1개 대대와 만주군 1개 연대가 주둔하고 있었으니까. 물론 경찰과 자위단도. 나는 지역 관동군 소속 방첩부 첩보장교였다네. 나중에는 토벌에 직접 나서기도 했지만…….”<br />
            &#160; &#160;당시 장백산 일대에는 조선해방군이 십 여 개의 밀영(密營)을 설치하고 반일민족통일전선을 꾀했다고 말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전투가 벌어졌었노라고.<br />
            &#160;&#160; 하나코 아버지는 잠깐잠깐 말을 멈추었다. 토마스는 잠자코 들었다.<br />
            &#160; &#160;“당시의 전황과 전과를 지금은 양측에서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지 모르겠네만, 상대가 되질 않았지. 전투력 말일세. 병력수만 따져도 25대 1쯤 됐으니까. 일방적이었지. 무자비한 살육. 내게 남아 있는 기억이란 그것뿐이라네.”<br />
            &#160; &#160;“많은 조선인을……살육했다는 말이군요. 아버님께서.”<br />
            &#160; &#160;“일본이 나를 간도에 보낸 이유고, 내가 간도에 간 이유라네. 나는 군인이었고.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그 일을 했을 테지만, 내가 그때 그곳에 있었다는 거야. 스스로 지원한 일이었고, 지금도 그 일에 대해 후회 같은 건 하지 않네. 군인은 전장에서 적을 무찌른 것에 대해 자의식을 갖지 앉는다네. 자부심을 갖지. 모든 나라의 모든 군인이 그러하다네.”<br />
            &#160; 눈앞의 황거외원, 등 뒤의 아름다운 안경다리, 해자의 물빛. 그런 것들이 하나코 아버지의 말을 묘하게 북돋는 듯했다.<br />
            &#160; &#160;“굳이 숨길 일이 아니란 말씀이군요.”<br />
            &#160;
            <br />
            
            ------------------------------------<br />
            주) 에밀리의 기억과 발음이 분명치 않아 통역에 많은 애를 먹었다. 무송현성. 당시엔 나에게도 하나코에게도 정확한 정보가 아니었다.<br />
            <br />
            <br />
            
            &#160;<br />
            <br />
            
            <br />
            <br />
            <br />
            <br />
            
            계속)<br />
            
            
        
    

<br />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paper/pimg_729921106506671.jpg</url><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268859</link></image></item><item><author>문학웹진뿔</author><category>랩소디 인 베를린</category><title>[구효서] 랩소디 인 베를린 - 106회</title><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266401</link><pubDate>Mon, 14 Dec 2009 10: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din.co.kr/rhapsody/3266401</guid><description><![CDATA[<br />
<br />
<br />
<br />
<br />
<br />
<br />
&#160;
<br />
<br />



    
        
            <br />
            랩소디 인 베를린 (106)<br />
            
            
        
        
            <br />
            <br />
            <br />
            &#160;<br />
            
            &#160;<br />
            <br />
            
            &#160;&#160; 하나코를 사랑했으나 결혼을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이러다 시간이 가면 함께 살게 되는 거겠지. 막연했지만 또 그만큼 당연하게 여겼다. 당연하게 여겼던 만큼 두려움도 컸다. 생각이 구체적이지 않았던 건, 아직은 나이가 어리다고 스스로 인정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얼마간은 피해 있고 싶었던 문제이기도 했다. 아무려나 간단치 않을 거라는 건 짐작하고 있었다.<br />
            &#160;&#160; 언젠가는 다가올 상황이 하나코 아버지로 인해 갑자기 코앞에 놓였고, 아무 준비 없이 예 혹은 아니오로 대답해야 할 입장에 처한 거였다.<br />
            &#160; &#160;“아버님이 바라시는 조용한 이별. 그것 또한 진심으로 하나코를 위해 마음 쓰는 방식은 아닌 것 같습니다.”<br />
            &#160; &#160;아니오로 대답한 셈이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사라짐. 궁금증은 하나코에게 더 큰 고통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무엇 보다 토마스는 하나코와 헤어지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준비가 안 되어 있었을 뿐 아니라, 준비하기도 싫었다.<br />
            &#160; &#160;“하지만 결국……그리될 텐데.” <br />
            &#160;&#160; 하나코 아버지의 말에서는 힘 같은 게 느껴지지 않았다. 중절모 앞챙을 잠깐 만지작거렸다. 음색은 오히려 체념에 가까웠고, 눈빛엔 걱정이 가득했다.<br />
            &#160; &#160;돌아서 멀어지는 하나코 아버지의 쓸쓸한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제야 토마스는 그곳이 황거외원(皇居外苑)의 안경다리 앞이라는 사실을 알았다.<br />
            <br />
            
            &#160;
            *&#160;
            <br />
            <br />
            
            &#160;&#160; 에밀리가 한 말이었다.<br />
            &#160;&#160; 그녀가 불쑥 하나코 아버지의 안부를 물었던 적이 있었다.<br />
            &#160; &#160;‘부친께서는……안녕하신지요?’<br />
            &#160;&#160; 처음 에밀리 집을 방문했던 날이었다. 키르호프씨 죽음의 충격 때문에 헛말이 나온 거라 여겼었다.<br />
            &#160;&#160; 비로소 나와 하나코는 까닭을 알 수 있었다. 하나코가 모르는 이야기를 에밀리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토마스가 말없이 독일로 떠나온 이유. 거기엔 하나코 아버지가 있었다.<br />
            &#160;&#160; 40년 동안 그 사실을 하나코가 모르고 있었다는 걸, 에밀리는 얼른 믿지 못했다.<br />
            <br />
            
            &#160;
            *&#160;
            <br />
            <br />
            
            &#160;&#160; 에밀리도 연주회장에 와 있었다. 그녀를 두 번째 보는 거였다. 본격 연주회가 아니었다. 10월에 있을 베를린축제주간에 참가할 곡을 선정하고 연습하는 자리였다.<br />
            &#160;&#160; 베를린 음대 소강당. 콘라드 멕바흐 씨가 총감독을 맡았다. 일곱 곡의 레퍼토리가 차례로 연주되었다. 그 중 다섯 곡이 김상호 것이었다. 대학 내 축제준비 관계자들과 학생들이 참석했다. 곡이 끝날 때마다 간단한 토론이 이어졌다.<br />
            &#160;&#160; 선정되고 연습된 곡들 중 네 곡은 축제기간 동안 베를린 필하모닉 실내악 홀에서, 나머지 세 곡은 다름슈타트 시향 홀에서 연주될 예정이었다. 그 뒤 부라운슈바이크 시립관현악 홀과 스위스 바젤 실내악 연주협회의 초청에 응할 계획이었다.<br />
            &#160;&#160; 김상호를 기억하는 사람들, 생전에 그의 곡을 연주하고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작곡가의 유고를 알리고 추모하자는 게 멕바흐 씨 생각이었다. 일곱 곡 중 다섯 곡을 김상호 것으로 구성한 이유였다. 하나코를 초청한 이유였다.<br />
            &#160;&#160; 김상호의 몇몇 대학 동기들, 함께 일했던 방송국과 시향 동료들이 어두운 객석을 메우고 있었다. 홀이 작고 학생들의 참여가 많아 연주회장은 다행히 쓸쓸하지는 않았다.<br />
            &#160;&#160; 연습이 진행되는 동안 하나코는 오른손으로 시종 자신의 작은 턱을 감싸고 있었다. 그녀의 왼쪽에는 내가, 오른쪽에는 에밀리가 앉았다. 박수를 치기 위해 곡이 끝날 때마다 턱에서 잠시 손을 떼었을 뿐, 하나코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심각하거나 침울해 보이진 않았다.<br />
            &#160;&#160; 오라닌부르크 역에서 사라졌던 하나코는 다음 날 오후 2시에 숙소로 돌아왔다.<br />
            &#160; &#160;“어딜 갔었어요?” <br />
            &#160;&#160; TNF를 거의 다 읽어가고 있을 때였다.<br />
            &#160; &#160;“그걸 알려줄 거였으면 사라지지도 않았지.”<br />
            &#160; &#160;거만하면서도 담담한 건 여전했다.<br />
            &#160; &#160;“독일에 숨겨놓은 애인이라도 있는 거예요?”<br />
            &#160; &#160;하나코는 나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았다.<br />
            &#160; &#160;“이구노는 전혀 안 어울리거든. 농담 같은 거.”<br />
            &#160; &#160;“하나코도&#160; 안 어울리거든요. 그렇게 사라지는 거.”<br />
            &#160; &#160;“어울려.”<br />
            &#160; &#160;“안 어울려요.”<br />
            &#160;&#160; 제 모습으로 영락없이 되돌아온 하나코가 반갑고 얄미웠다. 휴대폰 안고 나 혼자 지새웠던 전날 밤을 떠올리자 공연히 머쓱해졌다. 그렇게 그 일은 지나갔다.<br />
            &#160;&#160; 삶이여 헐벗으라, 는 부제의 실내협주곡이 연주되는 동안 한차례 나와 잠깐 눈을 마주쳤을 뿐, 하나코는 시종 같은 자세로 무대를 바라보았다. 오른손으로 작은 턱을 받친 채.<br />
            &#160;&#160; 멕바흐 씨의 매우 자세하면서도 간곡한 지적, 지휘자의 성실한 진행과 연주자들의 정성, 짧지만 밀도 있게 오가는 토론이 여느 정식 연주회와는 다른 느낌을 주었다. 본격 연주회가 연회의 성찬이라면, 엄숙하면서도 다이내믹한 분위기의 로열 키친 같은 게 리허설이었다.<br />
            &#160;&#160; 연습은 긴장 속에 진행되었다. 특히 김상호 곡이 그랬다. 선율은 무대와 객석을 넘나들며 일찌감치 경계를 지웠다. 활밑 말총으로 바이올린 브리지와 줄걸이판 사이의 E현을 긁을 때는 귀가 쭈뼛거렸다. 거길 긁다니!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br />
            &#160;&#160; 두 개의 플루트가 절묘하게 주고받으며 단소와 대금의 장식음 효과를 냈다. 팀파니 주자가 거꾸로 쥔 북채로 실벌즈를 내려칠 때는 총알이 튀듯 어지러웠다.<br />
            &#160;&#160; 가만히 앉아 듣기 쉽지 않은 곡들이었다. 나는 좌불안석, 눈과 귀를 어느 곳에 두어야 할지 몰랐다. 사방에서 밀고 당겨 저절로 몸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트롬본이 튀어나올 때마다 옆구리와 배가 진동했다. 악기가 공간을 울리는 게 아니라, 공간의 격렬한 몸부림이 악기를 떨게 했다.<br />
            &#160;&#160; 호흡마저 고르게 유지하기 힘들었으나 대부분의 관객은 조용히 자리를 차지한 채 눈만 말똥말똥 뜨고 있었다. 에밀리도 하나코도 그랬다. 마지막 일곱 번째 곡에서야 나는 겨우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br />
            <br />
            <br />
            <br />
            <br />
            
            계속)
            
        
    


&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paper/pimg_729921106504901.jpg</url><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266401</link></image></item><item><author>문학웹진뿔</author><category>랩소디 인 베를린</category><title>[구효서] 랩소디 인 베를린 - 105회</title><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260881</link><pubDate>Fri, 11 Dec 2009 10: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din.co.kr/rhapsody/3260881</guid><description><![CDATA[&#160;
&#160;<br />
<br />
&#160;<br />
<br />
&#160;<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랩소디 인 베를린 (105)<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160;
            &#160;&#160; 자신에 대한 노골적인 경계와 보란 듯 감위(敢爲)하던 레아와의 관계. 때맞춰 반복되는 교회법정의 호출. 숨겨왔던 합주협주곡 악보…….<br />
            &#160;&#160; 아이블링거는 힌터마이어에게 사보(寫譜)를 맡기지 않았다. 렘케와 키제베터에게도 맡기지 않았다. 궁정 악단 사보가에게 일임했다. 전에 없던 일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경연에 참가할 아이블링거의 새 창작곡. 힌터마이어 것이었다.<br />
            &#160;&#160; 지난 가을 아이블링거에게 검토를 의뢰했던 F, C장조 파르티타와 D장조 판타지아. 자넨 이런 식으로 계속 밀고 나갈 모양이로군……. 그 말뿐이었다. 하지만 아이블링거는 바로 그 곡들을 핵심으로 하여 변주로 에두른 세 개의 악장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드레스덴 새 카펠마이스터가 되기 위해 아이블링거가 감행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절취(竊取). 그의 눈먼 탐욕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하게 했다.<br />
            &#160;&#160; 힌터마이어가 궁지로 내몰리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였다. 당초부터 드레스덴에 함께 갈 수 없게 돼 있었다. 종당엔 바이마르에도, 그 어디에도 머물 수 없게 된 까닭이었다.<br />
            &#160;&#160; 드레스덴에 함께 갈 수 없노라 단호하게 말했던 건 그 때문이었다.<br />
            &#160;&#160; 그것은 제 곡이지 않습니까?<br />
            &#160;&#160; 힌터마이어는 그리 말하지 못했다. 아이블링거의 간책을 공격하지 못했다. 두려울 것은 없었다. 두려움 보다 더 큰 충격이 있었다.<br />
            &#160;&#160; 환멸…….<br />
            &#160;&#160; 그것이 오금을 후려쳤다. 크고 예리한 칼이 무릎 하나를 벴다. 환멸을 가져온 게 다름 아닌 아무 까닭도 실속도 없던 자신의 환상이었다는 깨달음이 나머지 무릎을 도려냈다. 그는 휘청거렸다.<br />
            &#160;&#160; 대적할 수 없는 거대한 허망함이 비틀거리는 힌터마이어 몸을 덮쳤다. 검은 안개가 되어 몸 안에서 소용돌이쳤다. 기운과 의욕을 남김없이 헤집어 빼앗아 갔다. 그렇게 비워지고 있었다. 노이에 교회의 풀무꾼으로. 슈바르츠발트의 어린 농사꾼으로. 텅 비어 차라리 홀가분한 거푸집으로. 가벼운 깃털로.<br />
            &#160;&#160; 먼저 가시지요. 법원 청문이 끝나면, 우편마차로 뒤따르겠습니다.<br />
            &#160;&#160; 그들을 보내기 위한 거짓말이라는 걸 힌터마이어만 알았다. 아이블링거가 고삐를 잡았고, 곁에 레아가 탔다. 키제베터는 뒷자리에 앉았다.<br />
            &#160;&#160; 그들이 멀어져 갔다. 아이블링거 흰 가발 끝에 매달린 검정리본, 레아의 모자 위로 솟은 깃털장식이 흔들렸다. 뒷좌석의 키제베터가 힌터마이어를 향해 손을 들어 보였다.<br />
            &#160;&#160; 안녕Ade. 힌터마이어는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다시 못 볼 선생의 마지막 모습, 다정스런 키제베터, 그리고 차마 애틋하고 안타까운 레아를 향해. 집에 있을 듬직한 렘케에게도. 그들과 함께 했던 세월에 비해, 안녕, 그것은 너무도 짧은 인사였다. <br />
            &#160;&#160; 힌터마이어는 교회법정으로 향하지 않았다. 축출되든 유대인 강제 구역에 갇히든 도망치든, 결과는 하나였다. 마이마르에 더 이상 머물 수 없다는 것. 힌터마이어 자신은 물론이고 아이블링거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태는 아이블링거 손을 떠났고 그는 강 맞은편에 서 있었다. 아이블링거 스스로 강을 건넘으로써 오히려 힌터마이어가 강을 넘는 결과를 낳았다.<br />
            &#160;&#160; 자네가 세상에 없다는 건 음악에게 큰 손해일 것 같아 그랬네…….<br />
            &#160;&#160; 누구에게 손해였을지가 분명해졌다. 거짓된 말에 감복하여 바이마르로 되돌아온 자신의 용렬함에 치를 떨 수조차 없었다. 음악이란 명분으로 지탱되던 자신의 헛된 꿈을 봤기 때문이었다. 음악이 전부였다면, 음악은 또한 음악일 뿐이었다.<br />
            &#160;&#160; 갑자기 유령 같아진 바이마르를, 힌터마이어는 등졌다. 그리고 언제 멈출지 모를 발걸음을 떼었다. 그리된 거였다.
            &#160;<br />
            <br />
            
            &#160;<br />
            <br />
            
            &#160;13. Das ist mein<br />
            <br />
            
            &#160;<br />
            <br />
            
            <br />
            *<br />
            <br />
            
            &#160;<br />
            <br />
            
            &#160;<br />
            <br />
            
            &#160;&#160; 토마스는 대답하지 못했다.<br />
            &#160; &#160;“그리해 주게나.”<br />
            &#160;&#160; 하나코 아버지의 눈빛은 간절했다. 거짓이나 위선, 강요와 위협 같은 건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토마스는 더욱 입을 열 수 없었다.<br />
            &#160;&#160; 토마스 혼자 결정하여 답할 일이 아니었다. 아니라고 생각했다.<br />
            &#160;&#160; “하나코 의견도…중요합니다.”<br />
            &#160;&#160; 하나코도 알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하나코는 그 자리에 없었다.<br />
            &#160; &#160;“하나코가 모르도록 하는 것. 그것이 진심으로 하나코를 위해 마음 쓰는 일이란 걸 모르겠나? 고통스러운 것 보다는 궁금한 게 낫다는 말일세.”<br />
            &#160;&#160;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사라져버린다면, 하나코는 궁금해할 뿐 고통스럽진 않을까. 하나코 아버지 말에 토마스는 얼른 동의할 수 없었다. 그래서 또한 대답할 수 없었다.<br />
            &#160;&#160; 하나코 아버지의 요구는 지나칠 만큼, 슬플 만큼 솔직하고 결연했다. 조선인을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 헤어져 달라는 것.<br />
            &#160;&#160; 이유는 묻거나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거였다. 하나코 아버지로선 다만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그래서 말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고, 말하되 분명하고 확고하게 했을 뿐이었다. 듣지 않아도 이유를 알 수 있었던 토마스였으나, 막상 듣고 나니 견딜 수 없이 가슴이 아팠다.<br />
            <br />
            &#160;<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계속)<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paper/pimg_729921106504901.jpg</url><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260881</link></image></item><item><author>문학웹진뿔</author><category>랩소디 인 베를린</category><title>[구효서] 랩소디 인 베를린 - 104회</title><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258671</link><pubDate>Thu, 10 Dec 2009 11: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din.co.kr/rhapsody/3258671</guid><description><![CDATA[&#160;
&#160;<br />
<br />
&#160;<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랩소디 인 베를린 (104)<br />
            <br />
            <br />
            <br />
            <br />
            
            
        
        
            <br />
            &#160;<br />
            <br />
            
            *<br />
            <br />
            
            &#160;<br />
            <br />
            
            &#160; &#160;“슈타인도르프가 한 말. 무슨 뜻인지 알아들은 거예요?”<br />
            &#160; &#160;내가 물었다.<br />
            &#160; &#160;슈타인도르프의 집을 나와 어두워진 거리를 걸었다.<br />
            &#160; &#160;“이구노.”<br />
            &#160; &#160;“네.”<br />
            &#160; &#160;“오늘은 혼자 숙소로 돌아가.”<br />
            &#160; &#160;“네?”<br />
            &#160; &#160;“좀 혼자 있고 싶어.”<br />
            &#160; &#160;“…….”<br />
            &#160; &#160;“그렇게 해.”<br />
            &#160;&#160; “괜찮…겠어요?” <br />
            &#160;&#160; “누가 날 잡아먹겠니?” <br />
            &#160;&#160; “언제까지요?”<br />
            &#160; &#160;“언제까지든.”<br />
            &#160;&#160; “왜요?” <br />
            &#160;&#160; 하나코는 대답하지 않았다.<br />
            &#160; &#160;“왜 그러는데요?” <br />
            &#160;&#160; 나를 그윽이 올려다보며 그녀가 말했다.<br />
            &#160; &#160;“내 곁에 있는 누구든 죽여 버릴 것 같아서 그래. 그러니 놔둬.”<br />
            &#160; &#160;“대체 슈타인도르프한테서 뭘 알아들은 거예요?” <br />
            &#160;&#160; 하나코는 말하지 않았다. 혼자 빠른 걸음으로 앞서 나아갔다.<br />
            &#160;&#160; 역사를 지나쳤다. 그곳은 어둠이었다. 곁에 정말 아무도 없길 그녀는 바라는 것일까. 누구든 죽이려는 게 아니라 자신이 죽으려는 건 아닐까. 어쩌면 어둠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파묻혀 울 어둠.<br />
            &#160;&#160; 역 앞 철책에 기대어 나는 그녀가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무엇으로도 그녀를 만류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럴 수 있을지 없을지는, 뇌가 아닌 온몸의 세포가 불시에 알아차리는 거였다.<br />
            &#160;&#160; 나는 그날 숙소로 돌아가지 않고 오래도록 오라닌부르크 역 벤치에 앉아 있었다. 새벽이 되어 인근 숙박업소에 들었다. 침대에 누웠으나 잠은 오지 않았다. 하나코와 겐타로를 떠올렸다. 휴대폰을 꼭 안고 밤을 새웠다. 창문이 서서히 밝아올 때 눈물을 흘리고 있던 것은 나였다.&#160;
            <br />
            <br />
            
            *<br />
            <br />
            
            &#160;<br />
            <br />
            
            &#160; &#160;∠<br />
            &#160; &#160;힌터마이어는 바이마르를 떠났다. 그가 어디로 갔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힌터마이어 자신도 어디로 향하는지 알지 못했다. 바이마르를 떠난 것은 분명했다.<br />
            &#160;&#160; 작센의 경계를 지나, 라베Labe강을 따라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갔다. 걸으면 덥고, 멈추면 온몸이 얼어붙었다. 토마스 코예트는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3천 5백 마일을 걸었다. 어쩌면 힌터마이어 앞에도 그만한 세월과 그만한 길이 놓여 있을지도 몰랐다.<br />
            &#160; &#160;길 위에서 힌터마이어는 자신의 입으로 얘기했던 추르마을을 만날지도 몰랐다. 하늘 덮는 검은 물떼새의 군무, 가슴 구멍에 뱀을 키우는 원숭이, 금과 옥이 흙 밖으로 쌓인 산, 어마어마한 새의 날개 그늘, 흰 옷 입고 돌 던지는 백성들을 만날지도.<br />
            &#160; &#160;그 겨울, 드레스덴에서는 경연(競演)이 펼쳐지고 있었다. 드레스덴 궁정 각료 크리스찬 니콜라우스 암머바흐Christian Nicolaus Ammerbach백작이 주선한 음악회였다.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1세Friedrich AugustⅠ의 직위를 계승할 왕세자 책봉 기념 연주회였다.주)<br />
            &#160;&#160; 명분은 그러했다. 내막은 달랐다. 드레스덴 궁정 카펠마이스터가 숙환으로 와병 중이었다. 뒤를 이을 인물이 필요했다. 작센․안할트, 브란덴부르크, 튀링겐, 바이에른, 헤센의 영향력 있는 음악가들에게 편지를 보내 연주회에 참여해 줄 것을 청했다.<br />
            &#160;&#160; 초청받은 사람들은 암머바흐 백작의 계획을 모르지 않았다. 드레스덴의 궁정 카펠마이스터가 된다는 것은 음악가로서 모든 것을 이룬다는 것을 뜻했다. 저마다 최고의 곡을 준비했다. 어떠한 과제곡도 즉흥적으로 연주할 수 있게 수없는 동기Motiv들을 익혔다. 경연이었다.<br />
            &#160;&#160; 경연이 진행될 곳은 거대한 종 모양의 푸라우엔 교회Frauenkirche였다. 어느 오페라 하우스에도 뒤지지 않는 멋진 회랑과 회중석을 갖춘 교회였다. 이틀에 걸쳐 여덟 명의 비르투오조가 즉흥곡과 기악곡으로 기량을 뽐내게 돼 있었다.<br />
            &#160;&#160; 초청 명단에는 각 주의 이름난 고위 궁정 악사들이 포진해 있었다. 드레스덴 사정에 정통한 미하엘 벡크만이 있었고, 그의 최대 적수인 안드레아스 아이블링거가 있었다.<br />
            &#160;&#160; 선제후 종친과 귀족들이 몰려들었다. 드레스덴 궁정 악단원과 교회 성직자, 시의회 의원과 법관, 궁정 화랑 책임자와 도자기 관리 담당까지, 회중석을 가득 메웠다. 그 속에 키제베터도 있었다. 레아도 있었다. 힌터마이어는 없었다.<br />
            <br />
            <br />
            
            <br />
            &#160;&#160; ∠<br />
            &#160; &#160;교회법정에 출두해야 한다고, 힌터마이어는 단호하게 말했다.<br />
            &#160; &#160;대체 무엇 때문에 자꾸 그리한다던가?<br />
            &#160;&#160; 드레스덴으로 향하던 날 아이블링거가 물었다.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br />
            &#160;&#160; 힌터마이어는 대답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연유를 잘 알고 있을 아이블링거였다. 시치미 떼는 아이블링거에겐 아무것도 고할 게 없었다.<br />
            <br />
            <br />
            
            &#160;&#160;
            &#160;
            <br />
            <br />
            
            ------------------------------<br />
            주)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1세는 평생 360여 명의 자식을 두었다. 왕세자 책봉의 의미, 그리고 기념연주회 성격과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br />
            <br />
            &#160;
            <br />
            <br />
            <br />
            <br />
            
            계속)<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paper/pimg_729921106504901.jpg</url><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258671</link></image></item><item><author>문학웹진뿔</author><category>랩소디 인 베를린</category><title>[구효서] 랩소디 인 베를린 - 103회</title><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256187</link><pubDate>Wed, 09 Dec 2009 11: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din.co.kr/rhapsody/3256187</guid><description><![CDATA[&#160;
&#160;<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랩소디 인 베를린 (103)<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160;<br />
            <br />
            
            &#160;&#160; 좀처럼 하나코 음성은 생기를 찾지 못했다.<br />
            &#160; &#160;“뱀 얘기 말인데요.”<br />
            &#160;&#160; 그러나 가까스로 하는 말은 아니었다. 깊이 침잠해 있었을 뿐.<br />
            &#160; &#160;“랩소디……. 어째서 다른 곳도 아닌, 베를린이었을까? 랩소디 인 베를린.” <br />
            &#160;&#160; “그거야…….”<br />
            &#160;&#160; 슈타인도르프가 말했다.<br />
            &#160;&#160; “베를린이니까. 작센하우젠. 그거 베를린에 있소.”<br />
            &#160; &#160;“푸랑크푸르트가 아니고요?” <br />
            &#160;&#160; 하나코가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유년의 괴테가 자주 산책했었다던, 프랑크푸르트 마인강 대교 건너편 작센하우젠을 떠올렸다.<br />
            &#160; &#160;“그 작센하우젠이 아니라, 바로 곁에 있는 작센하우젠.”<br />
            &#160; &#160;그가 말했다.<br />
            &#160; &#160;“바로 곁……?” <br />
            &#160;&#160; “그렇소. 여기서 걸어서 3분이면 간다오. 물론 나라면 5분쯤 걸리겠지.”<br />
            &#160;&#160; “작센하우젠을 바로 곁에 두고 랩소디 인 베를린 같은 걸 쓴다?”<br />
            &#160;&#160; “하루에 한 번 그곳으로 산책을 하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내 외로운 다리를 위해. 그리고 나의 일을 위해. 다짐과 기억을 잊지 않고, 벼리기 위해.”<br />
            &#160;&#160; 그는 큰 소리로 말하지도 않았고, 웃지도 않았다. 창 밖에 어둠이 내렸고, 방 안의 목향이 더 짙어졌다.<br />
            &#160;&#160; “그랬군요.”<br />
            &#160;&#160; “그렇소. 내 다짐과 기억, 의식과 의지는 3분이면 다다를 곳에 늘 준비돼 있소. 그곳이 미국이든 일본이든 한국이든, 내가 듣고 묻고 써야할 것이 있다면, 그래서 3분이면 선연하게 가 닿을 수 있는 거라오.”<br />
            &#160; &#160;“슈타인도르프 씨.”<br />
            &#160; &#160;하나코가 고개를 들었다. 조금은 결연해진 눈빛.<br />
            &#160; &#160;“말하시오.”<br />
            &#160; &#160;“나는 토마스에 대해 알고 싶어 왔어요. 도쿄에서. 내 나이 올해 예순 일곱이라오.”<br />
            &#160; &#160;“유감스럽게도 토마스는 베를린에서 죽었고, 이후 하나코가 다시 베를린을 찾을 기회는 없을지도 모른다?” <br />
            &#160;&#160; “그래요. 그는 죽었지요. 다시는 그를 만날 수 없어요. 40년 동안 만나지 못했죠. 그런 내가 여기엘 왜 왔을까. 어째서 죽었는지, 그 이유를 아는 것은 내가 나를 아는 일이기도 해요. 죽기 전 토마스가 말했다는군요. 그가 평생 가 닿고자 했던 곳이 이 하나코였노라고……. 물론, 한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당신의 원고를 통해 얼마쯤은 알게 되었어요. 더 들을 수 없을 만큼 충분히 아프고요. 하지만 죽음의 이유를 알아야 풀릴 것 같아요. 그가 누구인지,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 그에게 있어 내가 무엇이었는지를.”<br />
            &#160;&#160; 하나코 음성은 낮고 작았으나 한 마디 한 마디 뱉어낼 때마다 그녀의 몸에서 뭔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절실함이 밴, 허스키한 섬유질 숨결이라 더 그랬다. 전에 없이 힘들어 보였다.<br />
            &#160; &#160;“내 일에 관련하여 내가 지켜야 할 진술자의 프라이버시를 더 이상은 노설(露洩)할 수 없소.”<br />
            &#160; &#160;슈타인도르프가 말했다.<br />
            &#160; &#160;“그런 걸 원하는 게 아니에요. 어째서 토마스가 스스로 세상을 하직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지, 그게 궁금한 거예요.”<br />
            &#160; &#160;“내면의 이유를 내가 알 리 없지요. 조심스러운 거요. 정확할 수도 없고. 그러니 어찌 내가 말할 수 있겠소. 계기라면 모를까.”<br />
            &#160; &#160;“내가 알고 싶은 게……계기에요.”<br />
            &#160; &#160;하나코 음성이 더 낮게 가라앉았다.<br />
            &#160; &#160;슈타인도르프는 잠시 침묵했다. 하나코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하나코도 그의 눈을 마주 바라보았다. 열기 같기도 하고 빛 같기도 한 것이 그들 사이에 빠르게 오갔다.<br />
            &#160; &#160;“하나코.”<br />
            &#160; &#160;그녀에게서 눈길을 거두지 않은 채 슈타인도르프가 입을 열었다. 과장되게 팔을 벌리고 큰 소리로 웃는 슈타인도르프는 어디에도 없었다.<br />
            &#160;&#160; 하나코는 기다렸다.<br />
            &#160; &#160;“나는……다 말했소. 당신이 그 이유와 계기를 짐작할 수 있다면, 아마 그것은 내가 한 말 때문일 거요.”<br />
            &#160; &#160;“듣지 못했어요.”<br />
            &#160; &#160;하나코도 그에게서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br />
            &#160; &#160;“나는……다 말했소. 당장은 듣지 못했다고 할지 모르나, 알게 된다면, 나에게 들어서일 거요.”<br />
            &#160; &#160;주고받는 두 사람의 시선에서 빛이 튀었다. 그렇게 서로를 오래도록 응시했다. 하나코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br />
            &#160; &#160;의자에서 일어서려던 하나코가 휘청거렸다. 나는 그녀에게 달려가 부축했다.<br />
            <br />
            <br />
            
            계속)<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paper/pimg_729921106504901.jpg</url><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256187</link></image></item><item><author>문학웹진뿔</author><category>랩소디 인 베를린</category><title>[구효서] 랩소디 인 베를린 - 102회</title><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253305</link><pubDate>Tue, 08 Dec 2009 10: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din.co.kr/rhapsody/3253305</guid><description><![CDATA[&#160;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랩소디 인 베를린 (102)<br />
            <br />
            <br />
            
            
        
        
            <br />
            &#160;&#160; 빛을 창조한 신조차 어찌할 수 없는 그늘 생성의 이치. 그 안에 도사린 악귀의 모진 저주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아이블링거. 레아의 참담. 그것이, 그것이 뒤엎을 수도 돌이킬 수도 없는 궁지로 힌터마이어를 몰아넣은 것일까. 네 권의 책이. 레아의 애틋한 눈길이.<br />
            &#160;&#160; 아이블링거의, 죽고 거듭나는 차원의 선처를 기대할 수 없다면 작금의 사정과 형편은 달라질 수 없었다. 아니었다. 이미 그것도 늦었다. 사태는 아이블링거 손마저 떠나 교회법원 수중에 있었다. <br />
            &#160;&#160; 아이블링거는 강 저쪽에 있었다. 힌터마이어는 이쪽에 있었다. 힌터마이어가 강 저쪽에 있고 아이블링거가 강 이쪽에 있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힌터마이어는 아이블링거에 의해 강 저쪽으로 밀려난 거였다.<br />
            &#160;&#160; 그것이 아이블링거의 역륜(逆倫)과 그에 대한 과도한 집착 탓이든 아니든, 힌터마이어의 이름이 키르케이고, 가족과 조상에 대해 해명할 수 없고, 교회법정에서 거짓 없이 고한 이상, 타의든 자의든 힌터마이어의 거처는 더 이상 빌헬름부르크가 될 수 없었다. 바이마르가 아니었다. 레아의 곁이 아니었다.<br />
            <br />
            
            <br />
            &#160;&#160; ∠<br />
            &#160;&#160; 힌터마이어 맘 따위 아랑곳 않고 크고 부드러운 눈송이들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다. 어두워진 거리엔 바람 한 점 없었다. 느리게 내려앉은 눈송이가 힌터마이어의 더워진 뺨에서 눈물처럼 흘렀다.<br />
            &#160;&#160; 아이블링거는 그의 방에 없었다.<br />
            &#160;&#160; 우두커니 서서 창밖 풍경을 바라보았다.<br />
            &#160;&#160; 방을 나오려다 책상 위의 악보에 눈길이 머물렀다.<br />
            &#160;&#160; 아이블링거의 새 합주협주곡이었다.<br />
            &#160;&#160; 얼마 후, 계단을 오르는 아이블링거 발짝 소리가 들렸다. 힌터마이어는 쓰러지듯 방에서 나왔다.<br />
            &#160;&#160; 눈 치우려면 고생 깨나 하겠는 걸.<br />
            &#160;&#160; 아이블링거가 말했다. 내리는 눈이 싫지 않은 기색이었다. 음성은 맑고, 다소 높았다.<br />
            &#160;&#160; 교회법원엔 왜? 어째서 날 부르지 않고 자넬 불렀다던가?<br />
            &#160;&#160; 힌터마이어는 대답하지 않았다.<br />
            &#160;&#160; 나에게 전할 게 있었다던가?<br />
            &#160;&#160; 그의 음성은 여전히 상기돼 있었다. 탐스러운 눈 때문인 듯했다.&#160;&#160; <br />
            &#160;&#160; 힌터마이어는 대답하지 못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사람처럼 흐느적 흐느적 계단을 내려갔다.<br />
            &#160;&#160; 이보게, 요한. 요한!<br />
            &#160;&#160; 힌터마이어는 그의 외침을 아득히 느꼈다. 눈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뒤돌아보지 않았다.<br />
            &#160;&#160; 무언가 확연해졌지만, 힌터마이어는 몽롱함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헤어날 수 없다는 걸 다행으로 여겼다.<br />
            &#160;&#160; 그의 넋은 이미 바이마르 눈 내리는 하늘을 벗어나고 있었다. 행적을 추적할 수 없는 곳……. 그가 행할 곳이었고, 아이블링거가 원하는 곳이었다. 확연한 건 그거였다. 모든 게 레아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것.<br />
            &#160;
            <br />
            
            *<br />
            <br />
            
            &#160;<br />
            <br />
            
            &#160;&#160; 하나코가 입을 떼는 데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다.<br />
            &#160;&#160; 나는 원고를 덮었다.<br />
            &#160; &#160;슈타인도르프는 하나코를 바라보았다.<br />
            &#160;&#160; 하나코는 지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유람선의 이물간, 높은 뱃머리에 앉아 먼 수평선이라도 바라보는 듯했다. 푸른 하늘, 떠가는 구름, 잔잔한 창해(滄海), 비틀 듯 울음을 토하고 멀어지는 바닷새들. 하나코는 그런 것들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바라보는 것 같았다.<br />
            &#160;&#160; 생명의 기운이 모조리 새나가 버린 거푸집. 건드리면 구겨질 것처럼, 하나코는 가볍고 위태로웠다. 이탈한 넋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원고를 덮고 한동안 그녀를 바라보았다. 슈타인도르프도 말이 없었다.<br />
            &#160;&#160; 내 휴대폰이 울렸다. 벨 소리가 방 안의 적막을 잠시 흔들었다. 라인고우 멕바흐 씨였다.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전하겠습니다, 나는 가만히 말하고 폴더를 닫았다.&#160;
            <br />
            <br />
            
            *&#160;
            
            <br />
            <br />
            
            
            &#160;&#160; 하나코는 한참을 더 그렇게 앉아 있었다. 눈 뜬 채 깊은 잠에 빠져 든 듯했던 그녀가, 마침내 부스스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조용히 물었다. 아주 조용하게. 네 가지였다. 둘은 나에게, 나머지 둘은 슈타인도르프 씨에게.<br />
            &#160;&#160; “누구?” <br />
            &#160;&#160; “멕바흐 씨입니다.” <br />
            &#160;&#160; 하나코는 이어 묻지 않았다.<br />
            &#160; &#160;“연주회에……초청한답니다.”<br />
            &#160;&#160; 내가 말했다. 하나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깊은 숨을 몰아쉰 뒤 입을 열었다.<br />
            &#160; &#160;“아까…….” <br />
            &#160;&#160; 나는 기다렸다.<br />
            &#160; &#160;“책장에서 뭘 본 거지?”<br />
            &#160; &#160;내가 한동안 책장에 눈길을 빼앗겼던 걸 그녀는 기억하고 있었다.<br />
            &#160; &#160;“이거에요.”<br />
            &#160; &#160;책장에서 얇은 책 한 권을 뽑아 그녀에게 내밀었다.<br />
            &#160; &#160;“뭐라 적혀 있는 건데?” <br />
            &#160;&#160; 하나코는 표지를 내려다보았다.<br />
            &#160; &#160;“……”<br />
            &#160;&#160; 나는 얼른 말하지 못했다.<br />
            &#160; &#160;“삶이여 헐벗으라!”<br />
            &#160; &#160;슈타인도르프가 말했다. 그의 음성도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전에 없던 짙은 목향이 방안에 감돌았다.<br />
            &#160; &#160;하나코 눈빛이 잠시 반짝 빛났다.<br />
            &#160; &#160;“삶이여 헐벗으라……?” <br />
            &#160;&#160; “크로이츠베르크에 사는 괴짜 시인이지. 보통 사람은 그를 감당하지 못해요. 시인을 아시오?” <br />
            &#160;&#160; 하나코는 대답하지 않았다. 삶이여 헐벗으라……. 그 말을 입속으로 중얼거렸을 뿐이다. 나나 하나코나 그를 안다고 말할 순 없었다.<br />
            <br />
            <br />
            <br />
            <br />
            <br />
            
            계속)<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paper/pimg_729921106504901.jpg</url><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253305</link></image></item><item><author>문학웹진뿔</author><category>랩소디 인 베를린</category><title>[구효서] 랩소디 인 베를린 - 101회</title><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250062</link><pubDate>Mon, 07 Dec 2009 11:1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din.co.kr/rhapsody/3250062</guid><description><![CDATA[<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랩소디 인 베를린 (101)<br />
            <br />
            
            
        
        
            <br />
            &#160;
            &#160;&#160; 요한 힌터마이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빌헬름부르크에 등재 되어 녹을 받는 신분까지 되었던 건 전적으로 아이블링거가 꾀한 일이었다. 그 책임에서 아이블링거는 슬쩍 빠지고 싶었던 걸까. <br />
            &#160;&#160; 그러나 아이블링거 잘못만은 아니었다. 아이블링거의 필요와 힌터마이어의 꿈이 초래한 묵인이었다. 끝내 입 열 수 없는 공유된 비밀.<br />
            &#160;&#160; 힌터마이어는 교회법정에서 지난봄의 풀밭 대화 내용을 부인할 수 없었다. 아이블링거를 무고죄로 법정에 세울 수 없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힌터마이어의 소환은 자신의 꿈과 묵인, 공유한 비밀의 결과이기도 했다. 아이블링거에 대한 보복 의지가 아니라면 굳이 부인할 필요 없었다. 부인할 맘도 없었으나 부인한다고 자신의 처지가 달라질 건 없었다.<br />
            &#160;&#160; 교회법정에서 쏟아놓은 말들. 사실의 고백이긴 했으나, 내용상 어쩔 수 없는 불온이었고, 그리하여 무람없었고,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었다.<br />
            &#160;&#160; 오금이 꺾일 듯 힌터마이어가 무겁게 안고 돌아온 것은 압박감이었다. 집으로 오는 길엔 흰 눈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이전처럼 초병의 인사를 받으며 궁정을 드나들 수도, 곡을 만들어 모후의 총애를 받을 수도 없을 것이었다. 따뜻하고 구수한 옥수수 비스킷을 먹으며 두런두런 먼 나라 낯선 세상 이야기를 할 수도.<br />
            &#160;&#160; 현재의 모든 평온을 그대로 온존시킨 채 사태가 해결되길 바랄 수 없었다. 교회법정의 청문 보고서가 힘멜부르크에 당도하는 순간 힌터마이어는 더 이상 궁정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독신(瀆神)의 죄를 쓰고 영원히 바이마르에서 추방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유대인 강제 격리구역에 갇힐 수도 있었다.<br />
            &#160;&#160; 말을 뒤엎거나 사태를 돌이킬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어쩌자고 아이블링거는 그리하였을까. 수년을 허물없이 대화하고 기꺼이 받아주었던 아이블링거였다. 사지로 끌려가던 힌터마이어를 구했던 그였다. 과분한 너그러움과 배려로 감싸고, 교회와 궁정 연회에 그의 곡을 아낌없이 천거했으며, 솔선하여 연주와 지휘를 자청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견딜 수도 돌이킬 수도 없는 압박감의 진원이라니.<br />
            &#160;&#160; 자신의 경솔을 뼈아프게 되짚으며 수없이 탄식하는 것이야 힌터마이어의 당연한 몫이라 할지라도 아이블링거는 어찌하여 그리할 수밖에 없었는지, 무엇이 그로 하여금 루비콘 강을 건너게 했는지, 곰곰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br />
            &#160;&#160; 그리고 준비된 귀결처럼, 생각은 레아에 미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일찌감치 예견되었으나 끝내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상정(想定)이었는지도 몰랐다.<br />
            &#160;&#160; 크로마이어를 내쫓던 아이블링거의 가차없는 냉정함. 그것은 아이블링거 고유의 것이 아니라 레아로 인해 불현듯 터져 나오는, 본인조차 예측할 수 없는 격정의 다른 모습이었다. 레아는 불가침 자체였다. 거기엔 아무런 이유도 없었으며, 있다면 이유 이전의 이유가 있을 뿐이었다.<br />
            &#160;&#160; 그의 너그러움과 도타움, 배려와 선처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 오성(悟性)의 극지. 그것이 레아였다. 레아에 대한 그의 집착은 지속적이면서 한순간도 느슨해지지 않았다.<br />
            &#160;&#160; 크로마이어 부친이 아이블링거의 비위(非違)와 배의(背義)를 공격하며 주변을 옥죄어 올 때도 아이블링거는 그를 대적해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고, 뮐하우젠의 더러운 목사주)라며 독설을 그치지 않았다. 그럴 때의 아이블링거는 바이마르의 궁정 오르가니스트도, 악상을 펼치고 선율을 어루만지는 콘체르트마이스터도 아니었다. 심장을 빼앗기지 않으려 이빨과 발톱을 휘두르는 사나운 짐승이었다.<br />
            &#160;&#160; 그 즈음 아이블링거는 부쩍 힌터마이어를 경계했고, 때로는 노골적으로 빈정거렸다. 음악과 신학을 논할 때와는 다른 인간이었다. 힌터마이어는 이유를 모르지 않았다. 레아가 아니고선 힌터마이어에게 그럴 아이블링거가 아니었다.<br />
            &#160;&#160; 『언어 향기의 작은 상자』와 『세계 유람기』에서 그것은 시작되었으며, 『변신 이야기』와 『로빈슨 크루소』에 이르러 아이블링거는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힌터마이어가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으로부터 주문한 책들이었다. <br />
            &#160;&#160; 레아는 그런 책들을 좋아했고 손에서 놓지 않았다. 힌터마이어는 자연스럽게 혹은 기꺼이 책을 주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제는 아이블링거보다 먼저였다는 거였고, 사전에 아이블링거와 상의하지 않았다는 거였다.<br />
            &#160;&#160; 아이블링거의 심기를 알아차린 뒤 힌터마이어는 더 이상 책을 주문하지 않았다. 않았으나, 정도를 넘는 아이블링거의 예민한 반응은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힌터마이어에 대한 경계와 보란 듯한 행동으로 이어졌다. 늦은 거였다.<br />
            &#160;&#160; 레아와 함께 침실에 드는 걸 굳이 감추지 않았다. 방에 들기 전 일부러 힌터마이어를 불러 집안 단속을 명했다. 나이든 하인에게 하던, 해야 할 지시였다.<br />
            &#160;&#160; 레아와의 관계를 그가 숨김없이 드러내게 된 데는 레아의 눈빛도 한몫했다. 그윽이, 때로는 절박하게 힌터마이어를 바라보는 레아의 눈길. 아랑곳 않은 척, 교차하는 두 시선을 무참히 잘라내는 아이블링거. 힌터마이어는 매번 복도에 떨어져 내리는 푸르고 차가운 달빛에 주저앉았다. <br />
            &#160;&#160; 침실 문이 닫히면 복도의 어둠이 힌터마이어의 온몸을 감쌌다. 달빛에 주저앉은 힌터마이어의 몸뚱어리가 얼음덩이처럼 굳었다. 방안에서 들려올, 의식과 신경 끝끝을 여지없이 짓누를 레아의 탄식과 한숨……. 벗어나고 싶었다. 침대와 마루바닥이 토해 내는 신음, 뒤채고 부딪치는 선연한 숨결의 서슬에서 도망치고 싶었다.<br />
            &#160;&#160; 그러나 힌터마이어는 폭풍이 불고 돛폭이 찢기며 무언가 굴러 떨어지고 무언가 다시 일어서는 방 안의 기척에 꼼짝없이 사로잡혔다. 죽음의 검은 휘장이 영혼을 옥죄고, 몸의 기력이 쇠하여 물처럼 흐무러질 때까지 힌터마이어는 스스로 숨을 멈추었다. 몸을 떨어 비통함을 내치려 했으나 견딜 수 없는 전율로 부풀어 되돌아왔다. 힌터마이어는 거듭 거듭 죽어가며, 실낱같이 남은 숨으로 신을 원망했다.<br />
            &#160;&#160; 그 때문일까. 힌터마이어는 생각했다.<br />
            &#160;
            &#160;
            <br />
            <br />
            <br />
            
            <br />
            -----------------------------<br />
            주) 토마스 뮌처Thomas Müntzer를 말하는 듯. 천년왕국이 도래할 거라 외치며 루터를 광신자라 몰아붙였다. 뮐하우젠의 목사가 된 그는 비단 깃발을 들고 농민군을 선동해 영주들과 부유한 귀족들을 공격했다. 크로마이어 부친의 거주지가 뮐하우젠인 것에 착안한 듯.<br />
            <br />
            <br />
            <br />
            <br />
            
            &#160;<br />
            <br />
            <br />
            <br />
            <br />
            
            계속)<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paper/pimg_729921106504901.jpg</url><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250062</link></image></item><item><author>문학웹진뿔</author><category>랩소디 인 베를린</category><title>[구효서] 랩소디 인 베를린 - 100회</title><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241224</link><pubDate>Wed, 02 Dec 2009 19: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din.co.kr/rhapsody/3241224</guid><description><![CDATA[<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랩소디 인 베를린 (100)<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nbsp;
            &#160;<br />
            <br />
            
            &#160;&#160; 위원들이 서로의 낯을 바라보며 술렁거렸다. 그토록 솔직하고 직접적인 진술이 의외라는 표정이었다.<br />
            &#160;&#160; 그리하면,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죽게 하였다는 말인가?<br />
            &#160;&#160; 표정을 수습한 위원회 수장이 물었다. 힌터마이어는 머뭇거리지 않았다.<br />
            &#160;&#160;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고, 우리들 안에 영원히 살아 계십니다. 신의 요소가 영생이고 영생의 조건이 부활이며 부활의 전제가 죽음입니다. 죽음이 없었다면 부활도 없었습니다. 영생과 신의 위상도 성립하지 않습니다.<br />
            &#160;&#160; 저, 저…….<br />
            &#160;&#160; 여기저기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br />
            &#160;&#160;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다면 제보자마저 무고혐의로 소환될 게 분명했다. 모를 힌터마이어가 아니었다.<br />
            &#160;&#160; 유대인에 대한 관점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확고부동한 교리라는 건 알고 있는가?<br />
            &#160;&#160; 감히 제 주장이 맞다고 아뢰지 않았습니다. 제가 했던 말을 시인할 뿐입니다.<br />
            &#160;&#160; 성경 말씀에 관한 얘기 끝에 흘러나왔던 말이었다. 두 계절 전, 봄이었다. 새싹 돋는 풀밭의 오후는 따뜻하고 쾌청했었다. 자신이 했던 말을 부인한다면, 무고죄로 교회법정에 서야할 사람이 아이블링거라는 것. 힌터마이어가 모를 리 없었다.<br />
            &#160;&#160; 그리 되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어찌하여 둘 사이에 나누었던 은밀한 내용을 발설해야만 했던 건지, 힌터마이어는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었으나 아이블링거마저 법정에 세울 순 없었다. 신을 죽인 게 유대인이 아니라고 말했던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br />
            &#160;&#160; 최고의 징벌을 내려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자네의 주장은 불경을 넘어 모독이네.&#160;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것이 유대인이 아니라면 자네는 그리스도가 무엇으로하여 죽음에 이르렀다 보는가?<br />
            &#160;&#160; 저를 신고한 사람이 무고죄인이 되는 걸 원치 않습니다. 솔직히 자백할 뿐입니다. 죽고, 부활하지 않았다면 예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속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말했던 점, 분명합니다.<br />
            &#160;&#160; 죄를 대속할 수 없었다?<br />
            &#160;&#160; 하느님께서 특별히 유대민족을 차별하지 않았을 겁니다. 성 아우쿠스티누스 교리는 유대인에 대한 기독인의 경멸과 박해를 정당화하는 것일 뿐이며, 그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이 또한 제 의견일 뿐이었습니다. 시인합니다.<br />
            &#160;&#160; 그리스도가 무엇으로하여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대한 자네의 의견은 없는 것인가?<br />
            &#160;&#160; 그 또한 하느님의 예정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를 고변한 자에게 확인해 보면 아시겠지만,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정한 적은 없습니다.<br />
            &#160;&#160; 유대인이 하느님으로부터 디아스포라의 형벌을 받았다는 성 아우그스티누스의 규정이 성경적이지 않다? <br />
            &#160;&#160; 미워하는 것은 미움의 마음을 키우는 것이며, 미움 안에 상대를 가두는 것은 미움 안에 자신을 가두는 것입니다. 그러하다고 감히 말했습니다. 그것은 성경 속 하느님의 사랑과 거리가 멀다고…….<br />
            &#160;&#160; 자네는 성경 말씀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면서 어째 성경 속 하느님의 사랑을 운운하는가?<br />
            &#160;&#160; 감히 성경 말씀을 믿지 않는다 말하진 않았습니다.<br />
            &#160;&#160; 하느님보다 먼저 존재한 것이 있다고 했다면서? <br />
            &#160;&#160; 첫째 날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다, 는 창세기 구절을 말한 적은 있습니다.<br />
            &#160;&#160; 무엇이 하느님보다 먼저 존재했는가?<br />
            &#160;&#160; 말입니다. 빛이라는 말. 그 말로 하느님은 빛이 있으라 하셨고, 마침내 빛이 있게 되었습니다. 빛 보다, 하느님 보다, 빛이라는 말이 먼저였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한 사람은 말이 하느님과 동시에 있었고 그리하여 말이 하느님이라 했고 곧 말이 전부라 하였으며, 저는 말은 말뿐이라 했습니다. 말이 전부라 한 사람의 믿음을 저는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말씀이 전부인 사람에게는 성경 말씀에 따라 생각하고 사는 게 마땅합니다. 그리하여 저는 성경 속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 말했을 뿐이고, 그런 하느님의 사랑이라면 유대인을 신을 죽인 민족으로 낙인찍지 않았을 거라 말했습니다.<br />
            &#160;&#160; 자네가 유대인인 게구먼.<br />
            &#160;&#160; 구석 자리의 풀버텀이 말했다.<br />
            &#160;&#160; 유대인은 성경 말씀을 믿습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 이유도 이전 성경에 근거하니까요. 오랜 핍박과 억압을 견디게 하는 것도 성경 말씀입니다. 그러나 제 경우에는…….<br />
            &#160;&#160; 성경 말씀을 안 믿는다는 것 아닌가?<br />
            &#160;&#160; 이곳은 교회법정이며, 하느님의 존재와 역사에 대한 제 신념과 의뢰심을 청문하는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br />
            &#160;&#160; 자네의 신념과 의뢰심은 무엇인가?<br />
            &#160;&#160; 말씀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 말씀의 진리를 어둡게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의문과 회의가 말씀의 진리를 밝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은 제게도 소중합니다. 이것이 제 신념과 의뢰심이며, 누군가와 이와 같은 말을 주고받은 적 있으며, 그 사실을 존귀하신 교회법정 판관님들 앞에 엄숙히 시인하는 바입니다.<br />
            &#160;&#160; 교활한 유대인이야. 가족과 조상에 대해 해명해야 할 거야.<br />
            &#160;&#160; 구석의 풀버텀이 중얼거렸다.<br />
            <br />
            <br />
            <br />
            
            <br />
            &#160;&#160; ∠<br />
            &#160;&#160; 자신의 불신과 불경을 교회법원에 고변한 자가 있다면 아이블링거였을 뿐이라고 힌터마이어는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봄날의 부주의한 대화를 후회하기엔 그러나 너무 늦었고, 소용없었다. 이미 추운 겨울이었다.<br />
            &#160;&#160; 아이블링거는 어째서 그리하였을까. 그리하였다면 또 왜 힌터마이어의 출신과 본명 따위는 밝히지 않았던 걸까. 교회법정은 시종 그의 이름을 키르케가 아닌 요한 힌터마이어라 칭했다. 가족과 조상에 대해 해명해야 한다고 했을 뿐, 그에 대해 그들은 아는 바 없었다.<br />
            <br />
            <br />
            <br />
            <br />
            
            &#160;<br />
            <br />
            
            &#160;<br />
            <br />
            
            &#160;<br />
            <br />
            <br />
            
            계속)<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paper/pimg_729921106502431.jpg</url><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241224</link></image></item><item><author>문학웹진뿔</author><category>랩소디 인 베를린</category><title>[구효서] 랩소디 인 베를린 - 99회</title><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241206</link><pubDate>Wed, 02 Dec 2009 19: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din.co.kr/rhapsody/3241206</guid><description><![CDATA[&#160;
&#160;<br />
<br />
&#160;<br />
<br />
<br />
&#160;<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랩소디 인 베를린 (99)<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160;&#160; 그는 독일에서 흔한 독일 이름으로 살았다. 일본 성을 버리고 한국식 성을 사용했다. 근대적 의미의 고국과 조국이 탄생하기 훨씬 이전부터 있었던 성이라 했다. 무려 1900년 전.<br />
            &#160;&#160; 그는 1989년 베를린으로 돌아왔다. 그 후로 그는 크로이츠베르크에서 혼자 살고 있다. 필자는 그에게서 많은 이야길 들었다. 차차 정리해 내놓을 것이며, 앞으로 더 많은 걸 듣고 적을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의 나이 올해 67세이다.<br />
            &#160;&#160; 세계를 떠도는 망령이 그의 한국 이야기 속에도 있었다. 한국은 1945년 여름 일본의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났다. 남북으로 나뉜 채 두 개의 정부가 세워졌고 그들은 지금껏 적대관계에 있다.<br />
            &#160;&#160; 그들은 제국주의로부터 독립했으면서도 여전히 일본의 국가 관리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의 것이면서 독일의 것이기도 하다. 나치의 것과 소름끼치도록 유사하다. 일찍이 근대국가를 세운 모든 나라들의 것과 다르지 않다.<br />
            &#160;&#160; 식민지배에서 풀려난 신생독립국들의 혹심한 권력투쟁은 자국민의 엄청난 희생을 초래했다. 새로운 국가체제는 대개 독재에 의해 유지되었고, 그에 대한 반발과 저항은 무력과 폭력으로 제압했다. 그 방식이란 정확히, 이전에 그들을 지배했던 파쇼와 나치와 제․군국주의가 남긴 ‘훌륭한’ 유산이었다. 이것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세계적 망령이다.<br />
            &#160;&#160; 그것은 때로 가면을 쓰고, 때로 미소 지으며 피 묻은 손을 뒤로 감춘다. 신생 독재국가만 아니라 자칭 세계 최고의 인권국가라는 곳에서도 관타나모의 망령은 사라지지 않는다.<br />
            &#160;&#160; 망령은 망령 홀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종을 나누고 민족을 가르며, 그러한 추상으로써 점유영역을 배타적으로 확보하고 지키려는 국가권력이 있는 한, 망령은 언제 어디서나 출몰한다.<br />
            &#160;&#160; 군대와 경찰, 정보기관과 사법기관은 망령의 사신들이다. 사신들은 자신의 임무와 역할을 다하기 위해, 필요에 따라서는 없는 범죄를 만들어내듯 민족과 인종 간의 우열을 조장하고 갈등을 부추겨 국가권력의 이익을 도모한다. 교육과 문화, 정체성이라는 구실로 구성원 모두에게 국민이라는 허울을 씌운다.<br />
            &#160;&#160; 조선은 식민지배에서 해방됐으나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세계사적 이유와 방식으로 분단되었다. 전쟁을 치르고 남북에 공히 장기집권을 꾀하며 서로를 적대하는 세력이 들어섰다. 그리하여 조선반도에는 가장 혹심하고 가장 질긴 망령이 활개쳤다.<br />
            &#160;&#160; 이것이 그의 이야기를 더 귀담아 들어야 하는 이유다. 한국에서 억압받았거나 추방당했거나 스스로 망명한 사람들의 진술을 기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br />
            &#160;&#160; 그는 일본에서 태어나 25년을 살았고, 평양에서 잠깐, 한국에서 17년을 갇혀 살았으며, 그 뒤 20년째 베를린에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건대 그는 어디에도 살고 있지 않다. 일본과 북한과 한국과 독일. 어디에도 속한 적 없었다. 그가 서 있던 곳은, 어디서나 게토였다.<br />
            &#160;&#160; 게토 특유의 벽과 대문은 사라졌어도 그곳에 나뉘어 갇히는 자들은 언제나 있었다. 갇힌 자가 있다는 건 가두는 자가 있다는 거였다. 그러나 결국 그들 모두는 갇힌 자가 되었다. 너나없이, 가두면서 갇히는 거대한 궁지(窮地). 이것이 우리의 슬프고도 어리석은 근대이며, 작센하우젠은 그것의 축소판이었다.&#160;
            <br />
            <br />
            
            &#160;<br />
            <br />
            
            &#160;<br />
            <br />
            
            &#160;12. 강 이편과 강 저편<br />
            <br />
            
            &#160;<br />
            <br />
            
            <br />
            *&#160;&#160;
            &#160;
            &#160;<br />
            <br />
            
            
            &#160;&#160; ∠<br />
            &#160;&#160; 유대인이 하느님으로부터 디아스포라의 형벌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br />
            &#160;&#160; 질문은 막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br />
            &#160;&#160; 힌터마이어는 잠시 입을 닫았다.<br />
            &#160; &#160;시교회인 헤르더 교회법원 징벌위원회였다. 힘멜부르크 당국의 위임을 받아, 하느님의 존재와 그 역사(役事)에 대한 힘멜부르크 공동하인 요한 힌터마이어의 신념과 외뢰심을 청문한다……. 소환장에 적혀 있던 내용이었다.<br />
            &#160;&#160; 풀버텀 위그(Full bottomed wig)를 쓴 일곱 명의 위원들이 커다란 탁자에 근엄하게 앉아 있었다. 법관이나 성직자 외에 아무도 쓰지 않는 가발이었다. 일상적인 가발은 작고 짧고 간편해져 모자 장식의 일부처럼 되었을 뿐이다. 교회법원 위원들의 가발은 백 년 전 것 그대로였다.<br />
            &#160;&#160; 유대인은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아니하였고, 죽게 하였소. 형벌의 첫째 이유요.<br />
            &#160;&#160; 누군가 말했다. 커다란 가발에 묻힌 위원들의 모습을 일일이 구별할 수 없었다. 구별할 필요 없었다. 여럿이었으나 그들은 한목소리였다.<br />
            &#160;&#160; 도처에 불행하게 유랑하는 유대인을 보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스스로 신앙의 진리를 증명케 하고자 함이 형벌의 둘째 이유라. 인정하는가?<br />
            &#160;&#160; 신앙고백의 자리가 아니었다. 불신과 불경의 내용을 소상히 밝혀내 징벌의 수위를 정하는 교회법정이었다. 불신과 불경의 죄가 있거든 토설하라는 주문이었다. 그들이 젊잖게 에둘러 말하는 건 권위와 체통을 지키려는 습관일 뿐, 엄연한 심문이었다.<br />
            &#160;&#160; 징벌위원회가 소집되어 피의자를 소환했다는 건 그 뒤에 만만찮은 증거와 증인이 확보되었다는 뜻이었다. 섣불리 대응할 수 없는 이유였다. 교회법정에 출두하게 된 자신의 처지가 처음엔 매우 의심스럽고 이상했다. 그러나 심문과 대답이 이어지는 동안 힌터마이어의 짐작은 차차 분명해지기 시작했다.<br />
            &#160;&#160; 신을 죽인 건 유대인이 아니라고……말했습니다.<br />
            &#160;&#160; 힌터마이어가 입을 열었다.&#160;
            &nbsp;
            &nbsp;
            &#160;<br />
            
            계속)<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paper/pimg_729921106502431.jpg</url><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241206</link></image></item><item><author>문학웹진뿔</author><category>랩소디 인 베를린</category><title>[구효서] 랩소디 인 베를린 - 98회</title><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240012</link><pubDate>Wed, 02 Dec 2009 09: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din.co.kr/rhapsody/3240012</guid><description><![CDATA[&#160;
&#160;<br />
<br />
<br />
&#160;<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랩소디 인 베를린 (98)<br />
            <br />
            <br />
            <br />
            
            
        
        
            <br />
            <br />
            <br />
            &#160;<br />
            
            &#160; &#160;-믿음? 무슨 정신 나간 소리를 하는 거야. 믿었다가 낭패 본 게 한두 번이야?<br />
            &#160;&#160; -대체 언제까지 이러려고?<br />
            &#160; &#160;-내가 알아서 해. 자넨 나가 있어. 이봐, 겐타로. 이리 와!<br />
            &#160; &#160;남자가 탁자 위의 녹음기 버튼을 다시 누르려 했다.<br />
            &#160; &#160;-제발 그만해.<br />
            &#160;&#160; 남자2가 녹음기를 세차게 밀쳤다.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기 직전 녹음기는 탁자 끄트머리에 간신히 멈추었다.<br />
            &#160; &#160;-이 친구가 정말……. 비키라니까. 그리고 너! 이리 오라는데 뭐 하고 있나?<br />
            &#160;&#160; -글쎄 그만하래도.<br />
            &#160;&#160; 남자2가 남자를 가로막고 나섰다. 밀고 밀치는 실랑이가 벌어졌다. 남자가 지치기를, 체념하기를, 모든 걸 남자2에게 맡기기를, 겐타로는 맘속으로 빌었다.<br />
            &#160; &#160;지옥의 방에서 나가 유치장에 가게 된다면, 구치소로 이송된다면, 그리고 재판정에 서게 된다면, 남자2의 믿음을 증거하기 위해서라도 판사 앞에서 몇 번이고 진술 내용을 인정하고 싶었다. 보란듯이 그러고 싶었다.<br />
            &#160; &#160;남자2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그의 분투를 보고 있자니 더 이상은 1초도 방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남자 쪽의 기세가 꺾이기 시작했다. 난 모르겠으니 자네 마음대로 하게! 머잖아 그렇게 내뱉고 방을 나가 버릴 것 같았다.<br />
            &#160; &#160;그렇게 된다면 남자2는 잠깐 멋쩍어할지도 모른다고 겐타로는 생각했다. 그런 그를 안심케 하고 확신을 주어야 할 것은 겐타로였다. 그럴 수 있고, 그리해야 한다고 겐타로는 다짐했다.<br />
            &#160; &#160;그럴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남자2는 갈수록 완강해졌고 남자는 시나브로 물러나려는 기색이었다. 겐타로는 이를 앙다물었다. 수일간의 악몽이 막 끝나려 하고 있었다. 적어도 다섯 번의 호흡 동안 그 일은 이루어질 것 같았다.<br />
            &#160; &#160;한순간, 방안 공기가 적막하게 얼어붙었다. 남자와 남자2의 동작이 정지했다. 그리고 뭐라 해야 할지 모를 참경이 벌어졌다. 그럴 경우에 붙일 이름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았다.<br />
            &#160; &#160;실랑이 끝에 남자의 손바닥이 남자2의 뺨을 쳤다. 실수였다. 실수였다는 게 머잖아 드러났다. 더 큰 실수는 그 다음이었다.<br />
            &#160; &#160;얼떨결에 우연한 손찌검을 당한 남자2의 안면이 괴상하게 일그러졌다. 일그러진 채 곧 폭발할 듯 수초 간 정지했다. 그리고 마침내 터졌다. 입에서 터져 나온 건 분노 따위가 아니었다. 짧고 세찬 파열음. 신에게도 숨겼어야 할 소리였다. 필사적으로 참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비어져 나온 것은, 웃음이었다.<br />
            &#160; &#160;억눌린 웃음이 터져 나온 순간 남자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신에게 숨길 순 없었더라도 겐타로에겐 숨겼어야 할 웃음이었다. 참았던 만큼 웃음은 걷잡을 수 없어졌다. 결국 두 남자는 목청을 놓아버렸다.<br />
            &#160; &#160;한동안 미친 두 놈이 어두운 방 안에서 배를 잡고 나뒹굴었다.<br />
            &#160; &#160;숙연했던, 남자2의 우호적이었던 눈동자의 비밀을 겐타로는 알아버렸다. 믿음과 위로, 회한과 자책, 반성과 약속, 이해와 맹세. 인간적인 것이라고 명명할 뻔했던 항목들이 더없이 추하고 알량해지는 순간이었다. 그것에 기대고 의지하려 했던 자신의 나약함이 겐타로는 죽도록 혐오스러웠다.<br />
            &#160;&#160; 영육이 그만큼 허약해졌던 걸까. 자신의 넋을 다잡기엔 역부족이었던 걸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두 남자는 웃음 끝을 추스르지 못하고 낄낄거렸다. 방을 나가고 싶다는 의지조차, 무너져 내렸다.<br />
            &#160; &#160;실오라기 같은 희망 따위 가질 수 없었다. 갖기 싫었다. 어떠한 의지도 무망하고 불필요했다. 그들에게 아무런 기대도 품지 않는 것, 가능성을 제로로 끌어내리는 것만이 겐타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br />
            &#160;&#160; 좌절과 절망. 그것은 저들에 의해 초래되고 당할 바가 아니라, 겐타로 스스로 선택하고 고수해야할 것이었다. 겐타로에게 남은 마지막 자존감이란 그런 거였다. 기대와 가능성을 능동적으로 체념해 버리는 것. 탁자나 박제 같은 무기물이 되어버리는 것.<br />
            &#160;&#160; 무엇하나 대수롭지 않았다. 그런 게 세상에 남아 있을 리 없었다. 자신뿐 아니라 그들의 존재가 하찮았다. 그 좁고 어두운 방에서라면 헐뜯는 자나 헐뜯기는 자나 시시하고 보잘것없었다.<br />
            &#160;&#160; -저를 굳이…….<br />
            &#160;&#160; 겐타로가 말했다.<br />
            &#160;&#160; -이곳에서 내보내려……애쓸 필요 없습니다.<br />
            &#160;&#160; 차분하고 완곡한 음성이었다. 10분의 9쯤 이미 죽어버린 자의 입을 통해 간신히 흘러나오는 소리.<br />
            &#160;&#160; 남자2를 향한 말 같았으나, 딱히 누굴 향한 말도 아니었다. 진심도 아닌, 그저 죽어가는 육신이 저절로 내는 소멸의 소리였을 뿐이다. 두 남자가 비로소 웃음을 멈추고 겐타로를 바라보았다.<br />
            &#160; &#160;-어디든……제겐 다를 바 없었지요. 그러니 어디든 상관없다는 말입니다.<br />
            &#160;&#160; 발끝부터 길어 올린 듯 긴 한숨을 쉬고, 겐타로는 넋을 잃었다.<br />
            &#160;&#160; 어차피 죽어갈 일이라면 안이든 밖이든 상관없었다.<br />
            &#160;&#160; 바깥을 체념했을 때, 온전히 그리하였을 때, 아이러니컬하게도 안은 바깥이 되었다. 겐타로가 눈을 뜬 곳은 제법 채광이 잘 되는 의무실이었고, 더 이상 그 방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17년 간 또 다른 작은 방에 갇혀 살아야 했지만 그 어두운 방은 아니었다.<br />
            &#160; &#160;겐타로는 그렇게, 처음 방문한 조국에서 17년을 살았다. 살았으되 그가 밟은 땅이란 4제곱미터가 전부였다.<br />
            &#160;&#160; 독방에 갇혀 있는 동안 일본의 가족은 그를 여덟 차례 면회했으며, 그가 석방되었을 때 그를 맞은 것은 동생뿐이었다. 그가 영어의 몸으로 차가운 콘크리트 벽 안에 웅크리고 있는 사이 그의 부모는 차례로 유명을 달리했다.<br />
            &#160;&#160; 그의 동생이 부모의 마지막 유언을 전했다. 어머니의 말이었다. 아들아, 아무래도 성(姓)을 놓을 때가 된 것 같구나……. 그의 성을 여기서 밝힐 수는 없으나, 그것은 고국이라는 뜻이었다.<br />
            <br />
            <br />
            <br />
            <br />
            <br />
            
            계속)<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paper/pimg_729921106502431.jpg</url><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240012</link></image></item><item><author>문학웹진뿔</author><category>랩소디 인 베를린</category><title>[구효서] 랩소디 인 베를린 - 97회</title><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238094</link><pubDate>Tue, 01 Dec 2009 11: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din.co.kr/rhapsody/3238094</guid><description><![CDATA[&#160;
<br />
&#160;<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랩소디 인 베를린 (97)<br />
            <br />
            <br />
            
            
        
        
            <br />
            <br />
            &nbsp;
            &#160;&#160;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lt;인어의 노래&gt;. 베버. 칼 마리아 폰 베버의, 바이올린 연습곡이었다.<br />
            &#160;&#160; 겐타로는 얼어붙었다. 처음 바이올린 켜던 시절 악보를 외웠던 곡. 수일 밤낮 피투성이로 구겨져 뒹굴던 정체모를 암굴에, 그 곡이 흘렀다. 지독한 악몽이었다.<br />
            &#160;&#160; -서툴지?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말야.<br />
            &#160;&#160; 미숙한 활로 현을 긁는 아이의 불안정한 손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것은 열 네 살 적 겐타로 손이기도 했다. 겐타로는 대답하지 못했다. 음악이라니. 모진 죽음의 망령이 떠도는 암막에 베버라니.<br />
            &#160; &#160;-좀 더 들어보라구.<br />
            &#160;&#160; 자상한 아버지의 음성. 매번 숨통 끊을 듯 달려들던 남자가 아니었다.<br />
            &#160;&#160; 남자가 조용히 문을 열고 나가주었다. 문을 닫는 동작이 조심스러웠다. 겐타로 혼자 남았다. &lt;천국과 지옥&gt;. 이어서 흘러나온 오펜바흐의 서곡이었다.<br />
            &#160;&#160; 그것은 음악이 아니었다. 끔찍한 농담, 푸른 칼로 영혼을 난자당하는 아픔, 뇌수가 뭉개지는 혼돈이었다. 아이의 서툰 손에 쥐어진, 활 아닌 창이, 어두운 허공을 무지막지하게 휘저었다.<br />
            &#160;&#160; 베토벤의 &lt;기쁨의 노래&gt;라니. 바그너의 &lt;결혼행진곡&gt;, 브람스의 &lt;왈츠&gt;라니. 하필 모두 독일인의 것이며 하나같이 겐타로가 외웠던 곡이라니. 정교하고 야비한 살해, 다시 일어나 땅 딛지 못할 치명적 일격이었다. 야물지 않은 손으로 떨며 떨며 현을 짚던 어린 시절 겐타로의 꿈들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br />
            &#160;&#160; 피와 숨이 일시에 증발하여, 겐타로는 박제가 된 채 탁자 한 귀퉁이를 붙들고 있었다. 입은 검게 벌어졌고 동공은 빠져 버렸으며 낯은 밀랍처럼 굳었다.<br />
            &#160;&#160; 남자2가 들어와 녹음기를 껐다. 한동안 겐타로에겐 영혼이 돌아오지 않았다.<br />
            &#160;&#160; 남자2는 그런 겐타로를 기다려주었다.<br />
            &#160;&#160;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이람…….<br />
            &#160;&#160; 남자에 대한 불만을 그는 숨기지 않았다.<br />
            &#160;&#160; 남자2는 그런 사람이었다. 맡겨진 일에 어쩔 수 없이 충실하면서도,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반성마저 잊지는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라고 겐타로는 생각했다.<br />
            &#160;&#160; -이봐, 겐타로.<br />
            &#160; &#160;그의 음성이 숙연했다.<br />
            &#160; &#160;남자에게서 보이는 연륜과 관록, 노련한 몸짓과 여유 때문에 더욱 커지는 불안과 공포. 남자2에게서는 그걸 느낄 수 없었다. 비록 함께 소리치고 뒹굴며 죽음의 굿판을 벌이긴 했으나, 그런 자신에 대한 회한과 자책까지 숨기진 못하는 사람이었다.<br />
            &#160; &#160;겐타로는 남자2에게 모든 걸 맡기고 싶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그의 손에 죽기 바랐다. 슬프고 애처로운 일이긴 해도 그것이 하릴없이 죽어가는 자의 마지막 선택이라 여겼다.<br />
            &#160; &#160;-우리가 왜 이러는지 자네도 알 거야. 비겁한 노파심이지. 자네가 가혹행위를 발설하고 재판정에서 진술내용을 번복할까봐 겁이 나는 거라네. 솔직히 말하는 거야. 왜 이래야만 하는 거냐고 묻지는 말게. 그걸 설명하려면, 나에 관해서도 그렇겠지만 국가니 사회니 그런 좆같은 것에 대해 십수 년 떠들어도 모자랄 걸세. 한마디로 부질없다는 얘기야. 부질없다는 것쯤은 자네도 이해해야 하네. 그러지 않고는 끝이 나질 않아. 모든 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버리거든.<br />
            &#160; &#160;남자2는 천장을 향해 후우, 한숨을 쉬었다.<br />
            &#160; &#160;-나를 이해해 달라는 게 아닐세. 내가 바라는 건 그게 아니야. 세상에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얼마든지 있다는 걸, 그리고 결코 사라지지도 않는다는 걸 이해해야 한다는 거야. 불가항력 같은 거. 자넨 그걸 받아들여야 해. 자넬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위하는 거라고? 자넨 묻고 싶겠지. 비웃고 싶겠지. 하지만 세상은 만만치 않아. 자네가 이곳에 와 이 지경을 당하는 게 그 증거일세.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이 짓을 반복한다는 건 정말 부질없어. 그걸 모를 만큼 자네가 어리석다고 생각지 않네. 내가 자넬 곧 구치소로 송치할 거네. 그러면 자네는 더 이상 피를 토할 필요 없고, 우리도 그만큼 치욕을 줄일 수 있네. 이것만이 이곳의 진실이야. 고통의 시간을 줄이는 것. 이걸 어찌 자네와 나를 위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나. 자넬 믿겠네. 믿어도 되겠지?<br />
            &#160;&#160; 겐타로는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모든 걸 포기했고, 진술을 번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도 오래 전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치지 않았었다. 다짐과 약속, 각오와 맹세가 매번 물거품이 되었다.<br />
            &#160; &#160;숙연한 간청과 간곡한 약속이 조용한 방 안에서 오갔다. 정말로 번복 따위 하지 않겠다고 겐타로는 마음을 굳혔다. 번복이란 소용없는 일이며 고통만 길어질 뿐이라는 걸 일찌감치 알았다. 그러나 다시금 뜻을 굳게 먹은 건 상대가 남자2라는 점 때문이었다. 구치소로 송치하겠다는 말이 진심으로 들렸다. 비록 허망하다 할지라도, 맹세란 것은 그렇게, 조금이나마 곁을 내어주는, 사람 냄새 나는 쪽을 향하게 되는 거니까.<br />
            &#160; &#160;-왜 안 들어? 다 들었나?<br />
            &#160; &#160;남자가 들어와 물었다. 돌아간 테이프 분량을 가늠했다. 그리고 겐타로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된 영문이냐고, 남자의 표정이 물었다. 겐타로는 대답하지 않았다. 남자의 낯빛이 변하며 묘하게 일그러졌다.<br />
            &#160; &#160;-내가 껐어.<br />
            &#160; &#160;남자2가 말했다.<br />
            &#160; &#160;-왜?<br />
            &#160; &#160;-언제까지 이렇게 붙들고 있을 거야. 넘겨야지.<br />
            &#160; &#160;겐타로는 남자2가 고마웠다.<br />
            &#160; &#160;-누구 맘대로? 우리가 알아서 할 일이 아니잖아.<br />
            &#160; &#160;-내가 책임지겠어.<br />
            &#160; &#160;-뭘로?<br />
            &#160; &#160;-믿음으로. 쟬 믿기로 했어.<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계속)<br />
            <br />
            <br />
            <br />
            <br />
            <br />
            &#160;<br />
            <br />
            &#160;<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br />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paper/pimg_729921106502431.jpg</url><link>http://blog.aladdin.co.kr/rhapsody/3238094</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