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캐피털리즘 - 표류하는 개인과 소멸하는 열정 
리차드 세넷 지음, 유병선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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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세넷의 <뉴캐피탈리즘>(유병선 옮김, 위즈덤하우스)를 읽으며 고대생 김예슬의 선언을 떠올렸다. 이 고대 자퇴녀의 선언은 최근 몇 년 동안 읽은 글 가운데 최고다. 잔대가리 굴려 쓴 글이 아니라 온 몸으로 쓴 글이다. 그녀의 글을 읽고 나는 아주 기분이 좋았다. 야,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있는 청춘도 있구나. 인터넷에 서식하는 저 무수한 키보드워리어니 하는 인간들보다 수백 배 낫지 않은가. “이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는 저 당당한 선언, 무슨 밀교적 제의처럼 블로그를 쏘다니며 저들만의 담론을 만드는 아해들보다 얼마나 싱싱한가. 우리사회의 주류적 질서가 강요하는 질서를 이탈하여 자기만의 삶을 만들어가는 일, 기투(企投)의 삶이란 저런 것이다.

김예슬의 선언은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다. 80년대의 대학인들은 자본주의와 파쇼라는 ‘외부의 적’에 대한 대항담론을 만들어냈으나 거기에는 ‘개인의 실존’은 빠져 있었다. 그들은 해방이후 가장 반자본주의적인 논리로 무장했으나 역설적으로 그 자본주의에 가장 잘 적응했다. 그들은 운동권에서 나오자마자 벤처기업가로, 펀드매니저로 성공가도를 달렸다. 비판대상의 논리를 쉽사리 실존적으로 내면화했던 것이다. 이념과 삶의 괴리는 이미 발생론적으로 예비되어 있던 것이다. 박노자가 어느 글에선가 썼듯이, 군사파쇼를 비판하던 이들은 아무런 내면의 고통없이 군대를 갔고, 군대의 질서를 회의 없이 받아들였다. 그러나, 김예슬은 다르다. 그녀는 ‘자기에의 배려’를 알고, 그것을 실천할 줄 알며, 동시에 그것이 지닌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의미 역시 통찰할 줄 안다. 부디, 이 친구가 잘 버티고, 잘 살아내기를!

김예슬의 선언은 리처드 세넷의 말을 빌자면, 새로운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서사를 벗어나 ‘개인의 서사’를 되찾으려는 시도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이른바 ‘경제경영 실용서’들과 대척점에 서 있다. 실용서들은 지금 세상이 얼마나 빨리 변하고 있으며, 당신이 어떻게 해야 적응하고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설파한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러한 ‘새로운 자본주의’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피폐하게 만들고 있으며, 왜 우리가 자신의 ‘삶의 서사’를 회복해야 하는지를 역설한다. 미국의 이른바 ‘컨설턴트’들이 얼마나 무지하고 멍청한지, 그들의 컨설팅이 왜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세넷은 차분하고 담담하게 들려준다. 그에 의하면, 제도와 시스템의 신봉자들인 그들은 그 속에 살아가는 것이 삶의 의미를 끊임없이 묻고 찾는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 글로벌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스펙’을 쌓고, 퇴출의 공포속에서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진 ‘근원적 불안’이 과연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한때 상사로 모셨던 김영희 대기자는 자신은 세 종류의 책을 늘 펼쳐 놓고 읽는다고 했다. 하나는 세계관과 가치에 관한 것으로 그에게는 헤겔철학서가 대표적이다. 또하나는 보다 중범위적 정치사회적 전망을 할 수 있는 책으로, 토플러나 프리드먼의 책이 그런 경우다. 마지막은 순수하게 ‘정보’를 얻기 위한 책. 리처드 세넷의 이 책은 그중 두 번째의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그는 현대의 자본주의가 “정처없이 표류하는 삶”을 만들어내는 매커니즘을 규명하면서 탈주의 길을 모색한다. 그가 보기에 지금의 자본주의는 지속되기 어렵다. “장기보다는 단기를 선호하고, 잠재력만을 중시하며, 과거의 경험을 기꺼이 내 팽개칠 수 있는 개인의 자질이란 아무리 어려움을 견디기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인간의 본성과는 거리가 멀다.”

이 책은 지금 여기서의 내 삶을 아프게 찌른다. “유동적이지만 자유롭지 못한 삶”, 유동성은 끝없이 증대되어 왔으되, 삶은 정처를 잃고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질서 속에서 불안하게 견뎌 내는 것. 왜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라고 떨치지 못하는가. 종횡으로 얽힌 구조의 사슬 속에서 개인은 주류적 질서와 과감히 결별하지 못하고(혹은 안하고) 내 것이 아닌 열망으로 살아간다. 이보다는 차라리 포디즘 시대, 산업시대의 삶이 더 낫지 않았을까. 자본주의의 관료제적 질서 속에서 개인은 자신의 삶을 서사화할 수 있었다. 9 to 5의 삶속에서, 직장의 엄격한 상하관계 속에서, 기계적인 노동속에서도 인간은 내년이면 월급이 얼마나 오를지, 언제 집을 살 수 있을지를 설계할 수 있었다. 노동은 팍팍하고, 월급은 쥐꼬리만큼 올라도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쪼개어 삶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산업시대의 상대적 안온함)

그러나, 새로운 자본주의에서는 구성원이 자신의 조직을 믿지도 못하고(언제 짤릴지 모르니), 사람들 간의 관계도 붕괴되었다. “자본주의만 살아남고 사회적인 것(the social)은 죽었다.” 유동하는 근대화(지그문트 바우만)가 만들어내는 삶은 끝없이 유동하는 불안한 삶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노마드’는 국내적으로는 비정규직의 확대요, 글로벌 차원에서는 노동이주민의 급증을 은유한다. 디지털 노마드족? 88만원 세대에게 그런 소리 하다 돌 맞는다. 나중에 보상을 받기 위해 보여줬던 절제의 미덕도 절약의 노동윤리도 사라졌다. 오로지 오늘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끝없이 이동하고,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몸을 던질 뿐.

리처드 세넷은 미국의 68세대 신좌파다. 이 책은 주로 미국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한국에 더 잘 들어맞는 것 같다. 이런 진술, “지난 10년간 내가 만난 미국인 중산층은 구조적인 변화를 꾀하는 것을 체념한 채 그냥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인다. 일자리의 안정성이 훼손되고 학교가 민간기업처럼 경영되는 것을 불가피한 일로 여기는 분위기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근본적인 변화에 대해 누구라도 손을 놓고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은 비정규직 증가속도가 전세계 최고 수준이고, 학교는 학원화되고(아, 쓰벌 대체 교육의 ‘출구’는 없는 것일까?) 모오든 것이 시장화 하는 곳이다. 소수의 비판자들이 있지만, 그들은 너무나 소수이고, 그래서 변화의 가능성도 별로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출구로서의 정치는? 세넷은 대안을 말하지 않고 현실을 말한다. 시민들이 정치에 무관심한 다섯가지 이유. 1) 정치의 플랫폼화 : 폭스바겐이 공통의 플랫폼을 갖고 고급세단과 보급형 차량을 만들어내듯이 영국의 보수당과 노동당은 유사한 표준 플랫폼을 공유한다. 그것은 신자유주의-중도주의의 모습을 띄고 있는데, 그 속성은 노동유연화, 세계화, 능력사회로의 전환이다. 2) 정치적 금박 입히기 : 플랫폼이 유사하니 사소한 차이밖에 없고, 이 사소한 차이를 갖고 죽자 사자 싸운다. 마찬가지로 한나라당과 민주당 사이에 무슨 플랫폼의 차이가 있나. 차이를 부각시키기 위해 ‘금박’을 입히지만, 이건 쉽게 벗겨지게 마련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서로 ‘협력’해 비정규직법을 통과시킨다.

3) 인간성이란 휘어진 목재 : 제도를 만들고 정책을 펴지만 그로 인해 완전한 목표달성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칸트는 제도의 불완전성을 말하면서 ‘인간성이라는 휘어진 목재’를 거론한다.) 사람들의 일상을 배제한 채 만들어지는 정책이란 얼마나 허약한가. 친서민 정책이라고 자랑하고 떠들어대지만, 실제 서민의 일상은 무엇이 달라졌는가. 4) 사용자 중심의 정치에 대한 신뢰 강요 : 시민들이 소비자처럼 행동하게 되면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소비자로서 시민은 나태해지거나 첨예한 현안은 눈길을 돌린다. 5) 끊임없이 쏟아지는 정치신제품들 : 첨단제품들은 존재론적 불안을 야기한다. 새로운 정책을 내놓는 노동당에 대한 신뢰는 경향적으로 떨어진다. (소비자로서의 시민) 새로운 제품을 사기 위해 타올랐던 욕구는 사자마자 사그러든다.(소멸하는 열정, 한국으로 치자면 롤러코스터 민주주의, 열망과 절망의 사이클)

우석훈과 박권일은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라고 선동했지만, 세넷은 보다 실존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시간과 경험의 축적(경험많은 노동자를 함부로 자르면 안된다), 개인 유용성의 발휘, 장인정신의 세 가지. 이런 대안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개인의 서사화’다. 개인의 자기 삶의 주제로서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풀어(살아) 가는 것. 이건 들뢰즈 용어로 개인의 재영토화, 혹은 생활세계의 회복쯤으로 번역해도 무방하리라.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내가 20대의 어린 대학 자퇴생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다.

결론, “나는 하나의 역설, 즉 새로운 권력구조가 대단히 천박한 문화를 통해 생겨났다는 사실을 밝히고자 했다. 사람은 누구나 일을 제대로 해내려 노력함으로써만 스스로의 삶이 아무렇게나 흘러가지 않도록 단단히 붙들어 맬 수 있다. 따라서 나는 현재 일터나 학교, 정치의 세계를 뒤덮고 있는 문화의 천박함이 유리그릇처럼 작은 충격에도 쉬 깨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그리고 분명히, 지금의 새로운 질서 그 다음 단계의 역사의 첫 페이지는 이처럼 깨지기 쉬운 문화에 대한 반란이 장식하게 될 것이다.”

ps. 한 ‘영국 애호가’(?)가 빌려준 책인데, 그녀가 이 책을 빌려준 이유는 네 실존을 곱씹어 봐라는 오묘한 의미에서인지, 저자에 대한 애정이 넘쳐 빵처럼 나눠먹기를 바라는 마음에선지, 잘 모르겠다. ㅎㅎ




 
 
 
구월의 이틀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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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터넷 보수신문 대표를 만난 적이 있었다. 내가 그를 찾아갔을 때 그는 사무실이자 편집국인 한 오피스텔에서 동료 ‘기자’ (그들도 언론이며 기자를 자처한다.) 한명과 냄비에 라면을 끓여 먹고 있었다. 그는 김치 쪼가리를 삼키며 자신이 DJ정권에게 얼마나 탄압을 받았는지에 대해 떠들어댔다. 며칠째 감지 않아 냄새가 나는 머리와 눈꼽이 채 떨어지지 않은 몰골로 라면 국물을 튀겨가며 계속 지껄였다. 과연 그는 정권의 탄압을 받아 오랫동안 수배생활을 한 반정부 인사의 면모를 하고 있었다. 내가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천박한 말들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자신의 신문이 아직도 광고 탄압을 받아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으나 한 월간지 대표와 같은 ‘뜻있는’ 동지들이 도와주고 있다고 했다. 그분들과 함께 얼마 후에 있을 3.1 구국궐기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들은 민주화 이후의 개명천지에 독립군을 자처하고 있었다.   

  

가끔 모자를 쓴 그의 동료가 고개를 끄덕이며 주억거렸다. 그들은 몇몇 시민단체와 개인들에게 “빨갱이”라고 했다가 소송을 당했고, 결국 법원으로부터 벌금형을 받았다. 한 시간여 그의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하다 나오는데, "야 이 또라이 새끼야"라는 말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았다. 나는 저런 ‘존마니들’이 보수와 우익을 자처하다니, 참으로 추하고 비루하다고 느꼈다. 장정일이 우익청년 일대기를 쓴다고 했을 때 그의 선배는 “우익은 무조건 멋있어야 해”라고 말했단다. 현실의 비루한 우익과 존재하지 않는 멋있는 우익 사이의 이 아득한 ‘거리’. 그래서 장정일의 <구월의 이틀>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우익에 대한 위악적인 풍자다. 위악은 장정일의 특기가 아닌가.  


장정일이 10년 만에 냈다는 이 소설을 주말 동안 슬렁슬렁 읽었다. 그는 광주 출신의 ‘금’과 부산 출신의 ‘은’을 내세워 올드라이트, 뉴라이트와 대비되는 ‘퓨어 라이트'(pure light)를 그리겠다고 했다. 이 시대를 달리하는 ‘라이트’들은 동성애 코드로 연결돼 있다. 올드 라이트 ‘거북선생’과 퓨어 라이트 ‘은’은 비역질로 연결된 변태성욕자들이다. 동성애 자체가 변태성욕인 것이 아니라, 도덕을 내세웠던 네오콘 대부 앨런 블룸이 동성애자로 에이즈로 죽었듯이, 그리고 장정일이 그를 두고 “손가락질 받아야할 것은 동성애가 아니라 그의 위선이다”라고 썼듯이, 이념과 섹스의 그 추악한 모순적 병존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올드’에서 ‘뉴’, 그리고 ‘퓨어’로 갈수록 변태성욕의 강도는 상대적으로 덜하다. ‘올드’의 외설성과 변태성욕은 가장 강도가 높다. 실제로도 그들은 막무가내의 가스통 무리가 아니던가.

가령 그것은 “우리가 김대중이나 노무현을 따르는 무리를 향해 ‘빨갱이’와 같은 인장을 찍어대는 것은, 그만큼 우리들에게 논리가 없기 때문이야. 다시 말해 저 인장들은 그들과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는 우리의 결단을 보여주는 것들이지.(…) 그래, 그거야. 말 많고 따지기 좋아하는 놈들을 향해 다짜고짜 ‘빨갱이’라는 인장부터 찍고 보는 거야. 그건 상대방과 대화를 더하지 않겠다는 우리들의 고귀한 거절의사고, 결기에 찬 그 침묵은 우리들의 패배이지만, 그 행위는 더 이상 논리가 아니고 바로 우리들의 힘이야. 그래서 이기는 거야” 와 같은 변태성욕이다.

거북선생은 국립대 윤리교육과 교수이고 뉴라이트인 ‘은’의 작은 아버지는 법대 교수다. 또 은이 가입한 우익청년단체 ‘자유의 나무’의 회원의 이름은 ‘변지갑’이다. 이쯤 되면 이들이 누구를 빗대고 있는지 알 만하다. (장정일의 장난질이다. 거북선생은 조선일보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윤리교육과 교수를 닮았고, 뉴라이트인 작은 아버지 이름은 ‘상호’로, 가운데 이름자 슬쩍 바꿨다. 변지갑은 굳이 첨언이 필요없다.)  광주의 시민단체 지도자로 있다 노무현 청와대의 비서관으로 등장하는 금의 아버지 역시 여러모로 누군가를 닮아 있다. 물론 대강의 이력과 인상만 빌려왔을 뿐 장정일식으로 비틀었겠지만 말이다. 장정일은 가장 애정이 가는 인물로 은을 꼽으며, 구우익과 뉴라이트의 영향아래 있지만 사상투쟁을 거쳐 자긍심에 찬 젊고 순수한 우익으로 단련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은이 유일하게 앞세대의 우익과 다른 면모가 있다면 그는 최소한 구우익의 ‘위선’을 볼 줄 안다는 점이다. 마태수난곡을 들으며 자신이 빨갱이들한테 어용이니 회색분자니 하며 당했던 지난날을 회고하는 거북선생에게 그의 젊은 동성애 파트너 은은 “이 미친 늙은이, 노망도 단단히 났네. 도끼로 정수리를 꽉 찍어버릴까 보다. 이런 늙은이들은 대체 언제까지 이처럼 어리광을 부리려는 것일까”라며 속으로 비아냥댄다. 은은 “강한 것은 선하고, 강한 것은 아름답다”는 강자의 이익을 정당화하는 신념으로 무장한 우익청년. 장정일은 이런 순정한 우익이 이 땅에서 가능할 것이라 믿고 있을까. 이 소설로 보자면 장정일은 희미한 가능태만 보여줬을 뿐이다. 그러나 그 가능태는 변태성욕자이자 ‘또라이’다. 순정한 우익이야말로, 순수한 또라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이 소설은 장정일의 위악이자 우익에 대한 조롱인 것이다.

장정일의 ‘변태성욕’은 참으로 내력이 깊은데, 이 자의 첫 번째 소설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에서부터가 시작일 것이다. (이 소설은 시중에서 구할 수가 없다. 나는 1988년 열음사에서 나온 이 문고판 작품을 알고 있거나 읽어본 사람은 이제껏 두 명 밖에 못 봤다. 흔히 장정일의 첫 소설은 <아담이 눈뜰 때>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이 작품이 시인이었던 장정일이 처음으로 쓴 소설이다. 장정일은 어쩐 일인지 책날개에 소개된 작품목록에 이 작품을 계속 빼놓고 있다. 스스로 부정하고 싶은 건가?) 소년원에 처박힌 10대들의 ‘비역질’을 소재로 한, 이 소설도 논픽션도 아닌 것 같은 작품에서 변태성욕은 장정일의 자기모멸을 드러내는 방식이었다. 그의 자기모멸은 <아담이 눈뜰 때>의 몇몇 단편을 거쳐 <너에게 나를 보낸다>,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 <내게 거짓말을 해봐>로 이어진다.

그의 소설을 이제까지 거의 다 읽어왔지만 이제는 이런 변태성욕이 구질구질하고 지겹다. 게다가 장관 청문회식 어법으로 따지자면, 그의 ‘자기표절’도 지겹다. 뒷 소설에서 앞 소설을 인용하고 까대는 방식의 자기표절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빙빙 동심원을 그린다. 그의 전작들은 후작들에서 줄줄이 불려 나와 조롱하고 조롱당한다. <구월의 이틀>에서는 전작인 <보트하우스>를 소환해 작가인 자신을 “3류 작가”라고 폄하하고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특전사 캠프에 대한 주인공들의 독백조차도 그의 독서에세이 <공부>의 한 대목을 빌렸다. 이런 장난질에 무슨 미학적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니 굳이 거기에 토를 달 필요도 없으나, 이제는 좀 짜증이 난다. 내가 꼽는 장정일의 가장 좋은 소설은 <아담이 눈뜰 때>와 장정일 <삼국지>의 출발점이 된 <북경에서 온 편지>다. 아니 차라리 그의 <독서일기>나 <공부>가 장정일 식의 교양과 해석을 담고 있어 더 읽을 만하다.

장정일은 후기에서 부도덕한 우파가 득세한 나라에서는 우익청년 일대기가 나올 수 없다고 말한다. 한국문학이 줄창 ‘좌익 청년 일대기’만 쏟아낸 까닭도 그 때문이란다. “건전한 상식과 철학을 갖춘” 나라에서 나온 우익청년 일대기의 대표작은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일 것이다. 예술적 방랑이라는 ‘수업시대’를 거쳐 보편적 가치에 대한 긍정에 이르는 여정은, 현실의 질서와 가치에 대한 수락이라는 점에서 ‘우파적 인식’의 획득과정이다. 감히 비교할 수 없지만, 괴테와 장정일이 공유하고 있는 바가 있다면 과정이자 매개로서의 예술이라는 경로다. 괴테의 빌헬름은 연극이라는 예술을 경유하여 ‘아름다운 영혼’에 눈을 뜨고, 장정일의 ‘은’은 시와 세계문학사 60권을 거친다. 은이 우익으로 전향했을 때, 문학은 더 이상 그의 몫이 아니고 정치에서 문학으로 나아간 ‘금’의 몫이 된다.

괴테가 살았던 바이마르 시대의 문화와 가치는 그같은 긍정과 수락을 가능케 하는 전통과 힘, 깊이와 넓이를 가지고 있었다. 반면, 우리의 경우 전통과 기성의 가치는 부정과 파괴의 대상이었다. 조화와 균형, 감성과 절제와 같은 미덕들은 한국의 우파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가치다. 앞서 김기협 선생이 조선 망국에서 단절된 것은 ‘전통’이라고 했을 때, 지적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것이었을 것이다. 유교적 교양의 정치가 단절되지 않았더라면(유교의 근대화에 성공했다면), 오늘날의 한국정치는 좀더 다른 모습이지 않을까. 오늘날의 보수우익이 끊임없이 자신의 사상과 행위를 조회하고 심문할 수 있는 규제적 원리로서 전통이 있었다면, 적어도 추하고 비루한 모습에서는 벗어날 수 있지 않았을까. 전통이 없으므로 그것은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니, 조선일보와 낙성대 연구실은 식민지 근대화론을, 이승만과 건국을, 박정희와 경제발전을 ‘발명’하고, 새로운 전통으로 수립해야 하는 역사적 사명감으로 충만하다. 장정일의 위악은 이런 전통의 발명 ‘이후’를 내다본 것일까, 아니면 지금 여기의 비루한 현실을 드러내는 방식일까.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발견한 오탈자는 대략 6-7개 내외가 되는 것 같다. 그중 가장 치명적인 것은 노무현의 고향마을을 ‘봉화’마을이라고 쓴 것이다.(245p) 노무현의 고향은 ‘봉하마을’이 맞다. 이것이 편집자의 실수라면 그냥 넘어갈 수 있지만, 장정일의 실수라면 치명적이다. 이 소설에서 노무현은 다큐멘터리를 상기시킬 정도로 세밀하게 등장한다. 그런데 실수라? 그렇다면 장정일은 소설을 쓰기 위한 준비가 치밀하지 못했던 것이고, 정교하지 못한 시사교양을 버무려 써낸 것이다. 이건 정운찬과 정운천을 헷갈려 “저번엔 쇠고기 갖고 지랄이더니 이번엔 세종시 갖고 지랄이냐”고 반응하는 멍청한 네티즌과 같은 수준인 것. 이로써 보건대, 장정일의 노무현에 대한 교양수준은 믿을게 못된다.



 
 
이진성 2010-03-15 15:14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대구 영남대 도서관에 소장돼 있음. 90년대 중반 읽었음

이진성 2010-03-15 15:16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리고 '봉화마을'에 대해 굳이 장정일을 변명하자면
마을 이름은 '봉하'마을 투신한 산은 '봉화'산
마을은 '봉화'산 아래 있다고 해서 '봉하' 마을임

모든사이 2010-03-15 15:52   댓글달기 | URL
아이구 그래, 누가 도서관에도 책이 없다던? 어딘가에는 있겠지만, 장정일 독자가 자기가 밝힌대로 5만은 된다면 그 책을 언급하는 사람이 좀 나올 수 있을 텐데, 거의 없어서 하는 얘기지.

봉하/봉화 얘기를 꺼낸 건, 이 책 앞부분에 장정일이 언어/문장에 대한 자의식을 도드라지게 떠들어서 하는 말이다. 주인공 부모의 말을 전하면서 "문법에 맞지 않는 말을 구사한다" 운운하며 예민하게 써놨길래 하는 소리다. 셜록홈즈를 말하면서 베이커가(baker street) 221B를 베이크가(bake street)이라고 쓰면 얼마나 우스울까.
 

손낙구의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를 구했다. 내 돈으로 주고 산 것이 아니니 ‘구했다’라고 할 수밖에. 거의 백과사전 두께의 이 책 가격은 무려 10만원. 그런 거금을 주고도 살만한 충분한 가치와 내용을 담고 있어서 불가피하게 ‘구했다.’ 그 상세한 이유에 대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내공으로 구라를 풀기 보다 최장집 선생의 서평이 나을 것 같아 여기 스크랩 해둔다. 수년 전 최장집 교수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펴냈을 때 그 책에 대해 저널에 실리는 글치고는 약간 긴 서평을 썼다. 최교수는 감격스럽게도 그 서평을 매우 호의적으로 평가해줬다. 그 인연으로 1시간 여 동안 ‘인터뷰’를 했는데, 무식한 상사 덕에 그 기사는 거의 10분의 1 수준으로 축약되어, 그것도 다른 기사의 중간에 끼워져 실렸다. 죄송한 일이다. 내가 가진 한국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80% 이상의 생각은 최장집 선생으로부터 ‘훔쳐온’ 것들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생각은 다소 ‘정당중심적’이지만, 나는 그 길외에는 별 뾰족한 수가 없다고 믿는다.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생각을 훔쳐온 것처럼, 손낙구의 책에 대한 그의 생각도 오늘 인터넷 신문 ‘레디앙’에서 훔쳐왔다.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7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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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출간은 사건이다”
[서평] 손낙구 『대한민국 정치사회지도』…다른 각도 노동문제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1. 들어가는 말

오늘(3월 10일) 출판기념회는 최근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 많이 있는 출판기념회와는 다르다. 시간적으로는 비슷하지만, 손낙구씨의 저서 『대한민국정치사회지도』를 위한 출판기념회는 색다르다. 일정한 정치적 목적을 가진 정치인의 저서를 위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학계에서 직업적인 학자들이 쓴 저서를 기념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책에도 나와 있고 출판기념회 안내 팜프렛에서도 저자 소개가 있었기 때문에 저자 손낙구씨에 대해 다시 긴 소개를 할 필요는 없음. 그러나)



저자가 그동안 노동운동에 전념했던 노동운동 활동가였고, 진보정당의 중심 활동가였다는 사실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직업적인 정치학자의 한 사람인 저로서는 많은 느낌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이 책이 담는 중심 문제들은, 직업적인 정치학자와 사회학자들에 의해 많이 그리고 체계적으로 수행됐어야 할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한국사회의 중심 문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학계의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직업적인 학자/연구자들이 아닌 노동운동과 현실정치에서 활동하던 사람에 의해 행해졌다는 점은, 저를 포함하여 대학에 몸담고 있는 직업적인 학자들에게 하나의 도전이자, 충격으로 느껴진다.

2. 연구의 정치(학)적 중요성

오늘날 한국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엇인가? 한국정치의 최대의 문제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집약하는 지표로서 극도로 낮은 투표율이다.

평등한 정치참여의 권리가 1인 1표의 투표권을 통해 얼마나 효과적으로 실천되는가? 그와 아울러 정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의 제도와 과정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이러한 문제를 가장 잘 판별할 수 있는 지표로서 투표율 문제인 것이다.

또한 한 사회의 정치질서에 대한 유권자들의 기대와 믿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민주주의가 얼마나 건강하게 작동하고 있는가를 말해주는 가장 단순하고도 정확한 지표 역시 투표율이다.

민주화 이후 87/88년 대선/총선에서 각각 89.2%와 75.8%이던 것이 그로부터 20년 뒤 2007/8년 대선과 총선에서 63%와 46.1%를 기록하면서 30% 포인트 가까이 하락했다.


이렇게 낮은 투표율은 유럽은 물론 일본과도 비교될 수 없고, 선진국 가운데 가장 투표율이 낮은 것으로 알려진 악명 높은 미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를 진단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한국에서 사람들은 왜 투표하지 않나? 민주화가 된 지 20년 남짓 된 신생 민주주의 국가임에도 왜 한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투표율이 낮나? 민주화 이후 투표율이 그 어느 나라와 비교하더라도 유례를 찾기 어렵게 지속적이고 가파르게 떨어졌나?


이들 문제를 탐구하는 것이야말로 한국 정치학자들의 최대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손낙구의 연구는 이 질문에 대해 지금까지 우리가 가졌던 어떤 연구 결과보다도 더 종합적이고 확실하게 그 해답의 윤곽을 제시하고 있다.

이 연구는 모든 집을 방문 조사한 전수조사 결과에 의거한 통계청의 인구주택 총조사자료를 중심으로 여러 통계 자료 동원한 것으로, 이를 분석한 자료의 방대함과 변수들(주택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자산의 크기)의 현실정합성은 특기할 만한 것이다.

특히 읍면동 수준까지 내려간 전수조사에 따른 집합자료는, 응답률이 지극히 낮은 개인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방법에 의거한 연구들 혹은 기존의 관행이었던 시군구 단위의 조사결과에 의거한 연구들이 갖는 한계에 비해 훨씬 정확하고 포괄적이라는 강점을 가진다.

손낙구의 연구는, 지금까지 여러 정치학자들의 단편적인 연구들을 훨씬 뛰어넘는 업적이며, 지금까지 누구도 하지 못하고, 이루지 못했던 개척적인 연구로 높이 평가된다.

이 연구 결과는 너무나 방대하고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그로부터 발생하는 여러 중요 문제들에 대해, 그리고 통계기법을 사용하여 더 많은 문제들에 해답을 줄 수 있게 되었고, 앞으로 한국정치와 민주주의 연구에 있어 연구지평을 넓게 열어줄 것이다.

(- 연구 결과의 내용에 대해서는 책 소개 팜프렛에 누구보다 잘 요약해 놨기 때문에 여기에서 다시 되풀이할 필요는 없어.)  


3. 연구의 사회(학)적 중요성

손낙구의 『대한민국정치사회지도』의 또 다른 중요한 의미는, 주택/부동산 문제를 중심으로 한 정치경제학적 의미뿐 아니라, 주거환경을 중심으로 한 인간의 삶의 조건을 규정짓는 도시사회학적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손낙구의 연구가 발견한 것은, 전체 국민의 30%, 셋방가구의 52%가 2년에 한번 씩 이사를 다니고, 전체 국민의 절반 이상, 셋방가구의 80%, 그리고 수도권은 더 심해서 전체의 65%, 셋방 사는 사람의 82%가 5년에 한번 씩 이사를 간다는 사실이다.

수도권 인구의 35%, 셋방가구의 54%는 2년에 한 번씩, 즉 2년이 지나면 셋방가구의 절반을 포함해 동네사람의 1/3이 바뀌고, 5년이 지나면 셋방가구의 82%를 포함해 동네사람의 2/3가 바뀌는 셈이다.

이래가지고는 제대로 된 지방자치는 고사하고 회사나 직장에서 사원들의 주소록을 만들기조차 어렵다. 물질적 자산의 측면에서, 주택소유가 불평등을 만들뿐 아니라, 공동체와 인간관계의 유기적 구조를 해체하고, 인간의 정신적, 정서적 안정성에 기초한 인간으로서의 삶의 조건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참으로 폭력적인 환경이 주는 긴장과 불안, 개개인의 삶의 불안정성은 여러 개인적, 집단적 수준에서 정신적, 사회병리적 현상을 불러오게 될 것이다. 저는 이런 점들이 이 연구결과가 사회학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4. 무엇이 이런 업적을 만들어 낼 수 있었나? - 열정과 열정의 억제

앞에서 저는 직업적인 학자가 아닌 사람에 의해 수행된 연구가 놀라운 업적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연구자는 노동운동과 정치영역에서 부여된 역할을 하는 것이 그의 생업이고 사회적 역할이었었기 때문에 시간이 많지도 않고, 대학이나 연구소와 같은 데에 몸담고 있는 직업적 학자/연구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연구비의 혜택을 받지도 못했다.

이 책의 출간으로부터 받는 혜택은 출판사에서 받을 인세가 전부일 것이다. 나아가 1,660 쪽에 달하는 책의 규모가 말하듯이 연구규모의 방대함으로 인하여 이 정도의 규모는 혼자서 하기가 어렵다. 요즘 학계에서 연구자/학자들이 하는 일반적인 방식대로라면, 연구팀을 구성하고, 프로젝트를 만들고, 연구비를 받아 공동으로 하는 것이 상례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연구비도, 아무런 공동연구자도 없이 혼자서 이를 수행했다. 이것이 저자로서의 손낙구를 완전히 다르게 볼 수 있게 하는 요소다. 손낙구의 방대한 연구결과를 보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은, 모로하시 테츠지(諸橋轍次, 1883-1982)라고 하는 일본의 위대한 한문학자다.

그는 36년간 노고의 결과로 만들어진 대한화사전(大漢和辭典) 13권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이 사전은 지금까지 나온 한문사전 가운데 가장 크고 완벽한 사전으로, 한문을 하는 사람은 필수적으로 참조하는 사전이다. 벌써 십수 년은 족히 지났지만 하버드 대학교에서 이를 영역하기 위해 수백만 불짜리 프로젝트를 만들어 작업을 진행하다가 성공하지 못했다는 얘기 들은 적이 있다.

모로하시는 인문학자이지만, 또한 손낙구와 유사한 정치사회학적 영역에서 19세기 말 런던의 빈곤실태를 조사 연구한 찰스 부스(Charles Booth. 1840~1916)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리버풀의 유명한 상업 부르주아지로, 부유한 상인이고 선박 소유주였던 그는 평소 보통사람들의 삶의 조건을 향상시키는 데 상당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급진파들이 런던의 빈곤상태를 과장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얼마나 진실인가 직접 조사해보기로 결심했다.

런던 빈민지구인 동부지역의 골목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모든 거주자들을 조사하다가, 직접적인 방법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간접적인 방법으로 바꾸어서 자료 수집을 끝냈다.

그는 총 17권의 조사보고서를 완성(1901~1902)했다. 그의 연구는 영국에서 경험적 사회학을 개척했고, 1908년 영국 노년연금 도입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무엇이 혼자서 이런 엄청난 작업을 하도록 했나? 무엇이 손낙구로 하여금 이런 연구를 하도록 만들었나?

저는 그것을 열정이라고 생각한다. 열정 없이는 이러한 작업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열정이 무언가 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그것은 제어되고 정련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사회의 부정의를 보거나, 인권이 유린된다고 생각하거나, 또는 빈곤과 노동 현실이 참담하여 개선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할 때, 우리 안으로부터 열정이 발동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열정이 현실을 바꾸거나 어떤 것을 이루어낼 수 있기 위해서는 이를 절제하고 정련하는 내적 힘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것은 한낱 정서적으로 급진적이 될 뿐이다.

열정을 갖는 사람은 많으나 내적 통제력으로 절제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저자 손낙구는 한국사회에서 누구보다도 부동산 자산의 정치경제가 만들어내는 생활조건과 주거환경의 실상을 밝히는데 그의 열정을 쏟아 부었다.

그것이 한국사회의 불평등의 핵심적 요소이며, 노동자들, 사회 소외계층들의 삶의 조건을 규정하는 핵심적 문제라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의 연구가 말하는 핵심적 문제의 하나는 노동문제와 주택문제로 표출되는 부동산 자산의 불평등 구조는 직결돼 있다는 점이다.

즉 그것은 다른 각도에서 접근된 노동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의 연구를 통하여 노동문제는 개선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문제의식, 그것이 밖으로 표출되지는 않았지만 강렬한 열정을 읽을 수 있다. 그것이 그동안 학계에서 누구도 하지 않았던 거대한 작업을 만들어내게 했던 힘이라고 생각한다.

5. 연구의 결과가 말하는 것

손낙구의 연구가 말하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정치적 갈등구조의 양극화다. 오늘날 우리가 일상적인 정치언어나 레토릭, 정치적 슬로건과는 완전히 다른 수준에서의 양극화다.

한국사회의 중심적인 갈등구조는 다른 것이 아닌, 대표된 영역과 대표되지 않은 영역간의 갈등, 즉 사회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중산층 이상의 제도 내로 통합된 사회계층과 서민으로 통칭되는 제도 내로 통합되지 못한 노동자, 사회적 약자, 소외세력 간의 갈등을 특징으로 한다는 점을 경험적 자료를 통해 보여준 것이다.

<후마니타스>의 박상훈 박사의 간결한 표현처럼 한국사회에서 제1당은 유효 투표자의 절반이상을 차지하는 무당파, 투표하지 않는 사람들이고, 제2당은 한나라당, 3당은 민주당 등이며, 이것이 갖는 함의는 크다.

오늘날 정치 갈등은 대결적이고 격렬하게 공격적인 언어의 홍수로 뒤덮여지고, 보수파와 진보파 사이에 엄청난 이념적 차이와 중대한 정치적 이슈를 둘러싼 타협 불가능의 투쟁처럼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 방향과 보통 사람들의 사회경제적인 삶의 문제를 둘러싼 진정하고 중심적인 갈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단지 가식적인 것이거나,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격렬한 것으로 나타나는 정치적 대립과 투쟁은 제도권 내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반영할 뿐이다.

그러므로 한국 민주주의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참여의 위기다. 이를 풀어 말하면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정치적 참여의 불평등과 중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치체제로서의 민주주의는, 독자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조건 위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동행하는 것은 필연적이고 자연스럽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정치참여의 평등을 원리로 하여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스스로를 정치적으로 조직하고 보호할 수 있는 평등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시장에서의 불평등과 힘의 열세를 일정하게 완화할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를 보호해야 할 약자들이 투표하지 않을 때(투표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게 될때)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초래하는 시장경제적 힘의 구조는 그대로 개인과 사회경제적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집단에게 몰아닥칠 수밖에 없다.

이점에서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거나 개선하려는 투쟁과 노력 이전에 해야 할 과제는 바로 어떻게 정치적 참여의 평등에 가까이 다가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해결코자 하는 투쟁과 노력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서 노동문제는 어떻게 접근되고, 그 해결을 위한 실천적 전략이 모색될 수 있는가 하는 방향이 나타난다. 이것은 손낙구의 연구가 노동운동에 대해 말해주는 가장 중요한 함의다.

요컨대 노동운동은 민주주의의 맥락에서 접근돼야 한다는 것이다. 즉, 그 핵심은 노동자들, 사회적 약자들이 투표할 수 있는 그들의 정치적 대표의 조직을 건설하는 문제다. 손낙구의 연구는 노동운동이 이 문제에 완전히 실패했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민주(+열린우리)당을 많이 찍는 동네일수록 투표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면, 민노당/진보신당은 동네별 특성과 지지율 사이에 뚜렷한 상관관계가 없다. 이 연구는 진보정당은 자신만의 지역기반을 갖지 못한 채 유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정작 누구보다 보호를 필요로 하는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를 대변할 수 있는 정당들은 사실상 투표의 대상으로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노동운동이 진정한 노동운동이 되기 위해서는, 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직면해있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언어, 발상, 전략 모든 것이 변하는 것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손낙구는 이 상황을 노동운동의 중심과 지도부의 위치에서가 아니라, 그 반대편에서 보통 사람들의 삶의 조건에 대한 경험적 연구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노동운동의 정치언어, 이념은 민주주의의 맥락에서 접근되지 않았다. 그보다는 투쟁을 통해 사회경제적 조건을 곧바로 개혁 또는 변혁코자 하는 것을 지향했다. 그것은 급진이념적이고, 정치적 동원을 위한 슬로건의 성격을 강하게 띠었다.

민주주의의 맥락에서 노동운동을 접근하는 것의 핵심은 정치적으로 유효한 집단을 투표를 통해 조직하는 것이고, 정치과정에서 정치적인 행위자가 되는 정도만큼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노동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정치적 참여의 평등을 실현하는 노력이 선행되고, 그 다음 이를 통해 사회경제적 문제를 접근하는 우선순위가 전도된 것이다. 민주화운동 시기 대학생, 지식인들에 큰 영향을 가졌던 노동운동과 그 전통은 우리 사회의 유기적 핵심에 침투하지 못했다.

추상적 언어와 이념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동안, 구체적으로 노동현실을 개선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소홀했다. 구체적인 문제로 환원해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손낙구가 연구에 임했던 방식은 더없이 중요하다.

그는 무엇을 먼저 주장하기 이전에, 또는 당위적인, 규범적인 문제를 말하기 이전에 사태의 실상을 먼저 규명하고자 했다. 문제가 경험적인 사실을 통해 드러났을 때 우리는 문제에 대한 해답은 많은 부분 저절로 발견하게 된다.

6. 맺는말

손낙구의 연구는, 이미 누군가 특히 직업적인 학문 연구자들에 의해 다루어졌어야할 민주화이후 한국사회의 중심문제를 다루었고, 열악한 조건 하에서 개인의 혼자 힘으로 누구도 하기 어려운 방대한 경험적 연구결과를 만들어냈다.

그의 연구는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하는 문제를 밝혀냈다는 점에서 한국사회과학계의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될 수 있다. 그의 학문적 성과에 대해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결과가 직업적인 지식인 사회 밖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에 또한 커다란 의미가 발견된다. 연구결과는 정치적 실천의 장에서 나왔기 때문에, 정치실천에 있어 보다 직접적인 충격효과를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느껴진다. 특히 노동운동의 방향에 있어 의미 있는 변화를 기대하게 된다. 다시 한 번 저자 손낙구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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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치 사회 지도 : 수도권편 - 동네가 보인다 선거가 보인다
손낙구 지음 / 후마니타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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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성 2010-03-12 23:00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거 나도 한 권 구했수
문화팀 가보니 누구도 관심없어하길래
슬쩍 물어왔수다
 
밖에서 본 한국사 - 김기협의 역사 에세이 
김기협 지음 / 돌베개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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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협 선생은 사학자로서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공과대학에 입학한 그는 사학과 대학원을 가서 동양사를 공부해서 대학교수가 됐다. 마흔 무렵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질문 끝에 잘 나가던 대학교수직을 때려 쳤다. 그는 38살 무렵에 처음 읽은 아버지의 ‘일기’가 자신의 정체성을 자유롭게 풀어놓게 된 계기가 됐다고 했다. 알려져 있다시피 그의 부친은 6.25 전란의 와중에 유명을 달리한 김성칠 전 서울대 교수. <역사 앞에서>라는 표제로 공간된 그의 일기는 전쟁이라는 극한적 상황 속에서 ‘기록과 관찰’이라는 지적 노동을 성실하고 세밀하게 실천한 전범적 사례다. 김 선생은 그후 중앙일보 객원 논설위원으로 이 신문의 대표적 연재칼럼인 ‘분수대’를 다년간 집필했고, 출판기획자 등을 거쳐 재야(?) 사학자가 됐다. 중국의 고대역법으로 석사학위를, 마테오리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블로그(http://orunkim.tistory.com/)에 따르면 프랑스와 일본, 미국, 중국 등에 ‘지적 방랑’을 하며 ‘외부자의 시선’을 기른 모양이다.

그래서일까? 김선생의 <밖에서 본 한국사>를 읽으면서 느끼게 되는 건, 기존 역사서에 배어있는 ‘분노와 격정’이 싹 가신 문체가 주는 편안함이었다. 간난신고의 한국사를 읽다가/쓰다가 보면 누구나 열정적 민족주의자가 되지 않던가. 임지현처럼 민족주의를 해체하는 지점까지 나아가지 않더라도 그것을 서너 발자국 떨어져서 요모조모를 살피며 소크라테스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은 정신적 국외자만이 확보할 수 있는 ‘거리’이리라. 그가 한국사학자가 아니라 동양사학자라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래서 여기 실린 김선생의 많은 글들은 이른바 춘추필법의 준엄한 평가이거나 역사적 교훈을 결론으로 도출해내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사태의 옆에서, 뒤에서 이런 해석과 저런 평가를 적절하게 배치하여 서술하는 양상이다. 선생이 말한 중층적 시각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이중정체성의 존재로서 ‘조선족’의 시각을 채택하는 것) 나로서는 그것을 좌충우돌(左衝右突) 전략, 성동격서 전략쯤이라고 말하고 싶다. 민족적 당위성을 주장하는 목청 높은 언설에는 중국과 일본의 영향과 상호작용을 말하고, 한국사의 위대한 인물을 치켜세울 때는 그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조건과 상황을 서술하는 식의 거품빼기 전략 말이다. 


한국사에 대한 서술은 과잉 민족주의거나 뉴라이트 쯤으로 양분되어 있는 것 같다.(아마추어인 나로서는 ‘같다’라는 표현을 쓸 수밖에) 과잉민족주의 언설에 대한 해체적 비판은 엉뚱하게 우파적 역사해석에 힘을 실어준다. 가령,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의 필자들은 ‘포스트모던’이라는 이론적 진보의 시각으로 역사를 해석하고 있는데, 그것의 귀결은 보수담론의 입지를 강화하는 ‘정치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었다. 윤해동 선생이 어느 글에선가 “포스트주의와 보수의 부적절한 만남”이라고 썼던 것이 어설프게 기억난다. 가장 급진적인 이론적 논리가 보수담론으로 귀결되는 이 기이한 현상을 어떻게 봐야할까. <재인식>의 집필에 동원된 상당수의 필자들은 이론적 좌파이자 ‘전향’은커녕 생래적으로도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김선생의 <밖에서 본 한국사>는 이 둘 어딘가의 중간쯤, 혹은 두 담론이 대립되어 있는 지점 바깥의 어느 곳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이 내게 일정한 ‘계몽’의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면 바로 이런 ‘좌’에 부딪치고, ‘우’를 깨는 좌충우돌식 접근이 주는 해체와 재구성의 역사서술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책은 최근 김선생이 프레시안에 연재하고 있는 ‘망국 100년’(http://www.pressian.com/의 모티브인 것으로 보인다. 근세사에 대한 서술의 일부는 망국 100년의 초기 글들과 겹쳐 있기도 하다. 그는 조선의 멸망은 1910년의 한일병탄에 있는 것이 아니라, 1897년 대한제국의 성립에 있다고 말한다. 잃어버린 것은 국가라는 실체이거나 민족의 단절이 아니라, ‘전통’이다. 중국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진 조선의 오랜 ‘화이부동’의 전통, 조선의 문화적 역량의 힘이 훼손되거나 단절되었다는 것이 더 중요한 대목이라는 것이다. 이는 내재적 발전의 과정이 일제의 침략으로 가로막혔다는 진술과 다르다. 농본주의 체제를 고수한 조선은 뒤이은 상공업 발전을 효과적으로 견인해내지 못했다. 조공체제의 대외관계는 근대적으로 혁신되지 못했다. 성리학은 소중화를 자처한 채(김선생의 말을 빌면, 차라리 眞중화), 근대적 삶을 해명하고 이끌어내는 사상으로 변형되지 못했다. 일본의 침략은 이러한 단절의 과정을 가속화하고 최종적으로 마무리한 것이다.

<밖에서 본 한국사>에는 기억할만한 대목들이 많다. 내 연필은 개개의 사실을 말할 때보다 그의 해석과 평가에 더 많은 밑줄을 그어댔다. 일본과 중국의 근대사를 관심있게 읽어온 처지에서 그중 주목이 갔던 것 중의 하나는 일본에는 존왕이라는 제3의 길이 존재했던 반면, 한국은 쇄국과 개항이라는 이분법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대목. 일본의 근대화는 천황제의 근대적 발명과정이기도 했다. 천황-막부로 이어진 이중권력의 상태에서 일본의 근대는 천황과 막부를 떼어내는 것과 양이에서 문명개화로의 극적인 변화가 어울려 가능했다. 존왕은 봉건제로의 복귀가 아니라 근대적 입헌군주국가로 가는 지름길이었던 것. 김기협 선생은 고종의 대한제국 수립과 일제에의 저항이 국가를 수호하려는 것인지, 왕권을 수호하려는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고 쓰고 있다. 나로서는 그건 왕권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내의 피살에 놀라 피신한 아관파천만 봐도 그렇다. 왕권의 회복=근대화였던 일본과 한국이 결정적으로 다른 대목중 하나일 것이다. 역시 한국사를 읽는 건 재미보다는 우울함을 배가시키는 경험이다.

기억해야할 서술들(메모 혹은 요약) : 중국의 천하체제는 천자를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는 구조로, 춘추시대에 형성되어 중국의 대외관계의 기본원리가 되었다. 한민족은 ‘화이부동’의 태도로 독자적인 생존을 이어왔으며, 그것의 본령은 군사적 힘이 아닌 문화적 힘이다. 낙랑은 점령군이 아니라 중국문명의 송유관 역할을 했다. 임나일본부설을 가야-왜 복합체로 해석하는 것. 한국과 중국은 고구려의 공동상속자였다. 신라의 당 원조(김춘추) 요청은 통일의 야망이 아니라 생존술 이었고, 통일전쟁의 핵심적 역할도 당나라 군대가 했다는 것. 신라의 진정한 통일은 당나라와의 저강도 전쟁으로 한반도를 민족정체성의 구성공간으로 지키고 만들어낸 것이다. 한민족의 공간은 고려의 천리장성 축조로 반도화되었다.

몽골에 대한 고려의 항복조건은 평등조약에 가까운 것(?)으로 항쟁의 성과라는 것. 공민왕은 비록 좌절했지만 고려중흥을 위한 개혁군주였다. 변방무장(이성계)과 정예문신집단의 접점이 조선의 출발점이었다. 고려말 개혁의 좌절은 개혁주체가 집권 이후 기득권에 집착했기 때문인데, 주체만 달리한 채 개혁을 반복한 것이 근본적인 문제다. 사대는 춘추시대 이후 천하질서의 원리로서, 사대와 사대주의는 권위와 권위주의의 차이와 같다. 사대는 명나라와의 대외관계 속에서 조선이 만들어낸 존재방식이다. ("임진왜란 때 외에는 명나라 군대가 조선에 주둔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이 사대관계는 지금 남한의 미국에 대한 종속관계보다 독립성이 강한 것이다." p. 180) 일본이 들고 나온 만국공법 체제는 허구의 평등을 전제로 한 것으로, 작고 약한 나라를 보호할 필요를 부정하는 약육강식의 정글이었다.

한국이 독립을 지켜온 것은 화이부동의 문화노선을 견지해온 덕분이며, 이 노선을 안정시킨 것이 세종의 업적이다. 성종 이후의 사화는 성리학적 통치의 주체로서 사림이 자리잡는 과정의 진통이었다. 광해군은 폭정이 아니라 정치투쟁의 와중에 폐위된 것으로 그것은 그의 정치력이 가진 한계다. 청은 입관 후에 합리적 조공관계로서 중-조 관계를 재조정했다. 정조의 서학에 대한 태도 : 정학의 쇠퇴가 가져온 그림자일 뿐, 그림자를 주물러 현실을 바꿀수 없다는 실용주의. 서학은 보유론으로서 중국에 적응하려 했는데, 학문적 실천으로서의 보유론과 신앙적 실천의 두 갈래에서 탄압의 와중에 근본주의로서의 신앙적 실천만이 살아남았다. 이로써 조선 천주교는 조선의 주권을 부정하는 성향을 보였고, 이는 정조의 탕평책에서 세도정치로 넘어가는 전환점의 소용돌이에 서학이 말려든데 있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독교의 신앙적 순수주의, 이후 한국기독교의 ‘전통’인 보수반공 기독교의 형성과도 연관이 될 듯하다.)

조선은 농본국가체제의 근본틀을 바꾸지 못했고, 임란이후 형성된 상공업 체제 역시 정경유착을 부채질해 체제를 약화시키는 작용을 했으며, 조선은 이런 과정을 통해 기울어져 갔다. 일본에게는 서세동점의 현실속에서 존왕이라는 제3의 돌파구가 있었으나, 조선은 쇄국과 개항의 이분법에 묶여 있었다. 조선 은 중국의 천하체제에서 벗어난 일단계의 망국을 거쳐, 일본의 지배아래 떨어진 2단계로 마무리됐다. 고종이 수호하려던 것이 재위 40년의 행적으로 볼 때, 국권인지, 왕권이었는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임정이나 해외에서 정치다운 정치가 나오지 못한 것은 조선이 정치의 전통을 제대로 남겨주지 않은데 큰 이유가 있다. 이승만의 퇴임자리에 있었던 것은 송요찬 국방장관, 허정 외무장관(대통령 유고시 대리인), 그리고 미국 대사 매카너기였다.(최후의 보루인 군부와 미국) 이승만은 무능을 드러내고 미국에게 해고당한 것이었다. 이승만 정권의 성격을 여실해 보여주는 세 사건 : 반민특위 탄압, 보도연맹사건, 국민방위군 사건.

재벌체제는 권력중독증이 경제계에 투영되어 나타난 것이었다.(독재와 재벌의 쌍생아적 구조) 과거처럼 특권의 주재자가 아닌 두 대통령 아래 남한 상당한 자생력과 안정성을 가진 국가로 변신할 수 있었다. (이는 김대중 - 노무현의 노선에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 대목으로, 김선생의 정치적 지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의 역사왜곡은 얕은 층위의 가치훼손과 깊은 층위의 가치관 훼손이라는 두 층위가 존재한다. 애국자임을 자부하는 한국인들이 공유하는 것은 일본의 관점을 내면화한 것들이 많은데, 이는 거울에 비친 오리엔탈리즘이다. 일본의 한국통치의 유산 중의 하나는 “한국인의 눈에는 모든 공무원이 권력자였고, 순사와 군인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는 것.(국가에 대한 한국인의 심성구조에 자리잡은 불신과 저항의 내력은 이러하다.)

남북관계에서의 변화는 평형상태를 벗어나는 데 있는데, 평형에 집착하는 상호주의로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가 없다.(보수의 상호주의에 대한 이색적이고도 발본적인 비판이다.) “인구의 안정을 설명하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이것을 인간에 대한 태도가 한 차례 정리되는 것으로 나는 본다. 산업화는 자연을 타자로만 보는 공격적인 태도로 출발했다. 이제 더 이상의 공격은 인간 자신에 대한 공격이 아닐 수 없는 상황에 와 있다. 인간과 자연을 묶어서 보는 생태론을 이제 아무도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세계 인구의 평형상태는 인간에 대한 인간의 공격을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평형’을 깨는 것은 인간의 삶에 불가피한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007년 대선에서 후보들은 높은 경제성장률을 공약으로 내걸었는데, 4년 후 선거에서는 아마 극우파 후보들만이 그런 공약을 들고 나올 것이다. (이런 예측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이런 예측대로라면, 진보가 요즘 주장하는 경제성장을 기반으로 한 이른바 ‘성장친화형 진보’는 어떻게 가능할까? 과연 그건 진보일까, 성장일까?) 과거에는 근공원교였지만, 이제는 근교원공의 시대로 향하고 있다. “국민국가의 벌거벗은 이기심을 지역차원에서 정제, 순환하지 않고는 세계차원에서 효과적 화합을 바라볼 수 없다.”  “동아시아 지역은 19세기 이전에 위대한 문명전통을 가지고 있었지만, 산업화의 물결에 휩쓸린 후 한 세기 반동안 이 전통의 가치를 잘 살리지 못했다. 유대감도 전통도 별로 요긴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팽창의 시대는 앞만 보고 달릴 뿐, 뒤를 돌아보지 않는 시대였다. .. 균일한 가치의 획득을 위해 만인이 경쟁하는 동이불화의 세계는 자원의 벽앞에 파국을 면할 수 없다. 다양한 가치관이 병행하는 화이부동이 인류의 존속, 인류다운 인류의 존속을 보장하는 길이다.”



 
 
노이에자이트 2010-03-15 16:41   댓글달기 | URL
광무개혁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은 고종을 근대개명군주로 해석하려고 하던데, 사실 일본의 존황양이파와는 다르다는 주장이 눈에 뜨이는군요.

모든사이 2010-03-15 17:09   댓글달기 | URL
저는 고종이 과연 근대개명군주이자 망해가는 조선을 일으켜세우려던 근대적 개혁가인지 도대체 모르겠더라구여. 서울대 이태진 교수님이시던가요? 일제에 의한 패망이 주는 비극성과 안타까움의 한 표현이라는 '이해'는 들어도, 대체 동의는 할수 없더라구여. 그게 다 제가 문외한인 탓이겠지요.

노이에자이트 2010-03-15 18:59   댓글달기 | URL
한영우와 이태진이 대표적이지요.한영우는 더 보수적입니다.건국60주년 기념사업 때 그런 특징이 더 드러났지요.이태진은 민비나 대원군까지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고종황제 역사청문회>는 고종시대를 둘러싼 논쟁을 담은 책인데 특히 김재호와 이태진의 논전이 볼만합니다.김재호는 전문적인 경제사학자의 시각에서 고종시대의 근대화가 별볼일 없다고 주장하지요.

강준만<한국근대사 산책>에서 고종시대에 대한 각주의 인용문헌에도 읽어볼 만한 책(신문,잡지 포함)이 많이 나오니 한번 검토해 보십시오.

모든사이 2010-03-17 10:11   댓글달기 | URL
얼마전 한겨레를 보니 김용섭 교수의 자본주의 맹아론에 대해 사학계의 논쟁이 재연된 모양이더군요. 김재호 교수도 거기 가세한 것 같은데.. 의견 감사드립니다. 말씀하신 '보수성'은 결국 과잉민족주의의 산물이 아닌가 생각이 되는 군요. 강준만의 '한국사 산책' 시리즈는 그 특유의 저널적 글쓰기라고 생각돼 개인적으로 로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기회되면 한번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3-17 16:52   댓글달기 | URL
윤해동의 논문이 촉발했더군요.자본주의 맹아론은 진작 비판대상이지만 윤해동은 김용섭 학설을 직접 분석한 상당분량의 논문이더군요.<역사학의 세기>에 실린 다른 논문도 주목할 만하니 정독하려고 합니다.김재호를 비롯한 낙성대 학파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뉴라이트 운동하는 집단이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이들이 많은데 내재적 발전로-자본주의 맹아론에 대한 비판은 주목할 만하다고 봅니다.

강준만의 산책 시리즈 밑의 참고문헌을 보면 중요한 연구성과는 단행본이나 논문은 물론 정기간행물에 실린 글까지 거의 다 망라되어 있어서 그 책 찾아보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될 것입니다.
 

계절이 바뀌는 건 몸으로 체득하는 일이지만, 책을 사고 읽는 일로 깨닫기도 한다. 내게는 <창작과 비평>가 바로 그런 ‘환절기’의 필수 도서목록. 점심 시간에 교보에 가서 사다. 이명박 시대를 ‘3대 위기’로 규정하고 있는 특집이 우선 눈길을 끌고, 20대 ‘아해’들의 좌담과 백낙청 선생의 ‘포용정책2.0을 향하여’도 들춰보게 된다. 김철과 황종연의 문학적 민족주의 비판에 대한 ‘원로’ 김흥규 선생의 글도 눈에 띤다. 연세가 꽤 되셨을 것인데, 자신의 문학연구의 출발점이자 기반이 무너지는 것을 우려했는지, 이론적 반격의 서슬이 꽤나 단단하다. 어서 읽고 리뷰를 쓸 것. <문학과 사회> 봄호에는 한강의 신작 소설에 대한 작가대담이 실려서 교보에 서서 들춰봤는데, '비평가' 강계숙과 '소설가' 한강이라는, 나에게는 두 사람이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두 사람 모두 예전보다 훌쩍 키가 커진 것 같았다.  

이준구 교수의 홈피에서 눈에 익은 안병길 박사의 책. 역시 이준구 교수의 서평에 힘입어 사다. 참여정부 초기 임혁백 교수와 정치개혁연구실에서 일했다고 하는데, 참여정부의 지향했던 정치개혁의 방향을 우회적으로 읽어낼 수 있으리라 짐작이 됐다. 첫 머리의 추천사에는 이준구, 임혁백, 정준표 등 무려 세명이나 동원됐다. 저자가 뒷표지의 짤막한 ‘주례사’로는 성에 차지 않은 모양. 누군가의 평가처럼 내가 ‘도저한 리버럴리스트’라면 ‘자유민주주의’ 라는 언어에 육친적 친화력을 느낄 만도 한데, 그렇지 않은 것은 ‘자유민주’를 자처한 자들이 남긴 트라우마일까. 하여간, “대통령도 모르는 자유민주주의 알기”라는 부제를 보니 MB 비판을 바닥에 깔고 있을테고, 문득, 참여정부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인간들은 왜 이리 책 내고 담론을 개발하는 것을 좋아하나.(3월 9일, 교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