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저녁 강의가 있어서 귀가 후에 정신을 좀 차리자면 자정이 넘는다. 매번 '어제' 일을 일기처럼 적게 되는데, 여하튼 어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글은 진중권의 칼럼이다. 사실 여러 불미스런 일들을 훌훌 떨치고(아마도 몇 가지 고소 사건만 정리되면) 3년간 외유를 떠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조금은 부러운 일이다), 어제는 그가 아직 한국을 뜨지 않았으며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걸 오랜만에, 여실히, 감동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만한 재치와 감각, 그리고 발군의 순발력과 사회적 의제에 대한 책임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 않나 싶다. 내가 먼저 읽은 건 PD수첩 재판결과와 관련하여 번역자인 정지민씨의 사과를 촉구하는 오마이뉴스의 기고 기사이고(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308323) 귀가 후에 검색해보니 정운찬 총리를 '충청부족 아바타'에 비유한 것이 또 화제에 올라 있다. 하여, 어제는 '진중권의 날'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진중권 없는 한국사회'는 아무래도 좀 심심하지 않을까? 오마이뉴스의 기사 일부와 아바타 발언에 대한 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나대로의 경의 표시다.    

오마이뉴스(10. 01. 26) 오역과 궤변, 정지민은 사과해야 한다

(...)검찰이 가진 증거(?)라고는 딱 하나, 정지민이라는 번역자의 증언이었다. 그는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여러 가지 믿을 수 없는 얘기를 했지만, 그 중 핵심은 아레사 빈슨의 가족이 의사로부터 MRI 결과를 CJD로 통보받았는데, (피디수첩 제작진이) 그것을 슬쩍 vCJD로 바꿔서 내보냈다는 것이었다. 번역자 정지민은 이 부분에 대해 대단히 자신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얼마 전에 낸 책에 이렇게 썼다고 한다.   

"내게는 방영되지 않은, 그러니까 빈슨 모친이 딸의 장례식 직후, PD수첩과의 인터뷰가 아닌 현지 코디와의 인터뷰에서 MRI 결과를 CJD로 통보받았다고 말하는 내용의 번역 파일이 있다 (202쪽) 나는 여기에, 내가 갖고 있던 일부 번역 자료 중 빈슨 모친이 딸의 장례식 날 현지 코디와의 인터뷰에서 했던 'MRI로 CJD 진단을 받았다'는 내용도 첨부했다. 기자는 왜 내가 이런 결정적인 자료를 진작 주지 않았는지 궁금해 했는데, 내가 '사실관계를 너무 일찍 밝혔을 경우에 대한 우려'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이 해명 방송 당일만을 목 놓아 기다렸음을 설명하기 위해서 그냥 '일단 검찰 조사에만 냈고…'어쩌고 하면서 얼버무렸다. 그리고 문자 메시지로 덧붙였다. '결정적인 자료일 수도 있죠.'" (210쪽)

문법적으로 비문(非文)에 가까워 알아듣기는 힘들지만, 대강 (1) 빈슨의 모친이 MRI 결과를 CJD로 통보받았다는 내용의 번역 파일이 있고, (2) 이는 검찰에만 제출하고 기자들에게 제공하지는 않았는데, (3) 그것은 이 사실이 새나갈 경우 행여 피디수첩 측에서 대응논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우려해서였다는 뜻으로 읽힌다. 정지민이 조중동의 기자들에게까지 비밀로 감추어 두었던 그 결정적 번역 파일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07:03) (여) 아레사는 MRI를 통해 CJD라는 진단을 받았는데 쿱스펠트-야커병이라고 한다. 정말 잘 모르지만, 그에 대해 알아보려고 노력했다. 그 병이 내 딸을 내게서 뺏아간 것이라면 이것에 대한 더 많은 정보가 알려지길 바랄 뿐이다. 상실감을 정말 크게 느낀다."

그런데 이 부분의 원문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Well… Aretha had been diagnosed possibly through her MRI as having a variant of CJD, which is Creutzfeldt Jacob disease."

자기가 'a variant of CJD'를 그냥 CJD로 오역을 해놓고, 그것을 근거로 피디수첩에게 엉뚱한 죄목을 뒤집어씌웠다는 얘기다. 더 재미있는 것은, 딴에는 그 오역을 "결정적인 자료"로 생각하여 조중동 기자들에게까지 고이 비밀로 간직했다는 것. 그 모험이 얼마나 신났는지 책에다 자랑까지 해 놨다. 그런데 그 비장의 무기가 오역이었다. 얼마나 허무한가? 그래도 이 허무함 속에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그 '닭짓' 덕분에 검찰과 조중동이 단체로 관광버스를 타게 됐다는 것이리라.

억지와 궤변

자신의 오역이 드러나자 정지민은 다시 'a variant of CJD = CJD'라는 해괴한 주장을 들고 나섰다. 의학에서 'variant'라는 말은 그 병의 통상적 경우와 임상적 증세가 많이 다를 경우에 붙는 수식어이나, 일상에서는 간혹 'a type of' 혹은 'a kind of' 정도의 의미로도 사용된다는 데에 기댄 회피 기동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언어학적 편법도 그녀를 곤궁에서 구원해줄 것 같지는 않다. 이 문제에 대해 일단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보자. 우석균 보건의료 정책국장의 말이다.

"백만명 중에 한두명 걸리는 s, f, i 등 세 종류의 CJD가 발견되고 난 뒤, 오염된 쇠고기를 먹은 인간에게서 발견된 CJD를 새로운 변종이라 하여 'new variant of CJD'라고 불렀고, 이후 'new'의 'n'이 떨어져 그냥 vCJD가 됐다." 

서울대 우희종 교수의 말이다.  

"학술논문에도 'a variant of CJD'와 'vCJD'를 병기해서 쓰며, a variant of CJD와 variant CJD를 같은 의미로 동시에 쓴다."

이름을 밝히지 말라는 한 의대교수의 말이다.

"통상 variant라는 표현은 인간광우병을 뜻하지만, 정확한 의미는 문맥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실제로 미국 농무부의 연방관보와 미국 질병관리센터의 문건에도 'a variant of CJD'는 곧 vCJD를 가리킨다고 나와 있다. 당시의 미국 신문도 그렇게 보도했다. (반면, CJD의 다른 유형들이 'a variant of'라는 표현과 더불어 있는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즉, "통상 variant라는 표현은 인간광우병을 가리킨다." 흥미로운 것은 조중동의 태도다. 그들은 그저 정지민의 궤변을 인용해 '카더라' 통신질을 할 뿐, 자기들 입장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자기들도 정지민의 말이 억지임을 안다는 얘기다. 그렇지 않다면 복화술이 아니라 직접화법을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백번을 양보하여 "정확한 의미는 문맥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문맥은 어떨까? 정지민이 아무리 우겨도, 한 가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아레사 빈슨의 어머니는 자신의 딸이 광우병에 걸렸을 것이라 생각했으며, 피디수첩과의 인터뷰에서도 그렇게 발언했다는 사실이다. 먼저 'a variant of CJD'가 언급된 장례식장 2권짜리 테이프에는 "인간에게 걸리는 광우병"이라는 부연설명이 나온다. 정지민이 보지 못한 다른 테이프들에는 이런 발언들이 나온다.  

"우리 딸이 vCJD에 걸렸다면, 매우 매우 희귀한 사례라고요. 지금까지 그런 경우는 3명뿐이고, 우리 딸이 그 셋 중 하나가 될 수도 있을 거라고요." 
"아레사에게는 신경의가 있었어요. 그 신경의는 우리에게 MRI 결과를 통보해준 그 사람이지요. 그런데 그 사람이 우리에게 말하기를 MRI를 통해 우리 딸이 vCJD가 의심된다고 했어요."  

상식적으로 아레사의 어머니가 제 딸이 vCJD에 걸린 게 아니라고 믿었다면, PD수첩에서 뭐 하러 미국까지 그녀를 만나러 가겠는가? 게다가 아레사의 어머니는 이 사건이 벌어진 후 피디수첩 측에 자신이 말한 'a variant of'가 vCJD를 가리킨다고 재차 확인해 준 바 있다.

우리 딸은 변종 CJD(vCJD)에 걸렸다고 의심되었었습니다. MRI 결과가 그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CJD에 포함됩니다. 그것은 변종(v)이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CJD에는 다른 종류들이 있지만 항상 변종 CJD로 의심되었었어요. 그 진단은 MRI를 통해 내려졌어요. 진단을 내리는데 유용하다고 인정받은 실험방식입니다.

더 말이 필요한가? 발언한 당사자가 자기가 그 말로써 vCJD를 의미했다고 하는데, 번역자가 아니라고 우기는 것은 참으로 해괴한 일이다. (정지민의 주장은 기껏해야 왜 자신이 'a variant of CJD'를 CJD로 오역했는지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있을 뿐이다. 즉, "이러저러해서 제가 그만 착각을 했네요. 죄송합니다. 이해해주세요"라고 말할 때, 늘어놓을 얘기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아마도 아레사 빈슨의 가족이 병원 측을 상대로 낸 소장일 것이다. 피디수첩을 기소한 검찰을 관광 보낸 그 문건이다. 거기에는 아레사 빈슨이 병원에서 받은 진단명이 'variant Creutzfeldt-Jakob disease'라 명시되어 있다. 정지민의 입 하나만 바라보는 검찰이 제 힘으로 입수한 유일한 자료가 그 소장인데, 이 야심차게 입수한 그 자료가 결국 검찰의 관광 티켓이 되고 말았다. 더 황당한 것은 보수언론이다. 검찰이 이 소장을 입수했을 때, 보수언론에서는 그 소장에 아레사 빈슨이 MRI 진단 결과 CJD 판정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 분들은 도대체 뭘 보고 기사를 쓴 걸까? '오페라의 유령'이 아니라 '고소장의 유령'을 본 모양이다.

검찰에서는 그 소장이 "유족 측의 일방적 주장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제 와서 그렇게 말할 것이라면, 뭐 하러 외교라인까지 동원해 그 문건을 입수했는가? 미국에서 벌어진 민사소송에서 그것은 유족 측의 일방적 주장에 불과할 수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검찰이 지금 하는 게 어디 그 재판이던가? 문제가 되는 피디수첩 재판과 유일하게 관계된(relevant) 사안은 '아레사 빈슨의 가족이 무엇을 주장하느냐'다. 이 주장을 피디수첩이 왜곡했다는 게 검찰의 기소 내용 아니던가? 아무리 마구잡이로 하는 기소라 하더라도 최소한 맹구 수준은 넘어야 하지 않겠는가?

순도 100% 청정 허위

정지민이 끝까지 a variant of CJD를 CJD로 옮기는 게 옳다고 우기는 근거는, 테이프에 아레사 빈슨이 광우병이 아닌 다른 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언급되어 있는데도 그 가능성들을 고의적으로 배제했다는 것이었다. 가령 2008년 7월 15일 문화일보에는 "번역자 정지민씨 또 새 사실 폭로"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랐다. 

MBC 'PD 수첩'의 광우병 보도 번역·감수자인 정지민(여·26)씨는 15일 "고 아레사 빈슨이 입원했던 메리뷰 병원은 빈슨에게 비타민을 계속 처방했다"면서 "이는 위장접합술(gastric bypass) 후유증을 의심한 처방인데, PD수첩이 사인을 인간광우병(vCJD)으로 몰아가려고 이 내용을 고의적으로 빼고 편집, 방송한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그가 a variant of CJD가 그냥 CJD를 의미한다고 우기는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런데 아주 허무하게도 이 주장은 법정에서 순도 100%의 청정 허위로 입증됐다. 판결문을 보자.   

(3) 정지민은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 또는 인터넷 카페 게시글에서, 자신이 번역한 로빈 빈슨의 인터뷰 테이프에는 아레사 빈슨이 위 절제 수술 후유증으로 사망했을 수 있거나 비타민 처방을 받았다는 사실이 언급되어 있는데도 피고인들이 이를 고의적으로 빼고 방송한 의혹이 있다고 주장하였다.(증제266호증의2, 제267, 268, 269호증) 그러나 정지민이 번역한 로빈 빈슨의 인터뷰 테이프는 물론 번역하지 아니한 인터뷰 테이프 어디에도 아레사 빈슨이 위 절제 수술 후유증으로 사망했을 수 있다거나 비타민 처방을 받았다는 부분이 언급되어 있는 것을 찾아 볼 수 없다.

이것만은 정지민 자신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정지민은 자기가 번역한 테이프에도 없고, 번역하지 않은 다른 테이프들에도 없는 얘기를 도대체 어디서 주워들은 것일까? 이와 관련하여 2008년 <문화일보>의 기사에는 흥미로운 구절이 등장한다.  

정씨는 "전문가 조언과 메리뉴 병원 수술 집도의의 논문 등을 찾아본 결과, 위장접합술 시술 뒤에 비타민 B1의 흡수가 극단적으로 낮아져 뇌가 손상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그 후유증으로 '베르니케 뇌병변'이 발생, 사망할 수 있다고 논문에 적시돼 있다. 만약 사인이 베르니케 뇌병증이라면, PD수첩은 쇠고기는커녕 CJD 계열 근처에도 가지 않았을 병을 vCJD로 몰아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는 "전문가의 조언"이라는 말이 나온다. 아레사 빈슨이 수술후 비타민 처방을 받았다거나 베르니케 뇌병변에 걸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는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사후적으로 조작한 기억이었던 셈이다. 이로써 정지민이 피디수첩의 목에 건 또 하나의 죄목도 결국 자기가 자기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는 허무 개그로 끝나고 만다. 그건 그렇고, 그 '전문가'란 분은 도대체 누구일까? 검찰, 보수언론과 더불어 이 '전문가'라는 분이 이번 해프닝에서 담당한 역할이 적지 않은 것 같은데, 어떤 분인지 매우 궁금하다.(...)  

단정적 표현을 사용한 것은?

검찰에서 의도적 오역이라 주장하는 것 중의 하나는 바로 ① "If she contracted it, how did she?"에서 if절을 빼고 번역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작가는 'contracted'라는 말이 두 번 반복돼서 뺐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런 것은 자막 처리할 때 흔히 있는 일이다. 자막에 모든 말을 다 번역해 집어넣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검찰은 이런 데서도 '의도'를 의심한다. 이 엄격한 기준을 공평하게 적용하는 것은 어떨까? 가령...

검찰에서 문제 삼은 또 한 가지는 ② "Doctors suspect..."에서 suspect를 빼고 단정적 표현으로 번역했다는 것이다. 이게 의도적 오역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대목은 정지민씨가 직접 번역한 부분이었다. 얼마나 허무한가. 그렇게 오역의 의도가 의심스럽다면, 검찰은 마땅히 정지민씨의 '의도'부터 따져 물어야 하지 않을까? 검찰에서 문제 삼는 또 다른 표현은 ③ "could possibly have..."다. 그런데 이를 '걸렸다'로 번역한 부분 역시 정지민씨가 감수를 맡은 부분이란다. 그렇다면 검찰은 정지민이 감수 과정에서 이 부분을 걸러내지 않은 의도가 무엇인지도 따져 물어야 하지 않을까?

번역 대본 중에는 정말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이 있다. 가령 장례식 장에서 피디수첩이 아레사 빈슨의 친구에게 했던 질문이다.

Q: "아레사가 언제부터... " 
A: "언제 광우병이라고 생각이 들었냐고요? 지금은 모르지만 광우병이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일종의 형태가 원인이었다는 추측이 있다."

여기서 피디수첩은 명백히 빈슨의 병명을 광우병으로 단정하고, 빈슨의 친구를 상대로 유도심문을 하고 있다. 그런데 번역의 원문을 보자.

Q: "What do you think made miss Aretha Vinson sick?" 
A: "It's speculated Aretha had the mad cow in a human form. However I am not sure at this time, but that's what's been speculated to be. Some form, any form."
(Q: 아레사 빈슨이 무슨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세요? 
A: 아레사는 인간형태의 광우병에 걸렸다고 추정됩니다. 현재로서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것이 지금 추정되는 그의 병명입니다. 어떤 형태든.")

원문을 보면 위의 번역이 완전히 창작임을 알 수 있다. 이 엉터리 번역을 누가 했는가? 재미있게도 정지민이 했다. 아예 아레사가 광우병에 걸렸다고 단정을 하고 친구에게 유도심문을 하는 것은 정지민이다. 만약에 피디수첩이 이런 수준의 오역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난리가 났을 것이다. 의도가 불순한(?) 세 가지 오역에 정지민이 번역자로서, 혹은 감수자로서 연루되어 있다. 그야말로 해트트릭을 기록한 에이스로 검찰의 집중 마크를 받아 마땅하다.

검찰, 언론, '전문가'

"vCJD이니 CJD이니 이것도..사실 전 피디수첩팀의 해명은 정당하다고 봐요. 죽은 여자분 어머니가 계속 혼동해서 말하면서도, 결국은 인간광우병으로 의심하고 있었고요."

놀랍지만, 이것이 정지민이 이 사태와 관련 2008년 6월 25일 게시판에 올렸던 글이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그냥 '번역자한테 책임을 돌리는 듯한 피디수첩의 해명이 기분 나쁘다'는 얘기였다. 그것은 이해할 만하다. 나라도 기분은 별로 좋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정지민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문제는 조중동. 이들이 이 기회를 놓칠 리 없다. 보수언론과 언론플레이를 하면서 정지민의 논리는 마구 자가발전을 하기 시작한다.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서는 검찰과도 입을 맞춰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러다가 보니 그렇게 보수언론과 코드를 맞추어 가다 보니 결국 최초의 입장과 180도 달라진 얘기를 하게 된 것이다.

검찰이나 보수언론은 어차피 정지민의 입만 바라보는 상황이었다. 그 속에서 정지민은 의기양양해진다. 이번에 낸 책에서는 자기가 기자들 첨삭지도까지 해줬다고 온갖 자화자찬을 늘어놓은 모양이다. 그는 자신이 검찰과 언론을 마리오네트처럼 갖고 놀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진실은 그 반대일 것이다. 검찰과 조중동은 정지민을 이용하는 데에 이해관계가 있었다. 검찰에서 그의 증언을 무게 있게 들어주고, 보수언론에서 그의 발언을 비중 있게 다루어준 것은 그 때문이다. 달콤함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결국 그는 진실의 법정에서 홀라당 허위의 옷이 벗겨지는 망신을 당했다.

사태를 이 지경으로 키운 데에는 검찰과 언론 외에 또 한 사람의 책임이 있다고 본다. 정지민은 지금은 거의 광우병 전문가처럼 행세하지만, 번역을 할 당시만 해도 사정은 달랐다. 가령 정지민의 번역파일에는 '크로이츠펠트 야콥 병'이 '쿱스펠트 야커 병'이라 표기되어 있다. 이게 단순한 오타란다. 하지만 '크로이츠펠트 야콥'을 '쿱스펠트 야커'로 잘못 치려면, 그 짧은 순간에 많은 수의 실수를 동시에 해야 한다. 가령 'ㅋ'을 친 다음에,

1. 모음 'ㅡ' 대신에 모음 'ㅜ'를 쳐야 한다.
2. 이어서 뜬금없이 손가락이 상단 맨 왼쪽 끝의 'ㅂ' 키로 가야 한다.
3. 자음 'ㄹ'을 빠뜨려야 한다.
4. 모음 'ㅗ'도 빠뜨려야 한다.
5. 자음 'ㅇ'을 빠뜨려야 한다.
6. 모음 'ㅣ'를 빠뜨려야 한다.
7. 키보드 맨 아래 칸의 'ㅊ' 대신에 맨 위 칸의 'ㅅ'을 쳐야 한다.
(하지만 불현듯 정신이 돌아와 '펠트'와 '야'는 정확히 쳐야 한다.
그러다가 다시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8. 모음 'ㅗ'를 모음 'ㅓ'로 쳐야 한다.
9. 자음 'ㅂ'을 빼먹어야 한다.

이런 오타를 칠 확률은, 원숭이가 타자 친 원고가 우연히 셰익스피어의 희곡과 일치할 확률에 육박한다. '쿱스펠트 야커'는 오타가 아니라, 'Creutzfeldt Jacob'의 미국식 발음을 귀에 들리는 대로 받아 적은 것에 가깝다. 이랬던 정지민이 갑자기 광우병 전문가나 되는 양 전문용어로 줄줄 늘어놓게 된 데에는 그가 밝힌 대로 "전문가의 조언"이 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민망한 것은 정지민이 여기저기서 상을 받고 다닌다는 것이다. '대한언론인회'라는 단체에서는 정지민에게 '2009 대한언론상 특별상'이라는 것을 수여했다. '바른사회시민회의'라는 곳에서는 그에게 '바른 사회를 지키는 아름다운 사람 상'을 주었다. 그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26살 꽃다운 나이의 여학생이 툭하면 여기저기에 행패 부리고 다니는 애국 깡패 할아버지들 상대로 강연을 다니고 있다는 점이다. 검찰은 검찰대로, 언론은 언론대로, 전문가는 전문가대로, 우익단체는 우익단체대로, 정지민을 통해 자신들의 욕망을 실컷 충족시킬 뿐. 단물 다 빨린 채 법정에서 발가벗겨진 한 젊은이의 미래는 어쩌란 말인가?

앞으로 역사학을 공부하겠다고 하니, 마지막으로 같은 인문학도로서 한 마디 하겠다. 정말 장래가 걱정돼서 하는 말이다. 성경 출애급기에 이르기를 "네 이웃을 향해 거짓 증언 하지 말라."고 했다. 정지민씨, 이쯤에서 사과해라. 무엇보다도 자신의 장래를 위해서 거짓말의 행진은 여기서 멈춰야 한다. 앞으로 역사학도 그런 식으로 하겠다는 것인가?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리고 진실을 말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정지민씨는 지금 그 용기를 내야 한다.   

미디어스(10. 01. 26) 진중권, "정치권의 아바타는 정운찬 총리" 

26일 문화평론가 진중권 씨는 영화 <아바타>에 대한 여러 가지 평가와 의견을 내 놓았다.외국 영화인 <아바타>가 최초 천만 관객 돌파라는 기록을 세우자, 평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에서 진 교수를 인터뷰 했다.

이날 인터뷰에서 아바타 천만 관객 돌파의 의미를 묻자, 진 교수는 "한국만의 독특한 상황은 아니다"라고 밝힌 뒤,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를 부여했다.첫째는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한 단계 올려놨다”는 것으로 “기존 CG의 고질적인 문제가 캐릭터들이 유령스럽게 느껴지는 문제”를 <아바타>는 실사처럼 보이도록 구현해 관객들이 '감정이입' 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이다.두 번째로 3D 디스플레이를 들었다.“3D기술이 나온 지 몇 십 년 됐지만 멀미가 나고 현기증이 나는 그런 현상 때문”에 주목받지 못했지만, <아바타>의 경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많은 진전을 가져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 씨는 이러 저러한 의미 부여를 한다 해도 “결국은 영화라는 건 예술성에서 갈린다"며 ‘아바타 천만 돌파’에 대해 과장된 의미 부여를 경계했다. 이어 ‘언제쯤 <아바타>같은 세계적 대작이 한국에서 나올 수 있겠냐’는 질문에 진 씨는 “일단은 대작에 대한 열등의식에서는 벗어날 필요가 있다”며 “한국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만드는 것은 미국하고 우주산업을 놓고 경쟁하겠다는 것과 같다”며, 한국 영화가 나아가야 할 길이 아니라고 밝혔다.그 이유로 수억불 규모의 제작비가 소요된 <아바타>와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를 충무로에서 감당 할 수 있는 자본 규모가 아니라는 것이다.또한 심형래 감독이 세계 시장에 도전 했지만 실패한 사례도 언급했다. 또한 "<아바타> 같은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창의성이 밑받침 되어야 하지만 젊은이들의 희망 직업 1위가 공무원이고 그리고 카이스트 학생들은 의대 공부하고 있다”며 창의성을 키워내지 못하는 교육 현실을 꼬집었다.

진행자는 한국이 가지고 있는 우수한 정보기술(IT) 및 컴퓨터그래픽(CG)기술과 애니메이션 생산 세계 3위라는 `손재주`를 들어 영화가 미래 전략산업으로 부상할 기회라는 주장에 대해서 묻자, 진 씨는 “영화감독들한테 나라 먹여 살릴 의무를 주면 안 된다”라고 짧게 대답했다.이어 “그분들도 자기들 먹고 살기 힘들다”고 부연했다.

진 씨는 “아바타 한 편 만드는 게 현대 차 몇 만 대 수출하는 것에 해당한다, 제발 이런 기사들 좀 그만 썼으면 좋겠거든요. 아주 천박하게 들린다"며 “천박한 나라에서는 좋은 영화가 나올 수 없다”고 강조했다. 즉 “아무리 아바타가 헐리우드 영화이고 대중 영화라고 하더라도 그 밑에는 인문학 바탕이 깔려 있고 일본의 만화가 아무리 허접 해 보인다고 하더라도 굉장히 깊은 인문학적 수준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진행자가 현 정부와 유인촌 문화관광체육부 장관의 문화산업육성에 대한 평가를 묻자, 진 씨는 “다른 나라들 같은 경우에 지금 정보화 사회의 첨단을 향해 달리고 있는 마당에 지금 우리 각하께서는 혼자 삽 들고 70년대 산업화 사회로 지금 퇴행하고 계신다”며 “이분이 솔직히 문화적 마인드는 없는 분 아닙니까?”라고 반문한 뒤 “유인촌 장관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그런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이라는 데에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IT융합산업 해야 한다', 대통령이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는데 기억에는 제가 예술 종합학교에 있을 때 그거 하지 말라고 그러셨거든요. 그래서 뭐 다 자르고, 사람들 쫓아내고, 저한테도 뭐 강의도 절반 내 놓으라 이랬던 분들인데 갑자기 또 IT융합을 해야 한다니까 황당하다”라고 비판했다.

“정치권에 등장하고 있는 아바타와 영화에서 나타난 아바타와 좀 비교를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라는 진행자의 색다른 질문에 진 씨는 ‘정치권의 아바타’로 정운찬 총리를 꼽았다.“말씀 못 알아듣는 충청 부족들하고 소통하기 위해서 이제 충청도 유전자를 가진 아바타를 선택을 해서 그리로 내려 보냈지만 영화 <아바타>와는 다르게 도와주는 여자 친구도 없고, 반란도 일으킬 것 같지 않아 보인다"고 답했다.

‘정치권의 아바타’로 정운찬 총리가 거론되자 진행자는 세종시 문제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이에 진 씨는 ‘전 정권 전봇대 뽑기’라며 “쓸 데 없는 논란이고 순수한 국력 낭비”라며 “노무현 대통령 같은 경우에는 자기 세력이 없이 명분을 걸고 도박을 했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명분 없이 세력 걸고 도박을 하는 그런 스타일인 거 같다”고 말했다.(윤희상기자) 

10. 01. 27.  

P.S. 내가 마지막으로 읽었던 진중권의 근황 인터뷰 기사는 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911241725455&code=900315 이다. "최근 중앙대, KAIST, 한국예술종합학교 등의 재임용에서 줄줄이 탈락한 그는 내년 초 한국을 떠날 작정이다.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다. 적어도 3년은 채우고 돌아올 셈이다."라고 했으니 얼마 남지 않았다. 말 그대로 3년간은 '진중권 없는 한국사회'다...



 
 
매버릭꾸랑 2010-01-27 08:35   댓글달기 | URL

로쟈 쌤처럼 가방 끈이 긴 분들은 대체적으로 진중권을 싫어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는데, 선생님은 아니군요 ^^

진중권 아저씨는 자신의 전공분야를 열공해서 한 500명 정도와 공감 할 수 있는 책을

쓰고 싶다는데, 천박한 우리 사회가 그를 미학 전공자로만 내비두지 않는군요 쩝

로쟈 2010-01-27 08:43   URL
자기도 해야 할일을 대신, 도맡아 하고 있는 사람을 비난한다면 염치없거나 비겁한 일이죠. 스타일에 대해선 의견을 달리하더라도요. 우리가 10명의 진중권을 갖고 있다면 공론장의 풍경이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푸른바다 2010-01-27 09:14   댓글달기 | URL
권력자들의 언어파괴 현상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른 지금, 저도 진중권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노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로쟈 2010-01-28 18:32   URL
그의 순발력에 가끔 놀랄 때가 있습니다.^^

pek0501 2010-01-27 11:42   댓글달기 | URL
진중권님이‘정치권의 아바타’로 정운찬 총리를 꼽았다는 것이 놀랍군요. 정말 그런 것 같아서요. 진중권님답게 참 예리합니다. 교수임용 탈락 소식은 안타깝군요. 그리고 의외라는 생각이 듭니다. 진중권이 없는 한국사회는, 정말 좀 허전한데요. 미네르바 사건때 같은 속 시원한 멘트를 이제 어디서 들을까요. 외국 가신다니 그의 저작 몇 권 더 사봐야겠네요. 이런 글 오려주신 로쟈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냥 지나가려고 했는데 몇 자 적게 만드는 글입니다. 추천 누르고 갑니다.

로쟈 2010-01-28 18:31   URL
알라딘에 글이 안 올라왔기에 옮겨놓았는데, 뒤로 몇 분이 더 스크랩해놓으셨네요...

딸기야놀러가자 2010-01-27 17:17   댓글달기 | URL
음... 자세히 읽어보니 놀랍군요.

a variant of CJD는 당연히 vCJD이지요. 그걸 그냥 CJD로 번역해놓고 자기가 맞다고 지금껏 우겼다니, 너무나 단순명쾌하면서도 황당한 스토리로군요.

로쟈 2010-01-28 18:29   URL
"너무나 단순명쾌하면서도 황당한 스토리"라는 걸 저도 이번에야 알았습니다..

펠렉스 2010-01-28 09:16   댓글달기 | URL
정지민씨는 영국에서, 진중권씨는 한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냈군요. 정씨는 국내에서 대학을 보냈고 진씨는 독일에서 학위(?) 했습니다. 이제 한 사람은 외국에 나가 학위 공부를 계속할 것이며 다른 한사람은 경비행기 고급조정사 공부를 하게 됩니다. 이 두사람이 학창시절부터 경험하고 학습한 환경속에서 상황을 인식하는 자세가 다른듯 합니다. 진씨에게 초경량 비행기 조정에 취미가 없었다면, 정씨에게 여러 외국어 능통함이 없었다면 지금 사고방식에 독특한 표현들(?)이 있었을까 싶습니다. 사람마다 그들 나름의 특성이 있듯, 두 사람 각자 어떤 상황에 대한 인식 수준과 표현 방식있을 것같아요. 우리는 그들의 저서로 접할수 있지만요.

펠렉스 2010-01-28 09:34   URL
'아레사'에 대한 사후 검안(<인체 시장/로리 앤드루스.도로시 넬킨/궁리>)을 통한 확인검사(뇌의 병리조직학적인 또는 효소면역학적인 검사)도 필요한데요(하지만 미국인에 미국 병원이라). 한국의 병원에서는 MRI 의료장비 종류로도 진단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차별화를 부각시킵니다. 우리 사회의 '사실'과 '진실'에 대한 인식 문제같아요.

로쟈 2010-01-28 18:30   URL
정지민씨가 판사에게 공개질의까지 했더군요. 2심 판결도 기대가 됩니다...

neohslee 2010-01-29 14:25   URL
정지민, 진중권 두 사람이 학창시절부터 경험하고 학습한 환경이 다를 것이고 그에 따른 어떤 상황에 대한 인식 수준과 표현 방식이 다를 수 있겠지요. 'PD수첩'사건을 매개로 우리 사회의 '사실'과 '진실'에 대한 인식 문제를 다루어 볼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적어도 법적논증에 있어서의 사실관계 확정 문제는 이미 명료하게 드러난 바 그대로인 것으로 더 이상 덧붙일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설령 정지민 측의 주장대로 MRI를 통해 vCJD 검진이 가능하지 않다던가, 아레사의 사인이 vCJD로 인한 것이 아닌 위 절제 수술 후유증인 베르니케 뇌병변으로 인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그러한 사실이 기소 죄목에 대한 현 법원의 구성요건 판단에 영향을 끼칠 것 같지는 않아요. 아레사 빈슨의 어머니, 가족도 그러했지만 PD수첩 또한 그런 가능성을 미리 알았다고 보기 어렵거든요. 한마디로 PD수첩에 고의가 있었다고 볼 수 없죠. 그러니까 지금 정지민 측의 주장이 근거 있는 것인지 아닌지 간에 PD수첩은 무죄 맞습니다.

그래서 정지민에 대해서는, 단순한 인식 수준과 표현 방식의 차이 운운하는 것은 정지민 측의 의도를 너무 순진하게 우호적으로만 해석하는 느낌이고요, 개인적으로 정지민은 무고죄, 위증죄의 죄목으로 형사고발의 대상이 되어도 딱히 항변할 바가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꽤 관심이 가는 사건이라서 정지민 옹호 까페에 가입해서 그 쪽 주장 글들도 많이 살펴보고 했지만 이건 뭐... 그냥 화와 짜증만 남기더군요. 그냥 지켜보는 사람도 그러할진대 당사자인 PD수첩 관계자들이 느꼈을 법 한 억하심정을 상상해보면 (김보슬PD의 경우 결혼식도 못올릴뻔 했다지요?) 위의 진중권씨의 글은 가히 성인군자의 글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제 생각은 '아레사'에 대한 사후검안을 통한 확인검사는 그것이 vCJD 연구자들에게는 관심사가 될 수 있을지언정 위 PD수첩 사건에 관한 법적공방의 차원에서는 불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MRI 의료장비의 종류로 진단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은 앞으로 의료 관련 보도가 있을 때 보도 담당자들이 유념해 두어야 하는 상식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좀 격양된 투로 덧글을 남기게 되어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한때 정지민의 주장에 뭔가 없을까 혹 하면서 (아니 아무리 그래도 책까지 써서 냈는데! 나름 역사학 전공한다는데! 사실을 존중한다는데!)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려 했던 사람 중 한명으로써 '물타기에 속지말아야 한다'는 노파심 차원에서 적어봤습니다. 완전, 속기 쉽습니다.

펠렉스 2010-01-29 16:10   URL
예,,그렇군요..제 글의 빈틈을 채워주셔서 감사합니다.

꼼미 2010-01-28 01:07   댓글달기 | URL
진중권씨가 비행기 타러 가신다니 읽고 있는 이창래의 Aloft 가 겹쳐지네요. 비행기 잘 타고 오셨음 좋겠네요. "천박한 나라에서는 좋은 영화가 나올 수 없"지만 그 천박함을 그려내고 천박함을 극복할 단초를 제공하는 것도 영화를 포함한 모든 예술(코메디도 포함)이 아닐까 싶네요. 미국이라는 천박한 '때려 부시기'나 '멍청한 장난하기' 영화판에서 아바타란 영화가 나오는 걸 봐도 말이죠.

로쟈 2010-01-28 18:29   URL
우리도 가끔 좋은 영화가 나오긴 합니다.^^;
 

엊저녁에 버스에서 읽은 칼럼을 옮겨놓는다. 아이티 사태를 다루고 있는데, 개인적인 관점과 국가적 관점 사이의 '시차'를 읽을 수 있어서 같이 읽으면 좋겠다 싶었다(이 가난한 섬나라의 비극에 대해선 사실 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다). 칼럼은 나란히 30면과 31면에 실렸다.  

경향신문(10. 01. 25) [아침을 열며]울지 마, 아이티의 소녀여  

늦은 저녁 국밥집에서 TV뉴스를 보다가 눈시울을 붉혀야 했다. 따끈한 국밥 앞에서 도저히 숟가락을 뜰 수 없었다. 뉴스에서는 아이티 대지진의 현장에서 리포터가 한 소녀의 죽음을 전하고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구출된 11살난 소녀가 “엄마, 죽지 않게 해주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끝내 숨을 거뒀다는…. ‘살찐 소파’처럼 부푼 내 몸이, 기아문제에 무관심했던 내 이기심이 한꺼번에 부끄러워졌다.

그랬다. 대지진 전까지 나에게 아이티는 상반된 이미지로 남아 있었다. 카리브해의 뜨거운 열정을 담은 그네들의 리듬, 강렬한 삼원색의 색채가 인상적인 아이티 무명 화가의 그림들은 눈물겹게 아름다웠다.  



반면 원색의 이면에 도사린 어둠도 또렷하다. 몇 년 전 읽은 일본의 소설가이자 유니세프 친선대사인 구로야나기 데쓰코의 책 <토토의 눈물>에는 슬픈 대목이 나온다. 아이티에서 성매매에 나선 12살 소녀에게 작가가 물었다. “에이즈가 무섭지 않니?” “차라리 에이즈에 걸리는 게 나아요. 에이즈에 걸려도 몇 년은 산다잖아요. 우리 식구는 당장 내일 먹을 게 없어요.” 그 소녀는 매춘을 한 번 할 때마다 6굴드(400원)를 받고 있었다고 작가는 전했다. 또 하나의 충격은 아이티 사람들이 먹는다는 ‘진흙쿠키’-쿠키라는 표현이 거슬리지만-였다. 

미국의 흔적 새겨진 슬픈 현대사
아이티의 역사를 한국의 근·현대사에 투영해 보면 묘하게 겹치는 부분이 많다. 206년 전 아이티는 흑인 노예들의 투쟁으로 프랑스 식민지배로부터 독립했다. 이후 미국은 1915년 아이티를 침공하여 20년간 통치했으며 지금 이 순간까지도 배후 조종자로 남아있다. 세계적인 석학 노엄 촘스키는 “미국의 침공은 극단적인 인종주의로 점철된 추악한 전쟁”이라고 비판하면서 “앞으로 수십년간 (아이티는) 살기 어려운 땅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70년대 초부터 미국은 자국의 이익과 공산주의 쿠바에 대항하기 위해 아이티의 독재정권인 뒤발리에 부자를 지원해왔다. 그 사이 뒤발리에 정권은 국영기업을 민영화하고 각종 개발을 남발하면서 사익을 챙겼다. 결국 잘못된 국토 개발과 농업정책의 실패로 인해 도시빈민이 늘어나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이후 미국은 민주정부의 수립과 군사쿠데타가 거듭되는 아이티를 배후에서 조종하면서 자국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요해왔다. 아이티의 대지진이 ‘천재’가 아닌 ‘인재’인 이유다.

아이티의 슬픈 역사를 들여다보면서 한국 근·현대사에 개입한 미국의 흔적들이 떠오르는 건 지극히 자연스럽다. 일본의 식민통치, 해방과 한국전쟁, 독재정권의 광주학살 만행 등 역사의 고비마다 미국이 있었다는 건 초등학생들도 아는 사실이다. 다만 우리는 아이티와 달리 특유의 역동성을 앞세워 전쟁의 잿더미에서 일어나 ‘수혜국’에서 ‘지원국’이 됐다. 몇 년 전에 미국에서 만났던 한 저널리즘 교수가 “한국은 (뉴스가 많아) 신문 만들기 좋은 나라”라고 하기에 “그래서 한국의 오늘이 있다”고 맞받아쳤던 기억이 있다.

그랬다. 우리는 버릇처럼 모두가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걱정해왔다. 온 국민이 모두 정치평론가이자 경제전문가다. 한 가족을 이끌다보니 ‘우리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걱정도 늘어났다. 환경문제가 불거지면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지구가 어떤 모습일까 걱정하고, 교육문제가 불거지면 내 아이가 불편해지지 않을까 우려한다. 또 4대강이니 행정도시니 하는 문제도 기실 나보다는 다음 세대를 위해 고민하게 된다. 최근 겪은 글로벌 경제위기 때마다 치열하지 않으면 굶을 수 있다는 교훈도 얻었다. 그래서 더 전투의지가 불타오른다.

아름다운 풍광 다시 볼수 있기를
요즘 걱정되는 건 이러한 역동성이 현 정권의 일방주의에 희생되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다. 머리 터지게 싸우면서도 슬기롭게 결론을 도출해온 저력이 희석될까 두렵다. 우리의 미래가 몇몇 일방주의자들에 의해 결정되면 안된다. 당장은 아이티 소녀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게 급선무다. 아이티의 무명 화가가 다시 붓을 잡게 해야 한다. 우리는 아이티를 위해 1억원을 쾌척하는 김연아가 있는 나라다. 더 많은 김연아를 만들기 위해 더욱 치열하게 싸워야 할 때다.(오광수 문화2부장)  

경향신문(10. 01. 25) [국제칼럼]아이티 원조의 국제정치학  

아이티에 대한 국제사회의 원조가 본격화하면서 이를 둘러싼 물밑 샅바싸움도 한창이다. 프랑스에서 보낸 야전병원 설비를 실은 비행기는 한동안 공항에 착륙하지 못해 전전긍긍했다. 프랑스 정부의 당국자 주앙데는 공항 통제를 맡은 미군을 나무랐다. “아이티를 원조해야지 점령을 해서는 안된다”며 불편한 심기를 라디오에 흘렸다. 프랑스의 위신도 말이 아니지만 유럽연합도 굼뜬 대응에 발언권을 잃어버렸다. 협의만 하다 보니 적기에 강력하고 명쾌한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했다.

카리브 통제 호기로 보는듯한 미국
미국은 이번 지진을 카리브해역의 통제권을 다잡는 호기로 보는 것 같다. 이미 해병대 2000명을 포함한 1만2000명의 대규모 파병을 시작했다. 항공기 30대, 항공모함 칼 빈슨, 순양함 노르망디, 구축함 언더우드도 함께 출동한다. 미국 국방부와 산하의 남부사령부(사우스컴)가 통제 지휘부가 된다. 사실상 무정부상태의 아이티에서 치안 유지와 질서 회복 업무를 맡게 될 것이다.

‘미국의 호수’로 불리는 카리브해역에 대한 미국의 안보 이해는 세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아이티에서 대량 탈출하는 사람들의 미국 내 불법 유입을 막아야 한다. 보트 피플을 사전에 차단하려 한다는 얘기다. 둘째, 미국으로 유입되는 마약의 중간 기착지가 돼있는 이곳을 이번에 정리하고 싶을 것이다. 멕시코·콜롬비아와 연계된 마피아들이 아이티 거리에서 힘을 쓰고 있다. 셋째, 이번 기회에 아이티 문제를 확고하게 해결하고 미국의 교두보를 구축하면, 쿠바·베네수엘라와 같은 반미국가들의 위세도 위축될 것이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카리브 빈국들에 석유를 싼 값으로 원조하는 프로그램인 ‘페트로-카리베’는 여러 나라들을 끌어모은 바 있다.

차베스는 최근 한 TV 프로그램에서 아이티 사태에 대한 미국의 파병을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3000명의 미군이 이미 도착했다고 한다. 마치 전쟁터에 가는 군인처럼 무장한 해병대들이라고 한다. 정작 보내야 할 것은 의사, 의약품, 연료, 야전병원이 아닌가! 미국은 비밀스러운 방식으로 아이티를 점령하려 한다.” “길거리에서 그들을 볼 수가 없다. 그들이 시신을 수습하고 있던가? 부상자를 수색하던가? 대체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

결손국가인 아이티에는 이미 9000명가량의 유엔 평화유지군이 주둔해 있다. 여기에 1만2000명의 군대가 투입되니, 인구 900만명에 병력 2만1000명이 주둔하게 된다. 2800만 인구의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미군이 7만명이니, 인구 당 파병 숫자는 비슷한 수준이다. 그만큼 군사화의 수준이 높다. 미국은 유엔 및 역내 이해관계자인 브라질·캐나다와 협력해 원조작업을 조정할 것이다. 이미 국가는 붕괴되고 유엔의 사무소 설비도 파괴됐다고 하니, 미군 시설이 정부를 대체할 가능성이 높다.

프랑스등 물밑 파워게임 계속
물론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아이티 방문시 이런 우려를 일축했다. “우리는 (아이티 국가를) 지원하려고 할 뿐이지, 대체하지는 않을 것이다.”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도 파병은 “무정부 상태에서 아이티인들과 무고한 외국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미국 해병대는 1915~34년 사이 근 20년간 아이티를 점령했다. 94년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은 함정을 파견하여 쫓겨난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대통령을 다시 옹립한 적이 있다. 하지만 2004년 미국은 프랑스와 캐나다의 동의 아래 반정부 세력을 밀어주어 아리스티드 정부는 전복되고 말았다. 사탕수수밭과 커피농장의 흑인 노예들이 프랑스의 압제에서 벗어나 라틴아메리카 최초의 공화국을 탄생시킨 아이티. 원조사업 속에서도 파워 게임은 진행된다.(이성형 | 서울대 라틴아메리카硏 교수

10. 01. 26.  

 

P.S. 아이티의 역사와 현실을 보여주는 책 두 권에 대해서는 수년 전의 리뷰 기사를 옮겨놓는다. 

한겨레21(07. 02. 09) 아이티를 아십니까

우연히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 아이티에 대한 책 두 권이 동시에 나왔다. 이 멋진 우연은 우리를 아이티의 현재와 과거로 안내한다. <가난한 휴머니즘>(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지음, 이두부 옮김, 이후 펴냄)은 아이티의 빈곤 문제에 대한 사회운동가의 통찰을, <블랙 자코뱅>(C. L. R 제임스 지음, 우태정 옮김, 필맥 펴냄)은 프랑스혁명과 함께 시작된 아이티 흑인 노예들의 해방전쟁을 보여준다.

아이티란 어떤 나라일까. 이 나라의 이름을 들으면 우리 뇌는 관심 영역에서 영원히 추방된 나라들의 목록을 잠시 뒤적이다가 곧 다른 일을 하게 된다. 아이티는 1804년 세계 최초로 노예해방 혁명을 성공시키고 독립을 쟁취한 나라다. 제3세계에 특히 무관심한 대한민국 시민들이 잊고 있는 진실. 우리는 점점 타자를 이해하지 않는 것이 폭력이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블랙 자코뱅>부터 살펴보자. 카리브해의 영국 식민지였던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 태어나 전투적 마르크스주의자로 평생을 살아온 지은이는 아이티 노예해방 운동의 역사를 계급적 관점에서 구성한다. 아이티 혁명사 연구에 기념비가 된 책이지만 역사 연구서라기보다는 소설처럼 읽힌다. 이 역사극의 정점에는 투생 루베르튀르라는 혁명가가 서 있다.

1629년 프랑스의 모험가들(혹은 그렇게 오인되는 부랑자와 범법자들)이 산도밍고 섬의 북부 해안에 상륙했다. 사탕수수 농장이 번성한 아이티는 1789년 프랑스 해외무역의 3분의 2를 차지할 정도로 부유한 식민지였다. 그러나 이 섬은 카리브해의 소돔과 고모라였다. 농장 건설과 함께 유럽인이라면 몇 분도 견디지 못할 정도로 악취가 나는 선실 속에 주검들과 뒤엉킨 아프리카인들이 실려 들어왔다. 노예들은 1789년 46만 명에 이른다. 곧 백인 농장주들의 약탈과 강간으로 생긴 제3의 인종, 물라토(흑백혼혈)가 등장한다. ‘더러운 풍요’가 혁명의 시작이었다. 백인 농장주들은 차마 입에 옮기기도 힘든 잔혹한 방법으로 흑인들을 지배했다. 물라토들은 백인과 흑인의 중간지대에 서서 백인의 마름 역할을 하며 그들에게서 받은 경멸을 흑인들에게 돌려줬다. 그리고 멀리 본국에서 프랑스혁명의 소식이 들려온다.

백인 농장주들은 왕당파니 애국파니 편을 가르며 싸웠지만 오직 자신의 이익에만 눈이 멀어 있었다. 물라토들도 정치적·경제적 권리를 따내기 위해 일어섰다. 프랑스의 의회, 백인, 물라토들은 서로 아귀다툼을 벌였지만, 아프리카 노예들에 대해선 입을 다물었다. 어느 날 갑자기 노예들의 폭동이 시작된다. 혁명 초기 폭동은 지배층의 분열 사이로 터져나온 분노였지만, 곧 조직화된다. 투생은 마흔 살이 넘어 혁명에 참여해 탁월한 지도자로 부상한다. 그는 농장주와 프랑스군뿐만 아니라 군침을 흘리며 들어온 스페인군과 영국군의 침공도 막아낸다. 지은이는 자신이 아는 한 세계 최고의 전략가는 나폴레옹과 투생이라고 말한다. 그는 나폴레옹 군대에 잡혀 생을 마감했지만 아이티의 아프리카인들은 세계 최초의 해방을 이뤄낸다. 지은이의 관점에 따르면 아이티 혁명은 중앙아메리카 모든 지역에 영향을 끼쳤으며 쿠바 혁명에까지 이른다.

<가난한 휴머니즘>은 아리스티드가 빈곤 문제에 대해 쓴 8통의 편지다. 그는 반독재 투쟁에 앞장서다 세 차례 대통령직에 오르고 모두 쿠데타로 쫓겨났다. 2004년 미국이 주도한 쿠데타 때엔 유명한 미군의 ‘납치’ 논란을 일으켰고 아직까지 아프리카에 유배돼 있다. 책은 2001년 그의 동지였던 르네 프레발이 대통령직에 있을 때 쓰여졌다(‘동지’ 프레발은 지금 우여곡절 끝에 다시 대통령직에 올라 아프리카에 있는 아리스티드의 입국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그의 글엔 아이티의 미래에 대한 희망과 애정이 가득하다. 그의 언어는 따뜻하고 명상적이다. 그는 미국과 세계기구가 처방한 ‘신자유주의’를 단호히 거부한다. 그가 얘기하는 제3의 길은 ‘존엄한 가난’이다. 대안은행, 문맹퇴치, 어린이 구호활동 등 여전히 가난할지라도 ‘뱃속의 평화’와 ‘머릿속 평화’를 이루는 길을 조근조근 설명한다. 그가 지금 어떤 처지에 있든, 이것은 제3세계의 모든 빈자들을 위한 실현 가능한 꿈이다.



 
 
펠렉스 2010-01-26 22:52   댓글달기 | URL
체화된 아픔을 인류애로 보내야 겠네요. 아이티의 프랑수아 투생, 인도의 간디, 베트남의 호치민 등의 인물을 생각케 합니다. 미국의 비밀스런 방식이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서 희망이 되는 지도자(아리스티드, 존엄한 가난)가 있다니 마음이 좀 놓입니다. 결국은 아이티 국민의 몫이라 생각합니다. 아이티 전통(?)으로 '슬픔을 합창(노래)로 극복한다'는 화면을 봤습니다. 제게도 위로가 되더군요.

로쟈 2010-01-27 09:05   URL
개인적으론 리스본 대지진을 떠올렸습니다. '인재'로도 모자란가 봅니다...

펠렉스 2010-01-27 09:39   URL
예,,의미있는 말씀입니다. <운명의 날/니콜라스 시라디/에코의서재>.
 

내일자 경향신문의 '책동네산책' 칼럼을 옮겨놓는다. '책을 윤리적으로 소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란 문제를 다루면서 '알라딘 불매운동' 얘기도 언급하고 있다(개인적으론 며칠 전에 기자의 몇 가지 질문에 답한 바 있다). 개별적인 사안이지만 사실 출판계에서 비정규직 문제는 물류쪽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이건 언론이나 방송쪽도 다 마찬가지이며(대다수 방송작가와 영화 스탭이 비정규직이다), 강의 절반을 담당하고 있는 대학의 비정규 교수들의 경우에도 사정은 덜 열악하지 않다(대학의 경우라면 '교육 소비자'인 학생들이 수업거부 운동이라도 벌여야 할 판이다). 하긴 자칭 'CEO 대통령'을 모시고 있는 어느 나라에서는 소수의 '간부'들을 제외하곤 국민 대다수가 '비정규직' 직원 정도로 간주되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윤리적 소비'의 문제는 현재의 자본주의 국가체제의 '토대'와 연결된 전면적인 문제다. 어떤 해법이 가능할까? '고등어'를 금하는 것이 해법일까?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경향신문(09. 12. 26) 비정규직이 만든 책 ‘윤리적 소비’를 논할 수 있는가

독일에 살고 있는 임혜지씨는 그의 책 제목 <고등어를 금하노라>(푸른숲)처럼 식탁에 고등어 반찬을 올리지 않는다. 바닷가에서 그들이 사는 지역까지 생선이 운반되려면 많은 연료가 소비되므로 생선을 먹는 것은 지구온난화에 일조하는 행위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에서다. 임씨네는 과일도 제철이 아니면 구입하지 않는다. 농산물을 살 때는 원산지가 어디인지를 꼼꼼하게 따지는 것도 잊지 않는다. 환경을 중심으로 한 ‘윤리적 소비’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윤리적 소비는 환경과 개인의 건강을 지키고 노동과 무역에서 정의와 공정함을 이룩하기 위해 소비활동을 스스로 규제하는 행동을 말한다. 대형마트 홈에버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터졌을 때 벌어진 불매운동 역시 적극적인 윤리적 소비에 속한다.

최근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책을 윤리적으로 소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발단은 비정규 노동자 김모씨가 알라딘으로부터 부당해고를 당했다며 지난달 초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서 시작됐다. 김씨는 형식상 인력 파견업체에 고용된 사람인데 파주에 있는 알라딘 물류센터에서 일했다. 그런데 지난 9월 알라딘의 인력감축 통보를 받은 파견업체가 김씨에게 더 이상 알라딘에서 일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김씨는 반발했다. 현재는 고용 및 해고 과정의 적법성 문제로까지 번진 상태다.

알라딘은 다른 인터넷 서점에 비해 ‘서재’라는 이름의 블로그가 매우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책의 소비자인 독자들이 알라딘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블로그에 책에 관한 서평들을 적극적으로 올리면서 하나의 지식공동체가 만들어진 셈이다. 그런데 김씨 소식이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알라딘 블로거들에게 알려졌다. 블로거들의 초기 반응 가운데는 ‘다른 인터넷 서점도 아니고 알라딘이 어찌 이럴 수 있느냐’는 비난이 많았다. 인터넷 서점 개척자인 알라딘은 그간 사회적 공익에 이바지하는 기업으로서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알라딘도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비정규 노동자를 양산하는 기업에 지나지 않는다는 실망감과 분노였던 것이다. 블로거들은 알라딘 측의 공식 해명과 사과, 김씨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비정규 고용을 중단하지 않을 경우 서재를 문닫겠다는 블로거까지 나왔다.

알라딘 측에서는 대표가 나서서 사과했다. 하지만 김씨와 관련해 불법은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성수기와 비수기가 극명한 상황에서 비정규 노동력의 고용은 불가피하지만 앞으로 비중을 줄여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여기에서부터 블로거들의 입장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 정도 사과와 해명으로 족하다는 반응, 다른 인터넷 서점은 더 심할 텐데 알라딘만을 상대로 불매운동을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반응, 김씨 문제의 해결 없이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반응 등 다양했다.

사실 비정규직 문제가 알라딘만의 문제는 아니다. 출판계 역시 비정규직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문제제기를 담은 책을 내는 출판사도 이런 책을 유통시키는 서점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윤리적 소비의 기준을 비정규직의 손을 거치는 책은 사지 않겠다는 데 둔다면 읽고 싶어도 읽을 수 없는 책들이 수두룩할 것이다. 그래서 김씨 사건은 책에 담긴 내용과 책이라는 상품 사이의 괴리를 새삼 느끼게 한다.(김재중 기자) 

09. 12. 25. 

P.S. 덧붙여 지난주 '한겨레21'의 기획특집 "12명의 문화평론가가 뽑은 ‘사소해서 더 가치 있는’ 올해의 문화계 뉴스"(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6379.html) 가운데 출판계 뉴스를 옮겨놓는다. 나도 청탁을 받고 무순으로 세 가지 뉴스감을 제시했는데, 그 중 하나가 '알라딘 불매운동'이었다. 출판쪽 기사 선정엔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도 참여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1. YES24, 1조원 매출 온라인 서점 매출 1위인 YES24의 2008년 매출액은 2996억원으로, 2007년의 2485억원보다 20.56% 성장했다. 올해는 성장세가 더욱 가팔라지고 있지만 이 비율로만 매출이 성장해도 2015년에는 1조2천억원이 넘는다. 올해 창립 10주년을 맞이해 YES24는 자신들이 5년 안에 1조원 매출을 기록할 수 있지만 그것을 7년으로 늦추겠다고 발표했다. 과도한 집중에 따른 폐해를 스스로 의식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2. 웅진지식하우스 620억원 매출 국내 단행본 출판사 중 매출액 선두를 달리고 있는 웅진지식하우스가 올해 62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웅진지식하우스의 지난 3년간 성장 속도를 볼 때 2011년에는 1천억원의 매출을 충분히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1천억원은 1만원 정가의 책 1천만 권이다. 10개 출판사가 도매상 매출의 80%를 차지하는 현재의 구조는 머지않아 5개 출판사로 줄어들 수 있다는 걸 확인시켜준다.

3. <로쟈의 인문학 서재>, 한국출판문화상 저술(교양)상 수상 한 온라인 서점의 서재 블로그에 연재된 글 가운데 의미 있는 글들만 골라 펴낸 이 책이 제50회 한국출판문화상 교양부문 저술상을 받았다. 이것은 지식체계가 완전히 잡힌 다음 교과서적으로 정리해 문자로 기록하는 ‘황혼의 글쓰기’보다 정보가 광속으로 날아다녀 ‘모든 것이 공중으로 흩어져 사라지는’ 현실에서 눈앞에 주어진 정보들을 연결한 ‘브리콜라주’적인 지식을 문자로 기록하는 ‘대낮의 글쓰기’가 중요해졌음을 학계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로쟈 인터넷 서평꾼  

1. 아직도 읽을 수 없는 레비스트로스 프랑스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나서 잠시 화제가 됐다. 한데 ‘구조주의 인류학’을 대표하는 그의 대표작, <친족의 기본구조>와 <구조인류학>은 국내에 소개되지 않고 있다. 이유야 장사가 안 되거나, (그와 연관해) 역자가 없거나, 관심을 가진 출판사가 없기 때문일 터. 많은 책이 쏟아지고 있지만 현 단계 출판 역량의 한계가 아닌가 생각된다.

2. 이렇게 많은 <안나 카레니나> 지난 2007년, 영어권 작가들이 뽑은 최고의 문학작품 1위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였다. 그걸 고려한 듯 이번에 새로 나오기 시작한 문학동네의 세계문학전집 첫 권은 <안나 카레니나>였다. 특이한 것은 올해 민음사와 작가정신에서도 <안나 카레니나>를 새롭게 번역 출간했다는 것(작가정신판은 번역상의 문제 때문인지 현재 자체 품절). 거기에 대중적인 입문서로 석영중 교수의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까지 출간됐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범우사판의 <안나 카레니나> 정도였던 걸 고려하면 ‘올해의 뉴스’감이다.

3. 알라딘 불매운동 인터넷 서점계에서 매출로는 4위쯤이지만 서재 블로거들의 활동은 가장 활발한 ‘알라딘 서재’에서 지난달부터 알라딘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가을 인력도급업체 소속으로 알라딘에서 일하던 한 노동자가 ‘부당해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에 알라딘은 앞으로 개선해나가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불매운동에 참여한 알라디너들의 화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가 68혁명의 구호였다는 것을 떠올리게 하는 사건이다.



 
 
펠렉스 2009-12-26 07:18   댓글달기 | URL
'고등어' 자체를 먹지 않겠다는 것과 알라딘에서 '책'을 구입하지 않겠다는 것과는 다른듯 합니다. 비정규직 문제로 책 자체를 읽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은 넌센스입니다(물론 지지한다는 의미로 다른 서점에서 구입하는 것은 자유로운 선택). 물매운동도 있지만 원만한 협상력(체)을 발휘하는 사회적 주체가 필요합니다.

ojw73 2009-12-26 07:55   URL
불매운동보다 원만한 협상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는 이유가 이 댓글 안에는 없는거 같아요.'다른 서점도 마찬가지기때문에 이곳을 불매하면 다른 곳도 불매하는게 공평하지 않은가' 하는 이유를 로쟈님이 들었기 때문에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다고 하면 수긍이 됩니다만.
어쨌든 그런 이유가 있다고 해서 불매운동을 못하는건 아닌것 같습니다. 널리 퍼져서 일반화된 것에 대해서도 어떤 계기가 있는 곳에서 저항을 하는게 보통입니다. 비정규직이 임금노동자 절반이 넘는데 어떤 곳에서는 가만히 있지만 어떤 곳에서는 이의를 제기하고 밖으로 알려지는거고 홈에버도 그런거였잖아요.

ojw73 2009-12-26 08:01   URL
그러니까 '다른 서점에서 구입하는 선택은 그냥 개별적으로 해도 되지만 집단적으로 하자고 선동하고 이러는건 안좋고 원만하게 해야 된다'는 말로 보여서 그 이유가 뭐냐는거거든요. 잘 읽어 보면 그런 얘기가 아닌것 같기도 하고.

로쟈 2009-12-27 09:03   URL
어느 가게의 '고등어'만 먹지 않겠다는 것이니까 같지는 않습니다. 저는 사안이 개인적인 차원의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 문제 일반과 관련되는 것이라면, 그러한 '한정'이 유지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하얀코털 2009-12-27 00:18   댓글달기 | URL
책을 윤리적으로 소비하는 문제가 아니라...
한사람의 호구지책에 대한 이야기는요?
누군가는 이 불행한 사태에 대한 언급이 더할나위 없는 적절한 호구지책이 되겠지만....
이 이야기의 당사자의 호구지책은요....
너무 잔인한 이야기 아닌가요?
한 인간의 호구지책에 대한 요구가 불가능한 요구라...
엿겹고...무섭습니다...

로쟈 2009-12-27 09:04   URL
'불가능한 것'은 사회적 좌표계 바깥, 법적 테두리 바깥을 뜻합니다. 당사자의 요구가 합법적인 것이라면 법의 보호를 받게 되겠죠. 그것이 정당하더라도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것이라면 '불가능한 것'이구요.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는 구호가 '엿겨운' 것인가요?..

panda 2009-12-27 03:06   댓글달기 | URL
로쟈님께 얘기하고 싶진 않았지만 관련 글들을 보니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네요.
솔직한 심정을 말씀드리자면 '상처'입니다.
알라딘불매참가자로서 로쟈님께서 지금과 얼마 전에 언급하신 것들의 갭에
대해서 느끼는 이 불편한 심정을 어찌 해야 할까요.
비아냥이나 냉소보다 더 슬픕니다.
불매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순진(?)해서 알라딘 상품을 불매하신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다들 자기 삶 꾸리는 것 이상으로 이 사안에 대해 박 터지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가벼운 맘으로 시작했어도 지금 시점에선 더 생각하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제가 오독한 건가 싶어 몇 번을 읽어도 의문은 해결되지가 않는군요.
편가르기 하는 것도 아니고요.
진심 궁금해서 여쭈어 봅니다.
조소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응원하시는 건가요?
제가 머리가 나빠선 지 공부를 덜 해서 그런 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로쟈님, 강연 제일 먼저 신청했던 1인입니다.
사이트 오픈하자 마자 했거든요.
관련 도서들도 읽고 있는데 책의 언어들이 자꾸 손가락 사이로 빠지는데
이게 내가 공부를 안하고 책을 안읽어서 그런가 하며
게을렀던 스스로를 참 질책했었습니다.
강연은 못갈 거 같군요.
머리, 가슴 어느 곳으로도 흡수를 못하니 가도 눈 뜬 장님이겠죠.

로쟈 2009-12-27 09:14   URL
'상처'가 되셨다면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저로선 '박 터지게 고민'하는 것보다는 '은행을 터는 게' 그리고 은행을 터는 것보다는 아예 '은행을 세우는 게' 해결에 더 근접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와 같은 '불매운동' 정도로 '양심'이 깨긋할 수는 없는 것 아닐까요? 저는 '라이언 일병'이 아니라 '전쟁' 자체가 문제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구호나 제스처만으로 될 일은 아니고 '힘'이 있어야 하구요...

panda 2009-12-27 10:14   댓글달기 | URL
불매 운동만으로 양심이 깨끗해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 여기서 시작할 수 있는 게 그것 뿐이어서 참여하게 된 거고요.
최선의 결과가 나오면 좋지만 그게 아니라면 차선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알라딘이나 여타기업에서 김종호씨의 사례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는 게 최선, 최고의
결과라면 지금 여기서 김종호씨만이라도 먼저 칼바람을 피할 수 있게 되는 게 차선입니다.
큰 둑도 작은 구멍 하나에서 터집니다.
이건 나쁜 비유긴 한데 좋은 일도 비슷하게 시작하는 거겠죠.

로쟈 2009-12-27 11:32   URL
필요한 건 미봉책이 아니라 큰둑이 터져야 하는 게 아닐까요...
 

이번 학기 들어 처음으로 약간 여유로운 휴일을 보냈다. 이런저런 일들과 함께 원고 하나가 밀려 있긴 하지만 네 편을 써야 했던 지난주에 비할 바가 아니고, 무엇보다는 내주가 시험기간이어서 두 과목에 대한 강의준비를 안 해도 된다는 점이 마음을 편하게 하는 이유다. 그래서 모처럼 지젝의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그린비, 2008)의 한 장을 읽고 있기도 하다(아, 이건 외부 강의준비이기도 하다). 낮잠까지 조금 자고서 동네 도서관에 가 조너선 스펜스의 <무질서의 지배자 마오쩌둥>(푸른숲, 2002)과 남경태의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역사>(들녘, 2008)를 대출했다. 그러고 보니 <마오쩌둥>의 번역자가 남경태 씨다.  

그리고 동네 대형서점에 들러 새로 나온 책들을 잠깐 둘러보고 오는 길에(고종석의 <여자들>이 출간됐다) 손에 든 경향신문에서 <삼국유사>에 얽인 이야기를 닮은 <도쿠가와가 사랑한 책>(현암사, 2009)에 관한 기사를 흥미롭게 흥미롭게 읽었다. 그리고 '대학생 자유기고가' 한윤형의 대학 총학생회 문제를 다룬 칼럼을 읽고서 엊그제 읽은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의 칼럼과 나란히 스크랩해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진보정치의 딜레마를 고민하게 하는 칼럼들이 아닌가 한다(사적 영역과 정치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란 문제).   

경향신문(09. 12. 12) [2030콘서트]‘허수아비’ 대학 총학생회 

대학가에서 가을은 총학생회 선거의 계절이다. 올해는 유난히 총학 선거에 대한 생각을 물어본 지인이 많았다. 개표 전 ‘투표함 개봉’과 ‘도청’을 통한 비리 폭로로 파행으로 치달은 서울대 총학 선거를 비롯해 우려스러운 모습이 많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기성 정치권 못잖은 ‘꼬마 정치인’들의 진흙탕 싸움? 어떻게 해도 투표를 하지 않는 대학생들의 정치적 무관심? 어느 쪽을 택하든 씁쓸함은 남는다. 우스갯소리로 운동권이 총학을 잡으면 자기네 정치조직으로 돈이 흘러가고, 비(운동)권이 총학을 잡으면 학생회장과 그 측근들의 주머니로 돈이 흘러간다고 한다. 이 말에 약간이라도 진실이 있다면 어느 쪽이든 학생의 대표자로서 제 역할을 하는 총학은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이런 실정이므로 학생들이 총학 선거에 무심해지고, 그 무심함의 장막 뒤편에서 총학이란 조직에 배정된 빵부스러기를 주워 먹기 위한 난장판이 벌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 아닐까.

오늘날의 대학은 군사독재정권에 대항하기 위한 ‘해방구’도 아니고, 진학률 86% 시대의 대학생을 특권층이라 칭하는 것도 부질없다. 대학생의 위상이 낮아지면서 이들을 예비노동자라 부르는 이도 나타났지만, 지금은 이조차 사치스럽다. ‘예비’라는 글자를 떼어내기 위해 젊은이들이 얼마나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말이다. 이제 대학생은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에서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는 없고, 다만 자신의 삶이 정치에 의해 규정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시대에 던져진 2000년대 초반의 운동권 정파들은 등록금 인상 저지 투쟁을 주장해서 학우들의 신망을 얻어 총학을 잡고, 총학을 잡은 이후엔 자기네 정치조직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했다. 학생들을 위하는 ‘복지공약’과 제 이념을 실현하는 ‘정치투쟁’의 이분법 속에서 등록금 문제가 그 자체로 지극히 정치적인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 셈이다.

하지만 설령 그 사실을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총학은 대학 당국에 대해 얼마나 무력한 조직인가? 가장 강경한 정파가 가장 강경하게 투쟁했을 때도 등록금 투쟁은 실패로 끝나곤 했다.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몇몇만 희생양이 되면서.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총학 선거가 복마전이 되는 이유는 총학이 학생들에게 참여를 독려할 만큼의 권력은 지니지 못했으되, 선거에서 승리한 몇몇 학생들에겐 충분히 보상을 해줄 수 있는 수준의 조직이 되어버렸기 때문 아닐까? ‘시민 없는 시민운동’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듯이, ‘학생 없는 학생회’에 대해 얘기해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는 ‘꼬마 정치꾼들’과 ‘선거에 무관심한 대학생들’에 대한 규탄보다 훨씬 본질적인 문제다.

총학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믿음이 회복되지 않는 이상, 학생들이 총학 선거에 관심을 기울일 수는 없을 것 같다. 한편 학생들의 열렬한 참여 없이는 대학 당국이 총학에 더 큰 권력을 배분하는 일 따위는 생기지 않을 거다. 이 딜레마 속에서 총학은 대학 당국과 학생들 사이에 어떠한 소통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허울 좋은 들러리가 되고 말았다. 총학에 대한 고민은, 이렇게 그것이 허수아비에 불과하다는 진실에서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한윤형 | 대학생·자유기고가)   

경향신문(09. 12. 11) [사유와 성찰]개인 삶을 희생하는 진보

우리 사회 진보파 가운데는 개인 삶을 돌보는 일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심지어 진보를 위해서는 개인 삶을 희생해야 한다거나, 사적 영역 자체를 부정시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예로 ‘돈 문제’에 대해 말하고 싶다.

2004년 총선에서 국회의원 10명을 배출한 민주노동당은 소속 국회의원과 보좌관, 중앙당 및 지역조직 상근자 등, 이른바 진보정치를 직업으로 삼게 된 사람들에게 평균 127만3000여원의 월급을 줬다. 국가 예산으로 지급된 국회의원과 보좌관 급여는 당이 환수했다. 이 모든 게 “노동자의 평균 임금을 받는다”는 논리로 이루어졌는데, 그 후 약간의 증액은 있었지만 그 원칙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에서 지켜지고 있다.

결과는 어땠을까? 가족을 건사하고 자녀를 교육하는 등 생활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었던 것은 당연했지만, 정작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요구나 불만조차 잘 표출될 수 없었다는 데 있다. 자칫 돈을 밝히는 사람이거나 진보의 대의에 헌신하려는 자세가 안돼 있는 사람으로 비난받기 쉬웠기 때문이다.

노동자 평균임금 받는 국회의원
그렇다고 진보에 대한 도덕적 헌신은 강해졌을까? 그것도 아니다. 개인 삶의 고통을 인내해야 하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열정은 식고 현실의 압박은 커졌기 때문이다. 재능 있는 사람들이 빠져나갔고 또 재능 있는 사람들이 진보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꺼리게 되니, 조직의 인적 역량도 시간이 갈수록 약해졌다. 그렇다고 이들을 교체할 수도 없었다. 저임금 구조에서 고용 안정마저 위협되는 것을 누가 수용할 수 있겠는가. 결국 유능한 인력이 충원되고 순환되기보다는 남아있는 사람들을 저임금 구조로 통합·유지하는 조직, 공식적으로는 급여를 올리기 어렵다보니 편법을 통한 소득 보전을 강구해야 하는 진보 아닌 진보정당이 되고 말았다.

공직에 대한 보상을 노동자의 평균 임금으로 한다는 생각은 파리코뮌의 원칙이었다. 달리 말해 혁명 내지 혁명정부의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혁명의 원칙으로 실천되기 어렵다. 민주주의는 평범한 보통사람들에게 기반을 두는 정치체제이고, 진보정당도 민주주의를 받아들인다면 평범한 보통사람의 관점에서 이해되고 수용되고 실천될 수 있는 방식으로 일을 해야 한다. 개인 삶을 희생하는 진보는 혁명의 원칙에서는 받아들일 수 있어도 민주주의의 원리와는 양립하기 어렵다.

차티스트 운동을 단순히 노동자 참정권 주장 정도로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때 제기된 요구 가운데 하나는 대표들에게 세비를 주라는 것이었다. 그래야 개인 삶을 희생하지 않고 정치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공직에 돈을 요구하는 것은 천박하다며 반대한 사람들은 돈 걱정이 없는 귀족들이었다. 고대 아테네에서도 민주주의가 발달하면서 공직에 나가는 사람들에게 급여를 주기 시작했는데, 그래야 정치 참여와 개인 삶이 양립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지켜지는 개인 삶이 튼튼할 때 민주주의가 사회 속에 뿌리내릴 수 있듯이, 진보의 이름으로도 개인 삶이 안정될 수 있어야 자기 삶을 걸고 진보를 지키려는 의지가 커질 수 있고 또 오래갈 수 있다. 돈이 진보정치를 타락시킬까 두려워하고 그래서 그런 문제를 없애기 위해 저임금을 강요하는 것은 곤란하다.

민주주의 원리와 양립 어려워
돈은 인간의 경제행위를 사회적으로 조직하는 데 꼭 필요한 존재이다. 돈을 잘못 다뤄서 인간이 타락하는 것이지 돈 그 자체 때문에 문제인 것은 아니다. 돈에 무심하다거나 돈 욕심이 없다는 것을 진보인 양 자랑하거나 돈이 가치를 잃어야 인간성이 되살아난다는 진보의 통념은, 자칫 온정적 엘리트주의나 변형된 귀족주의이거나 현실의 고용·피고용 관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로 나타날 때가 많다. 진보를 이유로 개인 삶이 희생되는 일이 더는 없었으면 좋겠다.(박상훈 |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09. 12. 13.



 
 
하영 2009-12-13 21:54   댓글달기 | URL
학생회든 회사의 노조든 그들이 가야 할 길, 아니 쉽게 말해 자신이 무슨일을 하는지, 무슨일을 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모르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과연 등록금 동결, (똑같은 맥락인) 임금인상 등이 그들의 하는 일인지...차라리 대학이라는 곳이 취업준비하는 곳이 아닌 학문의 연구, 인간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도록 해주고 그런 그들이 사회에 나가 어느 곳에 들어가도 일도 잘하고 사람관계도 잘하는 진짜 엘리트임을 증명해보이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노조에서 임금 4.9%인상을 이끌어내었다고 하면 몇십만원 오른 월급 기뻐하는 사람 중 하나이지만 말입니다. 그 금액이 더 좋은 곳에 쓰일 데는 없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는 잠깐 씁쓸해지는 나약한 인간성을 그들이 도리어 느끼게 해주더군요

로쟈 2009-12-13 22:16   URL
흔히 '생활정치'라고 하는, 등록금 동결이나 인하 요구도 저는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칼럼에서도 지적됐지만, 문제는 현재의 총학이 그런 걸 할 수 있는 역량을 안 갖고 있다는 것이고요. 이번의 불미스런 사건들을 보노라면 차라리 총학 자체를 구성하지 않는 것이 정치적 저항이지 않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허울 좋은 들러리'를 '정치적 참여'라고 포장하는 건 기만적이죠...

하영 2009-12-13 22:27   댓글달기 | URL
'생활정치'도 중요한 부분입니다. 게다가 많은 사람의 관심과 동의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제가 아쉬운 건 왜 등록금을 낮추어야 하는가 의 원인의 밑바닥에 있는 '인간', '인간다운 삶' 이라는 주제까지 도달하지 못한다는 거죠. 우리네의 정치처럼 말입니다.

로쟈 2009-12-13 22:30   URL
사실 단순하게 말하자면, 대학에서 좋아하는 '수혜자 부담' 원칙에도 어긋나기 때문이죠. 비싼 등록금을 내고 대학졸업장을 받아도 취업이 안되는 현실이라면 말이죠. 저는 그런 의미에서 절반은 후불제로 해야된다고도 생각합니다...

2009-12-13 22:36   댓글달기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13 2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영 2009-12-13 22:54   댓글달기 | URL
등록금을 내고, 공부를 하고, 과학에서든 철학에서든 의학에서든 문학에서든 예술에서든 삶의 원리와 진지한 태도를 배우게 되고, 그래서 더 공부할 수 밖에 없고, 그 후에 졸업장을 받았을때 취업 역시 우등상장처럼 따라오는... 학문의 전당, 성공하는 인재를 만드는 대 학 이 되길...
(굶어가고 있는 아내를 버리고 공부,학습하고도 자신은 위대한 철학자가 되고 아내에겐 악처란 이름을 준) 소크라테스처럼 고생하며 살지 않도록 말입니다.^^

로쟈 2009-12-13 22:58   URL
'학문의 전당'이나 '성공하는 인재'는 대학의 평균치와 무관한 게 아닌가 싶어요. 진학률 86%라는 걸 고려하면 더더욱. 대학진학이 '선택'의 의미를 잃었으니까요...

펠렉스 2009-12-13 23:25   댓글달기 | URL
진보주의자라고 해서 아니면 보수주의자라고 해서 당사자의 가족이 진보거나 보수라고 규정할 수는 없지요. 만약 진보주의자의 가족이 돈을 펑펑 쓴다며 세간에 알려지면 그것은 '시칠리아의 암소'격이라 비난 받을 가능성 있습니다.진보든 보수주의자든 그에게는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생활 경제권이 있습니다.하지만 부자중에 진보주의자가 있던가요, 아니면 학생(노동)운동권에,,,부유계층은 복지부동하며 아랑곳 하지 않습니다.

로쟈 2009-12-14 23:37   URL
그리스 민주정이 노예제를 기반으로 했다는 걸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됩니다...

homania 2009-12-24 17:42   URL
하지만 강남좌파라는 말은 일정부분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건 사실입니다

델러웨이부인 2009-12-15 21:42   댓글달기 | URL
어머 저와 이름이 같은 분이 댓글을 다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

로쟈 2009-12-15 23:12   URL
안 그래도 아까 기획회의를 읽던 참이었는데요.^^
 
"이제 문학은 법과도 싸워야 한다"

이번주에 읽은 칼럼 두 편을 옮겨놓는다. 대표적 MB용어가 된 '국격'이 사전에도 없는 신조어라는 걸 알게 해준 칼럼과 '용산' 이후의 세상이란 어떤 세상인지 질문하는 칼럼이다.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사람이 불타면, 사람이 어이없이 죽으면, 사람들은 자기가 그 사람이 아닌 것을 다행으로만 여길 것이다. 그러고는 내일이라도 자신이 그 사람이 될까봐 저마다 몸서리치며 잠자리에 누울 것이다. 그것을 정의라고, 평화라고 부르는 세상이 올 것이다." 용산 묵시록이다.   

경향신문(09. 12. 10) [이대근칼럼]버려야 할 것 - 국격·곡격·국역·구격 

1990년대까지만 해도 국격은 소수만이 쓰던 예외적이고 특수한 용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사용 빈도가 부쩍 늘더니 요즘은 이 걸 빼고는 말을 못할 정도로 대유행이다. G20 정상회의 주최, 외교 강화, 기부, 관광산업, 공적개발지원(ODA) 확대 모두 국격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한다. 국격은 국회 의장대 도입, 아프가니스탄 파병, 법질서 확립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정부에게는 바람직한 국정의 표상이 다. 정부는 이미 ‘국격 업그레이드’를 위한 국가브랜드위원회라는 국가 기구를 운영 중이고 대통령은 내년 부처별 업무보고 때 국격 향상안을 내라는 지시를 했다. 정부의 용산 참사 방치, 인권침해도 국격을 손상한다는 이유로 비판받는다. 국격은 이렇게 방어와 공격은 물론 여야가 상대를 깎아내리는 데도 요긴한 만능의 도구로 쓰인다. 그리고 어느 새 이 단어가 풍기는 낯섦과 어색함은 사라지고 ‘국민’이 지켜야 할 새로운 규범이자, 누구나 존중해야 할 기준이 되어 가고 있다. 그 덕에 자기 주장과 정책을 정당화하고, 자기 제안의 설득력을 높이고자 할 때 쓰는 권위 있는 말이 되기도 했지만, 남용으로 상투어처럼 되기도 했다.

세련된 포장의 국가주의, 국격
국격은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이 국가도 하나의 인격체나 다름없다는 믿음이 만들어낸 말이다. 따라서 국격은 국가를 다른 어떤 것의 반영물·대리자가 아니라 스스로 유지하고 강화해야 하는 자기 고유의 목적을 지닌 독자적인 실체로 여긴다. 이 유기체적 국가관은 시민을 전체를 위한 일부로 간주하고 자아실현 역시 오직 국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하는 권위주의적, 전체주의적 국가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에게는 낯설지 않은 국가관이다. 한국인에게 국가는 모태신앙이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듯이 한국에는 이미 국가가 있었다.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했고, 태어나서도 잊을까 가족·학교·군대·언론이 끊임없이 환기시켜 줘야 하는 절대적인 그 무엇이다. 이것이 바로 국격이 빠르게 한국인의 언어습관을 지배하게 된 배경이다. 나라를 잃었던 역사적 기억의 반영이라고 이해해도, 박정희 군사집단의 국가폭력 경험이 있었음을 고려하면, 정말 특별한 정서가 아닐 수 없다. 민주화 이후 시민사회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강한 국가에 대한 이 낭만주의적 열정은 아직 뜨겁다.

물론 국격이 획일주의의 낡은 가치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브랜드위원회가 배려·다문화·기여를 국격 향상의 과제에 포함한 점이 그렇듯 성숙한 사회를 위한 성찰도 담고 있다. 문제는 성숙한 사회를 바라는 시민의 욕망조차 국가의 명예·국가 브랜드·국격 향상의 수단으로 여기는, 한국인의 정신세계에 뿌리 박힌 국가주의적 사고이다. 그런 사고는 점차 업그레이드되어 조국 근대화니 국익이니 했던 단순 투박함을 벗고 국격이란 세련된 옷을 입은 채 국가주의를 날것으로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국가 담론을 효과적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그리고 ‘나는 국가(국격)를 위해 무엇을 했나’라고, ‘국민’을 죄인으로 만듦으로써 국가주의를 공고하게 재생산한다. 사실 국격을 국가의 품격이라고 우아하게 해석하는 것만으로도 국가는 한국인의 가슴을 적시는 주제가 될 수 있다.

한 번 생각해 보자. 내년 이명박 정부의 목표대로 G20 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해 국격이 높아지면 우리의 삶이 달라질까. 그렇지 않아도 시장 만능으로 힘들어진 시민은 부자와 기득권을 위한 국가 개입으로 허리가 휘어질 지경이다. 시장과 국가 모두 한 편만 드는 불공정 게임조차 한국인들은 국가를 위해 불가피한 것으로 믿고, 오랫동안 잘도 참아 왔지만, 앞으로도 그럴 수는 없다. 국가는 시민 의사의 총체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자유로운 ‘시민’만 남겨 놓자
국가의 목적을 이행하는 ‘국민’이라는 제복을 벗어야 한다. 이 칼럼을 쓰던 중 ‘한글문서’에서 국격에 대해 맞춤법 검사를 해봤더니 ‘철자가 잘못 되었습니다’라는 알림이 나왔다. 국어사전에 없는 신조어였기 때문이다. 대체해야 할 단어가 제시되었는데 곡격·국역·구격 세 가지였다. 대체할 수 없는 것들이다. 다 버리자. 국가도 버리고, 국격도 버리자. 자유로운 ‘시민’만 남겨 놓자. 나의 삶과 행복을 고민하는 나만을 남겨 놓고 다 버리자.(이대근 논설위원)  



한겨레(09. 12. 12) [삶의창] 그 세상의 이름은 무엇일까

이제 1년이 다 되어가니 혹시라도 잊은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2009년 1월20일, 용산4구역 철거현장에서, 제 삶의 터전을 지키려고 망루에 올라 몸을 떨며 시위를 하던 다섯 사람과 경찰 한 사람이 불에 타서 숨졌다. 사람들은 이를 참사라고 부르지만, 추운 겨울에 그 무리한 철거를 주도했던 사람들이나, 이 문제를 해결할 힘을 지닌 사람들이 크게 충격을 받지는 않은 것 같다. 정부는 정부가 간여할 일이 아니라고 했고, 고위 관료 한 사람은 ‘개인적으로’ 이 사건을 무마할 계책을 적어 산하기관에 이메일로 보냈으며, 경찰은 거의 동일한 상황을 연출하여 진압훈련을 했다. 그런데 사법부는? 검찰은 시위자들 가운데 불에 타 숨지지 않은 사람들을 찾아내어 기소했으며, 판사들은 그들에게 이 참사의 책임을 물어 중형을 선고했다. 물론 행정부가 이들 철거민을 위해 한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국무총리는 한 번 빈손으로 참사현장을 찾아가 인사를 했다.

이 참상 앞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시인, 소설가, 비평가 192인이 각기 한 줄 선언을 써서 ‘작가선언’을 발표한 것은 지난 6월9일이다. 이 선언은 그달 말에 <이 사람의 말>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발간되었다. 언제나 끝까지 잊어버리지 않는 것은 글 쓰는 사람들이다. 사실은 잊어버리지 않는 사람만 글 쓰는 사람이 된다. 작가들은 7월부터 용산참사 현장에서 릴레이 1인시위를 시작하고, 각종 매체에 릴레이 기고를 시작하여, 이 릴레이를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이달 초에 발간된 용산참사 헌정문집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도 이 진행중인 릴레이 시위와 기고활동의 보고서이다. 시를 쓸 사람은 시를 쓰고 산문을 쓸 사람은 산문을 썼다. 그리고 전국시사만화협회 회원들이 그림을 그렸다. 80년의 광주 이후 한 사건을 중심으로 이렇게 많은 글과 그림이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높고도 활달한 감수성의 인간들이 용산에서 그 열정을 거둬들이지 못하는 것은 우리 시대의 가장 진한 슬픔과 가장 깊은 상처가 거기 있기 때문이다. 그 슬픔과 상처가 글 쓰고 그림 그리는 사람들 자신의 슬픔이고 상처이며,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슬픔이고 상처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것을 잊어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일을 해결할 수 있고, 해야 할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기대하고 있을까. 이 참사가 잊히기를 기대하는 것일까. 주검이 땅에 묻히고, 애통해하는 사람들이 제풀에 지치고, 릴레이를 하는 사람들의 힘이 바닥나고, 그래서 갑자기 국가의 품격이 높아지기를 기대하는 것일까. 살라는 대로 살지 않고 옳고 그름을 따져봤자 결국은 ‘저만 손해’라는 것을 만천하에 똑똑히 보여주려는 것일까.

그러나 정작 비극은 그다음에 올 것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죽음도 시신도 슬픔도 전혀 없었던 것처럼 완벽하게 청소되어, 다른 비슷한 사연을 지닌 동네와 거리들이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세련된 빌딩과 고층아파트들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그 번들거리고 말쑥한 표정으로 치장”(진은영 시인)될 때 올 것이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모를 것이다.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사람이 불타면, 사람이 어이없이 죽으면, 사람들은 자기가 그 사람이 아닌 것을 다행으로만 여길 것이다. 그러고는 내일이라도 자신이 그 사람이 될까봐 저마다 몸서리치며 잠자리에 누울 것이다. 그것을 정의라고, 평화라고 부르는 세상이 올 것이다. 그 세상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기도 한 이명박 대통령이 누구보다도 잘 알 것이다.(황현산 고려대 불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  

09. 12. 12.  

P.S. 문학평론가 신형철 씨의 칼럼을 먼댓글로 붙여놓는다.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에 재수록돼 있다. 같이 수록된 칼럼은 '용산, 참혹하고 치명적인 시'(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24260.html) 이다.



 
 
Joule 2009-12-12 19:27   댓글달기 | URL
왠만하면 저기 위에 아저씨 얼굴 좀 가려 주세요. ㅡㅡ' 저 아저씨 얼굴 보면 갑자기 배가 막 아프다는. 예전에 아침밥을 먹다가 신문을 펼쳤는데 저 아저씨 얼굴이 있는 거예요. 정신 차려보니 사진이 갈기갈기 찢겨져 있고 제가 씩씩거리며 포크를 쳐들고 있더라구요.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제 자신의 돌발적인 폭력성에 당황했던 기억이 나요. 아마 노 대통령 죽고 얼마 안 있다 일어난 일이었던 것 같은데... 그 뒤로 저 아저씨 얼굴 되도록 안 보려고 피해 다녀요. ㅡㅡ

로쟈 2009-12-12 20:00   URL
블라인드 처리가 안돼 그냥 내렸습니다...

Joule 2009-12-12 22:42   URL
친절하신 로쟈 님.

로쟈 2009-12-12 22:47   URL
저도 보기 싫은 얼굴이긴 해요.--;

Mephistopheles 2009-12-13 15:28   URL
사진을 이미 내리셨는데도 누군지 확실히 아는 1人

로쟈 2009-12-13 20:46   URL
뭐 다들 아는 얼굴이긴 해요...

하영 2009-12-13 21:42   댓글달기 | URL
조금은 주제가 다르지만..해결되지 않는 용산참사 문제를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듭니다. 시위라는 것, 평화 집회라는 것을 할 때 집회자들 내부에도 소위 말해 -튀는- 돌발 행동이나 시위의 본질과 맞지 않는 폭력행위, 혹은 계획하지 않은 사고 등이 일어날 수 있죠 그걸 통제해 주고 질서 있는, 그래서 하려고 했던 말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모임이 되게끔 해주는 것이 집회장소에 어김없이 나타나는 그리고 나타나야만 하는 그들의 역할이지요
시위자들이 오히려 그들이 필요하고 우리를 지켜주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 혹시 경찰이 오지 않으면 왜 안오지 하고 두리번거릴 수 있게 말입니다. 그래야 거기에 있는 군인, 경찰들 역시 시위자들과 마찬가지로, 집에 있는 무관심한 국민들보다 한발 더, 민주주의에 기여한다는 뿌듯함도 느낄 수 있을 테지요. 이런 생각이 실천되는 사회는 진정 꿈일 뿐인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펠렉스 2009-12-14 10:43   댓글달기 | URL
'나는 지금 영안실 냉동고에 시체로 누워있다. 마지막 숨을 쉰지도 오래되었고 심장은 이미 얼어 있다. 그러나 나를 죽인 그 비열한 살인자 말고는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모른다',<내 이름은 빨강/오르한 파묵/민음사>의 "나는 죽은 몸"을 페러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