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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독서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 2009년 10월
평점 :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 <청춘의 독서>에 나오는 열 네 권의 책들은 하나같이 높고 깊은 지적 수준을 요구한다. 그 정도까지 아니더라도 쉽게 읽을 수 없는 책인 것만은 분명하다. 나 또한 몇 권은 읽었고, 몇 권은 존재하는지조차 몰랐으며, 몇 권은 여전히 읽을 자신이 없다. 무엇보다 아버지가 20대에 읽었던 책을 이제 갓 대학에 들어가는 딸에게 선물한다는 취지가 따뜻한 가족애로 전해져와 뭉클하다. 다시금 내 독서를 되돌아보게 되었고, 좀 더 간절해져야 한다는 결심이 섰다. 요즘 20대는 이 책들을 읽지 않는다. 대학진학률이 눈에 띄게 높은 현재 <전환시대의 논리>, <공산당 선언>, <인구론>, <종의 기원>, <유한계급론>, <진보와 빈곤>을 읽고 사회 불평등과 지식인의 역할, 혁명과 인간의 기원에 대해 고민하는 20대가 몇이나 될까. 만약 있다해도 그게 내가 아니란 사실이 이미 비극이다.
고전 그것도 <죄와 벌> 같은 문학이면 좀 낫다. 정치사상, 사회비평, 과학논문은 정말이지 어쩌란 말인가. 솔직히 말하면, 고전을 인용하고 저자의 경험담과 관점을 담은 이 책을 반은 이해하고 반은 말 그대로 글자만 읽었다. 어렵다고 느꼈다. 글자들을 흘려보내며 생각했다. 내가 지금껏 독서라고 해온 것들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누군가는 20대에 이런 책을 읽었단 말이지. 과연 내가 지금 읽는 책들도 30년 후에 여전히 숨쉬며 살아있을까? 내 후손들이 지금 내가 읽는 책을 읽게 될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많은 책을 아무 검열도, 방해도 없이 자유롭게 접할 수 있는 현재의 20대는 더 읽고, 더 생각하는 완전한 지식인이어야 한다. 그런데 아니다. 지금보다 훨씬 어렵고, 힘들고, 자유롭지 못했던 당시의 청춘들은 모든 것을 가진 현재의 청춘보다 더 열정적이고 간절했다. 골방에서도, 반지하방에서도 세상을 향한 투지에 제 몸을 태웠다. 아이러니한 사실이다. 만약 현재 받아들이는 것들이 앞으로의 삶을 지배할 영양분이자 밑바탕이 된다면 단지 즐거움과 만족에 치우치는 독서를 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아는 것에 따라 같은 책도 다르게 읽힌다. 고전사상이나 철학을 접할 때 제대로 읽으려면 그보다 많은 선지식이 정리되어야 한다. 러시아 문학에서 러시아 혁명사를, 맹자에게서 진정한 체제를, 사마천에게서 지독한 권력투쟁을 읽어내는 능력 또한 그래야 가능한 것이다. 내 독서는 책 한 권을 이해하는데 그칠 뿐, 어떤 점에서는 한 발작도 더 나아가기 어려웠다. 독서는 원래 아는 것과 새로운 것, 생각하는 것이 리듬을 갖출 때 비로소 완벽해지는 것 같다. 하나라도 모자라면 부족한 독서가 될 수 밖에 없다. 남의 독서를 들여다보기 보다 나만의 독서일기를 착실히 작성해나가는 편이 훨씬 중요하다. 내 것이 마련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것을 보아도 결국 내 것이 될 수 없다. 이 책에서 저자의 청춘시절을 굳게 지탱해주던 책을 여럿 만났지만, 그 책이 아직도 삶의 지혜가 되어주는 걸 보며 20대의 독서가 특히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무언가를 보고 한 가지 주제로 엮는 것, 인생의 갈림길마다 읽을 책이 있다는 것, 같은 책을 여러 번 읽으며 내가 얼마만큼 왔는지를 아는 것,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 모두 독서를 할 때 따라야 할 중요한 작업들이다. 누군가를 위해 읽는 것이 아니다. 독서 자체의 목적은 '나'이지 다른 '어떤' 것이 될 수 없다. 그래야 한다.
열 네 권의 책을 함부로 욕심내지는 못한다. 그에게는 20대를 지켜준 책들이지만 나는 다가가지도 못할 것 같다. 분명한 건 좀 더 높은 곳을 지향하는, 변화를 받아들이는, 간절하게 목마른 독서를 해야 한다는 확신이다. 그동안 늘 잡으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많이 놓치고 사는 것 같은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럴 때마다 책이 친구가 되어주었다. 누군가의 사상을, 연구를, 삶을 동경하다못해 사랑하고 욕심내본 적은 없다. 특별히 좋고 싫다고 할 수 있을만큼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20대 내내 잡을 것 하나 없이 서있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앞으로 올 30대, 40대, 50대에도 늘 책이 곁에 있어주길, 나 또한 책 곁에 있을 수 있길 바란다. 내 인생에도 세상이 두려울 때마다 길을 물을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다. 어떤 책을 두고 20대에 만났으면 더 좋았을 거란 저자의 안타까움을 어쩐지 알 것 같다. 순간 내가 놓친 책과 놓치고 지나온 시간들에 대해 생각했다. 지나간 일은 되돌릴 수 없지만 앞으로의 나를 만들어나갈 수는 있다. 책을 대하는 자세가 어제와는 좀 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