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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 2 : 심장에 남는 사람 
EBS 명의 제작팀 엮음 / 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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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흔히 의사나 병원에 관한 불만을 들을 수 있다. 의료라는 부문은 기대치가 높은 분야기 때문이다. 완벽할 수 없지만 자칫하다 소중한 생명을 꺼뜨릴 수도 있다. 꺼져가는 생명을 백 명 살려낸 명의라 할지라도 단한 번 실수(로 인한 의료사고는 더더욱) 용서받을 수 없다. 무엇보다 사람 목숨을 다루는 일이니까 완벽을 요한다. 사람이니 실수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환자에겐 그 실수가 전부가 될 수 있다.

 

이런 기본적인 덕목이야, 도덕적으로 당연히 귀에 못 박히도록 배웠을 터. 그런데도 실제 의료현장에서 존경할 만 한 의사선생님을 만났다는 얘기를 듣기 어렵다. 물론 단순히 의사만 탓할 일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열악한 의료 환경을 돌아보면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더라도 모든 악조건 속에서 환자의 몸과 마음을 고치는 사람이 명의 아니겠는가. 궁극적으로는 모두 명의가 되어야하지 않겠는가.

 

10년 전, 친척이 의료사고로 목숨을 잃은 적이 있다. 소송을 걸었고 승소했다. 의료사고는 승소하기 어려운 분야로 유명하지만 주치의의 잘못이 워낙 명백했다. 물론 의사 본인은 잘못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이미 증거자료가 충분했다. 가족들은 그분을 잃은 슬픔에 무너졌고, 제대로 사과조차 하지 않는 의사의 발뺌에 분노했다. 승소했지만 죽은 사람이 돌아올 리 없기에 이겨도 이긴 게 아니었다.

 

나도 오진으로 고생한 적이 있다. 아파서 찾아간 병원에서 대수롭지 않게 보며 약을 처방해줬고 3개월가량 약만 먹으며 지내다 아픈 게 낫지 않아 큰 병원에 가봤더니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3개월간 아픈 걸 묵힌 탓에 수술 시간도, 낫는 기간도 오래 걸렸다. 퇴원 후 진료기록을 떼러 그 병원에 다시 들렸는데 의사나 직원의 어떤 사과 한 마디도 듣지 못했다. 내가 오진으로 고생했다는 말을 하자, 무표정하게 기록만 떼어 주고 별 대답이 없었다. 그 병원 진짜, 환자를 치료하려고 문을 연 병원이 맞는지.

 

진정한 의사는 두 귀로 들어야 한다고 한다. 한 귀로는 환자가 말하는 것을 듣고, 남은 한 귀로는 환자가 말하지 않는 것을 들어야 한다. 침묵도 충분한 의사표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의사란 사자의 심장과 숙녀의 손을 갖고 있어야 한다. 대담무쌍하고 결단력 있는 동시에 부드럽고 친절하고 사려가 깊어야 한다. 안다, 너무 어렵다.

 

그러나 여기, 든든한 선장 열일곱 명에게서 가는 빛을 본다. 앞으로 환하고 따뜻하게 번져갈 빛을. 의료인들이, 절대적으로 약자인 환자들에게 신체적 아픔만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뛰는 가슴으로 늘 삶에 대한 의지와 희명을 보여주기를. 더 많은 가능성을 제시해 주기를.

 

“살려고 이 세상에 온 거라는 걸, 우리가 잘만 붙잡아주면 어떻게든 살아낸다는 것을 어린 환자들을 통해 배웁니다. 우리가 살려낸다고 볼 수 없을지도 몰라요. 아기들은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비밀은 바로 그 힘이라는 겁니다. 우린 그 힘을 믿는 거지요.” -p385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 우리 시에 비친 현대 철학의 풍경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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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는 지론을 펴는 강신주. 그는 다시 오르고 싶은 산이 있듯 반복해서 읽고 싶은 책이 있다는 것은 매우 행복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가 몇 번이고 다시 오르고 싶은, 아니 그것을 넘어 많은 사람들에게 그 산을 소개해 같이 오르고 싶은 산 스물 한 곳을 추렸다.

산봉우리 스물한 개는 저마다 각각 다른 자태를 뽐낸다. 추파를 던지는 유혹적인 산, 넉넉한 품으로 두 팔 벌려 안아주는 산, 무정해 보이지만 보기보다 속 깊은 산, 만만해 보이지만 가파른 산 등 다양한 면면을 보여 준다. 사진이나 멀리서 바라보는 풍경으로는 알 수 없는 산의 속내를 돋보기 들고 비춰주며 우리를 안내한다. 겉에서 바라보며 산 이름을 부르고 외우긴 쉬워도 막상 그 길로 걸어가긴 망설여질 때가 많다. 가까이서 보면 모든 산은 높고 험하기 때문에.

철학도 이와 같다. 어느 사조의 어떤 철학자, 어느 나라의 누구가 말한 핵심어. 이정도만 기억해도 황송할 일이다. 등산 울렁증처럼 철학 울렁증은 늘 나를 철학 밖으로 이끌었다. 그런데 ‘우리 시에 비친 현대 철학의 풍경’이라니. 퓨전음식처럼 맛보고 싶은 ‘새로운 것에의 동경’이 꿈틀댔다. 시를 읽을 때 길을 헤매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 느낌 자체가 좋기도 하지만 때로는 너무 다른 곳에 와 버린 것은 아닌지 불안해지기도 한다. 많은 이들이, 시에 나타난 정서는 ‘이런 걸 거야~’하며 추측하며 끝나는 게 못내 아쉬워 자꾸만 뒤적거리던 ‘문제의 시’ 몇 편쯤은 가지고 있으리라. 그 문제의 시들이 우거진 숲처럼 신비하면서도 불안하게 남아 있다가 가끔 다른 책을 읽으며 전기가 오듯 연결될 때 짜릿함을 맛보게 된다.이 책은 스물한 개의 짜릿한 시철학 또는 철학시다.

시와 철학은, 오르기만 하면 그래서 그 고도감에 적응하기만 하면, 시인과 철학자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거의 모든 것을 조망할 수 있는 시야를 제공하는 빼어난 산과도 같습니다. 또한 이런 비유가 적절하다면 수많은 시인과 철학자들을 각각 하나의 봉우리에 견줄 수도 있을 겁니다. (……) 어떤 봉우리가 여러분에게 가장 훌륭한 시야를 제공해 주는지 알기 위회서는 직접 오르는 길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p7, 들어가는 글

강신주의 길 안내를 받으며 이 봉우리에서 저 봉우리로, 저 봉우리에서 또 다른 봉우리로 많이도 뛰어다녔다. 서양철학과 우리 시가 이토록 공통된 사유를 할 수가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한편 현대 철학자들이 대부분 서양인이라는 것이 우리 철학의 빈곤을 나타내나 싶어 맥이 빠지다가도, 수준 높은 감성적 통찰력을 보여주는 우리 작품들을 보면서 전혀 빈곤하지 않음을 배부르게 느꼈다.

스물 한 봉우리를 걷고 뛰며 삶과 죽음, 존재와 망각, 사랑과 자유, 마주침과 연대를 사유하라. 한국적 사유의 정조와 인류의 보편적 진리를 고민하라. 앞으로 펼칠 삶에 더할 가치를 그려보라. 그 속에서 나만의 산봉우리가 만들어질 것이다.



 
 
 
<빵과자유를위한정치>를 읽고 리뷰를 남겨주세요.
빵과 자유를 위한 정치 - MB를 넘어, 김대중과 노무현을 넘어 
손호철 지음 / 해피스토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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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는 ‘빵’과 ‘자유’를 모순된 개념이라고 교육한다. 빵은 인간의 의식주를 대표하는 말이다. 곧, 경제라는 말. 프랑스 혁명 직전에 굶주린 백성들이 궁궐 앞으로 가서 “우리에게 빵을 달라!”고 외쳤다. 당시 사람들의 주식이 빵이었지만 꼭 빵이라는 음식의 종류 하나만을 의미한다고 볼 수는 없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모른다.”에서의 빵 같은 예랄까. 
자유는 인간의 인권인 자유와 평등을 말할 때의 쓴다. 신체적 또는 양심적으로 얽매이거나 구속받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

빵과 자유는 서로 모순이라는 말은? 인간의 기본적인 의식주 해결을 위해 자신의 자유를 일부 구속받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1960~70년대 당시 우리나라는 일단 먹고 사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에 개인의 권리가 제약을 받은 게 당연하다는 것. 그 덕에 지금은 경제대국이며,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다고 가르친다. 국가 발전을 위해 개인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위험한 교육이 당연한 가르침이 되는 우리나라. 여기서 빵을 위한 정치는 자유를 데려온다고 가르치며, 자유를 위한 정치는 가난을 몰고 온다고 위협한다.

그런데 손호철은 ‘빵과 자유를 위한 정치’를 말하고자 한다. 끊임없는 경쟁과 배제 속에서 사람과 사람이 손잡을 수 없게 만드는, 인간성을 상실하게끔 몰아가는 신자유주의 한복판에서 빵과 자유, 연대와 희망을 말한다. 모든 게 잘 될거라는 과도한 희망을 배격하며 위기의 민주화운동, 진보진영 그리고 대중의 환멸을 진단한다. 다소 과격한 낙은 87년 체제는 가라!고 외친다. 같이 만들어 온 체제다. 그에게 그런 말은 제 살 깎는 아픈 느낌일 텐데. 그래도 할 말 똑 부러지게 해 온 그의 궤적이 그의 진정을 뒷받침해준다. 그리움, 속상함, 아쉬움, 분노, 조롱 등이 오롯이 담겨 있다. 사안에 따라, 시국에 따라 더 나은 길을 모색해보고자 하는 진심 말이다.  

그의 정치학 이론서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에겐 칼럼모음집이 빈약해 보일지도 모르나 그의 진심과 대화하고 싶은 사람에겐 충분하다. 이 책을 손에 들고 사람의 온기를 한껏 느껴보자.



 
 
 
<역사의공간>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역사의 공간 - 소수성, 타자성, 외부성의 사건적 사유 
이진경 지음 / 휴머니스트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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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세계화 시대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전 지구가 하루 생활권이 아닌가. 다양한 나라, 다양한 인종, 학문, 종교가 스치고 만나고 충돌하고 피하고 뭐,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난다. 매일 텔레비전을 틀면 해외 통신도 나오고, 인터넷에서도 확인할 수 있고 그러니 세계화시대가 맞긴 한 것 같은데 사실 내겐 멀게만 느껴진다.

세계화는 세계환데, 대체 누구의 세계환가.

돈, 지위, 지식 같은 권력을 쥔 사람들에겐 선택할 수 있는 세계화지만 별로 가진 것 없는 대다수 사람들에겐 이동이며 교류며 정착이며 죄다 선택할 수 없는 표면적 자유 아니던가. 평범한 사람들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다. 가진 사람들에게는 세계화, 못 가진 사람들에게는 폐쇄화. 이 정도가 맞는 말이려나. 씁쓸하게도.

 

저자는 이주노동자의 강제추방으로 우리 사회의 폐쇄화를 진단하며 말문을 튼다. 세계화 시대. 이, ‘이주의 시대’에 이주자들을 분할(더 가진자, 덜 가진자, 못 가진자 등) 관리하며 제한된 공간에서만 받아들이는 ‘못된’ 합리화를 지적한다. 못 가진 사람들이 더욱 수렁으로 빠져들고 서로 반목하게 되는 악순환을 진단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할 수 있게끔 역사와 공간을 구체적인 예를 들어 분석한다. 그리하여 외부자, 소수자, 타자들이 사실은 남이 아니고 나임을 자각할 수 있게끔 똑똑 등 두드린다. 이들이 우리 삶에 끼어들 균열과 여백이 만들어지길, 그것을 통해 더불어 새로운 공동의 삶과 시간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는 저자의 소망이 곳곳에 배어 있다.

 

책을 가만가만 읽어보면, 낮은 곳을 바라보며 평등을 이야기할 땐 내 편 같다가도, 내 머릿속 익숙한 차별과 착취를 당연히 여기는 인식을 들킬 때면 속이 따끔거린다. 그래,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참 무서운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내게 면죄부를 주는 건가? 아니, 저자의 의도 또한 독자를 밀어부침이 아님을 알고 있다. 밀어버리기가 아니라 손 마주 잡기가 포인트다. 한 마디로, 동지 만들기랄까.

 

글은 어려운 편이지만 이것이 어찌 우리네 세상살이 보다 더 어려우랴. 원인 모를 두통과 끝 모를 공포감이 밀려오는 게 우리 일상 아니던가. 만성적 고통에 비하면 이 글은 어렵지만 차라리 속 시원하다.



 
 
 
<나를 일깨우는 글쓰기>를 읽고 리뷰해주세요.
나를 일깨우는 글쓰기 
로제마리 마이어 델 올리보 지음, 박여명 옮김 / 시아출판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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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밥벌이하는 사람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무엇이냐 한다면 이런 거.
‘대체 작가들은 글이 잘 안 써질 때 어떻게 할까?’
어떤 이는 아예 아무 것도 안 하고 논다고 하고, 또 다른 이는 여행을 간다고 하고, 잠을 잔다고 하는 이도 있더라.

나도 글 써서 밥벌이하는 사람이다. 작가는 아니고 그냥 직장인(--;). 매월 일정한 원료량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마감이 다가오면 작정하고 써 댄다. 마감이 코앞일 때(혹은 넘겼을 때;;) 글이 안 써진다고 머리를 식힐 여유는 절대 없다. 따라서 내 관심은 슬프게도 ‘잘 안 써질 때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써낼 것인지’다.

일명 ‘백지공포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백지 공포는 누구나 느낄 수 있는 흔한 증상이다. 글 쓰는 게 직업인 나도 글쓰기를 시작할 때(특히 마감이 닥쳐와 조급할 때면 더함) 하얀 모니터 화면을 보면 어찌할 바 몰라 쩔쩔매는 일이 왕왕있다. 아니, 어쩌면 늘 그럴지도 모른다. 내게 글 쓰는 재주가 있다거나 적성이 맞아서 글 쓰는 일을 한다기보다 다른 세상살이 재주가 워낙 없어서 글을 쓰고 있는 것 같다. 다른 기술을 배워보려고 했는데 진짜 안 되더라. 끙.

책에서는 갑자기 잘 쓸 수는 노하우보다 원칙에 충실한다. 글을 ‘잘’쓰기에 앞서 글쓰기가 무엇인지 돌아보게끔 서두를 던진다. ‘글쓰기는 일생상활을 좀 더 의식적으로 경험하고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며 ‘약간의 호기심과 실험 정신, 글을 통해 발산되는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기쁨’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려면 첫째, 나를 알아야 한다. 나를 찾는 여정, 그 안내도를 제안한다. 두려움을 걷어 내고 열린 마음으로 자신을 접하고 영혼 자유롭게 만들기 위한 시도다. 둘째, 재미와 성취다. 글쓰기가 재미있어야 빠져들 수 있고, 그 속에서 얻는 바가 있어야 보람차다. 단순 기술적 부분 코칭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상하는 법이나 조각을 모아 작품화하는 기법, 글로 나누는 대화 다이얼로그 등 설득력 있는 기술을 제시해 활용도를 높였다. 셋째, 실행하라고 등 떠민다. 내가 잠언집을 잘 안 읽는 큰 까닭은 읽고 고개 끄덕이고 말았던 경험들 때문이다. 잠언집 탓을 할 생각은 없다. 이건 스스로 혁신하지 못(안)하는 내 탓이다. 좋은 이야기가 그저 좋은 이야기로 공허하게 날라가 버리는 안타까운 일이 얼마나 많은가. 이 책은 독자의 등을 떠밀기에 충분한 다양한 제안을 담았다. 글쓰기로 되돌아보는 인간관계, 여행과 글쓰기를 동시에 즐기는 방법과 그것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글쓰기의 행복감과 그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담았다. 독자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수다한 예를 들어 그 방법을 차근차근 짚어주고, 실행했을 때 어떤 과정에 부딪히며 결과는 어떨지 상상하게끔 이끌어준다.

책에서 제안한 것을 다 하면 글도 더 잘 써질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긴 아마도 어려울 터. 이중 서너 가지부터 시작해 자양분으로 만들면 일(글 쓰는 일)도, 내 얘기(일기 같은)도 더 잘 써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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