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 루틴 - 1등 기업의 특별한 지식 습관 
노나카 이쿠지로, 김무겸 / 북스넛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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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을 몇점을 줘야 될까? 이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책 자체로 보면 5점을 줘야 되겠지만 노나카의 다른 책과 비교하면 질이 떨어지니 4점이 타당하다. 몇점을 줘야 할까? 책을 덮고 이글을 쓰면서 드는 생각이다.

지식경영 또는 혁신이론에서 저명한 학자인 노나카의 책은 이책이 처음이 아니다. 하도 전에 읽은 거라 제목이 생각이 안나 책장을 뒤져보니 1995년에 옥스퍼드에서 나온 'The Knowledge-Creating Company(지식창조기업)'가 있다. 이책의 부제는 '일본 기업들이 혁신 다이내믹을 어떻게 창조하는가'이다(이책이 번역이 되어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책은 당시 혁신이론을 공부하면서 일본식 혁신, 보통 말하는 카이젠(改善)에 대한 책들 중 하나로 읽었던 것이다.

노나카 뿐 아니라 카이젠에 대한 서적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하려는 노력으로 나왔다: 일본기업은 미국기업들 처럼 새로운 산업을 만드는 기술 가령 전기, 자동차, 컴퓨터 같은 패러다임 쉬프트를 이루는 기술을 만드는데는 약하다. 그런데 어떻게 일본기업들이 미국기업들이 만든 전기전자, 자동차와 같은 산업을 지배하게 되었는가? (이런 질문이 나왔던 80년대는 IT산업도 일본이 지배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 답으로 제시된 것이 점진적 혁신이었다. 미국이 뭘 만들면 그것을 조금씩 개선하는데 뛰어나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일본기업들이 개선에 뛰어난가? 그 답은 '현장'이었다.

미국 제조업의 현재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인텔의 공장을 예로 들자. 인텔의 제품개발과정은 엘리트주의이다. 시제품을 만드는 파일롯 공장을 만들고 거기서 제조공정이 엔지니어들에 의해 디자인된다. 그러면 실제 제조공정에서 일하는 직공들은 엔지니어들의 다자인을 그냥 따르기만 하면 된다.

포디즘이란 말을 낳은 미국 자동차업계의 공장 역시 마찬가지이다. 공장의 현장은 실험실의 높으신 엔지니어들이 만든 계획을 제품으로 실현하는 공간일 뿐이다.

그러나 일본의 공장은 다르다는 것이다. 일본의 엔지니어들은 현장인 공장라인에 상주한다. 그러면서 라인의 작업자들과 의견을 나눈다. 현장의 소리에 따라 라인 설계를 바꾸기도 하고 제품 자체의 설계도 바꾼다. 현장의 소리가 제품의 제조는 물론 제품 자체에 반영되기 때문에 생산성도 높고 품질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일본식 혁신 즉 카이젠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이다. 노나카 역시 80년대부터 있어온 카이젠 연구자 중 한명이다. 그러면 왜 노나카가 유명해졌을까? 카이젠의 논리를 90년대부터 유행한 지식창조란 트렌드에 적용했기 때문이다.

노나카는 암묵지/형식지라 번역하는 tacit knowledge/explict knowledge라는 철학에서의 구분을 카이젠의 논리에 적용해 경영일반론으로 바꾸었다.

경영이론에서 언제나 말하듯이 언제나 답은 현장에 있다. 사람이 자산이라 한다. 그말은 바로 현장의 직원들이 갖고 있는 노하우가 그 회사만의 경쟁력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경쟁력의 원천이 되는 그들의 지식이 그들 자신도 말로 하라면 하기가 힘든 암묵지라는 것이다. 회사의 크기가 작을 때는 문제가 아니지만 회사가 커지면서 그 지식의 형식이 문제가 된다. 회사의 자원이 적절하게 동원되지 않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노나카는 혁신의 원천, 경쟁력의 원천으로서 회사 안에 있는 암묵지를 어떻게 공식적인 형식지로 바꾸는가를 말한다. 암묵지가 형식지가 되면 회사 차원에서 공유할 있다. 그리고 그 형식지가 다시 내면화되어 직원의 노하우가 되고 그 노하우가 되어 암묵지가 된다. 그 암묵지는 실제 현장에서 다시 변하면서 새로운 경쟁력의 원천이 된다. 그러면 다시 형식지로 공유되는 나선형의 발전을 반복한다. 기업의 지식창조 또는 지식경영이란 사실 이 암묵지와 형식지의 나선형 순환에 다름 아니다.

이상은 앞에서 언급한 1995년판 저서에도 나오는 사실이다. 그리고 처음에 언급한 것처럼 이책에 별 몇개를 줄까 고민한 것은 그 생생함이 이전 저서가 더 뛰어나기 때문이다. 이책에는 노나카의 지식창조 이론을 예증하기 위해 캐논, 도요타, 구몬학습, 세블일레븐, 혼다, YKK 등 일본경제에 크게 관심이 없더라도 익히 들어본 10개 회사들이 케이스로 제시된다. 그러나 이전 저서에서 다룬 케이스들이 훨씬 생생하다.

그렇다면 이책은 과거 자신의 책을 또 우려먹기인가? 그렇지는 않다. 이책에는 10여년전의 책에선 볼 수 없었던 이론적 확장이 시도되어 있다.

10여년전 노나카의 이론은 바텀업 즉 상향식의 지식창조를 설명했다. 그러나 경영에선 탑다운 즉 하향식도 설명되어야만 한다. 이책에선 경영진의 리더십 그리고 회사의 비전과 같은 탑다운 프로세스를 지식창조의 관점에 포함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으며 대기업 규모의 구조적 틀에서 지식창조를 포착하려 한다.

과거의 저서가 현장에 현미경을 대고 봤다면 시간이 흘러 완숙해진 시점에서 기업전체에서 지식창조 이론을 완성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문제는 10여년전의 책만큼 생생한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이책 자체로만 본다면 5점을 줘도 충분하다. 그러나 노나카의 이론적 발전의 맥락에서 봤을 때 아직은 기업 전체에서 지식창조를 말하기에는 이르다는 인상을 받았다.

왜 그런 인상을 받았는가 설명하라면 사실 할 말이 궁하다. 이책에서 제시되는 이론적 프레임은 그렇게 흠 잡을 데가 없다. 그러나 그 프레임을 실제 기업의 케이스에 적용한 부분들에서 뭔가 생생하게 이미지가 떠오르게 하는 힘이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결론적으로 이책에 대한 평점은 4.5가 공정하다고 생각된다.

평점 4.5



 
 
 
우아한 아이디어가 세상을 지배한다 
매튜 메이 지음, 박세연 옮김 / 살림Biz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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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역자가 후기에서 말하고 있듯이 이책의 성격은 애매하다. 경영서인가? 경영의 원칙에 관한 것이기는 하지만 딱히 경영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자기계발서인가?  처세에 관한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사고의 원리에 관한 책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만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철학서인가? 미학적 원리에 관한 책이기는 하지만 미학에 관한 것으로 한정되지는 않는다.

이책에 관해 분명한 것은 이책의 주제가 우아함, elegance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주제를 푸는 이책의 방식은 딱히 이렇다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게 쓰여지지 않았다.

이책이 우아함이란 무엇이라는 정의를 내리고 잇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아함이란 무엇인가란 몇 마디 정의로 우아함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아보인다.

저자는 우아함의 정의에서 출발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우아하다고 할 때 우리는 균형미를 갖는다고 본다. 저자는 이것을 symmetry 즉 대칭성을 갖는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단순명쾌하다고 말하는 조건을 가져야 한다. 저자는 이를 여백의 미와 생략의 법칙이라 설명한다. 그리고 균형의 미가 있고 여백의 미가 있으며 생략의 법칙이 적용되더라도 그것이 지속가능한 솔루션일 때 우아하다고 할 수 있다.

저자가 우아함에 대해 내리는 정의는 위와 같다. 저자는 그 정의에 따라 우아함의 사례들을 여러분야에서 찾아내 보여준다. 그 분야는 다양하다. 우아함의 감각적 예를 보여주는 예술, 특히 모나리자의 미소에 사용된 생략의 법칙을 보여주며 적용되는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닌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에서 시작하는 도요타의 혁신 프로세스와 같이 경영의 사례가 동원되기도 하고 E=MC2와 같은 과학의 사례가 동원되기도 한다.

역자가 후기에서 이책에 관해 설명하기가 난감하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그런 혼란스럽기까지한 설명방식 때문이다. 이책은 분명 우아함을 정의하고 잇기는 하다. 그러나 몇마디 말로 우아함이란 이런 것이라고 설명한다고 우아함을 이해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책은 실질적으로 우아함이란  무엇인가라는 정의를 내리고 잇지는 않다. 그보다는 우아함이란 어떤 것이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 우아함이란 그렇게 밖에 정의할 수 없는 것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책이 말하는 우아함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단순명쾌함이다. 복잡한 것을 우아하다고 하지는 않는다. 어떤 대상의 진면목을 단순하게 알기 쉽게 표현할 때 그것을 우아하다고 말한다. 이책에 자주 등장하는 조직이나 규칙의 시스템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책이 말하는 우아함에 가장 가까운 것은 중용일 것이다. 중용을 요즘 말로 하면 타이밍이다. 타이밍은 이해에서 시작한다. 이해하지 못하면 타이밍의 전제인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결과를 낸다는 타이밍의 원칙을 지킬 수 없다. 타이밍을 말로 정의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타이밍이 무엇인지는 타이밍을 실제로 보면서 어떻게 타이밍을 이루는가를 보면서 느껴야 한다.

이책이 말하고자 하는 우아함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아함이 무엇인지 말로 정의해봐야 소용없다. 그것은 느껴야 하는 것이고 해봐야 하는 것이며 하는 것을 보고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우아함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이책은 적절하게 쓰여졌다. 그리고 이책을 덮었을 때 우아함이 무엇인지 느끼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유동성 파티 - 빚내서 파티 즐기는 한국경제의 심층 진단 
송기균 지음 / 21세기북스(북이십일)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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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예측이란 쉽지 않다. 거의 점치는 수준이다. 더군다나 버블이 있는가 없는가를 아는 것은 신의 영역이다. 이번 금융위기로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는 그린스펀이 얼마전 투덜거리면서 한 말이 그것이기도 하다. '버블은 터져봐야 안다'

이책은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해묵은 버블논쟁에 관한 것이다. 버블논쟁이 가장 치열했던 때는 이번 금융위기가 시작되었던 2008년 무렵이었다. 모기지 대출의 부실로 미국경제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 국내의 모기지 대출도 만만치 않은데 버블이 터질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IMF 보고서에서는 한국의 모기지 대출은 미국과 다르다면서 버블이 터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었고 지금 그 결과를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한국경제에 유동성이 과다하게 풀려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이책이 쓰여질 시점에서 800조에 달한다.

이 유동성이 어디서 나온것인가? 그리고 그 유동성이 어디로 가서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가 이책의 주제이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이 유동성은 대출팽창에 의한 것이다. 미국의 버블이 키워진 것과 동일한 방식이다. 문제는 다른 나라에선 버블이 터지면서 유동성이 축소되고 있는데 한국은 위기 이후 그 유동성이 더 빨리 증가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또 다시 모기지 논쟁인가? 그건 아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정부가 부동산 폭등에 DTI, LTV를 조여 대응했듯이 한국의 모기지가 건전한 이유는 참여정부때 도입된 그 규제 때문이다.

저자는 특이한 사실을 제시한다. 중소기업 대출이다. 대출로 공급된 유동성의 반은 가계대출로 나갔고 반은 기업으로 나갔다. 그 반의 대부분은 중소기업으로 갔으며 위기 이후 그 금액은 대폭증가했다. 중소기업의 자금난 때문이었다. 그러나 중소기업들은 영업이익은 지속적으로 떨어져 이자도 못내는 수준이다. 그런데 은행은 왜 대출을 해주었을까? 부동산 가치가 오르면서 담보가치가 올랐기 때문이다. 저자는 위기가 중소기업부문에서 시작되지 않을까 짐작한다. 그러나 저자는 그 과정이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해선 침묵한다.

그러나 저자는 자산시장의 상승랠리를 유동성이 키우는 버블로 본다. 충분히 일리있는 논리이다. 지금의 상승세는 실물경기와 상관이 없이 돈이 많이 풀렸기 때문에 그 돈의 힘으로 부푸는 것이라는 것은 다 아는 일이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일본식의 잃어버린 10년이나 미국식의 위기가 올지는 의문이다. 우선 부동산 시장에서 가격이 급등한 것은 일부 지역에 국한된다. 설사 저자의 말대로 거기서 거품이 터진다 해도 그것이 얼마나 거대한 파급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그러면 주식시장은? 저자가 이책을 썼을 때도 지금도 주가는 위기 이전 수준으로 복귀하는 정도이고 연말까지도 그 정도라고 대부분 예상한다. 그 수준에서 거품이 있더라도 얼마나 큰 영향이 있을까?

개인적으로 저자의 예측에 동의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저자가 자신의 논리를 전개하기 위해 동원하는 자료는 눈여겨 볼만한다. 저자는 IMF와 같은 국제기구나 한국은행의 보고서들과 같은 1차자료를 동원하고 있고 그 자료들을 상당히 설득력 있게 재해석한다. 이런 자료동원력과 분석력은 사실 경기예측에 필수적인 자질이다. 그러나 대개 국내저자들이 내는 책들이란 것이 그런 기본을 지키지 않는다. 그런면에서 최소한 이책의 저자는 성실하게 기본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성실한 자세에 그치지 않고 그 자료를 분석하면서 자신의 논리를 전개하는 과정도 성실하다. 이런 류의 논의에서 눈 여겨 볼 것은 결론이 아니다. 결론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어떤 근거로 어떤 논리를 전개하는가 하는 과정을 눈 여겨 보는 것이 좋은 자세이다. 결론만 얻는다면 스스로 판단할 능력을 개발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책은 배울 점이 많은 책이다.



 
 
 
감각의 매혹 - 내 안의 잠재력을 불러내는 창조성의 열쇠 
조앤 에릭슨 지음, 박종성 옮김 / 에코의서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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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라는 것에 대해 에릭 에릭슨의 마누라가 썼다고? 이책을 선택한 이유이다.

번역제목인 '감각의 매혹'은 이책의 주제와 아무 관련이 없다. 이책의 원제는 '지혜와 감각'이다. 실제 이책은 유아기에 오감을 동원해 세상을 배워나가는 시기부터 노년의 지혜가 어떻게 이어지는 가를 에릭 에릭슨의 라이프 사이클 이론에 따라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이책의 앞 두 챕터에서 감각의 경이에 대해 말한다. 그 예로 드는 것은 이런 것이다.
놀란 표정으로 아이가 묻는다.
'엄마 저 소리가 뭐야?'
'종이 울리는 소리란다'
'아 그게 어디있는데?'
흥분한 아이가 묻는다. 난감해진 엄마는 이렇게 얼버무린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거란다.'
'그럼 '멀리'를 보여줘 '멀리'가 어디 있는데?'
'............'
아이는 타협안을 내놓는다.
'그럼 엄마 종 만들 수 있어?'

아이들이 세상을 배워가는 것은 이런 경이에서부터이다. 이책에서 저자는 아인슈타인이 세기의 천재로 불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러한 감각의 경이를 기억하고 그 경이감을 잊지 않으면서 감각에 따라 구체적으로 사고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우리는 최초의 감각이 주었던 경이를 잊어버리고 '어 종소리'네 하고 무심해지고 무감각해진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감각의 구체성을 잃어가면서 세상과의 접촉에 무감각해지고 무심해지면서 창조력을 잃게 된다.

저자는 그 반증으로 아인슈타인의 예를 든다. 아인슈타인은 지진아였다. 말문이 늦게 트이고 학교에서 배우는 것도 느렸다. 그러나 감각을 통한 관찰을 강조하는 페스탈로치 학교에 들어간 후 그의 재능이 꽃피게 되었다.

아인슈타인은 일곱살까지 어떤 단어를 가르쳐주면 그 단어를 반복해서  소리내어 읽고 다른 사람이 그 단어를 발음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배웠다. 그러니 말을 늦게 배울 수 밖에 없었다.

기하학이나 대수학, 연산법도 종이 위에 기호로 받아들이지 않고 구체적인 물체나 형태, 비율로 접근했다.

취학연령 전까지 아이들은 자신의 감각을 사용해 세상을 받아들이고 이해한다. 그리고 놀이를 통해 세상을 조작하는 법을 배우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배운다.

저자는 남편의 생애주기설을 따라 각 연령마다 배우게 되는 지혜를 설명한다. 유아기에는 희망을 , 아동기에는 의지, 놀이기에는 목적성, 취학기에는 능력, 청소년기에는 충실, 청년기에는 사랑, 성인기에는 돌봄 그리고 노년에는 지혜가 완성되는 시기이다.

각 단계마다 반드시 그런 지혜를 배우고 넘어가는 것은 아니다. 주어진 시기를 적절하게 넘기지 못하면 그런 지혜를 배우지 못하게 되고 노년에는 그냥 나이가 많은 것에 지나지 않게 될 뿐이다.

이상이 이책의 로직 프레임을 요약해 본 것이다. 저자는 생애주기설에 감각의 중요성과 그 감각과 연결되는 예술, 그리고 예술의 창조성을 연결하고 창조성에서 지혜를 연결하려고 한다. 거대한  계획이다.

사실 직관적으로 이런 프레임은 옳게 들린다. 공자는 시에서 시작하고 예에서 서며 음악에서 완성된다고 배움의 과정을 말했다. 시는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이다. 구체적인 감각에서 시작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연마되고 사람과 세계와의 조화를 말하는 음악에서 지혜가 완성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직관적 명제를 저자는 제대로 풀지 못하고 있다. 유년기의 감각과 놀이의 단계에서 창조성과 연결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리고 창조성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예술적 상상력을 아이들에게 배우게 해야 한다는 것도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유년기를 넘어 청소년기가 된 이후부터는 이것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 이후의 단계에서 배우게 되는 지혜와 노년에 지혜가 완성되는 것과는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이책에서 명료하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책이 제목에서 던지고 있는 질문 즉 지혜와 감각 더 구체적으로는 예술적 상상력과 지혜의 관계를 묻는다는 자체로 이책의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미완으로 끝났지만 재미있는 시도이다.

 



 
 
 
파티&파티플래너 
이우용 지음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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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직업으로서 파티플패너를 소개하는 책이다. 이런 종류의 책은 많이 나와 있다. 그러나 전통이 있는 다른 직업들과 달리 하나의 직업으로서 인식되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는 파티플래너에 관한 책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책은 사실상 이 분야에 관한 첫번째 책이다.

이책에 따르면 파티플래너라는 직업은 한국에만 있는 직업이다. 그 이유는 몇가지가 있는데 우선 파티라는 문화가 일반화된지가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잔치라는 단어대신 파티라는 말을 쓰고 있는 사실에서 볼 수 있듯이 파티는 외래문화로서 이식된 것이다. 이책에 따르면 처음 파티라는 문화가 정착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유학파들을 중심으로 상류층의 사교문화로서였다. 그후 홍대 클럽을 중심으로 음악과 댄스를 매개로 한 놀이문화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클럽문화는 파티의 본질이랄 수 있는 사교가 약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문화는 아니었고 점차 시들해졌다고 말한다. 파티 문화가 본격화된 것은 온라인 커뮤니티의 오프모임이 확산되면서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문제는 낯선 사람과 어울리는데 익숙한 구미인들과 달리 한국인들은 낯가림이 심하다는 것이다. 말을 걸기도 어려워 하고 말을 걸어줘도 이 사람이 왜 나한테 말을 걸지라는 심리가 강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껏 판을 만들어줘도 아는 사람들과 떠들다 돌아간다. 이래서는 파티의 의미가 없다.

여기서 파티플래너라는 직업이 필요해졌다고 저자는 말한다. 눈요기 게스트 공연과 같은 프로그램을 짜는 등 행사 자체로 분위기를 띄워주고 서로 사교를 하도록 유도하는 전문적인 관리자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런 내용이 이 책의 전반부에 설명된다. 그리고 책의 후반에는 파티 산업이 국내에 어떻게 시작되었고 시장에서 뛰는 업체들의 성격은 어떤가 그리고 파티플래너가 되는 과정은 어떤가 파티플래너에게 필요한 소양은 무엇인가(기획력, 영업력 등) 국내시장의 성격과 기획되는 파티의 종류 등이 설명된다.

이책은 상당히 얇다. 그 얇은 지면에서 위에서 설명한 내용이 다 들어갈지 들어가더라도 제대로 들어갈지 의아해할만하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실제 파티플래너로 뛰는 현역 노장으로서 최대한 요점만 설명하는 요령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상당히 잘 쓰여진 책이다.

평점 4.5